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굴복하거나, 죽거나-66화 (66/221)

066화 남편에게 당했다

자신의 남편이 사과할 줄은 몰랐던 눈치였다.

“그대에게 이유가 있었을 것인데 화부터 낸 것을 사과하지.”

그 사과가 이해가 되지 않는거 같았다.

분명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한 것인데 그녀는 찜찜한 표정이었다.

“그대가 언급한 사람들 말고도 또 있나?”

자신이 털어야 할 방계들이 더 있냐는 물음에 그녀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더 있기는 하지만 나중의 재미를 위해 남겨 놓지요.”

알아내려면 네가 알아내라는 의미였다.

“알겠네. 내가 직접 조사를 하고 얘기하지.”

“그러시죠.”

부부의 대화는 이렇게 끝이 났다.

그녀는 간단한 인사를 하고 방을 나갔고 너무마니 무모하다는 감옥으로 끌려갔다.

“저놈을 끌고 가고 관련자들을 모조리 잡아들여라!”

“네!”

“각하! 각하! 용서해 주십시오! 다시는 그리하지 않겠습니다!”

그녀가 언급한 가문들의 죄는 사실이었으며 그것마저 축소되었다는 것이 알려졌다.

공작은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방계 가문에서 제명시켰으며 가문의 사내들은 광산의 일꾼으로 살도록 했다.

그동안 그들이 착복한 돈을 광산 일꾼으로 일하면서 갚아 나가도록 말이다.

포련데이트의 가문은 몰수한 재산 중 일부를 피해자들에게 줬다.

“하?”

그 일은 공작부인을 열 받게 만들었다.

“뭐라고 했는지 다시 말해 봐.”

“출신 가문에 상관이 없이 죄지은 자를 벌주는 공명정대함을 지니셨다고 공작 각하를 칭송하는 목소리가 퍼지고 있다고 합니다.”

실리는 이마에 땀이 생기는 것을 닦지도 못했다.

“그이는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몰랐는데?”

“그것이…….”

“어서.”

난감해하며 감히 말을 잇지 못하던 실리는 공작부인의 압박에 입을 열었다.

“마치 이전부터 준비했던 것처럼 일사천리로 처리가 된 바람에 영지의 백성들은 오래전부터 공작 각하께서 방계 가문의 개혁을 생각해 낸 것이 아니냐고 말이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비리 조사의 어려움은 그 대상자를 겨냥하기 어렵다는 것에 있다.

반대로 말하면 대상자만 확정 지으면 조사는 술술 풀린다.

쥐 잡듯이 모두 털어 내면 되었으니까.

그런데 그 어려운 작업을 공작부인이 다 해 준 꼴이다.

공작부인이 초대하지 않은 방계들만 잡아넣어서 조사하면 되었다.

“왜 그때 그렇게 쉽게 사과를 하고 대화를 끝냈는지 알겠군.”

이번에는 공작부인이 이를 갈았다.

기껏 고생해서 얻은 정보들이 공작을 영웅으로 만들어 줬으니까.

명단만 있으면 공작의 정보원들이 금방 비리를 캐낼 수 있었다.

공작이 자신의 지지 세력인 방계 가문을 이렇게 쉽게 버릴 줄은 몰랐다.

언급한 셋만 잡고 끝낼 줄 알았다.

방계 가문의 반 가까이 되는 가문들을 모조리 처리하는 것은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저항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잘 처리했다.

소드마스터라는 경지가 일을 쉽게 만들었다.

감히 대항하지 못하도록 하는 힘이었다.

방계 가문의 일부를 버리는 대신에 민심을 얻을 수 있도록 대대적으로 움직인 것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도 전부는 아니었으니까 안심하시지요.”

실리가 할 수 있는 위로는 이것이 전부였다.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공작은 알았다.

그녀가 언급하지 않은 방계들을 그대로 둔다면 계속 그들이 자신의 발목을 잡을 것임을 말이다.

그래서 미리 후환거리를 처리한 것이다.

* * *

발렌티노 벨로나와 페루제 벨로나 간의 기 싸움은 무승부로 끝이 났다.

공작부인의 입장에서는 방계 가문 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이들에게만 초대장을 보내게 된 것이 이긴 것이다.

공작의 입장에서는 부패한 방계들을 처리하면서 그들의 원망은 공작부인에게 향하게 만들고 영지 백성들의 지지는 자신에게 향하게 만든 것이 1승이었다.

그녀는 무승부로 끝낼 생각은 없어 보였지만 말이다.

“저는 그이에 대한 걱정이 기우였음을 확인했어요.”

그녀가 우아하게 차를 마셨다.

“사실 방계라는 이유로 가치도 없는 것들을 감싸 안을 까 봐 걱정이었답니다.”

그녀 앞에는 여러 부인이 있었다.

“이렇게 자를 것들을 자를 줄 아는 분이라니요. 정말 가문의 미래가 빛나는 거 같아요.”

방계 가문의 안주인들이었다.

그들은 떨리는 손을 겨우 진정시키며 공작부인의 앞에 있었다.

“내가 알려 주자마자 이렇게 바로 처리를 할 줄은 꿈에도 몰랐거든요.”

갑작스럽게 초대에 모든 부인이 하던 일을 멈추고 달려왔다.

‘초대’라고 했다.

그렇지만 그것이 ‘명령’임을 모르지 않았다.

마녀 의혹자 명단에 있어서 언제 끌려갈지 모르는 처지다.

그녀의 심기를 어지럽게 하는 것은 스스로 죽겠다고 나대는 것과 같았다.

“가문의 역사가 길고 고귀할수록 뭔가를 버리는 일이 버겁게 느껴지죠.”

부인들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녀가 말한 ‘뭔가’가 자신과 아이들 그리고 남편을 뜻함을 알았다.

각 방계 가문의 비리를 손에 쥐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다.

공작이 기습적으로 조사단을 보내고 방계들을 끌고 나올 수 있던 것은 공작부인의 덕분이었다.

그녀로 인해 낌새조차 느끼고 자료를 폐기할 시도조차 못 했다.

그 탓에 모조리 잡혀서 재산을 몰수당했다.

“내가 의외로 친한 사람들이 많아요.”

그녀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이것저것 듣는 이야기도 많죠. 그중에는 그대들의 가문 이야기도 있고요.”

너희 가문의 비리를 나는 알고 있다.

지금 이보다 더 무서운 말이 어디에 있을까?

그녀가 망하게 만든 방계 가문이 상당했다.

공작이 주도한 것이지만 그 빌미는 그녀가 만들었다.

그녀는 언제라도 공작을 통해서 자신들을 옥죄일 수 있었다.

“그이는 여기보다 수도에 더 오래 있었죠?”

“네.”

“어린 시절에도 공작으로 바빴고 전장에도 다니고요.”

“맞습니다.”

영지는 북부라고 해도 공작은 왕의 최측근으로 수도에 대부분 있었다.

어린 시절에도 공적을 쌓기 위해 전장을 다녔고 공작의 업무를 수행해야 했다.

“그이와 어린 시절을 같이 보낸 방계는 없겠어요.”

방계들과 친목을 도모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고모인 칸나 백작 부인이 방계와의 교류를 막은 것도 한몫했다.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지금 독이 되었다.

공작은 방계 가문을 유지하는 것보다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는 것이 더 이득임을 이번 일로 제대로 깨닫게 되었다.

과거에는 영지도 있고 병사도 있던 방계들이 상당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런 방계 가문의 수는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공작 가문과 큰일을 해 볼 만한 자금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도박, 사치, 빚으로 그 영지와 병력을 유지할 역량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들면 공작 가문에서 그 영지의 소유권과 지배권을 샀으니까.

“북부를 지킬만한 병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영지 백성들을 괴롭히게 둘 수 없었기에 선택한 방법이었다.

그런 가문들은 상단을 꾸려서 먹고 살기 시작했고 그 주요 고객은 공작 가문이었다.

“능력이 좋아서 상권을 활성화시키는 것도 아니고…….”

과거와 달리 지금의 공작 가문은 굳이 방계가 필요하지 않은 이유였다.

“대대로 ‘공작 가문의 절대적 우군’이라는 믿음 말고는 없는 것 같군요.”

그럼에도 중요시했던 것은 대대로 해오던 관행이기 때문이었다.

선대가 해 왔고, 그 이전의 공작들이 해 왔으니까.

자신들도 그리하지 않으면 자리가 위태로워질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감정적 교류도 없고 자신의지지 세력이라고 하기에도, 적대 세력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존재들.

객관적으로 보자면 방계들이 직계의 절대적인 지지 세력이었지만, 그것이 그들의 비리를 묵인할 만큼 영향력이 있지 않았다.

영지 없이 상단을 꾸린 방계 가문들은 공작 가문에 빌붙으려는 것들에 지나지 않았다.

공작은 공작부인 덕택에 생각이 트이게 되었다.

합당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방계 가문들을 ‘타당한 이유’를 통해서 퇴출시키는 것이 낫다는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공작부인이 ‘타당한 이유’를 내뱉는다면 그 방계 가문의 운명은 정해지는 것이다.

당연한 소리지만 영향력이 있는 방계 가문은 제외다.

뭐, 좀 귀찮아도 힘써 본다면 충분히 처리 가능한 수준이기는 하다.

“그이가 그대들을 구해 주지는 않겠네요.”

그녀는 모두가 외면하려고 했던 진실을 굳이 끄집어 와서 알려줬다.

“내 입은 무거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페루제 공작부인의 아름다운 웃음에 소름이 돋았다.

“나를 거슬리게 하지만 않으면 그대들이 다칠 일은 없어요.”

참으로 그녀다운 말이다.

자신을 거슬리게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말이 그들을 위험에서 보호해 주겠다는 의미는 아니었으니까.

오직 ‘그녀’가 그들을 다치게 하거나 죽게 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부인들에게는 자신들을 죽이거나 다치게 할 사람은 공작부인뿐이기는 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로 시간을 끌었네요.”

방계 가문 부인들의 목숨과 안위에 대한 이야기는 그녀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 하지 않아도 저에게 복종할 텐데 말이에요. 그쵸?”

“물론입니다! 복종하고말고요!”

“그러믄요! 절대로 헛된 생각을 품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면 죽는다는 생각을 품은 듯, 부인들이 격렬하게 호응했다.

광기까지 느껴질 정도다.

“그럼요. 저는 부인들을 믿고 있어요.”

그녀가 말하고는 찻잔을 입에 가져다가 댔다.

‘우아함의 대명사’라는 표현을 붙여 줘야 할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그 모습에 부인들은 두려움도 잊고 바라봤다.

곧 다시 정신을 차렸다. 바라만 보기에도 너무 무서웠다.

“이번에 그이를 위한 ‘환영 연회’를 할 예정인거는 들었죠?”

“네.”

모두가 합창단처럼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고는 노려보듯 페루제 공작부인을 바라봤다.

“제가 공작부인으로 하는 공식적인 첫 행사에요. 당연히 성공을 해야겠죠?”

그녀가 찻잔의 차를 바라보며 말을 계속했다.

“그러려면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하답니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서 도와주실 거죠?”

엄청 부려먹겠다는 말을 길게 늘여서 말했다.

“물론입니다.”

부인들이 할 말은 정해져 있었다.

바빠도 반드시 해야 하고 아파도 반드시 해야 했다.

여기서 못 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냥 자신을 죽여 달라는 말이었다.

다행히도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었다.

어느새 ‘공작을 위한 환영 연회’를 위한 준비 과정은 공작을 위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방계 가문 부인들의 기강을 다시 한번 잡아 내정의 권력을 단단히 만드는 과정이었다.

그녀들이 떠나고 페루제 공작부인은 생각에 잠긴 듯이 창밖을 바라봤다.

“세상이 변했어.”

“그렇습니다.”

실리가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방계가 직계의 버팀목이라는 생각은 구시대적이지.”

시대의 변곡점 앞에 있었다.

교황은 예전보다 힘이 약해져서 공작부인에게 의지했다.

카엘족은 태초의 죄를 사함을 받아서 세상 밖에 당당해질 수 있었다.

여인인 그녀 자신은 왕국의 최고 권력자이자 알펜 왕국와 라스타 왕국의 백작이 되었다.

시대가 변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사건들이다.

“맞습니다. 이제 여러 가문들이 알게 되겠지요. 방계를 버려야 앞으로 살아남을 수 있음을 말입니다.”

실리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