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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복하거나, 죽거나-31화 (31/221)

031화 이상한 꿈을 꿨다 (1)

복종.

이 얼마나 달콤한 말인가, 이 얼마나 짜릿한 말인가!

부인들은 자신이 말한 짧고 강렬한 단어에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단어는 강자이기에 요구 할 수 있는 단어였다.

그녀들은 공작부인이 강자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대답하지 않네? 불만인가요?”

그들은 그 하나의 단어로 공작부인이 어떤 인물인지 알아챘다.

복종하지 않는 자에게 죽임을 주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그녀는 그들을 공식적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수도까지 달려가 혼인을 한 여인이었다.

모두가 조용히 있자 공작부인이 언짢은 듯이 말했다.

“왜요? 내가 원하는 것은 그거 하나뿐인데 설마 못하는 것입니까?”

‘네’라는 대답만 하면 될 일을 시간을 끌고 있다.

백작부인은 짜증이 났다.

아직도 자신을 무시하는 오만함을 선보이는 것인가!

그 미묘한 짜증을 느낀 사람들은 분주하게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마땅히 그래야하지요.”

“그럼요. 공작부인이 하시는 말씀을 무조건 따르겠습니다.”

“절대로 부인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래. 이렇게 간절하게 빠르게 대답을 해야지.’

부인들의 다급함과 절박함이 느껴지는 듯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정말 좋군요. 일부러 수도까지 가서 혼인하고 온 보람이 있어요.”

모든 부인들이 기겁했다.

공작부인이 여유롭게 차를 마시는 것과는 반대의 모습이었다.

페루제 공작부인은 남자에게 몸이 달아올랐다는 조롱과 불명예를 감수하고 수도로 달려가서 혼인을 했다.

“뒤에서 욕을 먹을 각오를 하고 수도에 간 것은 이런 순간을 위해서지요.”

이런 조롱거리는 여인에게 치명적인 흠이었다.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다면 일반적으로 숨기려고 악을 썼다.

그런데 그녀는 그런 흠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런 것 따위를 신경을 썼다면 이런 재미는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예비 신부로 여기에 있었으면 내가 그대들과 이렇게 있을 수 있겠어요? 그대들은 예비 신부를 위한 조언을 가장해서 수치를 줬겠지요.”

예비 신부보다 공작부인이 가지는 권한이 훨씬 크고 명분이 있었다.

예비 신부를 아래로 깔아보는 것은 그 여인의 가문을 하찮게 보는 것이다.

“아닙니다. 어찌 감히 공작가문의 안주인께 그럴 마음을 먹었겠습니까.”

“맞습니다. 제발 오해를 푸십시오.”

그렇지만 새로운 가문에 적응해야 할 예비 안주인을 위해 말을 했던 것인데 이렇게 화낼 줄 몰랐다고 한다면 항의한 자신만 속 좁은 사람이 된다.

페루제 공작부인이 수도에서 혼인을 하고 오지 않았다면 부인들도 필시 그리했을 것이다.

아니, 오늘만 해도 공작부인의 머리 위에 있으려고 했다.

추기경의 분노로 그녀가 만만한 사람이 아님을 알고 고개를 숙였지만 말이다.

“음… 이를 어쩌나?”

또한 공작부인을 그리 대하는 것은 공작가문을 하찮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들을 호되게 대할 명분으로 충분했다.

가신가문 따위가 주군의 가문을 모욕하는 것이 되니까.

무엇보다 공작부인으로 가문에 들어와야 했던 가장 큰 이유는 내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장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까 나보다 윗사람인 것처럼 굴었던 그대들을 믿어야 하나요? 갑자기 고민이 되는군요.”

그녀는 고민스럽다는 말투로 말했다.

그들에게 복종을 요구하지 말고 그냥 마녀로 몰아서 죽일까.

이와 같은 뜻이 담긴 말임을 모르는 바보는 없었다.

“다, 다신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믿어주십시오!”

“앞으로 달라진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마녀로 몰리면 그냥 죽지 못한다.

온갖 고문을 당하다가 죽는다.

그녀들은 절박했다.

이정도면 한동안 납작 엎드리겠지 싶었다.

그 모습을 감흥 없이 보던 공작부인이 입을 열었다.

“뭐, 이번 한번만 넘어가도록 하죠.”

선심을 쓰듯이 말하고는 차를 음미했다.

아까까지 부인들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던 여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이 일에 대해서는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으아아앙!”

“엄마!”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면 말이다.

부인들은 얼굴이 파랗게 질렸고 페루제 공작부인은 무표정이었다.

페루제 공작부인이 초대된 부인들을 괴롭히고 있었을 때에 아이들은 그들만의 시간을 보냈다.

* * *

몇 명의 아이들이 란델리노에게 다가와서는 시비를 걸었다.

“야, 너는 자존심도 없냐?”

“공작 가문에서 쫓겨날 것이 뻔한데 여기에 나올 생각을 하냐?”

“쟤가 무슨 힘이 있냐? 공작부인이 시키니까 쫄래쫄래 나왔겠지.”

란델리노를 만날 때마다 했던 행동이라서 그것이 잘못임을 인지하지 못했다.

평소와 같이 일방적인 괴롭힘인 것 같았다.

그는 그 어떤 감정의 동요도 없이 그들을 바라봤다.

“그만해. 너희는 나에게 이럴 자격이 없어.”

“너 뭐라고 했어!”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해서 침묵하던 란델리노는 달라졌다.

“나를 윗사람으로 대해. 나는 너희가 함부로 고개를 들며 모욕을 줄 사람이 아니야.”

어제까지 심란한 마음에 잠을 청하기 어려웠다.

그동안 겪은 마음의 고통이, 신체의 고통이 있는데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 * *

란델리노는 어젯밤 심란한 마음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한참을 뒤척이던 란델리노는 꿈을 꾸게 되었다.

꿈에서의 란델리노는 성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또한 술을 마신 탓인지 머리가 아파오고, 몸에서 술 냄새가 났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기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젊은 여인, 젊은 사내, 늙은 여인, 늙은 사내의 목소리가 합쳐진 소리였다.

—바꿔보고 싶지 않아?

“너는 무엇이냐?”

몸을 돌려서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시선이 향하도록 했다.

그곳에는 목소리만큼 기괴한 존재가 있었다.

검은 안개로 몸이 구성되어 있었고 사신처럼 검은 겉옷을 입고 있었다.

그 몸에는 죽음을 연상케 하는 기운이 느껴졌다.

—내가 도와 줄 수 있는데? 어때?

“무엇을 도와준다는 거냐.”

—너의 슬픈 인생을 바꿀 기회를 주겠다는 말이다.

“핫! 별 사특한 것이 나를 유혹하려고 하는구나. 내가 그딴 것에 속을 줄 아느냐! 꺼져라!”

란델리노가 소리치며 방에 있던 검을 뽑아서 그 존재에게 겨누었다.

그 위협에도 검은 존재는 어깨를 으쓱하며 여유를 부렸다.

“과거로 돌아가게 해줘도 말이야?”

“뭐?”

그가 검을 내려놓았다.

순간 란델리노의 머릿속에서 자신의 미래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 * *

메디치 백작령에서 가장 화려한 침실에 한 여인이 누워 있었다.

바로 어머니였다.

그 곁에는 나와 나의 사람들, 그리고 나의 경쟁자와 그의 사람들이 있었다.

모두가 죽어 가는 어머니에게 바라는 것은 하나였다.

“루비로즈 백작님, 후계자는 누구로?”

“어서 말씀해 주십시오.”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도,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모두가 그녀가 누구를 후계로 지정할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다.

그녀가 란델리노의 손을 잡고 말했다.

“란델리노, 너는 이 아이를 잘 보필해 주거라. 너에게는 하나가 부족하구나.”

그 말을 듣자마자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 노력하고 또 노력하며 후계자가 되길 갈망했으나 이루지 못했다.

“알렉산드로 아우구스타 루비로즈가 나의 다음을 이어갈 것이다.”

‘아우구스타’는 ‘존엄한’이란 뜻이 있는 고대의 언어다.

어머니가 직접 중간 이름을 지었다고 들었다.

‘존엄한 알렉산드로’라니!

그 어떤 것으로도 감히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높고 위엄이 있는 존재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느껴진다.

어머니는 자신의 조카가 그리 고귀한 존재가 되었으면 했다.

그런 존재가 되어서 루비로즈 가문을 이끌기를 원했을 것이다.

어머니의 아들이었으나 후계자가 되지 못했다.

어머니의 조카이자 나의 사촌에게 밀렸다.

그리 노력하고 또 노력하며 후계자가 되길 갈망했으나 이루지 못했다.

그 옆에는 레티시아가 알렉산드로에게 안기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너에게는 하나가 부족하구나.”

란델리노는 그 말을 떠올리며 혼잣말을 했다.

‘나에게 부족했던 것은 오직 혈통뿐이다! 루비루즈 가문의 핏줄이 아니라는 것 하나뿐!’

이를 갈고 있는데 알렉산드로가 자신에게 다가왔다.

“란델리노, 이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자신은 불로 태워 달라고 하셨다더군.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아셨던 것인지 참 신기해.”

“그런가? 알았다.”

아들이 아닌 조카에게 어머니가 원한 장례 방법을 말하는 신전의 행태에 화가 났다.

그러나 이것이 패배자가 경험해야 할 굴욕이지 않겠는가.

자신의 패배에 대한 아픔은 얼마 지나지 않아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루비로즈 가문의 후계로 모든 부와 권력, 명성을 계승한 알렉산드로는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계속 도전하다 보면 언젠가 기회가 오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신은 자신의 편이 아니었다.

“신랑 알렉산드로 아우구스타 루비로즈는 신부 레티시아 푸르나를 아내로 맞이하여 평생 사랑하고 존중하겠습니까?”

“네.”

아름답고 우아한 순백의 드레스는 레티시아의 사랑스러움과 아름다움을 잘 표현해 주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부의 모습이리라.

“신부 레티시아 푸르나는 신랑 알렉산드로 아우구스타 루비로즈를 남편으로 맞이하여 평생 사랑하고 존중하겠습니까?”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이 결혼하는 모습을 봐야 한다.

그것도 미칠 것처럼 미운 알렉산드로와 하는 결혼을 말이다!

어머니의 후계자 자리도, 어머니의 가문도 모두 빼앗겼다.

그런데 그것으로도 부족하여 사랑하는 여인까지 그가 차지해야 한단 말인가!

그리고 드디어 그는 어머니가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말한 말의 뜻을 드디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너에게는 하나가 부족하구나.”

그 말은 혈통이 아니라 레티시아를 뜻함이다.

어머니는 레티시아가 누구의 핏줄인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레티시아와 혼인하여 제대로 된 루비로즈 혈통을 이어 줄 알렉산드로를 선택한 것이었다.

란델리노는 너무 가슴이 아파서 더는 있을 수 없었다.

‘사랑하는 여인을 빼앗긴 대가가 너무 크구나.’

사랑하는 여인을 놓친 대가로 어머니의 후계자가 되지 못한 것이 한탄스러울 따름이다.

레티시아가 루비로즈 혈통임을 알게 된 것은 어느 날이었다.

밖에서 차와 간식을 앞에 두고 레티시아와 이야기를 나눴다.

자신은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현재까지도 친구로 지낼 수 있었다.

알렉산드로에 관한 미움과 그녀에 관한 마음은 별개였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이번에는 얼마나 있다가 돌아가니?”

“나야 벨로나 공작령에서 영지와 알펜 왕국을 위해 일하고 있지.”

“언제나 바쁘다는 말이구나.”

그녀는 우아하게 차를 마셨다.

어머니가 차가움을 머금은 우아함이라면 레티시아는 따뜻함이 느껴지는 우아함이었다.

고용인들의 눈에는 그녀에 대한 호감이 가득했다.

좋은 안주인이라는 뜻이다.

“부인, 얼른 피하십시오!”

“응?”

어떤 고용인이 큰소리를 쳤으나 이미 늦었다.

“꺄아아악!”

“레티시아!”

대화에 집중하느라 우리에서 빠져나온 사냥개가 달려드는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그녀와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서 긴장을 늦추게 된 탓이다.

사냥개는 그녀의 허리를 물었고 그는 얼른 개를 죽였다.

그 과정에서 그녀의 옷은 찢겨졌다.

그리고 거기에는 장미 문신이 있었다.

그 문신에 순간 눈이 쏠렸다.

“부인!”

고용인들의 비명에 정신을 차렸다.

“얼른 부인을 모시고 의원을 불러라!”

다행히 레티시아는 의원의 치료에 곧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백작이 가신들과 사냥 행사를 간 덕분에 그녀와 이야기할 틈이 있었다.

깨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비몽사몽인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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