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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복하거나, 죽거나-29화 (29/221)

029화 사자들의 희생으로 얻은 권력

당시에는 온 백성을 믿고 보살피겠다는 의도를 보이기 위해 성도 치안과 신관들을 지키는 병사로 온 나라의 용병들을 골고루 고용했다.

이를 궁금해 하던 신입 신관이 선임 신관에게 물었다.

그들은 엄청난 양의 서류를 들고는 신전 복도를 걷는 중이었다.

“어찌하여 저희는 자체적으로 군대를 양성해 내지 않나요?”

“성도가 성도인 것은 사사로이 병사를 키우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병사를 키우지 않음으로 모두를 감싸 안겠다는 의지를 보냄과 동시에 이곳은 영주가 있는 영지가 아님을 표명한 것이었다.

“만약 저희가 군대를 자체적으로 만들고 양성해 낸다면 그것이 일반적인 영지와 다를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형제님.”

만약 하나의 영지로 인식이 되었다면 타국에 점령을 오래전에 당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성도의 치안과 안전을 지켜야 하기에 병사를 대신하여 용병을 고용하는 것이지요.”

“잘 이해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궁금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 물어보시지요. 형제님.”

“네!”

그런 안일함을 유지하던 어느 날이다.

변화의 계기는 갑자기 찾아왔다.

알펜 왕국의 국왕이 소드마스터인 벨로나 공작과 함께 최정예 군대를 이끌고 성도를 둘러쌌다.

“당장 성도의 문을 여십시오!”

“열지 않고 버틴다면 역도와 동조한 무리로 보겠습니다!”

왕국의 반역자가 성도 안에 숨어 있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여기에 그런 불순한 자는 없으니 당장 돌아가십시오!”

시간이 지나도 성도의 문은 굳게 닫혔다.

자진해서 문을 열게 하는 것이 가장 좋았지만 불가능해 보였다.

알펜 왕국은 결단을 내렸다.

“성도는 이미 역도와 손을 잡은 무리의 손아귀에 있다! 성도로 들어간다!”

반역자를 찾기 위해 병사들과 성도로 오겠다고 했지만, 실상은 성도를 점령하고 교황을 잡고 감금하려는 것이었다.

교황을 잡아서 죄를 찾아내고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려는 목적이 있었다.

그래서 타국에서도 그의 행동을 묵인했다.

“당장 교황의 신병부터 확보해야 한다!”

“네! 알겠습니다.”

“반드시 생포해야 한다!”

그동안 왕국 위에 있었던 교단이 과거와 비교해서 많이 약해졌다.

그러나 왕들의 입장에서 아직도 부족했다.

‘신의 대리자’라며 고개를 뻣뻣하게 드는 꼴을 더는 보기 싫었다.

교황은 피신해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용병들이 그들과 싸우며 시간을 벌어줘야 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이런 망할 놈들!”

성도에서 치안이나 유지하며 평온한 삶을 보내던 각국의 용병들은 그 소식을 듣자마자 성도를 빠져나갔다.

검의 경지에 이른 소드마스터까지 있는 마당이다.

승리는커녕 목숨 보전하기 어려웠다.

“내가 해 준 것이 얼마이거늘! 시늉조차 하지 않아!”

그동안 준 돈을 생각하면 억울한 일이었다.

교황은 알펜 왕국의 국왕에게 잡혀 죽겠구나 싶었는데 희망은 존재했다.

“교황 폐하, 여기 계셨군요!”

“너희가 여기에 왜 있느냐? 설마 나를 구하기 위함인 것이야?”

“물론입니다. 저희가 시간을 끌겠습니다. 어서 성도를 빠져나가시지요.”

유일하게 교황을 지키기 위해 성도에 남은 용병들이 있었다.

“너희들의 용기를 잊지 않을 것이야!”

그 용병들은 카엘족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몰살을 당하면서도 알펜 왕국의 병사들과 싸웠고 교황을 피신시키는데 성공한다.

카엘족 용병들은 소드마스터와 그 군대를 상대로 처절하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싸웠다고 전해진다.

“오직 카엘족 용병들만이 성도와 신관들 그리고 신의 대리자인 나를 지키려고 했다. 우리는 그들이 보인 신의에 보답해야 한다.”

이 일을 계기로 성도의 용병은 무조건 카엘족이 맡게 된다.

이것은 현대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그들의 용기를 본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야.”

교황은 희생된 카엘족 용병들을 위해 조각상을 주는데 그것은 사람들에게 ‘빈사의 사자상’이라고 불렸다.

‘빈사의 사자상’은 카엘족 용병을 상징하는 동시에 자신의 가족과 일족을 위해 신의를 지켰던 그들의 의지가 느껴지게 하는 작품으로 훗날 관광지로 유명해진다.

“오직 카엘족만이 성도를 지킬 자격이 있음을 선포한다.”

이런 배경으로 교황은 카엘족 용병들을 신뢰하게 되었고 그 신뢰는 페루제 공작부인에 대한 신뢰가 되었다.

게다가 타국의 군대에게 성도가 유린당했다.

추기경과 교황은 모두 걱정이 되었다.

그들은 회의장에 모여서 대책을 강구했다.

“다음에 이런 일이 다시 생기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맞습니다. 이런 일이 생길 경우를 대비해야 합니다.”

“그래. 맞아요. 이번에는 카엘족 덕분에 살았지만 다음에는 어찌 될지 모를 일이지요.”

“카엘족이 이번처럼 시간을 제대로 끌어줄지 아무도 모를 일이고요.”

알펜 왕국이 한 번 더 이런 짓을 벌일 수도 있었고 아니면 다른 왕국에서 이런 짓을 할 수 있었다.

“불온한 세력과 맞서서 싸워 줄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성도는 두려움에 떨었다.

성도를 지켜 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 누군가는 강한 군대와 정치적 영향력을 가져야 했다.

그리고 페루제 공작부인은 그 자격에 딱 맞았다.

“페루제 루비로즈 영애는 어떤가요? 카엘족도 그녀의 추천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닙니까?”

많은 카엘족 병사들을 거느리고 있었고 라스타 왕국뿐만 아니라 헬리오 왕국, 카플란 왕국에도 영향력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매년 엄청난 금액을 교단에 기부하는 독실한 신자였다.

“그녀의 깊은 신앙심은 소문이 났지요. 신실한 사람이니 저희와 적대할 일은 거의 없지요.”

“딱 적당한 인물입니다.”

“당장 페루제 루비로즈 영애를 부르시지요.”

교황과 신관들은 긴밀한 동맹 관계가 되었다.

그녀가 건재해야 성도가 무사하고 자신들이 지금의 힘을 지킬 수 있었으니까.

독실한 신자인 그녀와 그녀가 거느린 카엘족 말고는 아무도 믿을 수 없었으니까.

그녀는 점점 교단에 영향력을 넓혀 갔다.

때에 따라 그들이 경계하도록, 때에 따라 안심하도록 했다.

그녀만이 자신들을 구할 수 있다는 마음을 심어 줌으로 그녀를 점점 더 의지하도록 유도했다.

“부인. 교황폐하께서 하사하신 것을 신전으로 돌려보내다니요. 교황 폐하께서 새로이 다시 하사품을 내리시도록 할 것이니 말씀을 거둬 주십시오.”

추기경과 공작부인의 모습은 누가 위에 있고 아래에 있는지를 명확하게 알게 해줬다.

세상에 오직 12명만 있다는 추기경은 일국의 왕조차 예의를 차려서 대하는 존재였다.

물론 교단의 힘이 전성기에 비하면 부족하여 왕에게 도망을 가야 했던 적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은 여러 국가의 암묵적 동맹으로 몰려서 그런 것이지 교단의 힘이 약해서는 아니었다.

종교적 믿음이 만드는 민심은 엄청났다.

또한, 그들이 보유한 재산도 어마어마했다.

설령 타락한 교단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군사뿐이었다.

그런 교단을 지배하는 사람 중 하나인 추기경이 아녀자 따위에게 저자세를 보인다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제가 마음이 아파서 더는 가지고 있을 수 없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인지요?”

그런데 누가 봐도 이렇게 알게 한다는 것이 뜻하는 바는 하나다.

공작부인은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이게 할 만큼 큰 힘을 가진 사람이다.

부인들은 침묵하며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소문과는 전혀 다른 여인이었으니까.

“저의 신앙심은 다른 신도들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해 왔어요. 그 하사품도 제 신앙심에 대한 칭찬이라 받아들였고요.”

공작부인은 정말 실망스럽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런데 귀부인들이 말하기를 교단에서 보내온 하사품들이 격이 떨어진다고 하더군요.”

자신들이 언급되자 부인들은 얼굴이 새파랗게 되었다.

그녀가 차를 마시면서 슬쩍 미소를 지었다.

즐거웠다.

저들이 두려움에 떠는 얼굴이 너무 웃겼다.

광대의 웃기는 표정처럼 보였다.

아까 건방지게 굴었던 표정과 비교하니까 더욱 즐거웠다.

“제가 눈치가 없어서 직접적으로 알려 주시지 않으면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감히 그들은 순식간에 추기경과 교황의 이름으로 보내진 물품을 무시한 것으로 되어 버렸다.

세상에 하나뿐 교황과 12명뿐인 추기경의 선물을 조롱한 것은 일국의 왕조차 하지 않는 죄였다.

신을 모시는 자를 모욕하는 것은 그 신을 모욕하는 것과 같았다.

설령 몰랐다고 해도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제가 교황과 추기경께 누를 끼치기에 알아서 떨어져 나가라고 그런 하사품들을 보낸 것인가요?”

추기경은 그 말에 얼굴이 붉어지며 소리쳤다.

“무슨 소리이십니까! 감히 여기에 교황 폐하와 추기경인 제가 드린 선물을 모욕했다는 것입니까!”

그는 분노에 가득 차서는 부인들을 노려봤다.

그들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시선을 아래로 떨어트렸다.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공작부인은 자기 할 말을 이어 갔다.

아직 제대로 시작도 하지 않았으니까…….

이제 소소한 즐거움은 멈추고 더 큰 즐거움을 향해 나아가야 했다.

“이 차부터 정원에 꾸며둔 조각상까지 지적을 하도 당해서 마음이 좋지 않아요.”

정원에 둔 조각상은 추기경이 보낸 선물이었다.

추기경은 부인들을 마음 같아서는 죽이고 싶다는 눈빛으로 보고는 말했다.

공작부인에게 군사적인 지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 거슬리게 하면 아니 될 일이었는데 낭패였다.

“부인, 이곳 부인들의 수준이 그리 높은 줄 몰랐습니다. 저로 부족해서 감히 교황 폐하의 수준까지 평가하다니요.”

신의 대리자에 대한 모욕으로 종교 재판으로 끌고 가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한 부인이 급하게 일어서며 말했다.

침묵할 때와 나서야 할 때를 모르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억울합니다! 저, 저희는 몰랐습니다.”

“억울? 몰라?”

“공작부인께서는 단 한 번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알았다면 그리하지 않았을 것이에요.”

추기경이 날카롭게 그 부인을 봤다.

살기가 마치 전장의 장군과 비견되어 떨리게 했다.

부인들은 나대는 그녀를 보며 미칠 거 같았다.

가만히 있어야 할 때에 나대면 어쩌란 말인가!

지금 가만히 엎드리고 있어도 조용히 넘어갈까 말까다.

“오호라. 그러면 교단에서 보낸 것이 알았다면 격이 떨어지는 것을 참고 거짓을 말했을 것이라는 뜻인가?”

“그, 그렇지 않습니다. 참으로 좋은 차와 멋있는 조각상이었습니다.”

자기 무덤을 스스로 파고 있었다.

부인들을 눈을 찔끔 감았다가 떴다.

차라리 지금은 조용히 있다가 때에 맞춰서 눈물을 흘리며 무조건 죄송하다고 해야 마땅했다.

“자네는 거짓말을 하는군. 그러면 어찌하여 공작부인께 거짓을 말하여 모욕을 줬는가?”

“그, 그것은…….”

“설마 힘이 없다고 괴롭히려고 거짓을 했다는 것인가? 맙소사! 약자를 도우라는 교리조차 무시하는 부덕한 무리라니!”

항변했던 부인은 반박하지 못했다.

공작부인이 될 자격이 없는 여인이라고 생각하고 괴롭히려고 했던 말이었으니까.

“교단의 하사품을 조롱하며 명예를 훼손시키고 성서의 말씀조차 지키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엄연히 공작부인이 윗사람. 이는 하극상입니다.”

부인들은 악화된 상황을 막을 힘이 없었다.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대신관에게 희망을 걸며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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