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굴복하거나, 죽거나-44화 (44/221)

044화 페루제가 아끼는 동생

페루제의 집무실에서 나온 로빈은 아내와 부부침실에 도착했다.

그는 그녀 옆에 누우며 말했다.

“당신은 참 대단한 여자야.”

“응? 내가? 왜?”

“주군은 무서운 분인데 당신은 전혀 무서워하지 않거든.”

아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해했다.

도대체 무엇이 대단한지 모를 일이었다.

“언니인데 무서워하는 것이 웃기지 않아?”

“다른 사람이 그분에게 당신처럼 굴었다면 다음날 사교계에서 다시 볼 수 없었을 거야.”

“그거야. 남이니까 그렇지. 나는 동생이잖아.”

참으로 이상했다.

자신의 장인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루비로즈 백작에게는 사생아들이 좀 있었다.

그들 대부분이 죽임을 당하고 일부는 살아남았으나 그 삶이 편하지 않았다.

언제 죽임을 당할지 모르는 감시 속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며 살아갔다.

“우리 엄마랑 큰어머니랑 친했거든. 당신도 알다시피 큰어머니는 돌아가신 백작 부인이야.”

“알지. 당신이 그 이야기를 할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남편의 정부 출신인 여인과 본부인이 사이가 좋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남편이 죽은 후에 그런 경우가 있다고 들었지만 루비로즈 백작은 지금도 정정하게 살아 있었다.

“나를 임신했을 당시에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흥미가 떨어져서 버렸거든. 우리 엄마가 당당하게 백작저로 쳐들어가서 먹고 살 수 있도록 잡일이라도 시켜달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해. 아버지 욕이란 욕은 다하면서 말이야.”

“그 욕을 듣고 크게 웃으시며 보살펴 줬다고 했지?”

“맞아. 그래서 두 분이 자매처럼 지내셨다고 들었어. 비록 우리 엄마가 백작 부인보다 먼저 돌아가셨지만 말이야. 하여튼 그래서 나랑 언니도 친자매처럼 지냈어.”

다른 사생아들과 아델은 달랐다.

그녀의 어머니는 당당하게 백작성 앞에서 난리를 피워댔다고 한다.

자신을 책임지라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고 들었다.

남편 욕을 차지게 하던 것이 마음에 들어서인지는 몰라도 ‘돌아가신 백작 부인’께서는 아델을 여느 귀족 가문의 영애처럼 길렀다고 한다.

아내는 호위호식하며 주군의 보호를 받으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대가 나와 카엘족에게는 행운이었어.”

“또 그 소리야? 빈말이라도 기분이 좋네.”

아델의 웃음에 로빈도 따라서 웃었다.

로빈의 말은 사실이었다.

아델이 아니었다면 페루제는 카엘족을 위해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귀족처럼 살던 당신이 나를 따라서 백작 가문을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어.”

“뭐, 귀족처럼 살고 있었어도 나는 평민이잖아. 내가 부탁하면 언니가 좋은 혼처를 구해다가 주겠지만 그래도 내 남편은 내가 선택하고 싶었어.”

페루제는 자신의 이복동생에게 상재가 있음을 눈치챘다.

그녀는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선에서’ 아델의 상인으로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당신이 상단 호위를 온 날에 첫눈에 반했잖아. 내 계속된 구애를 자꾸 거부해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알아?”

“미안. 그 당시에는 그게 당신을 위한 것인 줄 알았어.”

그가 아델의 뺨에 입을 맞추며 다정하게 말했다.

카엘족의 혼혈은 카엘족으로 취급이 되었다.

‘최초의 살인자’의 후예.

고통받기 위해 태어나는 죄인의 후손들이었다.

그러니 사랑하기에 거부해야 했다.

그녀와 사랑을 한다는 것은 그녀를 카엘족의 지옥 같은 삶에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 느껴지는데 왜 자꾸 거부하는 건가요?”

“사실, 나는 카엘족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고 로빈은 자신이 숨겨 온 진실을 말해야 했다.

“정말 화가 났다니까. 당신이 카엘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랑을 포기할 정도로 나를 가벼운 인물로 생각했었다니 말이야.”

“당신 같은 여인은 정말 전설 속에나 있을 정도로 없으니까.”

그들은 입을 잠시 가볍게 맞추고는 이야기를 나눴다.

“언니에게 편지 하나 남기고 가출을 했는데 설마 언니가 잡지도 않을 줄은 몰랐어.”

“그래도 그림자 기사단을 보내서 지켜줬잖아.”

“나는 몰랐잖아. 나중에 말해 줘서 알았지. 그 당시에 얼마나 불안해하고 나를 잡지도 않는 언니에게 얼마나 섭섭했는지 알아?”

“당신이 주군에게 섭섭해서 밤새 울었던 기억이 생생하네.”

로빈도 당시를 회상했다.

그들은 어느 숲속에서 숨었다.

그곳에서 오순도순 살았다.

자신은 용병 일을 하고 그녀는 숲속에서 팔만한 약재들을 찾아다녔다.

그들은 행복했다.

로빈이 자신만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지 죄책감을 가질 정도였다.

세상에 고통받는 카엘족은 많았으니까.

“당신은 참 독특해?”

“응? 뭐가?”

아델은 이상한 여인이었다.

자신의 과거를 알아도 놀라지 않고 자신을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같이 야반도주하여 결혼까지 하지 않았던가.

생각해 보면 주군은 고생하다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여긴 듯했다.

귀족 영애처럼 살았던 여인이 평민의 삶을 선택했고 다부지게 적응했다.

주저하지 않고 카엘족의 아내가 되겠다는 했다.

참으로 신기했다.

“내가 카엘족이라고 하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평온했잖아.”

“그거? 음. 그건 언니의 가르침 때문일 거야.”

“언니? 페루제 영애?”

“응. 루비로즈 가문에도 카엘족 노예들이 있었거든. 언니는 그들에게 재능 있다고 여겨지면 투자를 아끼지 않았거든. 무술 선생도 불렀다니까. 그들이 살만한 거주지도 작지만 주고 말이야.”

“뭐?”

페루제 루비로즈 영애가 카엘족들에게도 기회를 준다는 소문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카엘족 하나들인 것을 가지고 와전이 된 것이라고 여겼다.

세상은 카엘족들에게 냉혹했고 잔인했으니까.

“언니는 인재라면 반드시 영입해야 하고 본인의 죄가 아닌 죄로 인재를 외면해서는 아니 된다고 했어.”

“정말 좋은 말을 하셨네.”

그것이 진실이었다면 이것은 기회일 수 있었다.

아내가 깊게 잠이 든 것을 확인했다.

로빈은 어딘가로 나갔다.

한참을 숲속에서 걷다가 멈췄다.

“아델을 지키기 위해서 온 사람들인 것을 압니다.”

“…….”

“소문에는 거둬 준 은혜를 버리고 용병과 야반도주한 사생아에게 화가 났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정말 화가 났다면 아델을 지키기 위해 사람을 보내지 않았겠죠.”

처음에는 아델의 야반도주에 화가 난 가문에서 그녀를 처리하기 위해 보낸 사람들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들은 지켜보기만 할뿐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뿐이랴?

집 근처에 다가온 몬스터를 처리한 흔적이 아주 미세하게 남아있었다.

아주 작게 핏자국이 풀잎에 있었다.

그가 말을 하고 기다리자 곧 복면의 사내 하나가 나타났다.

“무슨 일이지?”

“당신의 주인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것은 우리 권한 밖의 일이며 그분은 너 따위 용병이 만나고 싶다고 해서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니다.”

그는 단호했다.

자기 할 말을 마치고 돌아가려고 하는데 로빈이 급하게 말했다.

“아델에 관한 문제입니다!”

“문제?”

그가 발걸음을 멈추고 로빈을 바라봤다.

자신들이 보기에는 두 사람 사이에 문제는 없었다.

아델 당사자도 개인적인 문제는 없어 보였다.

개수작일 듯싶지만 만의 하나라도 자신들이 확인하지 못한 문제가 있다면 일이 커질 수 있다.

“어떤 문제지?”

“그것은 만나서 말하겠습니다.”

“헛소리하지 말아라.”

개수작이 맞았다.

아델은 건강했고 부부간의 사이도 좋았고 평민의 삶에 누구보다 잘 적응했다.

지금 누구도 그녀가 귀족처럼 살았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러나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자신의 이 선택이 자신과 카엘족 전체의 운명을 바꿀 수 있으리라.

“나중에 내가 말하지 않아서 아델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그대의 주인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군요.”

“좋다. 한번 그분에서 서신을 보내 보지.”

로빈의 말이 개수작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데도 서신을 보내려는 것은 그 개수작에 험한 꼴을 당해보라는 심정이 반이었다.

나머지는 진짜로 그분의 동생에게 큰일이 있을 미약한 가능성에 대한 걱정이 반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답이 왔다.

“그래. 아델에게 일이 있다고? 어떤 일이지?”

“그녀는 건강하게 잘 있습니다. 저와 사이도 좋고요.”

로빈의 말에 페루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눈을 찌푸렸다.

“그러면 어찌하여 나를 만나자고 했지?”

“인재를 모으시는데 편견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편견이 없다고? 나는 자질이 있으면 내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야.”

“아가씨께서 문관 쪽 인재는 수월하게 모으신 것을 압니다. 그러나 무관 쪽은요?”

그녀가 잠시 침묵했다.

문관 쪽은 적극적인 채용시험을 통한 신입 채용과 관련 업무의 경력자채용을 통해서 쉽게 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무관 쪽은 달랐다.

‘전쟁에서 싸울만한 인재’를 모으기란 쉽지 않았다.

전쟁에 관련 훈련을 견딜 수 있는 자, 전장에 앞장서서 싸울 자, 목숨을 바쳐서라도 위로 올라가고 싶은 자… 찾을 수는 있다.

문제는 그들이 루비로즈 가문에 완전히 충성하느냐의 문제다.

큰일을 해야 하는데 기본적인 신뢰조차 없는 이들에게 칼을 맡길 수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지?”

“카엘족을 크게 써주십시오.”

“나는 지금도 카엘족을 쓰고 있다.”

“노예들이지 않습니까? 자유민인 카엘족을 적극적으로 영입해주십시오. 그들은 영애를 위한 검이 될 것입니다. 카엘족은 은인을 외면하거나 배신하는 일족이 아닙니다.”

루비로즈 백작가문의 카엘족 노예들만 영입하는 것은 한정적이다.

알아본 바로는 루비로즈 가문에서는 더는 카엘족 노예를 구매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더는 카엘족 인재를 쓰지 않겠다는 의중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내가 왜?”

“제가 카엘족의 혼혈이며 아델은 제 아내니까요. 지금은 잘 감추고 있지만 노력해도 세상일은 제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나중에 어찌될지 모릅니다. 영애께서는 당신의 동생이 카엘족의 아내라는 이유로 고통 받기를 원하십니까? 당신이 아끼는 동생이 말입니다.”

그녀는 한참을 아무 말도 없이 로빈을 바라봤다.

무심하게 보였고 차갑게 느껴졌다.

그녀가 한숨을 쉬었다.

“나는 인재만 받아들인다. 도둑놈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야. 그러니 최대한 빠른 날에 ‘아델의 남편’으로 와라. 정식으로 말이야. 그러면 능력을 시험하고 확인해 보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페루제 루비로즈는 세간에서 알려진 것보다 훨씬 아델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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