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9화 오직 한 여인만이 가능한 일
오랜 세월 동안 칸나 백작부인이 이끌던 내정을 단기간에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는 것만 봐도 그녀는 경계해야 할 대상이었다.
“각하, 이것은 정말 위험한 상황입니다. 저희의 생각을 훨씬 상회하는 위험한 여인이고 가문에 위협이 될 만한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그녀의 배경이 공작의 고모라는 타이틀이 있는 칸나 백작부인조차 고개를 숙이게 할 만큼 엄청날 가능성이 컸다.
“그대에게 이제야 말한 것이 후회가 되는군. 별일 아닐 것이라고 내가 괜한 걱정을 한다고 넘어갈 일이 아니었는데 말이야.”
미리 자신이 이런 의혹을 가지고 있음을 세베루스에게 말하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를 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지금보다 움직이기 수월했을 것이다.
귀환 준비도 전혀 하지 않은 상태인데다가 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바로 영지로 갈 수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저라도 각하처럼 판단하고 행동했을 것입니다.”
공작은 판단이 서자 바로 정보원을 보냈다.
자신의 예상이 착각이기를 바라며 말이다.
슬프게도 그것은 진실이었다.
* * *
페루제 공작부인도 집사가 그녀에 대해 공작에게 서찰을 보내고 있음을 알았다.
집사가 스스로 진실을 토설했다.
그녀가 수도에 있어서 자주 보지 못하는 공작보다 무서웠으니까.
그리고 집사는 그녀가 허락하지 않는 내용을 제외하고는 공작에게 보고할 수 있다는 허락을 받았다.
차라리 그녀가 모든 내용을 검수했다면 이리 쉽게 공작이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니 실책이라면 실책이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공작 각하! 보고 드리옵니다.”
드디어 기다리던 정보가 도착했다.
그런데 그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느껴진데다가 의외의 인물이 집무실로 들어왔다.
가문의 정보부 수장이 직접 공작을 만나러 온 것이다.
그의 겉모습은 지나다니면 비슷한 얼굴이 열 명은 있을 거 같이 평범했으며 평소에는 소심한 성격에 존재감도 없어 보였다.
정보를 얻기 위한 위장이었지만 소심함을 지우고 나타난 그는 매서운 분위기였다.
벨로나 공작 가문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더러운 짓도 할 수 있는 냉혈한이었다.
웬만한 일에는 끄떡없는 그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만큼 화급을 다투고 중요하다는 뜻일 것이다.
“어찌 그대가 왔는가?”
그는 굳어진 얼굴로 말했다.
세베루스도 긴장했다.
상황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나쁠 수 있음을 직감한 것이다.
“너무도 중요하고 위험한 정보이기에 제가 직접 움직였습니다.”
“그 여인이 어떤 사람이길래 그대가 이리 나서서 말한단 말인가?”
아내에 대해 조사를 내렸을 뿐인데 반응은 가히 반역이 일어난 것처럼 컸다.
정보부 수장이 크게 한숨을 들이키고는 말했다.
“지금 당장 혼인을 무효로 하거나 이혼을 하셔야 합니다.”
정보부 수장은 다짜고짜 이혼과 혼인 무효화를 주장했다.
상황의 심각성을 대변해주는 것이다.
발렌티노 공작은 침묵했고 세베루스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도대체 얼마나 위험한 여인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무엇을 알아낸 것이길래 그리 말하는 것이냐?”
그는 정보부 수장에게 잔잔한 목소리로 물었다.
마음속은 혼란스러웠으나 결코 겉으로 내비치지 않았다.
한 가문의 수장으로 그는 나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정보부 수장은 급한 마음에 자신이 아무 설명도 하지 않고 바로 의견을 말했음을 깨달았다.
그만큼 새로운 공작부인을 가문과 떼어 놔야 한다는 마음이 컸다.
“그녀가 작위를 산 것과 그 가문의 빚에 대한 권리를 가진 것을 숨긴 것에 대해 알려드린 후 정보원들은 헬리오 왕국로 갔습니다.”
“그래. 그녀가 헬리오 왕국의 귀족이 되려고 작위를 샀으니까.”
헬리오 왕국 출신의 공작부인에 대해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 정보원들이 급파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보부 수장이 직접 나서지 않았다.
최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수준급의 정보원들이 갔으니 충분할 것이라 여겼다.
겨우 공작부인에 대해 알아보고자 최상급의 정보원들을 보내는 것은 인력 낭비였다.
당시에는 그리 판단했다.
“다각도로 그녀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이거 보십시오.”
그는 어떤 서류들을 공작에게 줬다.
그는 그것들을 읽어 보고는 세베루스에게 넘겼다.
공작은 무표정했으나 세베루스의 눈이 크게 떠졌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 것입니까?”
그는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내용에 경악했다.
“최상급 정보원들은 아니더라도 벨로나 공작 가문의 정보원들이다. 그런데 각자 그녀의 정체를 다르게 알아 왔다…….”
벨로나 공작 가문의 정보부는 일개 하급 정보원도 실력이 출중했다.
정보부 내부에서나 하급으로 분류가 되지만 다른 귀족 가문 혹은 뒷골목 조직에 가면 상급으로 분류될 인재였다.
그런 인재들이 알아본 조사 결과가 달랐다.
그녀는 거상의 딸로, 대지주의 딸로, 백작의 딸로, 기사의 딸로 둔갑이 되어 있었다.
“조사를 명령할 것을 대비하여 자기 정체를 이렇게 복잡하게 꼬아 놓기까지 하다니 대단해.”
물론, 이 정보를 알아내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그 결과에 도달하기까지 그녀의 사람들이 뿌린 거짓 정보들이 너무 많았다.
공작 가문의 정보부가 너무 뛰어났기에 알아낼 수 있었던 정보들이 그들에게 혼란을 야기했다.
이 따로따로 노는 결과에 정보원들은 어떤 정보가 사실인지 알아봤다.
충격적이게도 그 어떤 것도 진실이 아니었다.
서류상으로, 법적으로 실존했던 인물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다.
거상도, 대지주도, 백작 가문도, 기사 가문도 실제로 존재는 했으나 실체가 없었다.
“이렇게까지 정체를 숨기려고 노력을 할 줄은 몰랐어. 그것도 남편을 상대로 말이지.”
이것은 자신들의 권한을 넘은 일이라고 생각한 그들은 정보부 수장에게 바로 보고를 올렸다.
최고의 정보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상급이었던 자신들이 정보를 찾지 못했다는 것.
그것이 뜻하는 바는 하나였다.
상대가 자신들보다 정보전에서 뛰어나다는 것.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가 없군. 내 아내에게 뛰어난 수족들이 많은 모양이야.”
정보전은 인재부터 관리까지 수많은 비용이 드는 일이었다.
그런 정보전을 공작 가문을 상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상대가 공작 가문 혹은 그 이상 되는 역량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그런 가문들만 추리면 얼추 후보가 나왔다.
“계속 말해 봐.”
“네.”
세베루스는 결혼식 다음 날 영지로 떠나던 공작부인을 떠올렸다.
첫날밤 무리한 몸으로 떠나는 것을 걱정하여 쉬고 나서 떠나라고 말했었을 때를 떠올렸다.
그녀가 세베루스에게 보였던 광기 어린 눈빛은 착각이 아닐지 몰랐다.
보좌관으로의 일을 하라며 선을 넘으면 그건 조언이 아니라고 했던 말은 그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 일의 심각성을 깨닫고 저는 최상급 정보원들과 헬리오 왕국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그녀가 라스타 왕국 출신임을 알아냈습니다.”
“라스타 왕국이라고요?!”
세베루스는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에 두통이 느껴졌다.
공작부인은 알펜 왕국의 가난한 가문의 영애가 아니며 공작 가문과 비견될 만한 정보부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사실은 헬리오 왕국 출신이 아닌 라스타 왕국 출신이었다.
차라리 카플란 왕국 출신이었다면 이렇게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하필 그 혼인에 맞춰서 알펜 왕국과 라스타 왕국과 끊어졌던 외교를 다시 시작했다.
너무 시기가 적절하지 않은가.
“공작부인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서는 라스타 왕국으로 향해야 함이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라스타 왕국으로 잠입하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래. 어차피 가 봤자 당할 테니까.”
공작은 그의 결정이 옳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아내가 자신들이 생각하는 인물이 맞다면 라스타 왕국에 가는 짓은 드래곤의 아가리에 직접 들어가는 것과 같았다.
“이미 우리를 주시 중인 상황이다. 우리 측 사람이 정보 수집을 위해 라스타 왕국으로 입국하면 알아차릴 것이 뻔해.”
“맞습니다. 게다가 헬리오 왕실 쪽으로 판단되는 무리가 저희를 쫓았습니다.”
서류상으로, 법적으로 완벽하다는 것은 헬리오 왕국에서 공식적으로 그 존재를 인정했다는 것이다.
상단도, 대지주도 대충 거짓으로 서류를 만들어 제출하면 법적 인정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귀족 가문과 기사 가문은 달랐다.
그 존재와 역사, 혈통이 명확해야만 법적으로 왕실의 인장을 받아야만 인정받을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이 정보 교란은 헬리오 왕실과 연계가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것이 가능할 여인은 오직 하나지.”
라스타 왕국과 알펜 왕국의 교류를 추진할 수 있는 여인.
공작 가문의 정보부와 비등한 조직을 운영하는 여인.
그런 정보 조직을 키울 자금력과 능력을 가진 여인.
헬리오 왕실과 연계하여 정체를 숨길 수 있는 여인.
남편의 외면에도 상처받지 않고 영지로 가 버리는 여인.
모두 한사람만이 가능했다.
“예. 페루제 루비 로즈.”
아무리 교류가 전혀 없었다고 해도 바로 붙어 있는 나라다.
나라 간의 상황은 유기적이라서 라스타 왕국이라고 해도 그에 대한 정보는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페루제 루비 로즈는 유명해도 너무 유명했다.
그 악명은 동쪽의 제국에도 퍼져 있었다.
“라스타 왕국 북부에서 요양 중이라고 들었는데 여기에서 나와 혼인을 했을 줄이야.”
루비 로즈 가문이 라스타 왕국의 정보를 손에 쥐고 있다는 소리가 각 나라, 각 가문의 정보부에는 농담처럼 퍼져 있었다.
이것은 그 말이 농담이 아니라 사실임을 입증해 준 것이었다.
그 어떤 왕국, 가문의 정보부도 그녀가 벨로나 공작 가문에 있다는 것을 알아내지 못했으니까.
세베루스는 기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악명 높은 여인이 벨로나 공작 가문에 있다고요?! 아닐 것입니다!”
그는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었다.
헬리오 왕국과 카플란 왕국에서 흘러오는 이야기만 들어봐도 그런 여인이 알펜 왕국에 없어서 다행이라고 농담조로 말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다행히 그는 진정하고는 질문했다.
“공작부인에 대한 정보는 알아내신 것이지요? 굳이 거기 가지 않더라도요.”
“헬리오 왕국에도 정보통들이 있으니까 기본적인 건 알아봤습니다. 나중에 직접 가서 알아봐야겠지만 말입니다.”
공작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누구라도 한숨을 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내가 자기 나라도, 가문도 숨기고 혼인을 해 왔으니까.
그것도 없는 것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감추면서까지 말이다.
그 의도가 좋지 못했다.
“말해 보게.”
“루비 로즈 가문이 라스타 왕국 남부를 지배하고 있음은 알고 계실 겁니다.”
발렌티노 공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루비 로즈 가문은 명실상부 라스타 왕국 남부의 절대적 지배자였다.
왕실조차도 어찌할 수 없을 힘을 보유했다.
“백성들 사이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 권세가 막강합니다.”
‘그 누구에게도’에는 왕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것에 항의하는 자들조차 없음이다.
“백성들이 과장하여 만든 말이 아닌가? 같이 혁명을 도모했던 신생귀족들과 적대하는 관계는 어떻지? 그들을 건드려 보는 것은?”
라스타 왕국의 봉기를 혁명으로 성공시킨 것은 페루제 루비로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봉기를 처음 시작했던 무리와 우호적이라는 뜻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