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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복하거나, 죽거나-18화 (18/221)

018화 이기는 싸움은 백번을 해도 즐겁다

비웃음을 머금고 그녀는 승리를 쟁취한 장군처럼 의기양양했다.

패배자가 정해진 싸움처럼 즐거운 싸움은 없다.

싸움은 이겨야 재미가 있는 것이니까.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이유와 같다.

“읽게. 자네 말처럼 사람들의 뒷말을 무서워했다면 알아낼 수 없었던 내용이지.”

그는 그 책 안에 담긴 내용을 보고 손을 떨었다.

“이, 이것이 어찌하여? 어떻게?”

거기에는 공작 가문의 기사들이 저지른 죄가 담겨 있었다.

[가문 내의 일을 밖으로 누설한 죄…….]

정보 유출로 받게 된 대가 등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내가 이 가문을 위해 노력을 했거든. 엄연히 안주인이니까.”

그 대가를 유추할 수 있는 명백한 근거들까지.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 위한 목적이 명확하게 보였다.

가문을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부인은 자신밖에 없을 것이다.

어머니께서 하늘에서 자랑스러워할 것을 생각하니까 마음이 좋았다.

“누명이니 거짓이니 그런 말 하지 말게. 사실이니까. 그대도 아는 것도 있을 거야. 설령 누명일지라도 이렇게 상세한 것이 세상 밖으로 드러나면 공작이라고 해도 막을 수 없게 되지.”

다수가 있는 조직 내에서 모두가 깨끗할 수 없는 법이다.

그래서 쉬쉬하며 넘어가는 일들도 있다.

그것이 화살이 되어 그와 기사단에 향했다.

그것 외에도 다른 죄에 연루되어 있는 기사들도 기재되어 있었다.

가령 여인에 대한 상습적인 몹쓸 짓이라던가, 폭력 행위가 있었다.

부단장도 몰랐던 죄들이 수두룩했다.

“설령 부단장이 몰랐다고 해도 말이야.”

이 중에서 한 명에 대한 것이라도 외부에 터진다면 기사단은 초토화가 될 것이다.

그들을 단속하지 못한 자신도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다.

부단장은 공작부인이 아주 무서운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언제부터 준비하신 것입니까?”

그는 이를 갈며 말했다.

그녀는 부단장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과거의 일이 무엇이 중요하랴?

지금과 미래가 중요하다.

자신이 그였다면 앞으로의 일에 관해 물어봤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마다 중요시하는 것이 다르니 이해해 보려고 한다.

“그게 무슨 말이지?”

“이런 방대한 자료들을 단 며칠 만에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고용인들을 고문했다고 해도 그들은 뱀의 꼬리에 불과하니까요.”

부단장의 말에 그녀는 작게 미소 지었다.

정말 짜릿하다.

자기가 승기를 잡은 줄 알고 나대다가 패배를 한 패배자의 얼굴이 말이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으나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요.”

그녀는 말을 계속했다.

“내 남편이 모르게 조용히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터지면 자네가 책임을 뒤집어쓰겠지.”

그 말에 부단장은 침묵했다.

그것은 누군가 말해 주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기사단의 최고 책임자는 따로 있는데도 말이야. 그이가 자기 최측근인 단장을 버릴 리 없으니까. 자네 살길을 도모해야지 않겠어? 아니면 자네를 지켜주지 않는 그이에게 충성하다가 버림받으려고?”

부단장은 그녀의 손을 잡아야 살 수 있었다.

그녀가 이것을 터뜨리면 자신의 삶은 그야말로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금방 깨갱거리는 개처럼 표정이 처량하다.

이 맛에 상대가 자기가 우위에 있다고 믿게 뒀다가 패배를 시키는 것이다.

그 절망감이 마치 연극처럼 느껴져서 자신을 즐겁게 만들었으니까.

“자네의 침묵이 긍정의 답이라고 믿겠네.”

부단장은 억지로 그녀의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러면 명령을 내리지. 가문 내의 정보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단속을 해줘야겠어. 그리고 기사 중 버려야 할 것들은 처리하세요.”

그는 방을 나가자마자 기사들을 소집했다.

그들 중 일부를 결박했다.

“부단장님! 왜 이러시는 것입니까?!”

“맞습니다. 저희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요!”

묶인 기사들은 부단장에게 소리를 쳤다.

갑자기 모두를 부르더니 자신들을 죄인 취급했으니까.

기사인 자신들에게는 수치스러운 일이다.

잡히지 않은 기사들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곧 부단장의 결정이 이해가 되었다.

* * *

“위 기사는 여인들 4명을 겁탈했으며 2명은 가학적인 성욕을 풀기 위해서 때리다가 죽였다. 유족들에게 기사라는 신분을 앞세워 위협을 했더군.”

기사들이 저지른 잘못은 추악하기 그지없었다.

“위 기사는 연고가 없는 여인들을 잡아다가 창관에 팔아넘겼다. 탈출한 여인을 다시 팔았던 곳에 돌려보냈다. 그곳에서 구출된 다른 여인의 증언이 있다.”

묶인 이들의 죄목이 알려질 때마다 점점 조용해졌다.

모든 죄인의 이름과 죄목이 불리자 숨이 막히는 적막만 남았다.

“공작 각하를 대신하여 공작부인께서 친히 죄에 관한 벌을 내리실 것이다. 감옥에서 얌전히 기다려라!”

도저히 편을 들어줄 수 없는 기사들을 빠르게 잡아다가 처리했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이것을 명분으로 공작부인이 기사들을 부릴 수 있도록 말이다.

“이제 남은 명령을 해야겠지.”

페루제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빛나고 있는 듯했다.

그 후에 집사를 찾아갔고 칼을 들이밀며 위협을 가했다.

지금 성안의 일을 발설하지 말라고 말이다.

“지금부터 성안의 일이 밖으로 나간다면 그 배후에 집사가 있다고 판단하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입니까!”

“죽기 싫으면 고용인들을 철저하게 단속하십시오.”

집사는 목숨이 걸려서인지 전염병이 발생했다는 명분으로 성안의 출입을 금하고 내부를 철저하게 통제했다.

그래서 그 어떤 가신도, 친인척들도 내부 사정을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이제부터 허락을 받지 않은 그 어떤 사람도 성안에 들어올 수 없다! 성안의 병사들에게 모두 전해지도록 하라!”

“네!”

뜬금없는 명분이었지만 자기 목숨 귀한 줄 아는 그들은 한동안 성안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공적인 방문을 하는 가신들에 한해서 출입을 할 수 있도록 하죠.”

어느 정도 정리가 된 후에 다시 출입제한을 일부 풀었는데, 부인들이 집사를 통해 그녀를 자극하려고 했다.

“어서 부인들을 초대하라고 하세요.”

“암요. 집안의 어른에게 인사를 드리는 것이 예의지요.”

“성안의 안전해지면 그때 하시겠지요.”

집사는 공작부인이 무서워서 부인들의 요구를 거절했다.

아니, 그녀에게 전달조차 하지 않았다.

“이제야 집사가 좀 집사다워졌군. 귀찮은 일을 만들지 않잖아.”

그녀는 일하면서 집사의 달라진 모습에 만족해했다.

꼭 강압적으로 나와야 말을 잘 듣는 것들이 있는데 집사가 그런류의 사람인 모양이다.

그녀는 집사를 강하게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다.

* * *

대부분의 가신들은 공작이 있는 수도로 가지 공작성으로 가지 않았다.

외정 업무는 공작의 담당이었으니까. 내정과 관련된 가신들만 공작성에 들렀다.

“얼른 일하고 돌아갑시다.”

“그러세. 전염병이라도 걸리면 큰일이니까.”

목숨이 걸려 있어서인지 공작성 내의 분위기는 삭막함 그 자체였다.

고용인들은 동료들이 고문당하며 질렀던 비명과 태워지던 시체들의 냄새를 기억했다.

시체 냄새가 떠올라서 많은 이들은 음식조차 제대로 삼키지 못했다.

환청이 들려서 잠도 자지 못하고 불안에 떠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전쟁과 거리가 먼 공작령에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모습은 모두에게 상처를 남겼다.

“겨우 그거 봤다고 저러는 거 봐.”

“저리 나약해서야 어찌 공작부인을 모시려는지 모르겠어.”

“저것도 자주 보다 보면 나아지겠지.”

페루제 공작부인이 데려온 라스타 왕국 출신의 고용인들은 제외였다.

그들은 이런 충격을 받은 공작성의 사람들을 ‘연약한 아기새’로 취급했다.

“하긴 너 처음에 그랬던 거 생각난다. 질질 짜면서 완전히 웃겼는데”

“그때 이야기를 왜 꺼내! 완전 창피하다고!”

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상이었으니까.

공작부인이 데려온 고용인들의 말에 분노한 한 사내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그는 상대의 멱살을 잡으며 소리쳤다.

“너희가 뭔데 그런 말을 해! 너희가 알아?! 오랫동안 함께한 동료가 그리되었어!”

가장 친했던 친구를 고문으로 잃게 된 고용인이었다.

“맞아! 너희가 뭐라고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너희가 우리의 기분을 반이라도 알아?”

“너희는 너희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라고!”

“여기는 공작성이고 우리는 이곳의 고용인이야. 얼른 꺼져!”

그에 동조하여 많은 공작성의 고용인들이 그들에게 소리쳤다.

“죄인을 옹호하는 너희 같은 것들 때문에 우리 같이 선량한 고용인들도 같이 욕을 먹는 거야!”

“주인을 배신한 죄에 맞게 죽은 것을 가지고 슬퍼한다는 것이 웃기는 거 아냐!”

공작부인의 고용인들도 맞받아쳤다.

주인을 닮아서인가?

참는 성격들이 아닌 듯싶다.

라스타 왕국 출신과 공작령 출신 고용인들끼리 한판 붙게 생겼다.

짝!

모두가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얼굴을 돌렸다.

실리가 엄청난 살기를 띠며 채찍을 들고 있었다.

“공작부인의 고용인이라는 작자들이 감히 이런 소란을 피운단 말이냐!”

짝!

그녀는 바로 전에처럼 한 번 더 바닥을 향해 채찍을 쳤다.

“공작부인의 품격에 맞게 식사도 정갈하게 해야 하거늘!”

왕국에서부터 그녀에 대해 알고 있던 고용인들은 안색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시녀장님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제발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너무나도 애절하게 애원했다.

동정해 줄만도 하건만 실리는 단호했다.

“닥쳐라!”

그녀는 일갈하더니 식당 안을 훑어보며 말했다.

“공작부인이 거주하시는 성안에서 이리 시끄럽게 굴다니! 부인을 볼 면목이 없구나!”

고용인들은 숨소리조차 내기 어려웠다.

그만큼 시녀장은 자신의 화를 감추지 않았다.

“동료들끼리 싸우는데 말리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니! 너희도 이 분란을 동조한 것과 같다!”

그녀의 날카로운 눈빛은 금방이라도 그들을 죽이라고 말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듯싶었다.

모두가 침을 삼키며 두려움에 떨었다.

“그 고용인을 보면 주인을 안다고 너희의 이런 추태가 ‘공작부인’의 격을 떨어뜨림이지!”

그녀가 채찍을 강하게 잡았다.

주인의 품위를 훼손했다는 생각 때문에 그녀는 점점 더 분노가 커졌다.

“다시는 이런 일을 벌이지 못하도록 단단히 교육해 주마!”

그날 밤, 교육을 명목으로 그 식당 안에 있던 고용인들은 채찍을 맞아야 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분란을 조장하지 않겠습니다.”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만 때려주세요!”

“분란이 생기면 나서서 막겠습니다. 제발 용서해주세요!”

또한, 과하다 싶을 정도의 업무를 소화해야 했다.

벌은 공작성의 고용인들과 공작부인의 고용인 양쪽에게 공평히 가해졌다.

필요한 과정이었다.

너무 독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말이다.

처음에 따뜻함을 베풀면서 좋게 나오면 그것이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구는 것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다정함은 고용인들이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알고 난 뒤에 베풀어야 문제가 없었다.

덕분에 그곳에 없던 고용인들은 편해졌다.

“도와주고 싶지만 못 도와주는 마음을 알지? 미안해.”

“어쩔 수 없는 것을 너희도 알잖아.”

돕고 싶어도 걸렸을 때 후폭풍이 무서워 돕지도 못했으니까.

그런데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실리는 분노를 하면서 ‘공작 가문’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공작부인’에게 맞췄음을 말이다.

고용인들을 공작 가문이 아닌 공작부인의 사람으로 만드는 첫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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