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화 갑작스러운 외출 (2)
솔직한 마음이 입밖으로 나왔다.
“처음? 레티시아도 여기 처음이야?”
“네?”
그녀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순간 멍한 듯한 모습에 란델리노는 그녀도 이곳이 처음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아니에요! 저는 몇 번 왔어요. 이모를 따라 왔었거든요.”
그는 그녀의 이모에 대해 떠올려봤다.
“이모? 아?! 이노무세키 백작 부인!”
“네, 맞아요.”
이노무세키 백작 부인이 아니었다면 란델리노는 그녀와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가 자신의 조카를 티 파티에 데려왔기에 둘의 만남이 가능했다.
그는 이노무세키 백작 부인을 아주 긍정적으로 여겼다.
“그런데 왜 처음 온 것처럼 그러는거야?”
순수한 물음이었다.
“그게 아무래도 이모가 데려다주시는 곳만 가게 되니까요.”
뻘쭘해하면서 그녀가 말했다.
이모가 가는 곳으로 가니까 신기한 것이 있어서 들어가고 싶어도 가자고 할 수가 없었다.
이모가 자신을 위해 점심을 사 주거나, 옷을 사 주거나 하기 위해서 데려가는 것이니까.
백작 부인으로 바쁜 이모가 시간을 내줬는데 그 시간을 더 빼앗는 것은 레티시아의 양심상 맞지 않았다.
“영식 덕분에 오늘은 가고 싶었던 곳 다 갈 수 있었어요.”
그녀가 귀엽게 웃으면서 말하자 그도 웃었다.
왜 가 본 것처럼 말했냐고 삐져서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란델리노는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 * *
레티시아가 좋으면 자신도 좋았다.
레티시아가 자신으로 인해 즐거워했으니 좋았다.
“그러면 평소에는 어디로 가?”
“어디요?”
“상업지구의 어느 구역으로 가냐고?”
그는 진짜로 레티시아가 다니는 곳을 가 보고 싶었다.
이모를 따라서 가끔 가는 상업지구가 아니라 그녀의 생활권에 속하는 상업지구로 말이다.
“저는 여기서 좀 더 내려가면 있는 곳을 이용해요. 중산층들이 주 고객이에요.”
품질도 괜찮으면서 가격도 괜찮은 물품들 혹은 음식, 식재료들이 있는 곳이었다.
가성비가 좋다는 표현을 쓸만한 가게들만 있다.
“이제 거기로 가 보자.”
란델리노는 레티시아의 삶을 보고 싶었다.
“여기가 네가 다니는 곳이야?”
“네, 엄마랑 아빠랑 같이 야식도 사 먹고 식재료도 사고 그래요.”
그곳은 레티시아와 놀던 상업지구와 달랐다.
“어이! 지금부터 딱 10분! 10분만 할인할 테니까 얼른 오라고!”
“자, 자, 이 천을 좀 보라니까! 이거 귀족들이 쓰다가 남은거 겨우 떼어서 가져온 거라고! 이 가격이면 거저라니까.”
“커플이 같이 오시면 무료로 와인 한 잔을 드려요. 식사하고 가세요!”
수많은 사람들이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었다.
각자가 자신의 삶을 위해 움직였지만 전체가 어우러지니까 이상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그 상업지구 자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줬다.
“이런 곳이 있구나.”
공작성에서 숨만 쉬며 살던 란델리노는 그 모습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이 상업지구에도 공작의 장남이 왔다는 소식은 들렸다.
그들은 대수롭지 않게 관심을 껐다.
공작가문의 후계자가 될 것이 뻔한 영식이 이런 구역까지 올 리가 없다고 여겼다.
“레티시아! 왔구나. 그동안 왜 이렇게 뜸했니?”
“어린아이도 나름의 바쁨이 있어서요. 이제는 자주 오도록 할게요!”
“그래. 친구랑 있으니 다음에 꼭 오렴! 이거는 가져가고 엄마에게 자주 오자고 해!”
무엇보다도…….
“꼬마 숙녀가 왔네! 그래 언제 여기로 올 거니?”
“에잇! 아저씨! 저번에 아저씨 이야기는 다 들었는데 또 할 이야기가 남았어요?”
“아직은 멀었지! 아저씨의 수많은 경험 이야기는 아직 제대로 시작도 못했어.”
“다음에 들을게요. 지금은 친구랑 있어서요.”
“그래! 대신에 꼭 와야 한다. 이거는 챙겨가고!”
레티시아는 이 상업지구의 꼬마 스타였다.
그녀가 오자 상인들의 관심이 쏠렸다.
오지 않을 것이 뻔한 공작 가문의 영식보다는 그녀가 더 관심이 갔다.
“죄송해요! 이렇게 많이 받을 줄은 몰랐어요. 간만에 와서 그런가 봐요.”
란델리노는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자신의 손을 바라보고 다시 그녀를 바라봤다.
레티시아의 두 손으로 부족하여 란델리노의 손에도 상인들에게 받은 선물로 가득했다.
“아니야. 즐거웠는걸. 처음 하는 경험이었어.”
사람은 본래 이기적이다.
그래서 이득이 없으면 자신의 것을 주지 않는다.
설령 가족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가 경험한 세상은 그러하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상인이 레티시아를 알아?”
그런 란델리노였기에 더 충격이었다.
“레티시아, 네가 그들에게 뭔가를 준 거야?”
“네? 아니요. 제가 뭔가 줄 수 있는 성인도 아닌걸요.”
아무런 이익을 주지 못하는 소녀에게 호의적이며 선물까지 챙겨 주는 모습이 말이다.
그들은 어느새 광장에 도달했다.
레티시아는 광장에 있는 분수 쪽에 앉았다.
그녀를 따라 옆에 란델리노도 앉았다.
“음…….”
레티시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민했다.
어떤 대답을 해 줘야 할지에 대한 것이었다.
“지금은 상단에서 월급 받으시면서 계시지만 저의 부모님은 원래 출판사를 하셨거든요. 아빠가 너무 무리하셔서 쓰러지기 전까지요.”
그녀는 힘드셔도 자신의 일을 사랑했던 부모님을 떠올렸다.
그때는 많이 먹지 않아도 즐거웠다.
“그때는 정말 즐거운 일이 많았어요.”
들여온 책들을 정리한다는 핑계로 펼쳐서 시간을 때우던 시간들이 있었고.
“책의 오타를 찾는다며 검수한다는 핑계로 하루 종일 책만 읽다가 혼나기도 하고요.”
그 수많은 책에 대한 감상을 즐겁게 이야기를 한 시간들도 있었다.
“혼나다가 부모님이 궁금해서 읽어보고 같이 그 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던가 했거든요.”
또한 부모님이 출판사를 통해 이루고 싶던 포부들을 공유하던 시간들도 즐거운 기억이었다.
“그때는 정말 즐거웠어요.”
추억은 산더미였다.
“지금도 행복해요.”
이것이 결코 지금은 불행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가족끼리 저녁을 함께 먹으며 이야기도 나누고 쉬는 날에는 나들이도 간다.
급여가 제때 나온다.
가계부 관리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었다.
출판사를 할 때는 매번 들어오는 돈이 달랐고 어떤 때는 적자도 있었으니까.
지금은 안정적인 생활이었고 가족관계는 단단했다.
단지 꿈을 포기했다는 것만 슬플 뿐이다.
“저처럼 행복한 아이는 많지 않다고 자부해요.”
꿈보다는 가족을 택한 부모님의 선택을 언제나 감사하고 있다.
그 꿈보다 가족을 소중히 아껴 주는 가족을 만난 자신은 축복받은 삶이었다.
소설처럼 악녀가 고용주의 딸이라는 이유로 같이 다녔다가 불순한 무리로 찍혀서 죽임당하는 운명이라는 그녀의 상상은 상상으로 끝났다.
“저에게 큰 행복을 준 부모님을 누구보다 사랑해요.”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부모님,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부모님.
그녀는 부모님 덕분에 밝은 아이로 자라날 수 있었다.
그분들을 위해 레티시아는 뭔가를 해드리고 싶었다.
“그런 부모님을 위해 뭔가 해드릴 수 있는 일이 있을까 하다가 떠올랐어요.”
“뭐를?”
란델리노는 밝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레티시아의 말.
란델리노는 그 모습에 집중했다.
“제가 쓴 글을 부모님의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거죠! 저 꿈이 소설작가거든요.”
그녀가 주먹을 꽉 쥐며 일어났다.
“제가 유명해지면 나중에 부모님의 출판사 전속 작가가 될 거예요.”
뭔가 소녀의 각오가 담겨 있었지만 귀여워 보였다.
“그렇게 되면 부모님의 꿈도 이루고 제 꿈도 이루는 거니까 일석이조(한 가지 일을 해서 두 가지 이익을 얻음)죠.”
레티시아는 자신이 아주 유명한 작가가 되어서 부모님이 원하는 꿈을 이루도록 해드리고 싶었다.
“유명한 소설작가가 되려면 필력도 좋아야 하고, 이야기 전개도 잘 만들어야 하잖아요.”
그녀가 앉아 있던 란델리노를 내려다봤다.
“그렇지만 저는 아직 어리고 세상 물정도 모르고요.”
미래에 대한 희망에 기뻐하며 눈을 반짝였다.
“그래서 듣기로 한 거예요. 책을 읽는 것처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로요.”
‘그렇구나…….’
레티시아의 눈빛을 보며 그는 생각했다.
“처음에는 경계하셨어요. 어린아이가 헛짓거리한다고도 하셨고요. 그분들도 제 의도가 좋지 않았음을 아셨을 거예요.”
그 어떤 고대의 ‘미의 여신’보다 아름답다고 말이다.
“저부터 불순한 의도를 버리고 진심으로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드리려고 하니까 점차 마음을 여시더라고요.”
그 사랑스러움과 순수함은 란델리노에게 각인이 되었다.
“그만큼 마음을 상대를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이 적다는 뜻이겠죠. 저는 그런 세상에서 적어도 진실된 사람이 되고 싶어요.”
레티시아를 옭아매는 족쇄가 되었다.
“앗! 꿈이 소설작가라고 했다가 진실된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가 이상하네요. 꿈이 여러 개일 수 있으니까 괜찮겠죠.”
이날을 기점으로 점차 서로의 관계가 변해 가는 줄은 둘은 몰랐다.
그 누구도 몰랐다.
* * *
그들은 마차를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레티시아를 집에 데려다 준 다음에 란델리노는 성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영식께서는요?”
“나도 정말 좋았어.”
그녀는 다리를 흔들며 오늘의 즐거움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자신도 모르게 다리가 움직일 정도였던 모양이다.
그녀가 자신을 따라서 웃는 란델리노를 보며 말했다.
“제가 곰곰이 생각을 해봤거든요.”
“생각? 무슨 생각?”
그가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즐거움만 가득했던 하루였다.
무언가 고민거리가 있었던 것일까?
“아까 공작부인께서 내주신 문제요.”
“아! 그거를 계속 생각했던 거야?”
“네. 궁금해서 계속 머리에서 맴돌더라고요.”
정작 문제를 받은 당사자는 잊고 있었다.
그런데 제삼자인 레티시아가 계속 그 문제의 답을 찾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니까 귀여웠다.
티도 내지 않고 속으로 자신 나름의 싸움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답을 알아냈어?”
“답인지는 모르겠는데 알 듯싶기도 해요.”
“네가 생각해낸 답은 무엇인데?”
“바로 알려드리면 재미가 없잖아요.”
레티시아가 작게 혀를 내밀며 말했다.
장난스러운 미소에는 자신에 대한 선의가 가득했다.
그 웃음을 따라서 그도 웃었다.
감정은 전염된다더니 딱 맞는 말이다.
그녀의 행복이 자신에게도 물드는 기분이다.
“제가 생각해 낸 답의 힌트를 알려 드릴게요.”
“수수께끼구나.”
“네, 맞아요. 제가 말할 것이니 한번 맞춰 보세요.”
“그래. 알았어.”
“아까 먹었던 빵집 기억나시죠?”
아까 돌아다니면서 있었던 일을 떠올려봤다.
중산층의 상업지구에 있는 레티시아의 단골 빵집에도 갔었다.
그곳의 빵은 평소 자신이 먹는 것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맛있었다.
“그래. 정말 맛있었어.”
“그쵸. 가격도 좋고 맛도 좋고 부모님도 거기 빵을 좋아해요.”
어머니가 데려온 최고급 제빵사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다.
“그런데 그 빵집에 어머니의 문제에 관한 힌트가 어디에 있는 거야?”
“정확히는 빵집 아저씨가 빵을 맛있게 만드는 원동력이죠.”
빵집 아저씨가 빵을 맛있게 만드는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를 만나기 전에는 학대에서 살아남는 것으로 바빴고, 어머니를 만난 후에는 자신의 맡은 것을 제대로 하는 것이 아랫사람의 본분이라고 배웠으니까.
“빵이 맛있어야 사람들이 많이 오니까?”
“맞아요. 사람들이 많이 사줘야 이윤이 커지니까요.”
란델리노가 생각하기에는 레티시아의 말은 정답처럼 느껴지기는 했으나 답이라고 하기에는 오류가 있었다.
“개인의 이득. 즉 욕망을 위해서라고? 그렇지만 어머니는 사람의 본질이라고 하셨어. 사람들을 돕는 사람들은 아무런 이득이 없이 돕는 거잖아.”
욕망이 사람의 본질이라면 어찌 선의로 아무것도 받지 않고 남을 돕는 사람들이 있는 것인가?
그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