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8화 퍼트린 소문
페루제 공작부인이 정부들을 채찍으로 기절할 때까지 때렸다는 소문은 주변의 영지까지 갔다.
“자네, 그거 들었나?”
“무엇을?”
“글쎄, 발렌티노의 공작부인이 귀족들의 정부들을 끌고 와서 기절할 때까지 때렸다는군.”
“기절할 때까지? 설마……?”
“아니야. 채찍으로 하도 때려서 등전체가 피로 물들었다고 하더라니까.”
사실대로 말하자면 ‘정부 때리기’를 시작하던 시점에 영지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모두가 알게 되었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퍼트린 것처럼 말이다.
아주 빨리, 보다 널리 이 일이 알려졌으면 하는 것처럼 단시간에 알려졌으니까.
그 소문을 접한 이들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두 가지였다.
“허, 여자가 말이야. 그렇게 투기를 하면 못쓰는데 말이야.”
“그러게 말이야. 여자의 도리를 모르는군.”
“공작각하께서 곧 쫓아내시지 않을까?”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녀의 행동을 단순히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여인의 질투심으로 여겼다.
“내 이야기는 아니어도 속이 시원하더라고요.”
“불륜하면서 고개를 당당하게 들고 다니는 것들이 이 일로 좀 자중하겠지.”
“천박한 것들에게 따끔하게 혼을 내주셔서 좋았어.”
“그러다가 공작각하께서 쫓아내시면요?”
대부분의 여인들은 대놓고 편을 들지 못해도 자기들끼리 있으면 공작부인을 옹호했다.
남자나 여자나 같은 반응은 하나였다.
“공작각하께서 쫓아내려고 했으면 벌써 했겠지.”
“그러긴 그러네. 공작부인의 사병들이 영지를 돌아다니는 것만 봐도…….”
“그 부인의 군대가 우리 왕국 군대를 다 합친 것보다 많다고 하더군.”
공작부인의 사병들이 영지를 순찰하듯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또한 그 수가 적지 않았다.
만약 공작부인을 억지로 쫓아내려고 한다면 영지는 피바다가 될 것이다.
거부하는 공작부인과 쫓아내려는 공작의 병사들 간에 충돌이 불가피할 테니까.
백성들이 무지해도 그 정도 눈치는 있었다.
“공작부인께서 쫓겨나실 리 없어.”
“엄청난 부자고 인맥도 엄청나다고 들었잖아.”
“그러긴 해요. 라스타 왕국의 왕 다음으로 높은 분이라고 하니까요. 아무리 각하라도 밀어붙일 리는 없죠.”
여자나 남자나 누구도 공작부인이 그 자리에서 쫓겨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지 않는가?
공작이 부인의 부하들에게 죽임을 당할 뻔한 사건이다.
공작에게 망신이고 공작 가문의 격이 떨어지는 일이었다.
모두가 타국의 여인에게 자신들의 영주가 모욕당한 것을 분노해야 했다.
싫고 좋음을 떠나서 영주는 자신이 사는 곳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의 모욕과 수치는 그 지역의 모욕과 수치였다.
그런 큰일이 알려졌음에도 영지민들은 혀를 찰뿐 동요하지 않았다.
아, 정확히는 혀만 차는 이유가 있기는 했다.
“윽…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무서워.”
“그치…….”
“절대 옹호하는 것은 아니네. 물론 죽어도 마땅하기는 했지만…….”
“잔인하기는 했지.”
* * *
공작이 페루제 공작부인의 정체를 알고 영지로 돌아오기 전에 그녀는 내성을 완벽하게 장악했다.
그 과정에서 있었던 작은 일은 영지의 백성들에게 두려움을 줬다.
그녀는 기회를 줬음에도 사직서를 내지 않고 버티던 고용인들을 잘 이용했다.
상당수의 고용인을 잡아서 고문하고 죽였다.
‘상당수’라고 표현한 것은 전부를 죽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는 공작성에 남은 기존 고용인 중 진짜로 질이 나쁜 이들을 싹 잡았다.
“죄인들을 모두 추포하라!”
“이게 무슨 짓입니까!”
“공작님께서 오셔서 이 누명을 풀어주실 것이에요.”
“공작님께서 내리신 명령이 아니니 이대로 끌려갈 수는 없습니다!”
그들 사이에 공작에게 충성할만한 이들도 은근슬쩍 포함했다.
그녀는 죄가 없는 고용인들은 고문하지 않았다.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야?!”
“무엇인지는 몰라도 억울합니다!”
대신에 다른 곳으로 데려가서 제안했다.
“이, 이것이 무엇입니까?”
“선택을 해라. 이 돈을 받고 오늘 밤에 가족들과 여기를 떠나서 잘 먹고 잘 살 것인지”
충성스러운 고용인이 자기 앞에 던진 금화 주머니를 바라봤다.
정말 있던 충성심도 사라지게 해 주는 두툼함이었다.
귀족에게는 어떤지 몰라도 평민에게는 상당한 금액이었다.
“아니면 여기서 저 죄인들과 고문을 받다가 광장에서 죽임을 당할 것인지.”
아무리 충성스럽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나의 가족보다 나의 목숨보다 귀하지 않았다.
모두가 그 주머니를 챙기고 밤중에 몰래 영지를 빠져나갔다.
공작부인이 준 이동허가증을 챙겨서 말이다.
그들은 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메디치 백작령으로 안전하게 이주했다.
그렇게 억울하게 끌려갔어도 안전하게 성 밖으로 나와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이들과 달리 죄인들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녀는 고문당한 고용인들을 그냥 두지 죽이지 않았다.
고문당하여 죽어 가는 그들을 많은 영지 백성들이 다니는 광장에서 죽어가도록 한 것이다.
관리 하나가 단상에 올라가서 그들이 모두 들을 수 있도록 크게 소리쳤다.
“죄목은 다음과 같다.”
“위의 죄인은 죄가 없는 ‘자신의 아이들’을 때려죽인 죄.”
이 시대에서는 아이를 부모의 부속물로 생각하는 시대였기에 부모로 인해 맞아서 죽어도 그것을 유야무야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감히 이 영지의 미래를 책임질 아이들을 해한 죄는 크고도 크다. 죽은 목숨만큼 고통받고 죽게 하라!”
“영지의 미래를 짊어질 아이를 해할 권리는 부모라 할지라도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아이가 부모의 부속물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부모도 함부로 할 수 없음을 인식시킨 사건이었다.
“위의 죄인은 고아들을 입양하여 팔아넘긴 죄.”
아이들을 부모의 부속물로 여기는 시대인 동시에, 아이들을 몸만 작은 어른 취급을 하던 시대였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가혹한 행위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부모로 아이를 보호하고 지켜야 할 의무를 저버리고 혼인을 명목으로 돈을 받고 자식을 팔았다. 아이들의 선택권을 부정당하는 일도 영지의 미래가 유출되는 일을 더는 방치하지는 않으리라!”
이 일은 조혼(결혼할 나이가 아님에도 어린 나이에 혼인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사건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다수의 어른이 생각하기에는 아이의 혼인은 부모가 정해 주는 것이고 아이는 부모의 부속물이라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
“만약 영지의 미래를 책임질 아이들이 해를 당하게 된다면 이는 공작 가문의 자산을 해친 죄! 그 죄가 작지 않으리라!”
그렇기에 아이는 부모의 부속물이 아니라 영지의 재산으로 인식하도록 하여 그들이 행동을 조심하도록 경각심을 심어 줬다.
“에잇, 자기들 재산 지키려고 별짓을 다하네.”
“별것도 아닌 일로 아주 숨이 막히게 하는군.”
“나는 이해가 되던데? 내가 이상한가?”
“아니야. 나도 이해가 되던걸.”
계급사회였다.
귀족과 백성의 차이는 절대적이었다.
영지는 영주의 것이고 그 영지에 사는 자신들도 영주의 것에 소속된다고 여겼다.
영주도 백성도 말이다.
“맞아. 영지의 백성들은 엄연히 영주의 재산이잖아. 영지의 백성이 줄어드는 것을 막고 싶었겠지.”
“조혼으로 어린 나이에 출산하다가 죽는 경우가 많잖아. 그거 줄이려는 것이겠지.”
“다쳐서 죽거나 출산하다가 죽거나 죽으면 나중에 받을 세금도 그만큼 줄어드니까.”
영주에게 모든 것을 허락받고 영지에서 살아가는 백성들에게 나름대로 이해할 만한 근거를 준 것이다.
땅에서 살 권리, 일할 권리, 장례식을 치를 권리 등 모든 권리를 영주에게 허락받아야 했으니까.
게다가 그들은 세금을 영주에게 내지 않는가.
“나도 12살까지는 보호를 받았으니까.”
공작부인이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죄를 크게 단죄한 것에는 큰 이유는 없었다.
단순히 자신이 어머니의 보호로 12살까지 행복하게 살았기에 그리한 것이었다.
부모의 보호가 얼마나 중요한지 어머니의 사랑과 보호를 통해 배웠기 때문이었다.
그 사랑은 삶의 원동력이 되기 충분하다.
“자! 봐라! 이것이 죄인들의 목적지다!”
“이 모습을 눈에 새기고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야!”
그곳을 지나가던 백성들은 본의 아니게 죽어가는 모습을 관람하게 되었다.
정확한 표현은 고문을 당했던 사람들이 고문을 당하는 모습을 보게 했다.
“온갖 고문을 당하고 꿈틀거리면서 죽어가던 모습이 생생해.”
피부가 벗겨져서 신음하던 모습과 소리가 지금도 들려오는 듯했다.
화상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과 흐느끼는 소리가 기억난다.
“말하지 말게나. 꿈에 나올까 무서워.”
몸에 난 수많은 구멍이 눈을 찌푸리게 했다.
사람을 어떻게 해야 그런 모습이 될 수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죽을 만한 죄인이기는 하지만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더군.”
보기 싫다고 광장을 벗어나지도 못했다.
공작부인의 사병들이 광장에 배치가 되어 있었다.
백성들에게는 그곳을 벗어나는 순간에 너희의 목숨도 끝이라고 느껴졌을 것이다.
그들은 불운하게 그들의 죽음을 끝까지 봤다.
“역시 가장 무서웠던 것은……….”
“말하지 말게. 뭔지 알 거 같으니까.”
그런 잔인한 모습들도 충격이지만 가장 두려웠던 것은 따로 있었다.
면사포를 쓰고 있어서 얼굴을 알 수는 없으나 우아하게 차를 마시며 그 모습을 보던 공작부인이었다.
그 뒤를 따르던 시녀들과 기사들, 병사들도 똑같았다.
우아함을 끝까지 잃지 않고 여유로웠다.
귀족을 ‘푸른 피를 가진 존재’로 묘사하는 이유를 알게 해주는 모습이었다.
그리하여 공작부인은 건들면 안 되는 사람이라는 각인되었다.
“절대로 옹호하는 것은 아니네. 알지?”
“그럼. 알고말고.”
그 두려움은 그들에게 한 가지를 이해하도록 해줬다.
“그런데 용케도 공작 각하를 죽이지 않았네.”
“그리 무서운데도 남편을 죽이지 않은 건 이상하기는 해.”
“공작 각하는 소드마스터잖아.”
“공작부인의 가신 중에 소드마스터가 있다고 하더라고.”
“에잇, 설마 남편인데 결혼하지 얼마나 되었다고 죽이겠나?”
“그렇기는 하지.”
백성들은 공작부인이라면 화가 나서 공작을 대놓고 죽이려고 들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은 수도에만 있고, 전장에만 있는 공작보다 그들에게 모습을 드러낸 공작부인이 더 무서웠다.
백성들은 마땅히 분노해야 할 일을 공포에 휘둘려서 못하게 되었다.
‘분노’라는 감정을 ‘공포’로 억누른 것이다.
그녀는 백성의 비위를 맞춰 주는 사람이 아니다.
백성들이 그녀의 비위를 맞추도록 만드는 사람이다.
물론 ‘아이는 영주의 미래 재산’이라는 논리가 한몫했다.
평민의 귀족의 것을 탐하는 것은 크나큰 죄였으니까.
그녀의 결정이 못마땅해도 분노를 참고 그 결정을 따르게 해주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 * *
백성들의 생각이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아름다운 손짓으로 차를 마셨다.
“실리, 그이는 어떻게 생각할까?”
“보통의 남자들처럼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보통 사내들처럼 단순히 남편의 사랑을 못 받은 여인의 질투가 어린 행동으로 여길까?
‘공작과 한 내기’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그녀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니까 정부들에게 화풀이했다고 말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