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8화 남편이 영지로 돌아오고 있다
실리는 당혹감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으나 목소리에 떨림이 있었다.
“너무 이르군요. 분명 정보를 교란하도록 조치를 하지 않았습니까?”
“공작 가문의 정보원들이다. 능력이 있겠지. 그건 그렇고 그이가 예상 밖이었어.”
아직 수도에서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을 시기였다.
그렇다는 것은 공작이 개인적으로 정보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는 것인데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틈을 주지 않았다고 여겼는데 어디서 눈치를 챈 거지? 특별한 것은 없었는데 알 수가 없어.”
처음 만남부터 수도를 떠나기 전까지 자신에게 관심도 없던 공작이다.
아직은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맞았다.
어찌하여 자신에 대한 조사를 명령했을지 궁금했다.
분명히 그 계기가 있었을 것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공작이 영지로 귀환 중임을 보고했던 하인이 송구하다는 듯이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아직 거기까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알아내자마자 바로 보고 올리겠습니다.”
자신은 바보가 아니었다.
나중에 공작이 자신에 관해 조사를 하려고 할 때를 대비하여 미리 공작을 펼치기는 했다.
상대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 그 정체에 대해 궁금해지는 것은 당연했으니까.
“아니. 궁금하기는 하지만 조사는 멈춰. 지금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이만 나가 봐.”
겨우 자신의 궁금함에 인력을 낭비할 때가 아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공작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였다.
“네, 알겠습니다.”
하인이 집무실을 나가고 페루제 공작부인이 실리에게 말했다.
“실리, 네 말처럼 너무 빠르게 대응하고 있어.”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사람이 하는 일이었다.
이 시대에는 직접 움직여야 했으니 말이다.
빠르게 조사를 한다고 해도 은밀하게 정체를 숨기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어차피 그녀가 귀족작위를 샀다는 것은 쉽게 파헤쳐질 진실이다.
그냥 정보원도 아닌 전장을 누비던 공작 가문의 정보원들이 나설 테니까.
그러면 그녀가 타국 사람이라는 것도 드러날 것이다.
그녀에 대해 제대로 알기 위해 먼저 헬리오 왕국으로 가서 조사해야 한다.
“과연 헬리오 왕국에서 한 교란을 눈치채고 내가 라스타 왕국 출신인지 알아낸 것인가?”
아니면 헬리오 왕국에서 만든 가짜 정보를 진실이라고 돌아온 것인지 페루제 공작부인은 그것을 알 수가 없었다.
“설마요. 헬리오 왕국에서만 조사하고 돌아온 것이겠지요. 그들이 예상보다 뛰어난 것은 놀랍지만 말입니다.”
거짓 정보를 믿고 돌아온 것이라면 단순하게 공작 가문의 정보원들이 실력이 있지만, 공작부인의 정보원들보다는 밑이라는 반증이었다.
“만약 라스타 왕국까지 가서 조사한 것이라면?”
“그랬다면 벌써 연통이 왔을 것입니다. 라스타 왕국의 정보는 부인의 것이 아닙니까.”
라스타 왕국의 정보부는 페루제 공작부인의 손아귀에 있었다.
가문을 넘어 왕실의 정보부를 장악했음이다.
만약 수상한 낌새가 있었다면 그녀에게 직통으로 바로 소식이 전해졌을 것이다.
그들에게 페루제 공작부인이 공을 들이고 있는 벨로나 공작 가문은 가장 우선시해야 할 정보였다.
다시 말해서 라스타 왕국에서 공작 가문의 정보원이 들어온다면 필패라는 것이다.
그들이 그곳에서 정보전으로 이길 확률은 0에 가까웠다.
“그렇지. 네 말이 맞아. 그런데도 예상이 틀어지니까 꺼림칙하구나.”
그녀는 잠시 눈을 감으며 손가락으로 의자를 두들겼다.
손가락과 의자가 부딪치는 소리는 일정했다.
생각보다 공작의 정보원들이 뛰어날 수 있다.
자신이 라스타 왕국의 페루제 루비로즈인 것을 알아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사실, 그이가 자신의 정체를 알아채고 오는 것인지, 자신이 정체를 감췄다는 사실과 자신의 정체를 추궁하기 위해 오는 것인지 그건 중요하지 않다.
이미 벌어진 일이다.
그이가 좋은 의도로 오지 않을 것임을 뻔히 알지 않는가.
대비를 해두지 않으면 낭패를 당할 것이다.
“갑자기 부인이 보고 싶어서 오는 것은 아닐 테니 대비를 하는 것이 좋겠지. ‘그’에게 밤을 새워서라도 무조건 그이보다 먼저 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데미안과 빅토르 부단장을 부르게.”
“네.”
데미안은 공작 가문의 기사단 부단장이었고 빅토르는 그녀의 죽마고우이자 그녀의 기사단 부단장이었다.
기사단을 이끄는 그들을 부른 것은 그녀가 군사적인 충돌도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자신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자신이 거의 사기에 가까운 혼인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아무리 호구라도 좋게 넘어가기 힘들었다.
당연히 군사적 충돌을 염두에 둬야했다.
“이번 기회에 부부 간의 작은 소통을 하는 것도 좋겠지. 겸사겸사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환영을 해주고 말이야.”
이것은 나름대로 남편과 자신 사이의 거리를 줄이고 그의 귀환을 환영해 주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 세상에 남편을 환영한다면서 군사적 마찰을 염두에 두는 아내는 그녀뿐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에게는 고려할 만한 사항은 아니었다.
* * *
영지로 돌아오기 전, 페루제 공작부인의 남편인 발렌티노 벨로나 공작은 수도에서 왕국을 위해 일하고 있었다.
그는 아내에 대한 의심을 품고 있는 상태였다.
칸나 백작부인과 있었던 사건은 명분이 있고 타당했기에 넘어갔지만 수상했다.
“주군, 어찌하여 영지에 계신 공작부인에 대해 조사를 명하신 것이 옵니까? 그것도 최고의 정예 정보원들에게요.”
보좌관인 세베루스는 공작이 어찌하여 그런 명을 내렸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빚 많은 가난한 집안의 영애였다.
또한 천박하게 몸이 달아올라 수도까지 달려와서 결혼식을 올렸다고 욕을 먹고 있었다.
상황만 보면 동정을 해줘야 할 여인이다.
그런 여인이 정보원까지 보낼 정도로 감출 만한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누구라도 이해하지 못할 일이었다.
귀한 인력을 괜한 곳에 쓰는 것이 아닐지 걱정이 되었다.
“그대가 오기 조금 전에 온 것이네.”
그는 보좌관에게 한 서류를 줬다.
세베루스는 그것을 차근차근 읽어 보더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작위를 산 타국의 귀족이라고요? 게다가 빚을 갚아 준 것이 아니라 그 빚에 대한 권리를 양도받았다고요?”
사람들은 그녀를 이름만 귀족인 몰락 귀족이라 여겼다.
그런 가문의 여인이 공작부인이 된다고 대우를 받지 못할 것이다.
남편인 공작조차 관심을 주지 않았으니 남들은 편히 그녀를 헐뜯었음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게다가 지참금도 못 낼 정도로 가난하고 결혼에 안달이 나서 수도까지 달려온 천박한 여인이라고 욕을 먹었다.
여인이라면 수치스러워서 잠을 자지 못할 모욕이다.
만약 그녀가 자신이 타국의 재력 가문 출신이라고 밝히기만 했어도 사람들의 태도는 180도 달랐을 것이다.
“충분히 모욕을 당하는 상황을 회피할 수 있었음에도 일부러 그랬다니요.”
그런데 그런 무시와 모욕조차 감수하면서 그녀는 정체를 숨겼다.
그것도 빚을 갚지 않고 권리를 양도받아 가면서 말이다.
그 의중이 의심스러운 것은 당연했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정체를 숨기고 접근했다고 보는 것이 맞겠습니다.”
무언가를 감추고서 상대에게 다가왔다는 것은 그만큼 불순한 의도를 지녔음이다.
뛰어난 능력을 입증한 세베루스는 불쌍하다고만 생각했었다.
설마 이런 반전이 있을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는 그들이 도저히 모를 수 없었다.
정체를 숨겨 가면서 공작부인이 되어야만 하는 뚜렷한 목적이 있음이다.
“그런데 주군께서는 어떻게 공작부인의 수상함을 느끼신 것입니까?”
그는 주군이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알아채고 조사시킨 것에 감탄했다.
이대로 넘어갔으면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을 것이다.
아쉽게도 결혼을 한 순간 이미 되돌릴 수 없음을 아직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발렌티노 공작은 대답했다.
“너무 완벽했다.”
“완벽했기 때문이라고요?”
“그래.”
공작부인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이 발목을 잡았다.
루비 로즈 백작 가문에서도 내정을 장악하고 더 나아가 가문을 가졌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녀가 완벽하게 그 일을 해냈기 때문이다.
완벽했기에 틈이 없었고 틈이 없었기에 빌미가 되어 공격당하지 않았다.
완벽함이라 약점이 없다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그 완벽함은 공작 가문의 사람이 되었다고 해도 그대로였다.
오히려 그 완벽함은 더 단단해졌다고 볼 수 있다.
“집사가 매달 내정에 대한 보고서를 보낸다. 거기에는 공작부인이 얼마나 해내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적혀 있는 편지도 함께였지.”
혼인하기 전에 공작은 집사에게 공작부인이 어떻게 내정을 이끌고 있는지에 대해 보고하라고 명했다.
가문에서 허튼짓을 하는지 감시하기 위함이다.
그는 자신의 아내를 전혀 믿지 않았다.
숨겨 둔 목적이 있어서 데려온 여인에 불과했다.
물론 고모가 계시니까 하찮은 가문의 여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겠지만 혹시나 해서 내린 명령이었다.
세베루스는 그 편지에 적힌 내용을 알지 못했다.
그는 도대체 거기에 뭐라고 쓰여 있었길래 이러시는지 궁금해졌다.
“언제나 완벽하다고 쓰여 있었다.”
공작부인을 치켜세워 주기 위해 집사가 그리 썼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상했다.
그는 꼭 그녀가 완벽하다고 강조했다.
집안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자잘한 실수 정도는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자신의 부인은 전혀 그런 것이 없었다.
편지만 읽어 봐도 마치 이곳 사람인 것처럼 단 하나의 실수 없이 내정을 이끌고 있다고 쓰여 있었다.
“빚에 찌들어 살던 여인이 공작 가문의 엄청난 내정 업무를 완벽하게 해낸다는 것이 말이 되더냐? 그것도 영지에 오자마자 말이야.”
집사는 사실 그대로 썼다.
단지 그녀가 상상 이상으로 잔인하고 무섭고 강대한 세력을 가진 것만 제외하면 진실이었다.
“다른 편지에는 감히 공작부인께 예를 표하지 않는 고용인은 없다고 쓰여 있었어. 이것이 무슨 뜻이겠는가?”
집사는 그녀가 잘 지내고 있음을 표현한 것에 불과했지만 공작은 다르게 생각했다.
“그렇군요. 한미한 가문의 영애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요.”
세베루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고용인들은 아무리 주인이라고 해도 약하면 무시를 했다.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모습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성향이었다.
하찮은 가문 출신이고 가주나 가문 어른의 비호를 받지 못하면 은근슬쩍 무시하거나 얕잡아본다.
그런데 모든 고용인이 그녀에게 예를 갖추고 있다고 한다.
“공작 가문을 위해 오랫동안 일한 고용인들이 많아. 작은 텃세 정도 있는 것이 정상인데 그런 내용도 없더군.”
그것은 그녀를 강자라고 여긴다는 것이며 성내의 사람들을 굴복시켰다는 것이다.
나아가서 기존에 내정을 맡고 있던 칸나 고모님도 눌렀다는 의미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