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굴복하거나, 죽거나-55화 (55/221)

055화 정말 이게 가능한 일인가?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뭔가가 그녀답지 않았다.

수많은 화살과 병사를 준비하고 소드마스터를 대동하면서 그를 위협했었다.

남편의 권위를 떨어뜨려서라도, 사람들을 죽여서라도 권력을 얻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치고는 조용한 것이 불안감을 심어 줬다.

“고용인들에게 듣기로는 특별한 움직임은 없으셨습니다.”

“그래, 내가 과한 걱정을 하는 것이겠지.”

공작은 서신 하나를 읽어 봤다.

집사말고도 정보부를 움직여서 그녀의 움직임을 파악했다.

정말 수상한 짓은 없었다.

그는 불안한 마음을 억지로 진정하려고 하는 집사를 바라봤다.

집사가 그녀에게 꼼짝을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그대와 이곳의 고용인들에게 미안한 것이 많아.”

“아닙니다.”

“아니야. 수도에 있느라 그대들을 덜 신경을 썼어. 그 여자는 그 틈을 알고 일부러 결혼하자마자 이곳으로 온 것이야.”

집사가 중립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음도 알았다.

“더 도와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아니야. 그대 이야기를 들으니까 이미 이곳의 고용인들 대부분 그녀의 사람이 되었더군.”

“밀고로 서로를 감시하게 하다니 대단하다면 대단한 여인이야.”

새삼스럽게 정말 대단한 아내를 뒀다.

동료이자 친구였던 하인, 시녀 등 고용인들을 서로 불신하게 했다.

그러면서 오직 그녀 자신에게 의지하도록 유도했다.

“고용인들 간에 등급 체제를 만들었습니다. 등급이 오를수록 급여가 늘어나고 특혜도 늘어나지요.”

가문을 위한 공적을 세우면 등급을 올려 주는 것이라고 하지만 평민들이 가문을 위해 공을 세울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의 수상한 듯한 움직임을 보고하는 것이 전부일 것이다.

대놓고 밀고를 하라고 판을 깔아 준 것이다.

“그래. 등급이 높을수록 낮은 이율로 대출을 해 준다니 생각하지도 못했어.”

“그뿐이 아닙니다. 등급이 높은 고용인들에게는 치안이 좋은 곳의 저택에서 근무하는 동안 무료로 거주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급여에서 월세만 없어도 생활의 여유가 달라질 것이다.

그것만 아니라 치안도 좋고 고급진 주택 지역에서 무료로 살 수 있다.

가족들의 안전을 보장받고 자신들의 수준을 높일 기회다.

일반 평민이 아니라 ‘좀 사는 잘난 평민’이 되는 것이다.

그런 지역에서 공작부인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무료로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고용인들이 눈을 빛내며 밀고할 만한 건을 찾는 것은 당연했다.

이 밀고 제도에는 큰 단점이 있었다.

“혜택을 노린 거짓 밀고가 많아졌을 것인데 괜찮은 것인가?”

“밀고가 들어오면 조사단을 파견하여 진위를 파악한다고 들었습니다. 일부러 거짓 밀고를 한 경우가 밝혀지면 목을 베어 버렸고요.”

거짓으로 밀고를 해서 등급을 쌓아서 혜택을 받으려고 했던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조리 거짓이 들통이 나서 귀족 기만죄로 사형을 당했다.

“요즘 대놓고 나와 기사단 근처를 기웃거리는 이유가 그따위라니 한숨이 나오는군.”

“죄송합니다. 제가 부덕한 탓입니다.”

“그대 탓은 더 이상 하지 말게. 이제 이 서신을 봐야겠어.”

그는 침울한 집사에게 말하고는 서신 하나를 꺼내서 읽었다.

그리고는 곧 눈이 커졌다.

믿기 어렵다는 눈빛이었다.

다른 서신들도 얼른 꺼내서 읽었다.

눈을 비벼보고 다시 읽어 보기까지 했다.

“이게 정말 그 가문들에서 보낸 서신들이 맞느냐?!”

“예, 혹시 몰라서 확인하기 위해 사람들을 보냈는데…….”

집사가 황망해하며 말을 흐렸다.

집사의 표본이라고 할 정도로 철저한 사람조차 놀랄 일이었다.

“하! 말이 나오지 않는군.”

그는 손이 떨렸다.

분노로 인한 것이었다.

공작은 친히 그 서신들을 바닥에 던져 버렸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서신 1 — 저희 어머니께서 공작부인의 환영 연회를 고대하고 있사온데 언제 여실 예정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서신 2 — 라스타 왕국의 귀한 분이 안주인으로 온 기념으로 연회를 연다고 들었습니다. 초대만 해주신다면 기꺼이 참석하겠습니다.]

[서신 3 — 사교계의 가장 높은 부인께서 연회를 여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부디 참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으면 합니다.]

[서신 4 — 공작께서 오랜만에 영지에 돌아오셨으니 환영 연회를 여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초대장을 보내 주신다면 모든 일정을 뒤로하고 반드시 참석하겠습니다.]

말만 다를 뿐이지 모든 서신이 ‘공작부인의 환영 연회’를 연다고 확신하며 제발 초대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연회와 관련된 것은 부인의 일이다.

부인이 연회를 꾸미고 주도하니까.

연회에 대한 문의는 공작부인에게 가는 것이 마땅하다.

연회를 공작의 반대로 열 수 없다면 열 예정이 없다고 대답하면 그뿐이다.

그런 것을 무시하고 공작에게 서신이 왔다.

“결국에는 환영 연회를 하도록 만들겠다?”

공작부인의 환영 연회를 서신을 보낸 가문들의 안주인이 지지함으로 표명한 것이다.

북부에서도 한가락 한다는 가문의 안주인들이 상당수였다.

그녀는 ‘북부 사교계의 여왕’이 되었다.

그것도 영향력 있는 가문의 여인들을 만나지도 않고 말이다.

“젠장! 망할!”

워낙 악명이 자자해져서 불가능하다고 믿었는데 뒤통수에 맞은 기분이었다.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지?”

그녀가 영지도 없고 재산도 고만고만한 귀족 가문의 부인들을 불렀다는 것은 알았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부인들의 남편을 매질했다는 것도 말이다.

전혀 사교계의 주도권을 잡을 행동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사교계에 적대적인 이미지를 심어 주는 짓이라고 여겼다.

그 서신들이 공작에게 당도했다는 소식을 들은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그이는 참 순진하다니까. 상대하면 상대할수록 재미가 있어.”

* * *

한 달 전.

공작과 공작부인의 내기는 금방 공작성 안에 퍼졌다.

“공작부인과 공작 각하께서 내기하셨다며?”

“너도 들었구나. 너는 누가 이길 것 같아?”

“글쎄. 공작부인께서 너무 세셔서 사교계 부인들이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지만 말이야. 방계 가문과 가신 가문 부인들을 휘어잡았듯이 목숨줄을 쥘 수도 있지.”

“에이, 그건 아니다. 공작 가문만큼은 아니지만 힘이 있는 가문의 부인들이 있잖아.”

공작부인이 의도적으로 퍼트린 것인지 아니면 공작이 의도적으로 퍼트린 것인지 아무도 몰랐다.

어쩌면 둘 다 퍼트린 것인지도 모른다.

어디에서나 승자는 우위에 서고 패자는 굴욕을 당한다.

고용인들의 대화를 란델리노는 얼떨결에 몰래 듣고 말았다.

창문을 열어 놓고 공부를 하는데 그들의 대화가 들린 것이다.

“어머니가 진다고?”

그 굴욕이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승자의 권위는 올라간다.

란델리노가 그 소문을 듣고 놀라서 어머니에게 달려갔다.

식사시간도 티타임시간도 아니었다.

“어머니, 괜찮으세요?”

일하던 페루제는 무표정한 얼굴로 아들을 바라봤다.

이 아이가 왜 이 시간에 왔는지 모를 일이다.

자신이 티타임 일정을 당긴 기억이 없었으니까.

지금 아이는 자신의 수업을 들어야 했다.

자신이 선택한 교사들의 수업을 말이다.

“란델리노. 어찌 왔느냐?”

“네? 네. 어머니께서 난처한 일에 처했다고 하여 급히 왔습니다.”

“지금 네가 뭐하고 있어야 할 시간이지?”

어머니가 걱정되어서 달려온 아들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

나는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 말을 할 표정도 아니었다.

그녀는 언짢아 보였다.

실제로도 그랬다.

그 교사들은 자신이 그들의 자질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평가하고 또 평가하여 엄선한 인물들이었다.

“수업을 받고 있어야 할 시간이요.”

란델리노는 어머니의 기분이 자신으로 인해 나빠졌음을 느꼈다.

목소리가 작아졌고 고개는 숙여졌다.

“너는 나에게 망신을 줬다.”

그 말에 놀라서 그가 고개를 들었다.

“네?”

“너를 위한 최고의 교사들을 초빙했다. 그들은 오직 너를 위해 자신들의 귀한 시간을 내줬어.”

그녀는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았다.

라스타 왕국에서 그들에게 배움을 청하고 싶어서 집 앞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는 이야기가 도는 교사들이었다.

일 분 일 초라도 수업을 듣기를 원해서 거금을 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교사들에게는 그만한 능력과 인맥이 있었다.

그것을 고려하여 붙여 준 사람들을 지금 무시하고 자신에게 온 것이다.

“그들은 유능한 교사인 동시에 엄청난 인맥을 자랑하는 사람들이야. 나는 그들에게 나의 아들은 뛰어나며 성실하다고 했다.”

란델리노의 교사들은 유능한 만큼 발이 넓었다.

그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준다는 것은 그들의 인맥에게 좋은 인상을 준다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아들이 가지게 될 좋은 인상은 곧 자신이 좋은 어머니라는 인상을 심어 줄 것이라고 여겼다.

아들을 교육하는 것은 어머니의 역할이니까.

“네가 걱정한다는 핑계로 수업을 빠진 순간, 나는 그들에게 네가 성실하다고 거짓을 말하게 한 것이 되었어. 이게 망신이 아니면 무엇이니?”

이리 수업을 빠지면 계모라서 자신이 아이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말이 돌 수 있었다.

자신처럼 열심히 어미 노릇을 잘 하는 부인이 어디에 있다고 그따위 소리를 들어야 한단 말인가.

이것은 자존심의 문제이기도 했다.

완벽해야 하는 자신에게 흠이 생긴다는 것은 자존심이 상한다.

란델리노는 자신이 큰 잘못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자신을 걱정하여 달려온 아들’보다 ‘자신의 책무를 우직하게 하면 능력을 증명하는 아들’을 원했다.

어머니에게 버림을 받으면 더는 사랑도, 가문의 후계자로 가질 권리도 누릴 수 없다는 생각에 다리가 떨려 왔다.

어머니가 구원해 준 삶은 언제라도 어머니가 나락으로 던져 버릴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그리하지 않겠습니다.”

그는 울먹이며 사과를 했다.

그 모습에 페루제가 다정하게 말했다.

방금 전까지 차갑던 여인과 동일인물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리 오거라.”

란델리노가 작은 걸음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그녀는 평소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

자신의 팔을 벌렸다.

곧 란델리노를 안아 줬다.

“섭섭한 것을 다 안다. 그러나 명심하거라. 세상에는 너를 쳐내려는 이들이 가득하다는 것을 말이야.”

정말 아들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모습 그 자체였다.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 빌미를 주는 순간, 그들은 너를 잡아먹으려고 들 것이야.”

엄하게 혼내고는 사랑으로 보듬는 좋은 어머니였다.

“이 어미가 너를 지키지 못하는 슬픔을 경험하지 않도록 해다오.”

“죄송해요.”

란델리노는 자신이 안일했음을 깨달았다.

“절대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할게요.”

어머니의 말씀이 맞았다.

자신이 당했던 굴욕은 약했기 때문에 생겼다.

지금 가진 힘을 지키려면 그도 강하고 완벽한 모습을 보여야 했다.

어머니처럼 말이다.

동시에 피가 섞이지 않았음에도 자신을 위해 주는 어머니의 사랑에 보답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래. 고맙구나.”

“아니에요.”

어머니의 따스한 미소에 울먹이던 얼굴은 사라지고는 웃었다.

“그러면 이제 너를 기다리고 있는 선생님께 상황을 설명하고 사과를 해야겠지?”

“네. 그럴게요.”

“선생님이 가실 때에 드릴 선물도 준비해야겠구나. 약소하지만 말이야.”

란델리노는 자신의 평판을 신경써서 선물까지 챙겨 주시려는 어머니에게 감동했다.

아까 분명히 자신을 망신시켰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자기마음대로 해석을 한 것이다.

그만큼 페루제에 대한 믿음이 강하다는 뜻일 것이다.

그 말 속에 아들의 평판도 포함되어 있을지는 오직 그녀만 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숙제를 하나 내주마.”

“숙제요?”

“그래. 기한은 한 달 정도로 하자구나.”

“어떤 것인가요?”

“사람의 본질에 대한 것이다. 내가 사교활동을 하면서 생길 일들을 보고 생각나는 것을 말하면 된단다.”

그녀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거기에는 자신이 사교계를 휘어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담겨 있었다.

“네!”

란델리노는 그것을 느끼고는 큰소리로 대답했다.

그가 방을 나서고 페루제의 미소는 차갑게 식었다.

“여기 명단에 있는 부인들을 초대하거라.”

“예, 부인”

그녀는 명령을 내리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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