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6화 거지 패거리들의 우두머리는 아무리 잘해도 거지다
페루제 공작부인이 명단을 준 다음날, 여러 마차가 공작성에 들어왔다.
그 마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모두가 여인이었다.
일반적으로 마차 앞에서 그들을 에스코트할 시종들이 있어야 마땅했으나 여기서 그런 당연함은 사치였다.
시종이 저 멀리서 그녀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분명히 공작부인의 허락 혹은 명령 하에 하는 행동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래요?”
서로가 안면이 있는지 빠른 걸음을 걷으면서 대화를 나눴다.
그 와중에도 우아한 표정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모르겠어요. 설마 저희도 그 꼴이 되는 것은 아니겠죠?”
그 꼴이란 티파티에서 페루제 공작부인에게 나대다가 아이들은 피가 날 정도로 맞고 부인들은 마녀 의혹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된 사건이었다.
그 명단에 있는 부인들은 공작부인의 심기에 따라 언제든 마녀로 몰려서 죽임당할 수 있었다.
“그러게요. 게다가 이렇게 무례하게 오라고 하다니요.”
“갑자기 초대를 받아서 준비도 제대로 못했다니까요.”
사교계는 여인들의 전장이었다.
전장에 나가는 병사에게 갑옷과 무기가 필요하다.
여인들도 마찬가지다.
단지 갑옷과 무기가 아닐 뿐이다.
초대된 장소, 가문, 목적 등을 고려하고 또 고민하면서 구두, 드레스, 장식구 등을 하나하나 섬세하게 정한다.
그래서 넉넉하게 날짜를 잡고 초대를 하는 것이 예의였다.
페루제 공작부인이 전날에 대뜸 오라고 초대장을 보낸 것은 무례한 행동이었다.
그들에게 준비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오라고 한 것이니까.
“솔직히 이게 무슨 초대예요.”
“하긴요. 가지 않았다가 공작부인이 어찌 나올지 모르니까요.”
초대라고 할 수 없었다.
거절했다가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니까.
아이들을 걸어 다니지도 못하게 때렸던 그 티파티에서도 불참한 귀부인들에 대한 경고가 있었다고 한다.
‘이해할 만한 사유’없이 오지 않은 부인들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이 말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그녀들은 소문의 반의 반만 진실이라고 해도 무서울 공작부인을 만날 생각이 손이 다 떨려왔다.
부인들이 하나씩 시종들이 기다리는 곳까지 다다랐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시종들은 하나같이 절도가 있고 기품이 있었다.
사람의 감정을 최대한 절제해서인지 살아 있는 인형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부인 한 명에게 시종 한 명이 안내했다.
그 시종이 안내하고 돌아올 때까지 그녀들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불만이 많았으나 벨로나 가문의 시종들 앞에서 그것을 뱉어낼 수 없었다.
시종이 어느 방 앞에 문을 두드리고 손님이 왔음을 알렸다.
곧 문이 열리고 드디어 소문 속 인물을 직접 보게 되었다.
하얀 피부에 검붉은 드레스는 그녀와 너무 잘 어울렸다.
아름다운 것은 물론이고 사람을 끌어당기는 뭔가가 있었다.
그녀보다 먼저 온 여인들이 있었다.
모두가 웃고는 있었다.
단지 억지로 웃고 있는 티가 너무 났을 뿐이다.
“공작부인께 인사드립니다.”
“어서 오세요.”
차향을 맡고 있던 그녀는 찻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우아하고 군더더기가 없는 귀족적인 모습이었다.
“초대에 흔쾌히 응해 줘서 내 마음이 좋더군요.”
이 무례한 초대에 대해 언급을 했으나 사과는 하지 않았다.
네가 와서 기분이 좋았다는 것은 네가 오지 않았으면 기분이 나빴을 것이라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었다.
자신에게 그들이 오는 것은 확정된 사실에 불과했다.
거절하는 것은 자신을 도발하는 짓거리에 불과했다.
“아닙니다. 이렇게 초대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저기에 앉으세요.”
초대된 여인은 ‘영광’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그렇지만 그녀는 이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초대를 받은 사람은 영광스러워해야 한다는 듯한 태도였다.
여기가 라스타 왕국이었으면 상대할 일도 없었을 것들이다.
저들이 자신과 만나는 것을 영광스럽게 여겨야 마땅했다.
그 오만한 태도가 너무 잘 어울렸다.
아니, 페루제 공작부인에게 오만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녀에게 누군가를 지배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였다.
타인은 그녀에게 지배당하는 것이 당연했다.
“네.”
“알겠습니다.”
공작부인의 그런 태도에 기가 죽은 여인은 작게 대답하고 자리에 앉았다.
겸양하는 말을 하거나 다정한 인사말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바로 자리에 앉으라고 한다.
미리 도착해 있던 여인들이 무안할 지경이다.
물론 그녀들도 같은 과정을 경험했기에 놀라지는 않았다.
페루제 공작부인은 모두가 한 명씩 들어오게 하고 인사를 받았다.
마치 왕이 귀족들에게 하나씩 인사를 받는 듯한 분위기였다.
여기서 페루제 공작부인인 자신이 가장 높은 존재였다.
왕도 가장 높은 존재니까 모두가 예를 갖추는 것이 아닌가.
자신도 여기서만큼은 왕처럼 대우받아도 괜찮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초대된 모든 여인이 방에 들어왔다.
공작부인은 차를 음미하며 말했다.
초대한 사람들에게는 시선을 주지 않았다.
“이렇게 부인들을 만나니까 너무 좋네요.”
정말 진심이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말투가 다정해도 말이다.
인사만 하고 자리에 앉히고 차만 마시는 공작부인으로 인해 초대자들은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여기 있는 모두가 궁금하겠지요. 내가 그대들을 왜 불렀는지요.”
너무 직설적이다.
그녀는 돌려 말하지 않았다.
소위 미소를 짓고 돌려서 말하면서 상대를 엿 먹이는 사교계에서는 비웃음을 당할 일이었다.
여기에 그녀에게 그런 미친 행동을 할 부인들은 없었다.
“대충 눈치를 챈 사람도 있겠지만 여기에는 부인들만 있어요.”
그녀가 초대한 사람들 중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여기에는 미혼이 없었다.
전부 기혼자였다.
“본디 나는 기강을 중시하는 사람이에요.”
그녀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앞으로 내가 활동할 사교계도 그래야 해요. 흐트러짐이 없는 완벽함을 보여야죠.”
이제야 그녀가 초대된 부인들을 바라봤다.
서늘하기 짝이 없는 눈빛이었다.
그녀들은 그 눈빛에 망했음을 느꼈다.
“그런데 그대들이 나의 사교계를 더럽히고 있다고 들었어요.”
부인들은 억울했다.
그들이 그녀의 심기를 상하게 할 만한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남편이 영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북부에서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솔직히 자신들을 그녀가 어떻게 알고 초대를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 어떤…….”
한 부인이 물어보려고 용기를 냈다.
“부인,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내 말을 끊는 건가요? 감히?”
“죄, 죄송합니다.”
바로 닥쳐야했다.
한 단어라도 더 내뱉으면 죽여 버리겠다는 말투였으니까.
“라스타 왕국이었다면 당장 치워버렸겠지만 여기는 알펜 왕국이니까 내가 참아야지.”
치워버리겠다는 말이 그냥 시야에서 사라지도록 하겠다는 말인지 목숨을 잃게 하겠다는 의미인지 알 수가 없었다.
“가르칠 것이 많네.”
공작부인이 작게 혼잣말을 했다.
모두가 들었지만 듣지 못한 척해야 할 말이다.
“물론 내가 오해할 수 있죠.”
그 말에 부인들이 다급하게 말했다.
“물론입니다.”
“저희가 어찌 공작부인의 심기를 거스를 일을 하겠어요.”
“뭔가 오해가 있으셨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듣던 공작부인이 말했다.
“내가 원하는 완벽한 사교계는 부인들이 한가문의 안주인으로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어야 합니다.”
페루제 공작부인은 완벽한 귀족이다.
라스타 왕국에서 귀족들에게 가장 귀족적인 귀족이 누구냐고 물으면 그녀라고 대답할 정도였다.
페루제는 ‘자신이 지배할 사교계’가 천박하기를 원치 않았다.
자신처럼 사교계는 완벽해야 했다.
자신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은 자신과 같아야 했다.
“북부 사교계에서 가장 높은 여인은 나입니다. 그대들은 나의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고요.”
사교계는 작위에 따라 주도권을 쥐는 곳이 아니다.
화술, 미모 등 많은 것에 따라 좌지우지된다.
“나의 가치는 나의 아랫사람들의 수준으로 정해지는 경우가 많지요.”
무능한 부하를 둔 지배자는 비웃음거리가 된다.
그딴 것들밖에 곁에 없냐고, 인재도 없어서 그런 것들만 있는 거냐고 말이다.
거지 패거리들의 우두머리는 아무리 잘해도 거지고 기사들의 우두머리는 아무리 잘해도 기사단장이다.
“안주인의 권위가 없다면 거지들과 다니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부인들의 얼굴이 붉어졌다.
페루제 공작부인이 그들을 부른 이유가 너희가 거지와 차이가 없어서 불렀다는 것이니까.
“진짜 오해입니까?”
그녀가 그들에게 물었다.
그것이 자신의 오해냐고 말이다.
“네, 저희는 귀부인으로, 한가문의 안주인으로 집안을 잘 이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러니 제발 오해를 거둬 주십시오.”
“간청합니다. 부디 불편한 심기를 푸십시오.”
그들이 자신들은 그녀가 원하는 ‘권위가 있는 안주인’임을 주장했다.
페루제 공작부인이 고개를 갸웃뚱하더니 말했다.
“오해라…….”
잠시 생각을 하듯이 침묵하다가 박수를 쳤다.
“그러면 시험을 해보면 되겠군요.”
화사한 웃음이었다.
방에 부인들이 들어오면서 봤던 그 어떤 표정보다 제일 좋았다.
“예?”
그 말에 부인들은 당혹스러웠다.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한 반응이었다.
게다가 ‘권위가 있는 안주인’임을 확인하는 방식도 알 수가 없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따르는지 보는 것이라면 자신이 있었다.
시녀나 시종이 그녀들을 따르는 것은 당연했으니까.
그러나 그렇게 단순한 것을 시험이라고 할 리가 없었다.
그랬다면 이렇게 번거롭게 초대까지 하면서 판을 만들지 않았겠지.
상류층은 아니었으나 그들도 귀족이다.
그 정도는 알아챌 수 있었다.
“그것을 가져와서 주거라.”
“네.”
시녀들이 부인들의 잔 옆에 작은 종이를 뒀다.
“이, 이것은?!”
그 종이에는 이름을 적혀 있었다.
그곳에 적힌 이름을 본 그들의 얼굴이 하얗게 되었다.
평온함을 유지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너희와 동행하고 저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는 시녀들을 시켜서 불러와라.”
“부, 부인”
“너희가 진실을 말했는지, 나에게 거짓을 말한 건지 알 수 있겠지.”
부인들에게 선택권이 없었다.
그녀들은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페루제 공작부인의 시종들이 다른 부인들의 시녀들에게 가서 명령을 전했다.
부인들과 그녀는 보지 못하겠지만 명령을 들은 시녀들의 얼굴은 당혹감에 물들어 있었다.
자신이 모시는 부인이 할 만한 명령이 아니었고 만날 만한 상대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녀들은 떨떠름해 하며 성을 나갔다.
그들도 아랫사람으로 눈치가 있었다.
명령대로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이다.
“갑작스러운 부름이기는 하지만 아무리 늦어도 한 시간 안에는 오겠지요.”
페루제 공작부인이 다정하게 말했다.
“그대들이 진실로 권위가 있다면요.”
부인들을 믿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때까지 즐겁게 대화를 나누죠.”
미칠 것 같았다.
즐겁게 대화를 나눌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게 그들은 점점 더 마음이 옥죄여 가고 있었다.
한 시간이 흘렀다.
누구도 오지 않았다.
“예의를 갖춘다고 준비를 하는가 보군요. 이해합니다. 격식은 중요하지요.”
두 시간이 흘렀다.
단 한 명도 오지 않았다.
“시녀들이 못 찾나보군요. 사람을 보내야겠어요.”
세 시간이 흘렀다.
부득이하게 가지 못한다는 서찰조차 오지 않았다.
페루제 공작부인에게서 미소가 사라진지 오래였다.
부인들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실리, 병사들에게 전해라. 그것들의 머리채를 잡고서라도 끌고 오라고.”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