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굴복하거나, 죽거나-65화 (65/221)

065화 공작 가문의 치부가 되는 방계 가문

그녀가 뿜어내던 살기가 점점 옅어졌다.

“믿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대의 말이 진심이라면 한번 믿어 보지. 방계가문은 가문을 지탱하는 소중한 존재야.”

벨로나 공작이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그녀가 말한 소중한 생명이 과연 누구를 의미하는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녀 자신만 소중하다고 여길 여인이었으니까.

“그리고 더는 그대와 말싸움하지 싫어. 당장 초대하지 않은 가문들에게도 초대장을 보내.”

그녀가 그 말을 듣고 얼굴을 찌푸렸다.

불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아니 됩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왜 이딴 결정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일 수 있다.

그 표정이 상대를 한없이 깎아내리며 고개를 숙이게 만드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다.

공작이니까 열받아하면서 끝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모멸감에 한동안 방을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대가 말하지 않았나? 나를 위한 환영연회라고? 내가 원하는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아?”

그는 ‘공작을 위한 환영연회’라는 취지에 맞게 자신이 원하는 사람들로 초대를 하라고 했다.

그 말이 맞았다.

공작이 주인공인 연회인데 공작이 원하는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이 당연했다.

“맞아요. 당신이 원하는 사람들이 오는 것이 당연하지요.”

그녀는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고 말했다.

도리어 떨떠름해진 것은 공작이었다.

뭔가 뒤통수를 치기 위한 준비인 것처럼 찜찜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굳이 가문의 격과 가치를 떨어뜨리는 작자들에게 과분한 대우를 해야 할까요?”

“가문의 격과 가치는 그대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가문의 역사와 가주들의 업적이 하는 거지.”

가문들의 수준을 나누는 것은 크게 4가지다.

길고 긴 가문의 역사와 가주들이 이룬 업적들 그리고 그 가문이 가진 권력과 부다.

가문의 역사가 길어도 빛날 만한 업적이 없다면 모두에게 기억될 수 없다.

기억될 수 없는 역사는 더는 역사가 아니다.

역사는 그 근거와 증거가 있고 알려져야 역사다.

그 역사를 만들고 주도하는 사람이 바로 가주다.

가주가 업적을 세워서 가문의 위상을 높이고 역사에 남기면 사람들에게 그 가문은 떠받들어진다.

대대로 이어질 역사를 세운 가문이라고 해도 권력과 부가 없다면 몰락을 앞둔 왕국과 다르지 않다.

불순한 무리에게 공격을 당해도 막아 낼 힘이 없다면 그 가문은 유지될 수 없다.

권력과 부는 그 가문을 지킬 창과 방패다.

“또한 벨로나 공작가문은 외세의 공격에 쉽게 무너질 가문이 아니다.”

공작이 말하는 ‘외세의 공격’은 공작부인을 뜻했다.

공작부인이 가문을 무너뜨리려고 한다는 말로 쉽게 말하자면 페루제 공작부인이 가문을 말아먹으려고 한다는 말이다.

공작 가문의 안주인을 가문 말아먹을 여인으로 만드는 말은 상당히 모욕적으로 들렸다.

“그 가문의 역사와 가주가 쌓은 것을 무너뜨리는 자들만 초대장을 주지 않은 것입니다.”

그녀는 공작의 말에 담긴 뜻은 신경도 쓰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너무마니 무모하다는 예상하지 못한 말에 얼굴이 사과처럼 익었다.

상대가 공작부인이라는 것도, 그 공작부인이 소드마스터이자 남편인 공작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는 것도 잊을 만큼 모욕적이었다.

“지금 저희 가문이 직계인 공작가문에 치부라도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저자세로 있던 그는 그 자신도 부족해서 방계들, 나아가서는 선조들까지 모욕하는 공작부인의 발언에 분노했다.

그 모습을 보던 그녀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더니 깨달았다는 듯이 말했다.

“치부라고요? 아?! 알고 있었군요. 자신들이 이 가문의 치부라는 것을요!”

너무나도 해맑은 웃음으로 말하니까 외국인이 들었으면 상대를 칭찬하거나 좋은 말을 하는 줄 오해했을 것이다.

“설마 그것도 모르는 머저리일까 했는데 그건 아니었네요.”

그것도 박수까지 치면서 말했다.

오죽하면 제대로 들은 말인데도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서 공작이 화를 낼 때를 놓쳤겠는가.

너무마니도 공작과 다르지 않았다.

“사과는 하지 못할망정 대놓고 모욕을 하는 것인가.”

공작이 얼른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살기를 띤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느낌이었다.

“맞, 맞습니다. 당장 사과를 해주십시오. 이는 저희 가문뿐 아니라 다른 방계 가문들도 모욕하시는 것이니까요.”

공작의 말에 너무마니 무모하다도 사과를 요구했다.

“당신이 분노하시는 것을 이해합니다.”

그녀는 공작의 분노는 타당하다고 여겼다.

방계가문의 치부는 곧 직계가문의 치부로 연결되며 방계가문의 더럽힌 명예는 직계가문의 명예도 실추시키니까.

방계 가문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한 직계가문이라니!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었다.

자신의 태도가 화를 불러일으킨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는지는 모른다.

그것을 알아도 달라질 것은 없었으니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대는 알면서 그러는 거야?”

마치 네가 공작 가문의 치부임을 아는 놈이 이러는 거냐고 물어보는 듯했다.

누군가가 자신의 목을 조르는 기분이 들었다.

“입 다물고 조용히 있었으면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아쉽군.”

너무마니 무모하다는 몸이 굳었다.

“저것이 어떻게 되는 것은 내 알 바가 아니지만…….”

‘저것’은 너무마니 무모하다다.

자신에게 차갑거나 비아냥거리는 모습이 아니었다.

정말로 아쉽다는 말투와 어쩔 수 없다는 눈빛이었다.

놀리는 것이 재미가 있었지만 이제 그만해야겠다.

더 놀리려고 했다가는 그이가 검이라도 뽑을 것 같았다.

“당신이 가문뿐 아니라 방계가문을 얼마나 아끼고 있는지 알고 있어서 말하지 않았는데.”

정말 이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말투.

정말 자신은 조용히 있으려고 했는데 당신 때문에 일이 커졌다는 말투.

“어쩔 수 없지요.”

그녀가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거기에는 뭔가에 대한 기대감이 내포되어 있었다.

“제가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고 그 책임은 방계들의 대표로 온 그대가 책임을 져야 해요. 그리고 일을 크게 만든 당신도요.”

일을 저지른 상대는 페루제 공작부인인데 책임은 다른 사람들이 져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당당하고 거리낌이 없어 보였다.

그녀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누가 봐도 상대를 한심해하고 있었다.

그 상대가 공작일지 무모하다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는 공작부인만 안다.

“무모하다 가문은 대대로 공작성의 식자재 납품을 담당했지요. 가문에 보고한 품질보다 낮은 품질의 식자재를 들여오고 나머지는 착복했더군요.”

분명히 옳지 않은 일이다.

문제가 될 사항이었다.

아쉽게도 방계들의 이런 비리는 묵인하는 것이 관례였다.

문제를 삼아야 할 만큼 공론화되거나 금액이 크지 않다면 가만히 두는 것이 나았다.

그것을 위해 증거를 모으고, 재판을 열고, 벌을 내리고, 그에 대한 서류를 작성하고…….

시간이 너무 들었다.

영지까지 다스려야 하는 그들은 일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가문에 이상이 생길만큼 착복하는 것이 아니라 소소하게(?) 하는 것이었기에 아끼는 방계가문에 용돈과 힘을 좀 준다는 마음으로 방관했다.

대부분의 방계가문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문제는 공작은 수도에 있느라 이 상황을 몰랐고 그는 이런 것을 넘어가는 성격이 아니었다.

공작이 상황을 알고 묵인해 주는 것과 아예 몰랐던 것은 다른 문제다.

후자는 공작에게 성의 누구도(하물며 집사조차도) 이런 사실을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것은 그런 보고되지 않은 사실들이 많을 것임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공작은 가문과 관련된 필수적인 것은 보고를 받았으나 그 외에 소소하다고 칸나 백작부인이 판단한 것들은 보고받지 못했다.

“그것이 사실인가?”

“공작 각하, 그것이 말입니다.”

너무마니 무모하다는 당혹스러웠다.

묵인한다고 해서 그것이 정당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공론화가 되면 빼도 박도 못하고 유죄다.

직계가문 몰래 뒷돈을 챙기는 것이 관례라고 말하기도 뭐하지 않는가.

‘몰래’가 아니라 ‘허락 하에’라고 표현하는 것은 더 이상하다.

실제로 공작은 몰랐으니까.

페루제 공작부인이 오기 전까지 내정은 칸나 백작 부인이 맡아서 관리하고 있었다.

이 일이 알려진다면 공작 가문은 비리도 떳떳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넓은 마음을 가졌다는 비꼼을 당하게 될 것이다.

“닥치게. 나는 그대에게 물어본 것이 아니야.”

공작이 당장이라도 그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가문 내의 일인데 가주가 모른다니요. 칸나 고모님이 내성을 잘 장악했나 보네요. 그럴 능력은 없는 거 같았는데?”

그녀는 담백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무능한 칸나 백작부인이 내성을 장악한 것은 네가 무능해서였기 때문이라는 의미를 한껏 담았다.

공작이 이를 갈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서 베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무모하다라는 방계놈도, 칸나 고모님도 그리고 눈앞의 부인이라는 여인도 말이다.

“가문 내의 물건을 유출해서 되팔았더군요. 저기 보이는 도자기 보이시죠? 제가 다시 사 왔답니다.”

그녀가 손을 가리킨 방향에는 화려한 꽃들이 새겨진 도자기가 있었다.

그 화려함은 예술적 조예가 없어도 누구라도 귀한 것임을 한눈에 알아볼 정도였다.

그것은 선대 공작부인이자 페루제 공작부인의 시어머니가 남긴 도자기였다.

그의 기억 속에도 존재하고 있는 도자기였다.

가문을 잇고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가문 안에 있는 수많은 재산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 도자기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 보이지 않던 도자기가 자신의 시야에 다시 나타났을 때도 별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는 단순히 창고에서 꺼내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도자기가, 그것도 돌아가신 어머니가 남기신 도자기가 팔렸다고 한다.

허락도 없이 방계놈이 남에게 팔아넘겼다.

“경매장에서 어찌나 선대 공작부인이 아끼던 도자기라며 홍보를 하던지… 자연스럽게 손이 가더군요.”

그리고 그것을 산 것이 지금 자신의 부인이라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불법 경매장에서 홍보꺼리로 전락해 버렸다.

“저도 다 압니다. 저를 배려해서 모른 척하시고 있다는 것을요.”

공작의 얼굴이 붉어졌다.

태어날 때부터 벨로나 공작가문의 사람이었던 자신보다 그녀가 가문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는 것은 창피한 일이었다.

그것도 치부를 더 잘 알고 있는 상황이니까.

수도에서 왕을 지키는 사이에 가문의 영향력은 자신도 모르게 칸나 백작부인에게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넘어갈까요? 비리가조아는 그 훔친 물건을 팔아넘기고 수수료를 챙겼더군요.”

그녀가 우아하게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물론 이것도 아셨겠지요.”

너무마니 무모하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방계가문도 동참하여 돈을 챙겨 왔다.

직계가문의 물건을 훔쳐서 판 돈으로 호의호식했다.

“포련데이트는 공작가문의 방계라는 위치를 앞세워서 싫다는 여인들에게 입에 다물 수 없는 짓거리를 했음도 아셨습니까?”

포련데이트라는 놈은 수많은 여인들에게 상처를 줬지만 매번 유야무야 넘어갔다.

공작가문의 방계라는 이유로, 일이 커지는 것이 싫어서 치안대가 피해자들의 입을 막았다.

재판을 요청해도 거절되었다.

“하긴 이것도 알았겠네요.”

그녀가 혀를 차면서 말했다.

“말을 하다 보니 제가 사과를 해야 할 일이었네요. 공작이신 당신이 묵인한 일을 내가 들쑤시고 다녔으니까요.”

공작은 주먹을 꽉 쥐었다.

개망신도 이런 개망신이 없었다.

“아니, 사과하지 말게. 이번 일은 내 실책이니까.”

그 말에 페루제 공작부인의 눈이 잠시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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