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8화 신전과 페루제 루비로즈 그리고 카엘족
수시로 공격하는 부인들과 타격을 받지 않은 공작부인 간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그때였다.
“공작부인께서 부르신다고 들었사옵니다.”
그녀가 데려오라던 손님이 왔다.
모두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드디어 저 나대는 것들에게 응징의 철퇴를 내릴 수 있게 되었다.
그때가 상상되어서 웃음을 참는 것이 얼마나 힘들던지 아무도 모른다.
부인 중 너 나 할 거 없이 모두가 일어났다.
“추기경께 인사드리옵니다.”
추기경.
교황을 제외한 모든 신관 위에 있는 높은 자리였다.
또한, 다음 대의 교황 후보이기도 했다.
추기경의 옷을 입고 있는 상대를 가짜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아쉽게도 아니었다.
북부의 신전들을 총괄하는 대신관은 수많은 귀족과는 안면을 트고 있었다.
부인들은 예상치 못한 사람의 등장에 당혹스러워했다.
그들은 자기끼리 작게 눈빛으로 대화를 나눴다.
‘진, 진짜 추기경이시겠죠?’
‘대신관이 허리 숙이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으세요.’
‘아니, 추기경이 왜 여기에 와요?’
‘나도 모르죠.’
그 영향력은 힘이 있는 귀족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그런 대신관이 가짜에게 굽신거리며 눈치를 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백 번을 생각해도 진짜 추기경이었다.
‘공작부인과 친분이 있는 것일까요?’
‘그러니까 부르면 왔겠죠. 도대체 얼마나 친하면 부르면 오지?’
이 세상에 오직 12명만 있다는 추기경.
평생 한 번 보기도 힘든 존재였다.
추기경의 등장도 경악스러운데 더 충격적인 것은 따로 있었다.
“오랜만이군요.”
공작부인이었다.
추기경이 왔음에도 의자에 앉아서 차를 마시는 작태는 그를 모욕하는 것이었다.
신의 대리자인 교황을 측근에서 모시는 추기경은 존경받고 존중받아야 했다.
상대가 종교 재판을 받아도 부족하지 않은 죄를 저질렀음에도 추기경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공작부인께서 저를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무슨 일인지요?”
도리어 자신이 그녀의 아랫사람인 것처럼 굴었다.
부인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부인들의 눈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제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감이 오는 모양이었다.
아직 제대로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이러면 곤란하다.
“교황께서 하사하신 차를 다시 가져가야 할 듯싶네요. 여기 자네와 다른 추기경들이 준 석상들도 말이에요.”
공작부인의 말에 추기경은 당혹스러워했다.
“어찌 그러십니까? 혹시 마음에 들지 않으시는 것이 있으신지요?”
그 말에 부인들은 손과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그녀들이 공작부인을 비꼬려고 말했던 것들이 교황과 추기경들을 모욕한 것이 되어 버렸다.
자신을 상대로 우아한 척 고아한 척은 했다.
그리고 결국은 두려움에 어찌할 바 모르는 얼굴들이라니!
웃겨서 크게 소리를 내며 웃음을 보이고 싶을 지경이다.
“나는 입맛에도 맞고 좋은데 부인들은 마음에 들지 않나보더군요. 그리고 석상들도 여기에 맞지 않다고 하고요”
“부인을 위한 마음이 큰 나머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 차를 저 혼자 마셔야 할 듯싶은데 너무 많이 받지 않았습니까? 교황 폐하의 은덕을 썩힐 수 없는 노릇. 신전에 기부하려고 합니다.”
추기경은 부인들을 째려보았다.
그 선물은 그냥 선물이 아니었다.
교황청과 공작부인 간 동맹의 상징이었다.
교황청과 공작부인은 긴밀했다.
그 이야기를 하자면 길다. 그렇지만 최대한 간략하게 하고자 한다.
이 세상에는 붉은 눈을 가지고 엄청난 전투 센스를 지닌 민족이 있었다.
그 종족의 명칭은 카엘족.
그들은 검을 배우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일반 병사를 도륙할 정도의 실력을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에클레시아 교로 이루어진 이 대륙에서 죄인이었다.
성서에 따르면 최초의 인간 아담과 이브의 직계 후손인 형제가 있었다.
형은 카엘이고 동생은 아벨이었다.
아벨은 지혜롭고 올바른 마음을 가져서 사람들을 바른길로 이끄는 선지자였다.
모든 사람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지도자였다.
반면에 카엘은 욕심이 많고 타인을 힘으로 억압하고 두렵게 만드니 사람들은 그를 멀리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지 않고 아우를 질투했다.
그는 아우를 밤중에 불러내어 죽이고 마는데 이것이 인류의 최초로 일어난 살인이었다.
성서에 따른 것이니 실제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하여튼 카엘의 죄를 시작으로 수많은 악인이 세상에 나타나게 되었다.
이에 분노한 신은 카엘과 그 죄인들을 지옥으로 보내고 손에 물든 피를 기억하라는 의미로 눈을 붉게 바꿨다고 한다.
어른들은 그 말을 굳게 믿었고 그 믿음은 아이들에게 전해졌다.
“카엘족 아이랑은 놀면 안 돼.”
“왜요?”
“신의 미움을 받는 죄인들이거든. 괜히 놀다가 신의 분노를 사면 나쁜 일이 생겨.”
사람들 사이에서 카엘족은 카엘과 그 죄인들의 후손으로 인식되어 있었다.
신의 미움을 받는 일족, 최초의 살인을 저지른 죄인의 후예.
그들이 받을 핍박은 엄청났다.
길가에 쓰러진 사람이 카엘족이라면 구하려던 사람도 외면하고 갈 길을 갈 정도로 배척을 받았다.
“저기 길가에 사람이 쓰러져 있네?”
“이봐요. 괜찮아요? 어? 카엘족이네.”
“엑! 불운이 나에게 붙는 건 아니겠지. 얼른 가자.”
그들이 괴롭힘을 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그들이 노예로 고통 받는 일도, 그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도 당연했다.
왜냐?
감히 죄를 지음으로 신을 배신하고 세상에 죄를 뿌린 악인의 후손이니까.
사람들은 신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지 않았기에 아직도 그들의 눈이 붉다고 믿었다.
그들은 살아가면서 벌을 받고 죽어서도 벌을 받아야 했다.
라스타 왕국에서 카엘족의 삶은 3가지였었다.
노예로 살아가느냐와 아무도 일자리를 주지 않아서 굶다가 죽거나 약탈을 하느냐였다.
노예 제도가 없는 다른 왕국들은 노예가 된다는 선택지는 없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런데 결국엔 그들이 할 만한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은 같았다.
아무리 전투 센스가 뛰어나도 상단이나 귀족들은 그들이 불운을 가져다준다고 믿어 고용하지 않았다.
먹고 살 방도가 없는데 세금 중 하나인 노역의 의무는 있었다.
돈을 지불할 길이 없는 그들에게 남들보다 배로 힘들고 위험한 노역을 억지로 해야 했다.
라스타 왕국의 노예와 다르지 않았다.
그들이 이런 인생에 체념하며 살고 있을 때, 등장한 사람이 바로 페루제 루비로즈 영애였다.
“보석을 눈앞에 두고도 잡지 않다니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야.”
그녀는 독실한 신자였고 신이 만든 모든 것은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전투에 관해서는 카엘족을 이용하지 않는 귀족들과 상단들을 머저리라고 여겼다.
그녀가 가문의 내정을 장악하고 그 내탕금을 잘 운영하여 생긴 엄청난 부로 그들을 고용했다.
처음에 평민도 거부하는 자신들을 귀족이 받아들인다는 것을 카엘족들은 믿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이 진심임을 알게 되자 페루제 루비로즈 영애는 그들에게 구원자가 되었다.
세상에 버림받은 자신들을 구원해준 은인.
그들에게 그녀는 절대로 배신할 수 없는 존재였다.
“저희는 죄인이 아니라는 말입니까?”
“무지는 비극을 낳지. 얼마 전에 교황께서 공표하시기를 신께서 꿈에 강림하셔 말씀하기를 죄가 없는 자에게 타인의 죄를 전가하지 말라고 하셨다고 하더군.”
당시 교황은 자신이 저지른 비리를 전대 교황의 죄로 넘겨 씌었다.
왕조차 바꿀 힘이 있었던 전성기와 달리 지금은 여러 왕이 공격하면 이겨 내기 어려웠다.
자신을 자리를 지키기 위해 발표한 내용이었지만 그녀는 그들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인용했다.
“그 말씀은!”
“신께서는 드디어 카엘족에 대한 단죄를 끝내신 것이지.”
“그, 그런데 어찌 저희의 눈은 그대로입니까?”
“신께서 하신 깊은 뜻을 어찌 내가 알겠는가? 허나 내가 생각하기로는 잊지 말라는 뜻이 아닌가 싶어. 기억하고 죄를 짓지 말라고 말이지.”
그들은 그녀의 말을 듣고 생각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자신들이 그 진실을 알았을까?
아니다.
사람들에게 고립되어 있는 자신들은 그 소식을 듣지 못했을 것이다.
설령 들었다고 해도 그것이 자신들의 이야기인지 몰랐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카엘족들에게 퍼지고 와전이 되면서 그녀를 신이 보낸 대리자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엄청난 자금을 지불하고 교황을 만나는데 성사한다.
교황은 시큰둥했다.
그녀가 귀족적인 인사를 완벽하게 했음에도 감탄하는 모습조차 없었다.
자리에 앉아 그녀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이 시기에 교황은 머리가 터질 거 같았으니까.
자신의 죄를 선대 교황에게 떠넘긴 것은 성공했다.
선대 교황은 만만치 않게 죄를 지은 인사였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여러 나라의 왕들이 이에 이이 제기를 했다.
자신의 죄를 숨기기 위해 거짓으로 ‘신의 강림’을 발표했다는 것이다.
“교황께서 신의 말씀을 전했음에도 불신하는 존재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 불신을 믿음으로 바꿀 방법이 있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교황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그녀에게 다가왔다.
답은 쉬운 곳에 있는데 찾지도 못하는 멍청이를 한심하게 생각하면서도 표정에는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그것이 정말인가! 거짓이 아니고?!”
“어찌 신의 대리자께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신께서 나에게 귀한 사람을 보내주셨군. 자, 자리를 옮기세. 자네가 나를 올려다보면 목이 아프지 않겠나.”
방금 전까지 귀찮아했던 것이 무색하게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급했던지 자리를 옮겨 그녀와 시선을 마주치는 영광을 줬다.
교황과의 독대에서는 왕이 아닌 이상 무조건 교황을 올려다봐야 했다.
신의 대리자는 그 어떤 사람보다 위에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녀는 왕 정도 되어야 받을 수 있는 대우를 받았음이다.
“카엘족을 교황께서 계시는 이 성도를 지키는 용병으로 들이시지요.”
“뭐? 어찌 그런 불길한 것들을 이 성도에 들인단 말인가!”
만백성을 위해야 하는 교황조차 편협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녀는 교황의 일갈에도 여유가 넘쳤다.
멍청이가 화낼 것을 예상했으니까.
오히려 상대가 반응이 전혀 없으니까 화낸 사람이 민망했다.
그는 진정하고 그녀를 바라봤다.
“교황폐하. 왕들이 폐하를 위협하는 명분이 무엇이겠습니까? 신탁으로 인해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사람이 폐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조근조근한 말투로 말을 계속했다.
“이번 신탁의 요지는 연좌죄에 대한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반역이나 그에 준하는 죄가 아닌 이상 연좌죄를 적용하지 않는 것이 요즘 추세입니다. 그래서 왕들이 공격하는 것이고요.”
“그래서?”
“간단합니다. 그 대상을 넓게 적용하시면 될 일이죠. 마침, 그 연좌죄를 계속 적용받고 있는 존재가 있죠.”
“그것이 카엘족이다?”
“예, 그들을 용병으로 받아들임으로 마침내 죄인 카엘이 지닌 죄에 대한 후손들의 벌이 끝났음을 공표하는 것입니다.”
그녀는 교황의 죄를 카엘족들의 죄를 사함으로 감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카엘족도 각 왕국의 백성.
왕이 백성을 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렇기에 그것을 반대할 명분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