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화 측근들의 싸움은 부부간의 대리전과 같다
“이제 슬슬 때가 된 거 같구나. 네가 직접 그들을 불러오거라.”
“알겠습니다.”
공작이 세베루스를 보내는 시각에 공작부인도 실리를 대기실로 보냈다.
이러다가는 두 사람이 대기실에서 마주치게 될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대기실의 문이 열렸다.
귀족들이 일어나는데 가주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당연했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공작의 최측근인 세베루스가 있었으니까.
“공작께서 부르십니다.”
“어찌하여 부르시는지?”
눈치가 없는 가주 하나가 입을 나불거리고 말았다.
그 말에 세베루스가 차갑게 그를 바라봤다.
이에 그 가주는 움찔했다.
“공작께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들이 이에 대해 분노하지는 못할망정, 공작부인께 달려가는 꼴이라니요. 그것을 좋아하실 줄 알았습니까?”
“죄, 죄송합니다.”
그는 얼른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귀족들의 질책이 담긴 눈길도 감당해야 했다.
그는 자신의 둔감함에 자신을 스스로 자책했다.
“사죄는 각하께 하시지요.”
그가 그들을 방에서 데리고 나오려고 하는데 불운하게도 실리가 당도했다.
“지금 뭐 하시는 것인지요?”
그녀가 감정 없는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뒤에는 시녀들과 기사들이 있었다.
당연하지만 세베루스 뒤에도 기사들이 있었다.
“공작부인의 손님들을 멋대로 데려가시는 것입니까?”
“공작 각하의 명을 수행하는 것이네. 자네는 물러가게.”
사실 시녀장이랑 공작의 보좌관이 대치한다는 것은 엄청난 하극상이었지만 그녀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리할 수는 없습니다.”
“시녀장이 공작 각하의 명령을 감히 막는다는 것이냐?”
세베루스는 공작부인이 오만하니까 그 측근조차 오만하다고 여겼다.
과연 주인을 닮아 무례하고 정도를 몰랐다.
그리고 실리는 세베루스의 경멸 어린 눈빛에서 그 생각을 읽어냈다.
자신이 주인이 먼저인 그녀에게 양보란 있을 수 없었다.
“막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순위가 있다는 것이지요.”
“우선순위? 지금 공작부인이 각하보다 위에 있다고 말하는 것인가!”
세베루스는 공작부인과 그 무리를 가문을 위협하는 적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사실 수많은 화살과 기사, 소드마스터에게 죽임을 당할 뻔하면 누구라도 그리 생각할 것이다.
“저는 순서에 대해 말하는 것이 옵니다. 저들은 공작부인에게 저지른 무례를 사죄하게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영지에 크나큰 문제 생긴 것이 아니라면 본래의 방문 목적부터 이루는 것이 맞는다고 봅니다.”
실리는 자신의 말이 절대로 역심을 품고서 나온 말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주인에게 누를 끼칠 수 있었으니까.
자신의 구원자이자 신인 공작부인에게 도움이 되지 못할 바에는 죽는 것이 나았다.
“무엇보다도 공작부인을 만나러 온 귀족들을 이런 식으로 데려가신다면 어찌 공작부인의 권위가 살겠습니까?”
그녀가 세베루스를 막은 가장 큰 이유였다.
공작부인의 손님을 그녀에게 양해도 하지 않고 데려간다는 것은 그녀를 배려하지 않음이고 이는 공작이 그녀를 무시하고 있음이다.
남편의 무시를 당하는 안주인이라니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었다.
남편의 총애까지는 아니더라도 존중은 받아야 체면이 섰다.
공작부인은 귀족적인 품위를 중요시하는 사람이었다.
작은 조각과 같은 결점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귀부인 중에 남편과 정부로 가슴앓이하는 이들은 많았지만, 그것은 그녀가 알 바가 아니었다.
이것은 그녀의 권위를 세우느냐 마느냐의 문제였으니까.
실리는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이 일로 공작이 벌을 내릴지라도 말이다.
실리와 세베루스 간의 기 싸움에 난처하게 된 것은 그곳에 있는 귀족들이었다.
그들은 슬쩍 서로의 눈빛을 바라봤다.
‘이것을 어쩌죠?’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소? 이 살벌한 대치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밖에 없지.’
‘이렇게 시간이 지체되니 불안합니다.’
살 떨리는 분위기를 견뎌야 하는 그들은 마음대로 방을 나갈 수도 없었다.
여기서 멋대로 나간다고 함은 그냥 죽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공작과 공작부인 양쪽을 무시한 것이었으니까.
세레루스는 공작의 명을 받고 움직였기에 공작의 대리자와 같았다.
그들의 떨림은 신경조차 쓰지 않는 두 사람이 서로를 날카롭게 바라봤다.
실리가 입을 열었다.
“공작 각하께서 그분을 존중해 주시는 만큼 가문의 내정도 단단해지지 않겠습니까? 가문을 위한 일이니 양보해 주시지요.”
그녀가 미약하게 턱짓을 하자 뒤의 시녀들이 귀족들을 공작부인에게 데려가려고 했다.
“그 어떤 가문도 시녀장이 가주의 측근보다 위에 설 수는 없어.”
이 중에서 그 말이 공작과 공작부인을 빗대어 말한 것임을 모르는 바보는 없었다.
그는 공작이 공작부인보다 엄연히 위임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기본조차 세워지지 않는다면 어찌 가문의 위계가 세워지겠나?”
세베루스의 말을 시작으로 그 뒤에 있던 시녀들이 움직였다.
공작과 함께 수도에 있어서 페루제 공작부인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시녀들 간에서 보이지 않는 기류가 느껴졌다.
그녀들이 기사였다면 서로 검을 뽑고도 남았을 것이다.
“언제부터 위계를 세우는 것이 부인을 무시하는 것이 되었습니까? 가문의 안주인을 이리 홀대하다니요. 내정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그녀가 차가운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봤다.
“그건 부인이 남편을 순종했을 때의 이야기지.”
세베루스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는 듯이 강하게 말했다.
실리의 표정이 굳었다.
오만하게 구는 꼴을 보니 뺨을 후려치고 싶었다.
이러다가 공작부인의 권위를 훼손시키게 되는 것이 아닐까 걱정도 되었다.
사회적 관념에 따르면 세베루스의 말은 정론이었다.
가문 그 자체의 주인과 그 가문의 일부를 책임지는 안주인.
둘 중에 누가 우위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여기서 더 강하게 나갔다가는 벨로나 가문의 가신들에게 두려움이 아닌 적의를 심어 줄 수 있었다.
‘가주의 권위’를 흔들려고 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었으니까.
“존중받기를 원하면 그에 맞게 행동을 해야 하네.”
팽팽하게 서로 맞서고 있었다.
기사들이라도 불러서 칼질할 것 같았다.
귀족들은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맞는 말이지. 어찌 아내가 남편보다 위에 있겠나. 실리, 그만두거라.”
페루제 공작부인이 들어왔다.
실리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가면에 가려져서 누구도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녀는 우아하게 방에 들어왔다.
얼마나 우아한지 걷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공작부인을 뵙사옵니다.”
세베루스가 예의를 표하며 인사를 했다.
그에게는 상대에 대한 분노와 적의가 보이지 않았다.
부정적인 감정을 자연스럽게 감췄다.
공작의 보좌관다웠다.
“오랜만이군요. 수도에서 보고 처음인가? 아! 그이가 영지에 왔던 날에 봤네요. 내 기억도 참!”
그 의연함이 참으로 하찮았다.
패배를 시인하듯이 성안으로 들어간 공작을 쫄래쫄래 따라가던 그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엄연히 남편의 측근이다.
괜히 그이의 권위를 훼손해서 좋을 것이 없었다.
만약 그리된다면 자신이 안주인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지 않겠는가.
기분 나쁜 일이다.
“남편을 내조하는 것이 아내의 일이지요. 그러나 서로가 서로에게 적응하는 기간이 아닙니까. 그래서 아직 적응하지 못한 것들이 있어요.”
페루제 공작부인은 이미 내조와는 거리가 먼 행보를 해 왔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처럼 훌륭하게 남편을 위하는 안주인은 없다고 생각했다.
내조한 것이 없음에도 그리 여겼다.
“특히 실리는 혼인 전부터 나를 모시던 사람이지요. 그래서 그이보다 ‘나’를 우선시했나 봐요. 이해해 줘요.”
“아닙니다.”
둘이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싸우던 것에 비하면 허무한 결과였다.
세베루스는 속으로 당혹스러워했다.
“안주인의 권위가 중요한 것은 맞지만 그보다는 가주의 권위가 더 중하지요. 실리, 다음부터는 자중하거라.”
늦은 밤에 소드마스터와 궁수들로 공작을 죽이려고 했던 여인이 할 말은 아니었다.
“예. 죄송합니다.”
“나에게 사과를 하면 어떻게 하니?”
“죄송합니다. 세베루스 보좌관님.”
맹렬하게 대치하던 것이 무색하게 시녀장은 깔끔하게 사과를 했다.
여기서 받아 주지 않으면 옹졸해 보일 만큼이었다.
“아니네.”
시녀장은 공작부인의 수족으로 그녀의 의중을 대변해 주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들을 데려가는 것도, 공작에게 보내지 않으려는 것도 공작부인이 그러기를 원했다는 반증이다.
그런데 직접 와서 데려가라고 하다니?
진작 그리했다면 정신적으로 서로 몰아붙이며 싸우지 않았을 것이다.
뭔가 마음에 변화가 왔음이다.
그는 머리를 굴려봤다.
도저히 그 의중을 알아챌 수 없었다.
당연했다.
그는 살면서 본 ‘저런 여인’은 페루제 공작부인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일단락되는 듯 보였으나 페루제 공작부인이 말을 더하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그런데 시녀장의 말도 맞지. 그들을 모두 데려가면 내 권위는 어찌 되겠는가? 누가 나를 존중하며 따르겠어?”
고용인들이 그녀를 존중하며 따르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에 두려워하며 따른다.
그것은 고작 귀족들이 누구를 먼저 만나러 가느냐 하는 권력 싸움의 패배로 사라질 감정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녀는 그보다 더 많은 것을 가졌으니까.
“나는 존중받지 못하면 억지로라도 존중을 하게 만드는 사람이네. 그건 그대가 경험해 봐서 잘 알지?”
세베루스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녀가 존중받고 싶다며 성내의 자기 병사와 기사들을 끌고 왔던 일을 지금 생각해도 충격이었다.
“어찌하시기를 원하십니까?”
페루제 공작부인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저들에게 선택권을 주고 싶네.”
그 말에 귀족들은 얼굴이 파랗게 되었다.
사과하겠다고 왔다가 날벼락을 맞았다.
“나보다는 그이에게 먼저 가고 싶은 이들은 그이에게, 그이보다 나를 먼저 만나고 싶은 이들은 나에게 오도록 말이야.”
차라리 둘이 싸우다가 어디로 갈지 결정이 되는 것이 나았다.
누군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그들이 누구를 더 우위로 여기는지 알게 해준다.
게다가 공작을 따라가면 공작부인을 무시한 것이 된다.
본래라면 공작이 우선시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그 공작부인이 바로 전날 공작을 죽이기 직전까지 간 여인임을 명심해야 한다.
공작부인을 따라가게 되면 주군의 명을 무시한 것이 된다.
해이해진 가신들의 기강을 바로 잡겠다는 명목으로 뭔 짓을 당할지 몰랐다.
“그러면 여기 계신 가신들을 존중하고 좋을 것 같아요.”
세베루스는 그녀가 원하는 것을 알아챘다.
그녀는 하찮은 것들에게도 쓰임을 찾아주는 지혜로운 여인이었다.
이 상황을 빌미로 그녀는 자기 사람과 공작의 사람을 나누려고 했다.
적은 죽이면 되고 자신의 편인 하찮은 이는 버림 패로 쓰면 그뿐이었다.
공작을 선택한 사람은 공작의 사람이자 그녀의 적.
그녀는 적에게는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그가 짧게라도 본 그녀는 잔인하고 결단력이 있었다.
설령 공작이 페루제 공작부인을 선택한 가신들에게 수를 쓴다고 해도 그녀에게 중요치 않았다.
어차피 버림 패로 쓰려고 했다.
없어도 아무런 영향이 없는 것이다.
“어찌 저들에게 그런 선택을 하라고 하십니까?”
이 전개는 위험했다.
이렇게 선택을 하게 되면 순식간에 파벌이 형성되게 된다.
“난처해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녀를 선택한 무리가 공작에게 충성할 것이라 믿기는 어려웠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그녀를 따르는 세력이 되는 것이다.
“무엇이 난처하단 말인가?”
실리와 세베루스 간의 싸움을 중재하고 남편을 위해 자신의 권위를 허물 줄 아는 부인으로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