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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복하거나, 죽거나-64화 (64/221)

064화 너무마니 무모하다는 무모했다

예의에 어긋났으나 공작 자신도 모르게 나온 질문이었다.

정말 그녀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아니, 그녀의 아버지라는 작자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어떻게 자식을 키우면 이렇게 막나갈 수 있는지 말이다.

물론 루비로즈 백작은 대답해 줄 수 없을 것이다.

자신도 딸이 왜 저따위로 컸는지 모르니까.

그녀를 키운 것은 루비로즈 백작 부인이었고 그는 정부들이랑 노느라 바빴으니까.

“안주인으로 저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입니다.”

공작은 순간 소름이 돋았다.

“가문을 위해서라면 저는 그 어떤 것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순수한 웃음이었다.

그 순수성은 살인을 즐기는 미친놈들과 달랐다.

미친놈들에게는 순수성과 함께 보이는 광기가 없었다.

미친놈들에게는 순수성과 함께 보이는 희열도 없었다.

미친놈들에게는 순수성과 함께 보이는 우월감도 없었다.

“가신 가문의 부인들을 마녀 의혹자로 만들어서 목숨을 쥐는 것도…….”

“정부들을 죽기 직전까지 때리는 것도!”

“당신의 목숨을 위협해서라도!”

“가문을 높이는데 혼신의 힘을 다할 것입니다.”

아이처럼 깨끗하고 맑은 순수함… 그래서 더 경멸하게 된다.

그녀에게는 광기도, 희열도, 우월감도 없었다.

가문을 위한다는 순수성만 존재했다.

그 순수성을 기반으로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했는지 그것이 상상되었다.

“루비로즈를 그렇게 만들었듯이 이제는 벨로나 가문을 그리할 것입니다.”

그녀는 눈빛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광기가 물들었다.

“당신의 환영연회는 그 원대한 일을 위한 첫 시작이 될 것입니다.”

화사한 미소가 너무 아름다웠다.

너무 아름다워서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 만큼이었다.

“내가 반드시 그리 만들 것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순수성이 아니라 ‘당연함’일지 모른다.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는 당연한 이치에 따르듯이 공작부인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일 수 있었다.

사람이 살기 위해 숨을 쉬고, 식사를 하고, 잠을 자는 것처럼 살기 위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뿐일 수 있다.

그 당연함을 못하는 사람들이 이상한 것인지 모른다.

그녀는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하는 사람이다.

환영연회를 반대하는 공작과 정부를 죽기 직전까지 때려서 그것을 성사시킨 공작부인 간의 기 싸움은 만만치 않았다.

남자는 소드마스터이자 알펜 왕국의 공작이며 왕이 가장 믿는 신하였고 여자는 교황과 라스타 왕국을 앞세운 권력자였다.

둘 중 하나라도 평범한 권력 가문의 자식 정도만 되었어도 한쪽이 굽혔을 것이다.

* * *

쨍그랑!

대단한 사람들끼리 부부가 된 덕분에 벨로나 공작 가문은 발걸음 소리만 내도 죽을 거 같은 분위기였다.

그 속에서 죽어 나가는 것은 언제나 고용인들이다.

“야, 미쳤어?! 지금 이런 거 하나도 조심해야 하는 거 몰라!”

시종이 작은 목소리로 들고 오던 쟁반을 떨어뜨린 후배를 혼냈다.

“죄, 죄송합니다.”

“지금 공작 각하께서 트집거리 하나 잡아내려고 하고 있는데 걸리면 어쩌려고 그래!”

공작은 뭐하나 걸리면 그것을 빌미로 연회를 취소시키려고 했다.

그러면 그 빌미를 제공한 고용인을 공작부인이 가만히 둘까? 천하의 그 공작부인이?

절대로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공작부인께서도 우리 실수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공작부인은 뭐 하나 찾아내면 나태해진 기강을 바로잡는다는 명분으로 잔인한 본보기를 보이려고 한다는 소문이 들렸다.

내정은 안주인의 업무이고 그것은 공작조차 건들 수 없는 영역임을 알리면서 성안의 고용인들에게 공작보다 공작부인이 더 영향력이 있음을 각인시키기 위함이었다.

그 내정 업무에는 고용인들의 관리도 포함이다.

“아주 부부가 쌍으로 우리 실수하기를 기다리고 있네.”

“잘못 걸렸다가는 뼈도 못 추릴걸.”

“뼈가 뭐야? 가족들도 무사하지 못할지도 몰라. 두 분 성정이 장난이 아니시니까.”

그러면 그런 본보기가 될 예정인 고용인을 공작이 웃으면서 바라만볼까?

공작부인의 의도를 이해하고 먼저 그 고용인을 자신이 나서서 벌을 줄 것이다.

“한쪽이 강하면 다른 한쪽은 좀 약해야 하는 거 아냐?”

“양쪽이 다 강하니까 아주 숨이 다 막혀 온다.”

“그래도 공작 각하께서 더 위에 계시지 않겠냐? 남편이시고 공작이시니까.”

“그, 그런가?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어.”

공작보다 공작부인이 더 위에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심어지면 위험하니까.

성은 자신의 근거지인데 고용인들이 가주가 아닌 다른 사람을 따른다.

언제, 어디서, 누구라도 자신을 해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성의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 성의 주인은 더는 가주가 아니다.

“야, 공작 각하가 더 우위에 있어도 우리를 관리하는 것은 공작부인이시잖아.”

“하긴 내정은 안주의 역할이니까.”

“결국, 우리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공작부인이시니까 그분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일은 절대로 하면 안 된다.”

하물며 그 상대가 공작부인이라면 충분히 공작을 죽이려고 들고도 남았다.

그런 살얼음판에서도 가장 미치겠는 것은 따로 있었다.

“어느 기준에서 빌미가 되는지 전혀 모르니까 미치겠네.”

그 빌미의 기준이 어디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살고 싶으면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해.”

“알겠습니다.”

어떤 것을 어느 수준으로 해야 그들에게 찍히는지 안다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오직 공작과 공작부인만 아는 그 기준의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 모두가 고군분투했다.

* * *

그렇게 서로가 자신의 배우자를 날카롭게 바라보는 중에 일이 터졌다.

당연하지만 페루제 공작부인이 먼저 시작했다.

“각하, 방계가문의 무모하다가 왔습니다.”

방계 가문 중 하나인 무모하다 가문은 성안의 식자재 납품을 담당하고 있었다.

공작보다는 고모인 칸나 백작부인과 더 긴밀했다.

지금은 페루제 공작부인과 연락을 하며 식자재 납품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것이 맞다.

“들어오라고 해라.”

공작은 짜증이 난 얼굴이었고 세베루스는 난처해 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군.”

내정과 관련된 방계가 왔다는 것은 분명히 공작부인과 뭔가가 있었음이니까.

페루제 공작부인을 상대하는 일은 상당히 까다롭고 피곤하다.

“너무마니 무모하다입니다. 방문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되었네. 무슨 일로 나를 보자고 한 것인가?”

대충 인사를 받고는 직설적으로 물었다.

어떤 일인지 빨리 알고 해결을 해야 했다.

그 여자를 상대로 시간을 끄는 것은 좋지 않았다.

방심한 탓에 느긋하게 있어서 그녀가 성을 장악할 시간을 주고 말았다.

“그것이 말입니다. 각하의 환영연회를 연다고 들었습니다만…….”

“어서 말해 보게.”

너무마니 무모하다가 눈치를 보면서 말하지 못하자 공작이 재촉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그녀가 유리해지는 것이다.

“일부 방계가문으로만 초대장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것은 공작 각하의 뜻인지요?”

“뭐?!”

세베루스의 눈이 크게 떠지고 공작은 흥분하여 자리에 일어났다.

방계가문은 벨로나 공작 가문의 직계들의 형제, 자매들에게서 파생된 가문이다.

가신 가문처럼 공작 가문을 돕는 존재였다.

가신 가문은 불만이나 야심 때문에 벨로나 가문에 칼을 드는 경우가 있었으나 방계 가문은 달랐다.

벨로나 공작 가문이 생긴 이래로 방계가문에서 하극상을 벌이려고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벨로나 공작 가문이 있기에 방계가문이 유지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군을 이끌고 반역세력을 소통하고 도움을 준 일도 꽤 되었다.

그런데 일부는 초대하고 나머지는 초대하지 않았다.

방계가문의 충성심을 흔들리게 만들 만한 사건이다.

그동안 방계가문끼리 서로의 영역을 지키고 벨로나 공작 가문의 공평한 대우를 받았었지만 이젠 달라질지 모른다.

초대받지 못한 방계가문에서 공작 가문이 초대된 가문들만 귀하게 여기고 자신들을 버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올 수 있다.

누군가를 편애하게 되면 나머지는 불만을 가지게 되니까.

그는 여기서 가문 내부의 분열이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녀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당장! 초대자 명단을 가져와!”

공작이 흥분하며 소리를 쳤다.

너무마니 무모하다는 당혹스러웠다.

공작부인이 일방적으로 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기는 했다.

소문의 반만 믿어도 그럴만한 여인이었다.

이제 공작 각하께서 일을 바로 잡아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노크 소리가 들렸다.

방금 보냈던 시종은 아니었다.

시종을 보낸 시간을 생각해 보면 너무 빠르다.

“들어와!”

문이 열렸다.

그곳에는 공작부인이 있었다.

그녀는 친히 차가 든 주전자와 찻잔이 있는 쟁반을 들고 있었다.

남들이 보면 아내가 힘든 남편을 위해 가져온 것으로 보이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다.

“그대의 눈과 귀는 참으로 빨라. 도대체 그 짧은 기간에 이리도 빨리 성안을 장악했는지 배우고 싶군.”

그녀의 집무실과 그의 집무실 간의 거리, 차와 찻잔을 준비하는 시간을 생각하면 무모하다가 이곳에 오자마자 준비해야 지금 여기에 있을 수 있었다.

공작을 주시하는 눈과 귀가 있다는 의미였다.

다른 의미로 말하자면 간접적으로 남편을 감시했다는 것이다.

남편이 소드마스터니까 직접적으로 감시하는 것은 들킬 수 있어서 불가능했다.

대신에 남편을 만나러 가는 복도 쪽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확인이 가능했다.

“장악이라니요? 당신의 사람이 저의 사람이고 저의 사람이 당신의 사람인걸요.”

그녀는 순순히 인정했다.

자신의 명령을 이행한 사람이 공작의 사람일 수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

성공하면 공작의 불신으로 인한 내부 분열이고 실패해도 손해는 없다.

마음속에 담긴 작은 불안이 작은 계기로 활활 불타는 것을 보는 재미가 쏠쏠할 듯싶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 간에 불신을 심는 것이 재미가 있나 보지?”

“이런 작은 말에도 믿음이 사라진다면 그 상대를 버리는 것이 맞지요.”

무모하다는 초대받지 못한 방계가문의 대표로 이곳에 온 것을 후회했다.

두 사람이 뿜어내는 살기에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당신 심기를 거스르면 그렇게 쉽게 죽이나 보지? 하긴 당신에게는 생명의 소중함이란 없겠지.”

“저도 생명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단지…….”

공작 각하는 소드마스터니까 살기를 표출할 수 있음을 이해했다.

검은 배운 적도 없는 공작부인의 살기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고 믿지 않아요. 소중한 것과 하찮은 것이 있다고 믿습니다.”

일반인도 상대를 죽이고 싶어 하면 살기를 드러낸다.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차이는 그 살기를 자신이 원할 때에 드러낼 수 있는가, 감출 수 있는가와 원하는 강도로 만들 수 있는가에 있다.

그녀는 살기를 자신이 원할 때에 내보낼 수 있으며 공작의 살기와 비견되는 위력으로 만들 수 있었다.

기사도 아닌 여인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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