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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복하거나, 죽거나-59화 (59/221)

059화 남편이기에 절대 알 수 없는 행동

“그토록 원하던 환영연회를 못하게 된 것에 대한 화풀이가 아니겠습니까?”

공작이 빤히 최측근인 세베루스를 빤히 바라봤다.

“정말 그리 생각하나?”

그는 주군의 모습에 한숨을 쉬고 말했다.

“그럴 리가 없지요.”

“그 여자가 정부 따위를 때리려고 여기 온 것이 아니니까.”

공작도 세베루스도 안다.

뭔가 의도가 있어서 저지른 행동이다.

이렇게 쉽게, 순순히 자신의 패배를 깨닫고 정부들에게 화풀이하는 것으로 끝낸다고?

그런 사람이었으면 이렇게 사기 결혼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아무리 생각을 해도 모르겠습니다.”

“그래.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알 수가 없어.”

그 행동으로 얻는 이득이 없다는 것이다.

“사교계를 휘어잡는 것에는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요.”

“그런 짓을 하면 사람들 시선을 모을지는 몰라도 경계심을 사게 되는데 말이야.”

그것은 잔인한 행동과 패도적인 성향으로 사교계에서 외면당하는 상황이었다.

사람이란 자신과 다르면 먼저 배척부터 하고 보는 족속들이었으니까.

일반적인 성격이 아닌 그녀가 그들 사이에 녹아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들은 그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다가갈 여인이 아님을 잘 알았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굳이 사람들에게 더 각인을 시킨 것인지 모르겠더군.”

가신 가문의 부인들을 마녀 의혹자 명단에 넣어 목숨 줄을 쥐며 노는 여인을 누가 곁에 두고 싶을까?

자기도 그 꼴이 될까 무섭지 않을까?

“두려워하지는 않더라도 껄끄러워서 가까이 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겠지. 같이 있다가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를 일이니까.”

이 일은 그녀의 성향을 더 확고하게 드러낼 뿐이었다.

가신과 방계 가문의 부인들은 억지로 무릎을 꿇렸으나 영주 가문의 부인들은 달랐다.

그들은 그녀를 경계하며 거리를 더 둘 것이다.

“초대한 가문들과의 연을 시작으로 서서히 넓히려고 했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습니다.”

초대한 가문의 부인들도 하찮기 그지없다.

영지도 없고 ‘부’도 없고 가문의 격도 없다.

그 가문의 가주라는 것들도 가문을 일으킬 능력조차 없는 머저리였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고 머저리라고 해도 그들은 귀족이었다.

그 가문의 정부를 때린 것은 그 가문의 가주와 척을 지는 행동이었다.

아무리 몰락가문 가주의 정부라고 해도 이런 행동은 귀족 사회에 적대심을 품도록 만들었다.

“물밑에서 시작하여 위로 인맥을 하려고 했다면 정부들을 기절할 때까지 때리지 않았겠지.”

“그런 인맥은 있기는커녕 능력도 없는 가문이기는 하지만요.”

그것이 좋게 보일 리가 없었다.

“자신의 좋지 않은 이미지를 더 강하게 만든 저의가 뭘까?”

쌈닭처럼 적을 만들고 다니는 여인과 친해지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시비를 걸기에도 쉽지 않은 여인이다.

공작도 죽이려는 여인에게 시비를 걸다가 죽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시비를 걸지 않아도 심기를 거슬리게 했다가 죽임당하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들려오는 소문이 만드는 이미지를 무시하기란 쉽지 않다.

“잔인한 이미지를 개선하려고 아등바등 거려도 사람들이 모일까 말까인데 말입니다.”

그녀가 하는 행동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과 같았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아닙니다. 이미 벌어진 일이고 끝난 일이니까요.”

세베루스는 생각이 많던 얼굴을 지우고 단정한 표정으로 바꿨다.

“지금 해야 할 일은 하나입니다. 모르는 것에 고민하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요.”

중요한 것은 지나간 일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의 일에 대비를 하는 것이다.

“앞으로 이런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어떠십니까?”

“가능했으면 좋겠지만 그 여자의 병사들이 성안에 있다. 소드마스터까지 말이야.”

힘이 있는 귀족들이 연루된 일이 아니다.

그런 일로 대립을 했다가는 피만 흘리게 된다.

“고모님 때문에 이게 무슨 일인가…….”

공작이 주먹을 쥐었다.

강한 힘이었다.

공작은 고모님에게 자신의 혼사를 맡기지 말아야 했다고 생각했다.

일을 이따위로 만들어서 버젓이 타가문의 군대가 들어오는데도 막지를 못한다.

그들의 입성을 막을 법적 근거가 없었으니까.

“정부들이 공작부인의 부름을 거절한 것이 명분이 되었던 거 같습니다. 막을 이유도 마땅하지 않지요.”

혼인 전, 가문 간 합의한 계약서가 발목을 잡은 것이다.

“부인들이 공작부인의 명에 따라 부른 것이지만 명분상으로는 합당했습니다.”

정부들을 과하게 때린 것은 맞지만 벌을 준 명분은 이해가 갔다.

이런 상황에서 무작정 반대를 하는 것은 그녀를 자극하는 일밖에 되지 않았다.

그녀는 사람을 죽이는 일도 적극적으로 결정했다.

그녀를 막기 위해서는 반박할 수 없는 명분이 있거나 그녀가 행동하기 전에 먼저 막아 내야 했다.

“그래. 철저하게 감시하고 정보를 수집해서 그녀가 하려는 일을 막아 내야지.”

그들은 앞으로의 일을 걱정하며 경계를 늦추지 않기로 했다.

그들이 나름의 각오를 다지는 것과 다르게 페루제 공작부인과 실리는 여유로웠다.

정원을 걸으며 그들은 대화를 나눴다.

“알아도 이미 늦지 않았습니까?”

“뭐, 진의를 안다고 해도 이미 늦기는 했지.”

실리와 페루제 공작부인의 말처럼 이미 늦었다.

공작이 아무리 그녀를 감시해도 그 저의를 이해하지 못했다.

공작부인은 그들이 이해하지 못할 ‘정부 때리기’를 계속했으니까.

* * *

“그들은 결코 알 수가 없는 부분이야. 알아내고 싶어도 알아낼 수 없지.”

발렌티노 공작과 세베루스 그리고 남성들이 간과한 것이 있었다.

그들이 이 시대의 귀족 여성이 아니기에 절대로 알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들의 빈약한 상상력으로는 떠올리지도 못할 거야.”

왕 다음으로 높은 계급이지만 여성이기에 견뎌야만 모멸감과 억눌림은 경험해 보지 않았으니까.

영지도 없고, 자금도 없는 몰락 귀족의 부인들은 폭력을 당하기도 하고 대놓고 무시를 당했다.

그러나 영지가 있는 가문의 부인들은 달랐다.

힘이 있는 가문 간의 정략혼이었다.

부인들의 집안도 남편의 집안에 뒤처지지 않았다.

그 부인들을 막무가내로 대한다는 것은 그녀의 가문을 얕잡아보는 짓거리였다.

자연스럽게 남편은 아내에게 예의를 갖췄다.

“부인, 오늘도 편히 잘 지내셨습니까?”

“네, 덕분에요.”

부부싸움이 집안싸움으로 커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부인은 여인의 도리로 최선을 다해 내조하며 순종하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은연중에 느껴지는 무시와 부인에 관한 무관심 그리고 정부의 존재를 받아들였다는 의미가 아니다.

“아잉, 이렇게 저랑 다녀도 괜찮아요?”

“괜찮아. 괜찮아. 공식적인 행사에 다니는 것도 숨막히는데 여기서까지 그러기 싫다.”

“뭐, 저야 너무 좋지만요. 부인께서 들으면 섭섭하시겠어요.”

“그런 거보다는 나에게 신경 쓰거라.”

“부인에게 그런 거라니요! 깔깔깔.”

정부가 남편과 사교계 활동을 같이한다는 것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다.

“여보, 할 이야기가 남았어요.”

“부인, 그런 이야기는 집사만으로 충분할 거 같은데 그에게 하시구려. 내 약속이 있어서 이만.”

남편이 자신이 아닌 정부를 만나고 싶어 안달난 표정으로 대화를 끝내려는 것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다.

“부인, 식사도 끝났는데 이제 일어나겠소. 그대는 천천히 먹고 나오시오.”

“벌써 다 드셨나요? 아직 음식이 남았는데요.”

“나는 이따가 먹을 것이 따로 있소.”

자신을 만날 시간에 정부를 만나고 싶어서 식사도 남기고 자리를 떠나는 남편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다.

“너는 후계자라는 것이 어찌 그리 유약하게 구는 것이냐! 당신은 애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뭘 한 것입니까!”

“아이고, 내 새끼, 공부하느라 힘들지? 천천히 해도 된다. 뭐가 걱정이냐? 이 아비가 있는데 말이야. 당신도 공부하라고 뭐라고 하지 말게. 쉬엄쉬엄하렴.”

자신의 자식보다 정부의 자식에게 더 애정을 드러내는 것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다.

“이번 예산안에서 연회비용을 줄였으면 좋겠군. 이번에 세금이 줄어서 말이야. 할 말은 전부 했으니 이제 일을 하러 가야겠어.”

부인에게는 오직 공적인 이야기만 하고 정부와 감정적 교류를 하는 것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다.

“그 여자랑 자는 것은 정말 재미가 없어. 얼마나 임신해서 아들을 낳기를 기도했는지 아니? 억지로 참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쯧.”

“역시 제가 제일이죠?”

“그럼. 네가 최고고, 말고. 그 의미로 너와 좋은 경험을 다시 해야겠어.”

“어머나,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닌가요?”

“무슨 소리?! 내가 얼마나 체력을 쌓았는지 아느냐? 얼른 안기거라. 내가 확인할 수 있게 해 주마!”

“어머?! 그러면 확인해 볼까요?”

부인을 후계자를 낳는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것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다.

여인의 덕목은 질투하지 않는 거라고 하기에, 시기하는 것은 귀족적이지 않다고 하기에 참고 또 참았을 뿐이다.

부인들은 그런 경험들에 모멸감과 굴욕을 느꼈다.

“부인, 죄송해요. 각하께서 침대에서 저를 놓아 주시지를 않으시네요. 다음부터는 일찍 들어가실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

“뭐, 그분께서 일찍 가기를 거부하시면 저도 어쩔 도리가 없고요.”

가장 화나는 것은 정부가 자신에게 우월감을 드러내는 눈빛을 볼 때였다.

“사랑받는 여인은 아름다워진다고 하잖아요. 저도 그래서 그런지 예전보다 피부가 좋아진 거 같아요.”

“하찮은 정부 따위가!”

“귀한 가문의 영애셨잖아요. 그래서인지 부인을 볼 때마다 제 마음이 아파요. 제대로 사랑도 못 받고 이렇게 말라가시는 걸요. 불쌍하세요.”

귀족 가문의 영애로 온갖 대우를 받고 한 가문의 안주인으로 존중받는 자신을 감히 하찮게 만들었다.

그 정부를 죽이고 싶었다.

지금도 그런 부인들이 수두룩하다.

하물며 그보다 전에 태어나서 장성한 자식이 있는 노부인들은 오죽할까?

“내가 그이 살아 있었을 적에 정부들 때문에 경험했던 수치들만 생각하면 지금도 자다가 화가 나서 일어난다니까. 관에서 그이를 꺼내서 때리고 싶을 정도야!”

“저도 그래요. 그 정부 망할 것들이 떠올라서 지금도 밟고 싶은 기분이 든다니까요. 그것들이 저보다 먼저 죽은 것이 한스러워요.”

남편이 죽어서 아들이 작위를 이어받았고 지금은 꺼릴 것이 없이 산다고 해도 젊은 날의 굴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풀지 못하고 가슴속에 간직한 분노와 억울함은 계속 남아 있었다.

그래서 노부인들 사이에서 더 화제가 되었다.

“세상에나! 그런 일이 벌어지다니요.”

“여인의 덕목 중 하나는 투기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까? 아무리 세상이 변했어도 이건 아니지요.”

처음에 그 소식을 듣고 노부인들은 정부를 질투하는 것을 솔직히 드러낸 것에 대한 놀람과 동시에 세상이 변했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게 되었다.

“투기가 아니지요. 교육의 일환이 아닙니까? 공작부인의 말에 틀린 것이 하나도 없어요.”

“정부가 본처 노릇하려고 되먹지도 않는 짓을 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죠.”

“그러네요. 정부와 본부인 간의 위계를 바로잡아야 집안의 위계가 바로 서는 법이니까요.”

곧 공작부인이 주장하는 ‘교육’이 정당하다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안주인의 역할은 가문의 내정을 다스리는 일이다.

공작부인의 주장처럼 가문 안의 고용인, 방계의 여인들뿐만 아니라 남편의 여자들도 ‘관리 대상’에 있는 것이 맞았다.

“역시 그릇이 남다른 분이라는 것이 느껴집니다.”

“공작가문의 안주인이 될 만한 자질을 갖춘 분이세요.”

“암요. 저희는 아둔하여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을 이리도 행하다니요.”

세상이 변했어도 어찌 그런 짓을 하느냐고 손가락질을 할 노부인이 있을 만도 하건만 모두가 페루제 공작부인을 극찬했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노부인들이 모여서 ‘정부 때리기’에 이야기를 나누든, 말든 페루제 공작부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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