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굴복하거나, 죽거나-61화 (61/221)

061화 갑작스러운 외출 (1)

그는 진지하게 레티시아에게 물어봤다.

“레티시아, 너는 사람의 본질이 뭐라고 생각해?”

“네?”

란델리노는 그녀에게 어머니가 낸 숙제에 대해 말했다.

그녀는 생각했다.

‘미친 거 아니야? 뭔 뜻으로 애에게 그딴 숙제를 낸 거야? 인간의 본질? 정부들을 패는 것을 보고 뭔 인간의 본질을 알아보라는 거야? 사람들은 자신과 같은 사이코패스라는 답을 원하나? 생각만 해도 머리 아프네. 그런 것을 우리 같은 아이가 왜 알아야 해? 우리 나이에는 잘 자고, 잘 먹고 그러는 것이 의무라고!’

레티시아는 다양한 생각이 떠올랐다.

물론 전혀 티를 내지 않았다.

란델리노가 얼마나 공작부인을 사랑하는지 알았으니까.

“역시 공작부인이세요.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을 숙제로 주시네요.”

솔직한 마음을 말했다.

정말 생각하지 못한 것은 맞았으니까.

“란델리노 영식께서 깊은 생각을 하고 남다른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느껴져요.”

제 2의 사이코패스를 만들려는 것인지 그 의도를 알 수가 없으나 남다르게 키우려는 것은 분명했다.

“그치. 그런 숙제를 내주시는 것을 보면 나를 아끼는 것이 분명해.”

“보통 부모가 직접 숙제를 내는 경우는 드물기는 하죠.”

“역시 그렇구나! 나에 대한 애정이 있으니까!”

레티시아는 어떻게 하면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는지 도저히 궁금했다.

아니,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었다.

그는 그동안 학대받고 살아왔다.

공작부인 덕분에 그 학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에게 공작부인은 구원자이자 진정한 어머니였다.

“그러네요.”

소설 속 흑막이지만 자신에게 진실된 우정을 주는 란델리노를 진심으로 친구로 생각했다.

자신이 만들 소설의 주인공에 관한 아이디어도 얻고 겸사겸사 가문의 영식과 친해진 후에 호위호식하려고 했지만 말이다.

그런 불순한 의도로 접근하기에는 란델리노는 좋은 아이였다.

“우리 밖에 나가 볼까요?”

“밖?”

“인간의 본질에 답을 찾아보라면서요. 넓은 세상을, 보통 사람의 일상 속에서 답이 있지 않을까요?”

그 말에 란델리노가 환하게 웃었다.

그는 레티시아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역시 레티시아야. 생각이 깊어! 네 말이 맞아. 책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답은 없어.”

자신은 아직 부족하여 그런 생각조차 떠올리지 못했다.

레티시아의 말처럼 인간의 본질은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얼른 시종에게 말해서 마차를 타고 나가자.”

그가 기분이 좋아져서 앞장서서 걸어갔다.

레티시아가 그가 듣지 못하게 작게 말했다.

“밖에서 신나게 놀고 들어와야지.”

레티시아는 란델리노가 공작부인과 같은 사람이 되지 않기를 원했다.

저렇게 활짝 웃을 줄 아는 아이가 공작부인처럼 차갑게 변하는 것이 싫었다.

“아이는 즐겁게 뛰어놀며 행복해야 하는 것이 본분이라고.”

사람의 목숨을 쥐새끼처럼 하찮게 여기는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했다.

그래서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그런 사람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 볼 요량이었다.

그것이 친구를 위한 우정의 결심이었다.

“준비가 되었습니다.”

“기사들은?”

그들이 탈 마차와 대동할 기사들은 금방 준비가 되었다.

보통 기사 중 누가 갈지 결정하는 시간이 좀 걸린다.

기사들도 각자의 업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감안하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미 준비를 마쳤습니다. 언제든지 출발이 가능합니다.”

공작부인의 기사단에서 가장 실력이 높은 기사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좋아!”

란델리노는 즐거워하며 후딱 마차를 향해갔다.

“너무 급하게 준비하신 거 아니세요?”

그녀는 자신의 곁에 있던 시녀에게 물었다.

레티시아도 귀족 가문의 영애다.

비록 영지도 없는 몰락귀족이라고 해도 말이다.

보통 이렇게 빨리 준비되지 않는 것을 알았다.

기사단의 일정도 있었다.

그 일정에 맞춰서 호위가 가능한 기사들을 보내고 그들을 잘 보필할 수 있는 시종, 시녀도 함께 보내야 했다.

즉 대기 중인 기사들은 자신들의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오직 ‘페루제 공작부인의 아들’을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 말에 시녀가 예의바른 미소로 대답했다.

“어찌 감히 영식을 기다리게 하겠습니다. 영식께서는 무엇이 되었든 최고의 대우를 받으셔야 합니다.”

지금 란델리노는 과거의 란델리노가 아니었다.

“페루제 공작부인의 아들이라면 응당 그래야 합니다.”

그의 뒷배가 누구인가?

페루제 루비로즈.

이제는 페루제 벨로나.

라스타 왕국의 권력을 움켜쥐고 있는 권력자 중 하나였다.

라스타 왕국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었다.

어쩌면 라스타 왕국과 알펜 왕국 통틀어서 가장 부유할지도 모른다.

루비로즈 가문의 실질적 지배자이자 메디치 백작 가문의 가주였다.

20만 대군의 최고명령권자다.

거기에다가 10만 군대를 지원받을 수 있는 역량이 있었다.

발렌티노 공작가문의 안주인이다.

그녀는 신분, 권력, 부를 전부 가졌다.

“그분의 아들이 그분의 격과 맞지 않는 대우를 받는다면 그것은 저희의 책임이 되겠죠.”

레티시아는 소름이 돋았다.

그들이 말하는 책임을 지는 결과가 죽음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은 맞았다.

“죽음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오는 법이고요.”

그 죽음을 저리 평온하게 말하는 시종이 이상하다고도 말이다.

“저희는 내일의 태양을 보고 싶을 뿐입니다.”

이것은 레티시아에게 하는 일종의 경고였다.

아주 작은 경고다.

레티시아의 갑작스러운 제안으로 란델리노는 계획에 없는 출타를 결정했다.

“영애의 갑작스러운 말에 누군가는 고통받을 수 있음을 알아주십시오.”

만약 갑작스러운 준비에 우왕좌왕하여 시간이 걸렸다면?

공작부인이 만족할 만한 기사들이 대동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란델리노가 불만을 품고 공작부인에게 말했다면?

죽이기까지는 하지 않을 것이다.

공작부인은 죽일만하다고 싶은 것들만 죽이니까.

단지 공작부인의 심기를 얼마나 거슬리게 했는지에 따라 벌의 강도가 달라지겠지.

죽음을 언급한 것은 이정도로 세게 말하지 않으면 또 이딴 짓을 벌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너 때문에 우리가 목숨을 잃게 될 일을 만들지 말라는 경고.

“그 누군가는 영애 자신이 될 수 있습니다.”

괜한 짓을 했다가 공작부인에게 미움받지 말라는 경고였다.

레티시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단지 제 말을 잘 새겨들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라도 너 때문에 타인이 죽을 수 있고 너 자신이 죽을 수 있다고 하면 그러할 것이다.

“레티시아! 뭐하고 있어?”

란델리노가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시녀가 갑자기 그녀의 드레스를 정돈해 줬다.

“영애, 공작부인께서는 언제 어디서든 우아하고 깔끔한 것을 좋아하십니다.”

다정한 손짓이었다.

다정한 미소였다.

“평소의 행실부터 공작부인께서 만족하실 수 있도록 하셔야 합니다.”

그녀가 품 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레티시아의 입술에 발라줬다.

“언제나 우아하게 공작부인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있어 주세요. 가시지요.”

시녀가 예의바르게 그녀를 마차로 안내했다.

“왜 이렇게 늦었어?”

란델리노가 물었다.

시녀는 가만히 듣기만 했다.

그녀에게 물어보지 않았기에 대답할 권리가 없었다.

“어? 어… 옷차림이 단정하지 않은 거 같아서요…….”

레티시아는 사실대로 말했다.

오직 그 둘 사이에 있던 대화만 말하지 않았다.

시녀가 옷차림을 단정하게 만들어 준 이유였다.

거짓인 동시에 진실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녀는 란델리노가 불쌍했다.

학대에서 벗어났으나 이렇게 진실을 숨긴 진실 속에서 살아야하니까.

“그래? 단정하던데?”

“가까이서 보면 의외로 아니에요.”

란델리노가 의문을 표하며 물었다.

그는 그녀의 옷차림이 좋았다.

나이대에 맞는 노란색의 드레스는 귀여웠다.

“게다가 여기는 공작가문이잖아요. 더 완벽히 해야죠.”

“그렇구나. 레티시아 덕분에 매일 새롭게 깨닫는다니까. 고마워.”

란델리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보기에 완벽한 것으로 끝내면 아니 되었다.

‘모두’가 완벽하다고 여겨야 진짜였다.

어머니는 모두가 ‘완벽한 귀족’이라고 하니까.

그를 가르치는 선생들은 모두가 말했다.

“완벽한 귀족이요? 예법이 완벽한 분 말입니까?”

“페루제 공작부인께서 완벽한 예법을 구사하시는 분이지요. 완벽한 귀족이 되고 싶으시다면 공작부인의 자태를 잘 보시고 따라하시면 됩니다.”

완벽한 귀족 예법을 직접 보고 싶으면 공작부인을 보라고 말이다.

* * *

“이제 가자. 어서 출발해라.”

“네!”

그들이 타자마자 기사와 마차는 움직였다.

기세등등한 모습은 란델리노의 위치가 얼마나 높아졌는지 보여 줬다.

란델리노는 언제나 성에 있었다.

사람들은 언제나 성안으로 왔으니까.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을 하찮게 여겼으니까.

외톨이로 외롭게, 자신을 조롱하고 괴롭히는 군중 속에서 홀로 서 있었다.

이렇게 누군가의 보호가 함께하는 외출도, 또래 친구와 하는 외출도 처음이었다.

그는 기분이 좋았다.

친구와의 첫나들이인데다가 기사들까지 대동했다.

자신의 달라진 위상을 한껏 느꼈다.

“레티시아, 너는 밖에서 뭐하고 놀아?”

“저는 부모님이랑 함께 상업 거리에 가요. 거기에 음식도 사서 먹고 예쁜 그릇, 옷도 보고 그래요.”

“상업 거리?”

상업 거리는 번화한 거리로 상권이 탄탄한 곳이었다.

상인들은 거기에 가게를 내면 무조건 대박을 친다며 극찬한다.

“네, 수많은 가게가 즐비해 있어요. 화려한 곳도 신비로운 곳도 다 있어서 가면 즐거워요.”레티시아가 즐거워하면 종알거렸다.

마치 종달새가 우는 듯했다.

듣고 있는 것만으로 란델리노도 기분이 좋아졌다.

누군가의 호감을 받는다는 것은 이렇게 행복한 기분이었다.

그는 어머니와 레티시아로 인해 행복을 알아가고 있었다.

정확히는 어머니에게는 타인을 위에서 찍어 누르고 지배하는 희열을, 레티시아에게는 순수한 호의가 주는 따뜻함을 말이다.

란델리노에게는 너무 소중해진 두 사람이다.

레티시아의 생각보다 훨씬 그는 그녀를 아꼈다.

* * *

그들은 정말 즐겁게 번화가를 돌아다녔다.

앤틱크 가구점부터 옷가게까지 가지 않는 곳이 없었다.

“여기 가구는 정말 특이하네요. 너무 특이해서 신기하기까지 해요.”

“옷가게의 드레스들 화려하지 않나요? 나중에 크면 저도 이런 옷들을 입어볼 거예요.”

비록 어린아이들이었지만 가게의 어른들은 그들을 모두 반겨 줬다.

“어서 오십시오. 천천히 구경하다가 가 주십시오.”

“얼마든지 만져 보시고 즐겨 주십시오.”

어찌 그러하지 않겠는가?

벨로나 공작 가문의 마차가 상업지구에 왔다는 것과 거기에 여아와 남아가 나왔다는 이야기는 곧 상업지구에 널리 퍼졌다.

상인들은 그 마차에서 나온 사내아이가 공작 가문의 유일무이한 아들임을 알아챘다.

‘그 공작부인’의 비호를 받는 아들이자 공작가문의 유일한 아들이었다.

레티시아는 상업지구 상인들의 정보력을 믿었다.

그래서 당당하게 가게에 들어간 것이다.

평소라면 시도조차 하지 못했겠지만 란델리노를 믿고 나섰다.

한참을 놀던 중에 레티시아가 활짝 웃었다.

“정말 신기하고 즐거웠어요. 처음 보는 것들이 많네요.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다시 오고 싶어요.”

그녀는 정말로 즐거워 보였다.

하지만 긴장을 늦췄던 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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