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화 살릴 자와 버릴 자를 분류하기
그녀가 누구인지 알고 가신들은 네 부류로 나뉘어졌다.
“마녀 의혹자가 문제가 아니오! 다시는 공작부인의 심기를 거스르지 마시오.”
첫 번째는 타국과의 교류가 활발하여 그녀의 정체를 미리 추측할 수 있었던 무리였다.
“미리 사죄의 내용을 담은 서찰과 금화를 내놓아서 그나마 안심이지. 당신은 다시 가서 그분께 직접 사과를 하시오!”
“알, 알겠어요.”
그녀가 쓰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었다.
그녀의 정체를 눈치 채고 재빠르게 움직였던 사람들.
“항의하지 않고 추후를 지켜보기를 다행이지. 만약 항의 서찰을 보냈어 봐. 그거 무마하느라 고생할 거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군.”
두 번째는 아내와 자식이 겪은 고초에 분노는 했지만 참은 무리였다.
추기경이 고개를 숙이는 인물이다.
그만큼 막강한 세력이 뒤에 있었다.
가문을 위해서라도 감정대로 할 수 없었던 그들은 그녀의 정체에 대해 조사를 명하고 그 결과를 기다렸다.
“얼른 가서 공작부인에게 다시 사죄하시오. 다른 가문들처럼 발 빠르게 움직여야지. 그녀에 대해 알았는데도 침묵한다면 적의를 가졌다고 오해할 수 있으니까.”
그녀는 이들이 쓰임은 없으나 가만히 놔둬도 되겠다고 판단했다.
거슬리면 그때에 쓸어버리면 되니까.
“망했다! 이게 뭐란 말인가! 하찮은 여인이 힘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냐고 생각을 하고 항의를 했는데!”
세 번째는 페루제 공작부인을 여인이라도 무시하며 자신의 자식에게 가했던 가혹 행위와 아내를 마녀 의혹자 명단에 넣은 것에 대해 항의서를 보낸 귀족들이었다.
그녀가 친히 몰락의 길을 걷도록 안내할까 하는 후보들이었다.
“아이랑 당장 달려가서 무릎이라고 꿇고 치마를 잡아서라도 그분의 분노를 돌려놓으시오. 아니지. 나랑 같이 갑시다!”
그들은 자신과 가문을 살리기 위해 얼른 그녀에게 달려가야 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소문이 과장된 것이라고 여기는 부류였다.
그들은 그녀를 과소평가했다.
“설마 그렇게까지 했겠는가? 소문이라는 것이 본디 과장이 섞이는 법이네.”
“그렇지. 아무렴 설마 부부 사이에 그렇게 화살로 남편을 쏴 죽이려고 했겠는가? 여인이 그 정도의 군사력을 동원할 수 있는 것은 말이 되고? 다 과장이야. 과장!”
“추기경하고도 친분이 있다고 들었네.”
“그냥 친분이 있는 정도지. 허리까지 숙이며 윗사람 대접을 했는가 말이야. 추기경이 어떤 자리인데!”
“다 과장일세! 집안 남자들이 다한 것을 여인이 했다고 포장이 된 거야.”
어디에나 바보는 존재하는 법이다.
이들은 자기분수 모르고 나대다가 페루제 루비로즈에게 쓸려나갈 족속들이었다.
벨로나 공작 가문의 가신들을 기겁하게 만든 당사자는 정작 여유롭게 차를 마셨다.
전날에 공작과 서로 죽이기 직전까지 간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차를 마시면서 업무를 보는 여유는 언제나 마음을 평온하게 한다.
그녀는 안주인으로의 업무 서류를 보면서 말했다.
“그이가 생각보다 일찍 돌아와서 난감했어.”
누가 봐도 난감해하지 않는 얼굴이었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그 모습을 봤다면 비아냥거리고 있다고 확신했을 것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땀이 나는구나.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서로를 존중하는 과정은 필요하니까.”
마치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시키는 말들이었다.
부부가 된다는 것은 서로 다른 가문에서, 다른 환경에서, 다른 성향으로 살던 두 사람이 가족이 된다는 것이다.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맞추기 위해 마찰은 생길 수 있었다.
“만족스러운 화해를 했으니 다행이지.”
만족스러운 화해가 아니라 승리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했다.
하여튼 부부싸움을 했지만 만족스러웠다.
적어도 이제는 첫 만남처럼 자신을 무시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었다.
싸움 한번으로 자신을 존중하게 된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래도 대화의 결과가 좋았으니 되었겠지.”
그녀의 생각과 별개로 부부가 서로를 맞춰 가는 과정이 칼과 화살로 대치하면서 서로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라는 말은 듣지 못했다.
“어제는 운이 좋았습니다. 부인의 깊은 뜻은 이해하오나 부인을 따르는 많은 수족을 생각해주십시오.”
만약 소드마스터 로빈이 때를 맞춰서 오지 않았다면 죽었을 수도 있고 설령 죽지는 않았을지라도 페루제 공작부인은 크게 다쳤을 것이다.
실리도 그녀가 가진 ‘신성한 방어구’에 관해 알았으나 걱정이 되었다.
“그런 쓸모없는 걱정을 한단 말이냐. 너도 나에게 무엇이 있는지 알지 않느냐?”
“그럼에도 드는 불안은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예전에는 많은 사람을 광기에 젖게 만들었던 저주받은 성물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정화가 되었다고 해도 실리는 불안했다.
“부인의 입에, 손에, 눈에 많은 생명이 걸려 있습니다.”
“그들의 삶이 신경은 쓰여도 어쩌겠니?”
게다가 그때의 발렌티노 공작의 살기는 진심이었으니까.
그녀는 잠시 그때를 떠올려보듯이 잠시 침묵을 하다가 말했다.
“그것이 신의 뜻이라면 따라야지.”
에클레시아의 신실한 신자다운 말이었다.
그런데 웃기는 사실이 있다.
페루제 공작부인은 신이 만든 운명보다 자신이 현재의 자신을 바꾸겠다는 의지를 더 믿는 사람이었다.
만약 그녀가 신만 부르짖는 여인이었다면 절대로 지금 이 자리에 설 수 없었을 것이다.
“신께서 안배를 해 주신 길이 있을 것이니까…….”
자신이 승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음에도 패배를 한다면 그것은 진짜 신의 뜻인 것이다.
그렇기에 온 힘을 다했음에도 패배를 했다면 순순히 인정하고 그 결과에 순응한다.
자신은 그런 사람이다.
그들이 업무를 하면서 여유를 누리고 있는데 시녀가 왔다.
“부인, 가신 가문의 귀족들이 만나기를 청하고 있사옵니다.”
“나를?”
그녀가 서류를 놓고는 집게손가락으로 책상을 치면서 눈을 감았다.
업무를 우선시 할 것인가 아니면 불청객들을 맞이할 것인가의 문제인데 고민이 되었다.
생각을 잠시 하고는 눈을 떴다.
“돌려보내라. 어차피 그이의 귀환 축하 연회에 초대할 것이니까. 그때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그녀의 명을 들은 시녀가 얼른 허락받지 않은 손님들에게 말을 전하려고 몸을 돌렸다.
그때, 페루제가 빠르게 손을 들며 말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한번 정도는 만나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잠깐, 그들은 어디에 있지?”
갑작스러운 변덕이었다.
그 물음에 시녀는 다시 다소곳하게 공작부인에게 몸을 되돌리고는 대답했다.
“저희가 준비한 대기실에 계십니다.”
대기실이란 기다리는 사람이 대기하는 방이다.
허락도 없이 이곳을 방문할 불청객들을 위해 공작부인이 친히 마련하라고 명한 방이었다.
“어느 가문인지, 그 가문의 누가 왔는지 상세하게 말해 보아라.”
“알겠습니다.”
페루제 공작부인이 뭔가를 하기를 마음먹었는지 눈이 반짝였다.
시녀는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녀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많은 가문에 대해서 말했다.
그 어떤 말의 버벅거림도 없었다.
답을 들은 페루제는 명했다.
시녀가 말한 내용과 시간에 비하면 짧은 명령이었다.
“내가 부를 때까지 기다리라고 해라.”
명령을 내리고 시녀가 집무실을 나가자 그녀가 실리에게 말했다.
“그렇겠지. 자기 목숨이 여기에 달려 있다는 자들은 간절할 거야.”
마녀 의혹자 명단에 부인이 들어가게 된 가문들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불안에 떨었다.
“나를 두려워해야 할 상황임을 인지하는 자들이지. 적어도 자기 수준도 모르고 날뛰지는 않겠어.”
실리는 공작부인이 하고 싶어 하는 말이 무엇인지 바로 눈치챘다.
“공작부인께 감히 항의했던 가문 중에 가치가 있는 자들이 있군요.”
“그래. 연회에 초대하는 것만으로는 놓쳤을지도 모르지.”
그들은 상황 파악조차 못하고 그녀에게 항의할 정도로 아둔하지만, 강자에게 복종하며 살아남을 줄 알았다.
무능함에도 강자의 아래에서 기어 다니며 빌붙고 싶어서 무언가를 하겠다는 의욕까지 가졌다.
“역시 신께서 지닌 깊은 뜻을 따르기에 나는 아직 부족하구나.”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그에 합당한 선물까지 싸왔다는 것이었고 그것은 그녀에게 잘 보이겠다는 의중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니면 살아남으려고 비위를 맞추는 것일 수 있었다.
살기 위해서는 야욕을 위해서든, 그녀에게는 만족스러운 가주들이었다.
“이토록 쓰기 좋은 가문들이 많다니 역시 신께서는 자비로우신 분이야.”
큰일을 같이 도모할 가치는 없으나 약자의 본분을 다할 줄 알았다.
자신들이 나서기에는 하찮은 일을 처리할 때에 딱 맞았다.
무엇보다도…….
“버리기도 적당하지요.”
버림 패로 딱 맞았다.
강자에게 빌붙으려는 자들은 자신에게 가치가 없기 때문에 그리하는 것이었다.
그런 자들은 결국 버려질 때 저항도 못 하고 쓸려나간다.
“일단 그들은 살려 두는 것으로 하고 나머지는 연회 때에 어찌하느냐에 따라 결정하지.”
“훌륭한 결정이십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마지막 시험을 해보지.”
그녀는 말을 마치고는 다시 업무를 이어 갔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났다.
항의하지 않았던 가문의 사람들은 돌아가도록 했다.
공작부인이 곧 날을 잡아 부를 것이라는 말에 거짓이 아닐까 하고 불안해 떨기도 했으나 곧 안심하게 되었다.
“제가 언급한 가문들을 제외하고는 여기에 계시지요.”
그녀에게 항의했던 사람들은 대기실에 있어야 했다.
기다리지 말라는 말을 들은 귀족들은 그녀가 뭔가를 하려고 한다는 것을 눈치채고 그들을 동정의 눈길로 바라보며 방을 나섰다.
남은 사람들은 점심시간이 다가올 때까지도 그들을 방치한 공작부인에게 화가 났다.
무례했으니까.
일반적인 부인이었다면 공작부인이라고 해도 따졌다.
아쉽게도 그녀는 보통 여인이 아니었다.
마음먹고 군을 움직이면 30만 대군을 끌고 그들의 영지를 황폐화할 수 있었다.
“아무리 부인이 잘못했다고 해도 이건 아니지요.”
“맞아요.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래도 가문의 주인이기도 한 가주들의 자존심을 이렇게 무참하게 밟는 일은 옳지 않았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말이다.
가신 가문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충정도 흔들리는 것이고 이는 벨로나 공작 가문에 좋은 일이 아니었다.
가주들이 자신의 부인을 째려보자 그녀들은 고개를 바닥으로 숙였다.
그녀들이 공작부인을 자극하지만 않았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까.
물론 그런 분위기를 주도한 칸나 백작부인과 이를 방치한 공작과 가주들이 원흉이었지만 그것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공작은 힘이 있었고 칸나 백작부인은 그런 공작의 총애를 얻고 있었으니까.
부인들 입장에서는 억울한 면이었다.
* * *
“뭐? 가신들이?”
그 소식은 공작에게까지 전달되었다.
아무리 내정을 움켜쥐고 있어도, 감추려고 해도 사람의 입과 눈을 완전히 막기란 어려운 모양이었다.
“하! 막 나가는군.”
공작은 황당함과 분노를 느꼈다.
말이 기다리라는 것이지 이것은 어린아이에게 벌을 내리는 것과 같았다.
가신에게 벌을 내릴 권리는 내정과 관련된 것이 아닌 이상에는 공작에게 있었다.
부인들의 일로 가주를 벌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세베루스, 그대가 직접 가서 그들을 이곳으로 불러오게.”
가장 짜증이 나는 것은 가신들의 행동이었다.
엄연히 그들의 주군은 자신이었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자신에게 먼저 어찌할지에 관해 물어보는 것이 순서였다.
그런데 자신에게 그녀의 눈치를 보며 달려가는 꼴이라니!
그녀를 자신보다 위라도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올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날의 일로 그만큼 가신들이 동요하고 있음이다.
그는 그것을 바로 잡을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다.
하지만 이 필요성이 문제를 일으킬 줄은 아무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