073화 실리의 밤
실리는 차를 공작부인에게 드리고는 조용히 어딘가로 향했다.
암살자도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오직 달빛과 별빛만 있는 어두운 시각에 실리는 자신의 방에 들어왔다.
개인이 혼자 쓰기에는 지나치게 넓었고 쓸쓸했다.
침실과 옷장, 화장대 등 기본만 있고 나머지 공간은 비어 있었다.
특이한 점이라면 방 중간에 아무 장식도 없는 벽을 바라보도록 책상을 뒀다는 것이다.
“이제 슬슬 올 때가 되었는데 말이야.”
그때, 혼잣말하며 문을 닫는데 창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똑! 똑!
창문을 작게 두드리는 소리였다.
소리는 들렸으나 밖에는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옳지. 이제 왔구나.”
그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밖을 보고도 귀한 손님을 맞이하듯이 창밖을 얼른 열었다.
문을 열자 그 새는 보이지 않았으나 점차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방안의 빛으로 보이게 된 거대한 독수리의 모습이었다.
“꾸르르르륵!”
“그래. 고생했구나. 그것을 주고 여기 있는 간식을 먹으렴.”
그러나 독수리라고 하기에는 이상했다.
창밖에 있을 때는 분명히 모습이 보이지 않았는데, 그것이 방안으로 들어오자 모습이 마법처럼 서서히 보였다.
누구도 그런 일이 가능한 독수리가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게다가 이 짐승은 지나치게 똑똑했다.
그녀가 달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듯이 그녀에게 한쪽 다리를 내밀었다.
그 다리에는 서신이 든 작은 상자가 묶여 있었다.
실리는 그 서신을 꺼내서 읽었고 독수리는 그녀가 준비한 간식을 먹었다.
그녀는 은근슬쩍 간식 일부를 아까 서신이 담겨져 있던 상자에 넣었다.
“환수가 여러모로 좋아. 이렇게 귀한 정보를 가지고 오는데 아무도 모르잖아.”
환수.
환수는 정령이 정령계에 살듯이 환수계라는 곳에 사는 존재다.
간단히 말하자면 동물에 가까운 정령이라고 볼 수 있다.
페루제 공작부인은 인재를 모으는 것을 좋아했고 그 분야는 다양했다.
그 분야에는 마법도 있었다.
그녀를 따르는 마법사 중에 하나가 ‘환수’의 존재를 증명하면서 이렇게 계약까지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곳에 존재하는 동물의 수만큼 환수계의 정령 종류도 다양했다.
그래서 인간은 극히 일부의 환수에 대해서 아는 미지의 영역이다.
그 다양한 환수 중에는 모습을 주변과 융화해서 자신을 숨기는 기술을 지닌 환수도 있었다.
“꾸르르르르륵.”
“내 정신 좀 봐. 미안하구나. 여기 마석이다. 이거 먹고 얼른 힘내서 돌아가야지. 이 서신을 준 아이에게로 말이야.”
독수리 형태의 환수가 실리를 바라보며 울었다.
서신에 집중하던 그녀가 정신을 차리고 환수에게 다가갔다.
마석을 건네주자 환수는 마석을 꿀꺽 삼키고는 창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창밖에는 날아가는 환수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이 시작이었다.
똑, 똑!
“꾸르륵.”
똑, 똑!
“꾸꾸꾸꾸르르르르.”
똑, 똑!
“드럽더꾸륵.”
똑, 똑!
“꾸륵더비트.”
똑, 똑!
“꾸륵김미마석.”
여러 마리의 독수리 환수들이 이어달리기처럼 창문을 두들겼다.
그녀는 그 서신들을 하나하나 넓은 방의 벽에 붙였다.
나중에는 방벽이 서신들로 가득 채워졌다.
그 서신들을 가만히 서서 계속 반복적으로 읽었다.
그리고는 큰 책상 위에 그에 맞는 크기에 종이를 놓았다.
그녀는 펜을 잡고 빠르게 움직였다.
“A가문과 B가문. 적이었던 관계에서 비밀리에 동맹. 겉으로는 계속 적대적인 척하는 중.”
“B가문과 C가문. 견고했던 관계가 서서히 벌어지는 조짐이 있음. 이 사이를 잘 건들면 부인에게 이득이 될 것.”
“A가문과 D가문. 정략결혼을 통해 가문 간의 이득을 얻으려고 했으나 결국 싸울 조짐이 보임.”
“D가문과 C가문. 서로 은밀히 접촉 중.”
실리는 서신들의 내용을 종합하여 정리하는가 하면…….
“동맹을 유도하면서 같이 자멸하도록 할지, 아니면 한쪽만 구명할지에 따른 손실과 이득 예상 자료 요망.”
“도와야 할 쪽과 버려야 할 쪽을 판단할 근거 필요. 추가 정보 필요.”
“은밀한 접촉의 목적 파악 요망.”
“가문의 주도권을 빼앗을 경우. 얻을 수 있는 것과 위험 부담 보고 요망.”
환수를 보낸 아이들에게 보낼 명령도 적었다.
쉴 틈도 없이 받은 서신을 파악하고 명령이 적힌 종이를 환수에게 매달았다.
해가 뜨기 시작하자 더는 환수들은 날아오지 않았다.
“아이들이 많으니 모이는 정보도 많군.”
그녀는 잠도 자지 않고 페루제 공작부인을 위해 헌신했다.
비록 보이지 않고 자신의 주인이 알지 못할지라도 그것이 그녀의 충심이다.
* * *
알펜 왕국과 라스타 왕국의 교류에 상인들은 바빠졌다.
새로운 시장 개척은 새로운 수입을 뜻했으니까.
그들이 바쁜 만큼 양국의 세작들도 부지런히 자국을 위해 움직였다.
알펜 왕국의 세작 중 하나인 사내는 어느 상단에 합류하여 라스타 왕국으로 입국하려고 했다.
세작은 자연스럽게 상단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라스타 왕국은 어떤 곳일까?”
“글쎄, 우리도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으니까.”
“소문에는 엄청 낙후된 곳이라고 들었어.”
라스타 왕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메디치 백작령을 지나야 했다.
알펜 왕국에 새롭게 편입된 메디치 백작령은 사람들에게 감흥을 주지 못했다.
그렇지만 세작은 ‘페루제 메디치 루비로즈’가 어떤 인물인지 알았다.
사람들의 인식과 다를 것이다.
벨로나 공작 각하조차 긴장하며 상대를 해야 하는 여인이었으니까.
도대체 그녀가 다스리는 영지는 어떤지 궁금할 따름이다.
“이제 곧 메디치 백작령이니까 알 수 있겠지.”
“그렇겠죠. 거기는 라스타 왕국이니까.”
“뭐, 이제는 알펜 왕국의 영토라고 해도 나는 라스타 왕국처럼 느껴진다니까.”
“원래 라스타 왕국 영토였으니 당연하지.”
그들은 이번에 알펜 왕국으로 편입된 메디치 백작령은 낯선 타국의 영토와 같았다.
한 번도 가 본 적도 없고 갈 수도 없었던 지역이 갑자기 편입되었으니 경계심을 갖는 것은 당연했다.
그 경계심을 이해할 수 있다.
작정하고 처음부터 계획 결혼을 하지 않았는가.
그만큼 믿는 것도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여자가 영주라며?”
“에이, 여자가 어떻게 영주를 해? 헛소문이겠지.”
“교류하려고 허수아비 하나 만들었다고 하던데?”
“아! 어쩐지. 그러면 여자 영주도 가능하겠네.”
“아무리 알펜 왕국과 교류하고 싶어도 그렇지 어찌 여자를 영주로. 쯧!”
여성이 영주로 영지를 다스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긴 알펜 왕국의 사내들은 메디치 백작령이 대단할 것이라는 기대 자체가 없었다.
“우리 왕국에 비해서 얼마나 떨어지면 그러겠는가?”
“그럼 문화 대국인 알펜 왕국이 아량을 베풀어야지.”
여성 따위를 영주로 내세우면서까지 알펜 왕국과 교류를 원한 정도로 라스타 왕국의 수준이 떨어졌다고 비웃었다.
그리고 메디치 백작령에 들어오자 그들은 입을 다물지 못하게 된다.
그것은 세작인 자신도 마찬가지다.
“이 길은 뭐지?”
“뭐야? 왜 이렇게 넓어?”
길은 마차들과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 따로 있었다.
마차들이 지나가는 길은 큰 마차가 6대는 지나갈 수 있을 만큼 넉넉했으며 길은 튼튼하고 깨끗했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에는 나무가 세워져서 그늘이 되어 줬다.
“엄마! 이거 사 주세요!”
“얘도 참! 아까 저기서 다른 간식 먹었잖아.”
“여보, 그냥 사 줍시다. 이렇게 놀러왔는데 신나게 놀다가 돌아가야지.”
“그건 맞는 말이에요. 아버지께 감사하다고 해야지.”
“와! 아빠 감사합니다!”
백성들이 자신의 가족들과 그 도보를 걸으며 산책을 나왔고 그 도보 곁에는 노점상들이 음식을 팔고 있었다.
그 길 곁에는 마차 주차장이 넓게 있었다.
족히 수백 대는 세울 수 있을 규모였고 그곳은 전부 마차가 세워져 있었다.
과하지도 않으면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노점상들은 깨끗하게 관리가 된 티가 났다.
“역시 여기 꽃들 구경하는 맛이 있어.”
“그렇죠. 여기 나무에 핀 꽃들이 너무 예뻐요.”
“근처에 심어둔 꽃들도 장관이군.”
도보밖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여러 종류의 장미들이 만들어 낸 풍경은 입을 벌어지게 만들기 충분했다.
아직 사람들이 사는 성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였다.
라스타 왕국을 얕잡아보던 상단의 사내들이 말을 뱉지 못했다.
자신도 그 광경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몰라 입을 벌리고 그 모습을 봤다.
“헉! 뭐야?!”
“저 말은 뭐지?”
충격적인 모습에 말을 잇지 못하다가 놀라운 것을 보고 놀랐다.
“말이 푸른색이야?”
“파란색 말이 있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그것보다 저 크기를 봐. 저게 말이 되는 거야?”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다가가는데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말들이 있는 것이 아닌가!
자신들이 봐 왔던 말의 족히 2—3배 되는 크기는 위압감을 줬다.
알펜 왕국의 말들이 두려움에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어이, 이거 왜 이래?”
“진정해.”
상단 사람들이 말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때였다.
관리로 보이는 사내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그 모습을 보고 상단주가 빠르게 그에게 갔다.
“혹시 알펜 왕국의 상단입니까?”
“아! 네, 맞습니다.”
“이동허가증을 보여 주시지요.”
“여기 있습니다.”
메디치 백작령의 관리로 보이는 사내는 이동허가증을 보여 달라고 했다.
이동허가증이란 타국 혹은 타영지로 이동해야 할 일이 생길 경우에 왕실이나 영주에게 허락을 받고 이동하는 것이었다.
관리는 허가증을 보고 상단주를 봤다.
그리고는 한숨을 쉬었다.
뭔가 상대를 한심해하는 것이 보였다.
상단주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기가 죽는 기분이 들었다.
“허가증을 받으면서 안내를 받지 못했습니까?”
“안내요? 무슨 안내인지요?”
상단주가 갸우뚱거리며 되물어보자 관리가 머리를 긁적이며 짜증을 냈다.
“분명히 이곳으로 오는 사람들에게 안내를 하라고 요청을 했는데?!”
“뭐야? 무슨 일이야?”
한 여인이 관리에게 다가왔다.
그 여인도 관리와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여인도 관리였던 것이다.
여인이 관직에 오른다는 것 자체를 상상해 본 적이 없던 알펜 왕국 사람들은 눈을 비벼보며 그들을 바라봤다.
“이동허가증을 내주면서 이곳에 대한 설명을 아무것도 하지 않았나 봐.”
“뭐? 어처구니가 없네. 이래서 나는 알펜 왕국과의 교류를 반대했다니까.”
그녀는 알펜 왕국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처음 교류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많은 백성이 반대했는데 그 반대에 동조한 인물이었다.
지금의 발전된 라스타 왕국은 왕실이나 귀족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페루제 루비로즈’가 만든 것이었으니까.
자신도 왕국의 부흥 덕분에 관리가 된 케이스였다.
교육의 기회를 주고 공정한 평가의 기회를 받았으니까.
많은 백성이 페루제 루비로즈의 부재로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했다.
언론의 자유가 없고 이동의 자유가 없는 억압된 사회였다.
다행히 아직은 그런 징조가 없었으나 미래는 아무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