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3화 사교계의 꽃
그의 의문은 금방 풀렸다.
그녀는 머뭇거림 없이 그 물음에 답을 내놨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요. 그렇지만 욕망이라는 것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나쁜 것일까요? 자신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욕망이라고 생각해요.”
“…….”
“그리고 타인을 돕는 것이 왜 자신에게 이득이 아닐까요? 그것은 사람마다 다르지 않을까요? 누군가를 도움으로 자신의 마음이 좋아진다면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이득인 거잖아요.”
마음의 편안함도 이득으로 봐야 한다?
그렇다면 레티시아의 말이 틀린 것이 아니다.
이득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부분이 늘어나는 것이니까.
사람들의 선의도, 사람들의 악의도 설명이 가능해진다.
어떤 행동으로 인해 생기는 희열도, 뿌듯함도 모두 자신의 이득이 될 것이니까.
란델리노는 아무래도 그것이 답이 맞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리고 뭐라고 말을 하려고 하는데 마차가 멈췄다.
“레티시아 영애의 집에 당도했습니다.”
“아!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래. 다음에 봐. 그리고 내 문제를 고민해 줘서 고마워.”
“아니에요! 저야말로 좋은 시간 보내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레티시아는 밝게 웃으며 자신이 받은 선물들을 들고 집이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그녀는 저녁에 부모님에게 오늘의 일을 즐겁게 말할 것이다.
자신은 어머니의 후계자가 될 역량을 키우기 위해 공부를 해야 했다.
* * *
그의 즐거움과 별개로 공작과 공작부인의 사이는 별로 안녕하지 못했다.
“이러시면 아니됩니다!”
“제발 진정하시고 나중에 오십시오!”
“그분께서는 이런 방문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말리는 목소리들과 함께 문이 활짝 열렸다.
발자국 소리에서부터 분노하고 있음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누군가가 페루제 공작부인의 책상 위에 어떤 것들을 던졌다.
실리가 그것들을 정리하여 책상 한쪽에 뒀다.
그녀가 언제라도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일하다가 갑자기 나타난 것들을 보고는 말했다.
“아무리 남편이라고 해도 이런 귀족적이지 못한 행동은 하지 말아주시지요.”
벨로나 공작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그동안 잘 지냈느냐는 말도 자주 찾아와 달라는 말도 없었다.
발자국 소리부터 짜증이 난 것이 느껴졌는데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물어보는 것은 더욱 아닌 듯싶었다.
“귀족이 귀족답지 못한 것만큼 추한 것은 없습니다.”
아니,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정말 상대에 대한 예의를 말아먹은 모습이었다.
“남편을 만나자마자 하는 말이 그것인가? 참으로 대단하군.”
그는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사람과 대화를 할 때는 눈을 마주치는 것이라는 예의는 배우지 않았나 보지?”
그녀의 환영을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렇게 대놓고 지적을 당하는 것이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것도 시선조차 마주하지 않고 무시하는 부인에게 말이다.
“그런가요? 시녀들이 제 의사를 전했을텐데요. 그것을 무시하고 들어왔을 때는 저도 무례해도 되는거 아니었습니까?”
시녀들이 공작이 오지 못하도록 한 것은 그녀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도’ 그녀의 집무실에 오지 못하게 하라는 명령.
그 ‘누구도’에는 벨로나 공작 가문의 주인이자 그녀의 남편인 벨로나 공작도 포함되었다.
그 명령을 따르는 시녀들을 무시한 것은 그녀를 무시한 것과 같았다.
“가주가 자기 가문을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못한다니 그대의 왕국에서는 가주들이 허수아비인가 보지?”
그 말을 듣고 페루제 공작부인이 무거운 고개를 들었다.
드디어 두 부부의 시선이 서로를 향하게 되었다.
“여기처럼 안주인을 이렇게 개무시하는 곳은 아니죠.”
눈빛만으로 상대를 다치게 할 수 있다면 벨로나 공작과 페루제 공작부인의 눈빛이 그러할 것이다.
“라스타 왕국은 아내를 존중하고 가문의 위계를 바로 세울 줄 아는 왕국입니다. 알펜 왕국과 다르게요.”
“가주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가문의 위계를 땅에 떨어뜨리는 곳이겠지. 알펜 왕국과 다르게 말이야.”
자신들의 왕국을 모욕하자 서로의 눈빛이 더 살벌했다.
눈빛으로 살인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서로가 자신의 배우자를 죽이려고 했던 ‘그날 밤’이 다시 벌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공작 부부는 언제든 서로를 죽일 수 있는 관계였다.
그녀가 웃으며 일어났다.
상대의 기분을 어떻게 하면 나쁘게 할지 제대로 아는 사람의 비웃음이었다.
“일단 여기에 앉으시죠. 그 후에 이야기하시죠.”
집무실에 있는 소파에 마주하며 앉았다.
“곧 가실 분이니 차는 필요 없다. 내 것만 준비하렴.”
시녀들이 차를 준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마자 그녀는 막았다.
공작이 눈을 찌푸렸다.
남편은 주지도 않고 자기만 마시겠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나에게는 물어보지도 않는 것인가?”
정말 자기만 생각하며 사는 여인이었다.
정말로 남편을 위한다면, 정말로 여인의 덕목인 내조를 잘 하려고 했다면 그가 차를 마실지 아닐지 물어야 마땅하다.
그녀는 그의 의사는 확인조차 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했다.
명백히 남편을 무시하는 행위였다.
“눈앞에 있는 남편은 아예 무시하는군.”
“어차피 마실 생각이 없지 않으십니까? 아깝게 차를 낭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 알고 있는 답을 물어보는 시간낭비도 싫고요.”
그녀는 남편의 분노에도 깔끔하게 대답했다.
다정한 웃음은 덤이었다.
남들이 듣기에 그녀가 지금 그와 마주하는 시간 자체를 낭비로 여기고 있다고 생각하기 충분했다.
“그래요. 아까 던진 것들은 무엇입니까?”
그녀는 능청스럽게 시녀가 따라준 차를 마셨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이었다.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하는 것이 특기인가?”
공작이 서늘하게 되물었다.
알면서 굳이 재차 말하는 저의가 그를 짜증나게 했으니까.
일부러 그를 약 올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이라도 검을 들어서 베어 버리고 싶었다.
“추측하는 것과 진실을 확인하는 것은 다르니까요.”
그녀는 그 서늘함에 기가 죽을 만도 하건만 여유로웠다.
“나는 그대가 이렇게 사교성이 좋은 줄 몰랐어. 이리도 많은 관심을 받다니 말이야.”
정부들을 때리는 짓밖에 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만든 부인들이 관심을 가질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실책을 인정했다.
“내가 여인들에 대해 잘 몰랐음이야.”
자신이 ‘사교계의 여인들’에 대해 잘 몰라서 생긴 일이다.
“여인들에 대해 잘 몰랐다고요?”
그녀가 공작을 빤히 보고는 입을 가리며 웃었다.
“풋!”
이내 그의 표정이 굳었다.
“뭐가 그리 웃기지?”
“여보, 그렇게 엇나가는 생각을 하실 줄 몰랐습니다.”
정말로 웃기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이 즐거워했다.
그녀는 어찌 이것을 여인의 문제라고 생각하는지 과연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사교계의 여인들’의 문제가 아니다.
“조언을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남편을 옳은 길로 가도록 하는 것도 아내의 도리니까요.”
점점 웃음이 잦아들고 무덤덤한 얼굴이 되었다.
“만약 저를 이기고 싶다면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면 아니 되옵니다. 본질은 그것이 아니니까요.”
그것은 기괴했다.
시체처럼 굳어진 표정은 마치 망령이 말을 거는 것처럼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남편이 한심했다.
이것은 인간 본질의 문제다.
“인간이라는 그 존재 자체를 보지 않으면 저를 이길 수 없어요.”
인간이 가진 욕망이자 본능인 약육강식이다.
남들에게 군림하고 싶은 마음도, 타인에게 존중받고 싶은 마음도, 자신의 격이 올라가기를 원하는 마음도 자신이 강해야 얻을 수 있는 것들이었으니까.
“참고로 인간은 누구라도 자신이 우위에 있기를 원하는 존재죠.”
기괴했던 무표정은 착각이라는 듯이 곧 귀족다운 얼굴로 돌아왔다.
과하지 않는 미소와 우아함이었다.
“그리고 겨우 저것들 때문에 이리 무례하게 저를 찾아온 것입니까?”
시큰둥한 말투였다.
정말 저딴 것들 때문에 자신을 찾아온 것이 맞는지 믿지 못하겠다는 뉘앙스도 담겨 있었다.
“겨우? 그대가 하찮게 말하는 저것들 때문에 난감해졌는데 그딴 말이 나오나? 나는 분명히 사교계에서 그대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도록 하라고 한 것으로 기억한 거 같은데 말이야.”
원래는 일부 부인들을 그녀의 편으로 끌어들여도 그가 그것으로는 부족하다는 명분으로 환영회를 거부하려고 했다.
그녀가 남편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그 말이 아닙니까? 긍정적으로 가장 위에 있으라고 말이었지요?”
그것을 페루제 공작부인이 단숨에 어그러뜨려놓았다.
자신의 남편은 그가 원하는 대로 해줬는데도 참 말이 많았다.
“저는 공작부인이 아닙니까?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여인입니다. 당연히 사교계에서도 제일 높은 자리에 있어야지요.”
수많은 초대 요청 서한들은 아무리 벨로나 공작이라고 하더라도 무시하기가 어려웠다.
그만큼 많은 가문에서 ‘그의 환영연회’를 원하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그녀의 환영연회’였다.
당사자가 아닌 그 부인이 원해서 하게 되었으니까.
동시에 그 서한들은 알펜 왕국 북부의 사교계에 그녀가 ‘사교계의 꽃’이 되었음을 증명하게 해줬다.
“남편이 공작이고 이곳에서 제일 높은 사내입니다. 그런 남자의 아내가 여인들 사이에서 제일이 아니면 비웃음거리죠.”
누가 남편이 공작이라는 이유로 공작부인이 ‘사교계의 꽃’이 아니라고 비웃겠는가?
‘사교계의 꽃’이란 사교계의 중심으로 모두의 관심을 받으며 사교계의 유행과 문화를 선도해가는 인물에게 하는 칭호였다.
그것은 당사자의 가문도 중요했으나 그것은 두 번째 요소에 불과했다.
본인의 외모, 말재주 등 개인적인 자질이 ‘사교계의 꽃’이 될 첫 번째 요소였다.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가치가 있어야 함이다.
그런데 그녀는 제대로 된 사교활동 없이 하찮은 가문의 부인들과 함께 정부들을 때리는 것으로 단번에 사교계의 중심이 되었다.
훗날 페루제 공작부인으로 인해 ‘사교계의 꽃’이라는 명칭은 왜곡되어 버린다.
사교계에서 그녀가 가장 총애하는 4명의 귀족 부인들이자 공작부인의 명령에 따라 사교계를 휘두르는 여인들을 뜻하게 된다.
“당신이 자신의 환영연회를 반대하는 이유를 깨닫고 아직은 제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
벨로나 공작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생각을 하면 이딴 식으로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요. 아내가 남편의 격을 맞추지 못한다는 것은 남편의 격을 떨어뜨리는 일이지요.”
남편의 지위에 비해서 사교계에서 영향력이 없는 부인들은 의외로 많았다.
정부가 더 위세를 떨치는 경우도 좀 있었다.
남편이 부부동반 사교활동에 정부를 데려와서 부인의 명예에 금이 가는 일도 많았다.
그로 인해 사교활동에 잘 참여하지 않는 부인들도 있었다.
대부분은 부부동반 활동은 무시하고 움직였다.
그것이 마음이 편하고 자존심도 덜 상했다.
자신이 가지 못해서 정부가 대신 갔다는 거짓 명분이라도 만들 수 있으니까.
이런 세상에서 공작부인의 논리는 일반적이지 않았다.
뭐, 공작부인의 본성 자체가 일반인이 아니었으니까.
그것을 감추고 어떻게 공작과 결혼식을 했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도대체 그대의 머리는 어떻게 된 것이요?”
오죽하면 대놓고 이렇게 물어볼까?
너 미쳤냐는 말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