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6화 죽이지 않은 것은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다 (1)
페루제는 정말 상쾌한 기분이었다.
공작부인이 되어 해이해진 기강을 바로 잡는 일을 할 수 있다니 너무 뿌듯했다.
전 시녀장은 여전히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페루제는 그런 그녀를 무심하게 쳐다보고는 명령을 내렸다.
“오늘 하루, 시녀장을 그 자리에 두고 내일 쫓아내거라. 혹시라도 부축하거나 도우려는 것들이 있으면 베어 버리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너희들은 내일까지 내가 있는 공작 가문에서 계속 일을 할지 아니면 나갈지 결정하렴. 잘 결정해야 할 거야.”
다음날, 어제까지 살아 있던 시녀장은 시체가 되었다.
치료해도 살아남기 어려웠는데 방치를 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20년을 공작 가문에서 보낸 시녀장은 공작부인을 고용인들에게 각인시키는 도구로 삶을 마감했다.
누군가는 허망하고 허망한 죽음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죽은 시녀장은 더 고통스럽게 죽어도 싼 사람이었다.
뒷배인 칸나 백작부인은 몰랐겠지만, 그녀는 시녀장이라는 위치를 이용하여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다.
“제발 집에 보내 주세요.”
“어디서 거짓말이야! 너희 고아라서 집 없는 것을 다 아는데!”
“제발요. 여기서 보내 주세요. 어디에도 말하지 않을 것이니 제발 놔주세요.”
“닥쳐! 팔린 주제에 어디 울음소리를 내는 것이야! 맞기 싫으면 조용히 해!”
고아라서 찾는 가족이 없고 조금이라도 예쁘장하다고 싶은 어린 소녀들을 고용하고는 힘든 일을 몰아서 배정하고 그만두도록 유도했다.
불쌍한 고아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척하면서 새로운 직장까지 추천해 주고 마차까지 내어줬다.
그 마차에 인신매매 집단의 일원들이 같이 있음은 상상하지 못한 소녀들은 그렇게 사라졌다.
그 숫자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수많은 고용인이 움직이는 공작성이다.
시녀장이 그들의 움직임을 모두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들은 많았고 그만큼 서로 보고 듣는 것도 많았다.
“시녀장님이 벌을 받은 거 맞지?”
아무리 비밀리에 소녀들을 파는 듯한 정황을 포착한 소수가 있었다.
극소수에 불과했으나 그들은 시녀장의 수상함을 알았다.
시녀장이 팔아넘길 소녀들을 괴롭혀서 그만두도록 만들었다.
제삼자가 봐도 심하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괴롭혔다.
소녀들이 그만두길 원해서 괴롭혀 놓고 새 직장을 알아봐 주고 추천까지 해준다?
이상한 일이었다.
게다가 마차까지 마련하여 내보내는데 다른 고용인들에게는 그런 적이 없었다.
“사실 수상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침묵했잖아.”
“그러면 어떻게 해… 우리가 수상하다고 말해도 위에서는 우리보다 시녀장님을 더 신뢰하고 믿을 것이 뻔한데 말이야.”
칸나 백작부인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시녀장을 건드는 것은 칸나 백작부인을 건드리는 것과 같았다.
의혹을 제기했다가는 자신들이 큰일을 당할 것이 뻔했다.
“큰 소란을 일으켰다고 시녀장님에게 찍혀서 여기서 추천장도 못 받고 쫓겨났겠지.”
“그냥 쫓겨만 났겠어? 가문에 쓸데없는 분란을 일으켰다며 매질을 당했을지 몰라.”
“증거도 없고 정황만 보고 의심을 했던 것이었으니까.”
당장 먹고 살길을 지키기 위해서 그들은 진실을 외면했다.
증거도 없으니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면서 자기합리화 했다.
괜한 사람에게 없는 죄를 뒤집어씌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고려해야 했다고 변명했다.
자신의 상상이 지나치다며 망상 취급했다.
그러면서도 그에 관한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아무리 외면하고 또 외면해도 그들은 알았기 때문이다.
시녀장이 제공한 마차를 탄 고아 소녀들은 지옥을 살고 있거나 이미 죽었음이다.
“신께서 뜻이 있어서 저분을 안주인으로 보냈나?”
“그럴 수 있지. 방관만 하는 우리보다 이것을 바로 잡을 누군가가 필요했으니까.”
“무서운 분이지만 적어도 앞으로 ‘의혹’에 의해서 힘들어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나는 좋아.”
“그렇기는 하지. 사실, 시녀장님이 너무 건방지고 무례했잖아. 감히 공작부인께 말이야.”
“엄격하게 보여도 공과 사는 명확하실 것 같아.”
페루제 루비로즈는 몰랐다.
이 일로 시녀장에 의해 희생될 소녀들은 더는 생기지 않을 것임을 말이다.
그녀는 몰랐다.
이 일로 죄책감에 고통스러워하던 고용인들은 마음의 평온을 얻었다.
그들은 고아 소녀들이 지옥으로 더는 가지 않는다는 안도가 준 평온이다.
죄책감이란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만으로 그들에게 페루제 루비로즈는 좋은 안주인이었다.
그날, 공작성 안에서는 작은 소문이 하나 퍼져 나갔다.
“진짜 무서운 분이네.”
“빚도 많아서 지참금도 못 냈다고 들었는데 아니었어.”
“너무 맞아서 죽어가는 사람을 사뿐히 밟고 갔다고 하잖아. 전혀 가엽게 여기지 않았대.”
“그렇게 하려고 미리 수도에서 결혼하고 온 거 아냐?”
“그럴 수 있겠네. 공식적인 안주인이 되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을 다 쓸어버리고 말이야.”
결혼을 먼저하고 공작령에 들어온 것이 다 한 번에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을 쓸어버리기 위함이라는 소문이었다.
실제로 약혼녀와 공작부인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는 차원이 달랐으니까.
고용인들이 동요하며 소란스러웠다.
“어쩌지 그만둬야 하나?”
“그 공작부인 아래에서 버틸 자신이 없어.”
“여기만큼 급여가 좋은 곳도 없잖아. 나는 책임을 져야 할 가족들이 많아.”
“오늘 안에 결정해야 한다고 하는데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시간이 지나 그들에게 선택해야만 하는 때가 도래했다.
“나는 무서워서 도저히 못 있겠어. 다른 곳으로 가야겠어.”
누군가는 두려움에 떠났다.
“여기가 고향인데 떠나서 무엇을 하냐? 조금 엄해지기는 했지만 여기만한 일자리도 없고 말이야.”
누군가는 무서워도 이곳에 남기로 결정했다.
고용인들의 선택이 끝나고 며칠이 지났다.
그들의 동요가 끝나자 공작성은 차분해졌다.
공작성의 바뀐 분위기처럼 그녀의 집무실은 조용했다.
모든 것이 딱딱 만족스럽게 흘러가니 마음이 평온했다.
“안주인으로 이렇게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다니 정말 뿌듯하네.”
“모두가 공작부인의 단호함에 깨달은 바가 많을 것입니다.”
“그래야겠지.”
실리의 맞장구를 들으며 여유롭게 창밖을 바라봤다.
그녀는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고향을 떠나 타국에 있지만, 베로나 공작 가문이 고향인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정말 여유롭네. 하긴 여유도 누려야겠지. 귀족답게 말이야.”
그녀에게 그리움이란 찾아보기 어려웠다.
물론 그립지 않은데 그리운 척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녀는 평소처럼 당당함을 유지했다.
이른 아침부터 차를 마시며 창밖을 보는 것은 라스타 왕국에서도 했던 습관이었다.
한껏 귀족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데 집사가 찾아왔다.
“초대?”
“네. 한 가문의 안주인이 되셨으니 응당 가신의 부인들, 친인척 혹은 그 부인들을 초대해야지 않겠습니까?”
보통 한 가문의 안주인이 된다고 함은 완전히 낯선 사람들, 낯선 환경 속에서 시작하게 된다는 것과 같다.
낯선 환경이야 시간이 흐르면 적응이 된다.
그러나 낯선 사람들과의 관계는 처음부터 틀어지면 그 어떤 일도 제대로 하기 어렵다.
적의를 가진 사람들이 그녀를 방해하고 비방할 테니까.
그래서 보통 안주인이 되면 가신의 부인들, 친인척 혹은 그 부인들을 불러 잘 지내자며 ‘친한 척’을 한다.
그것이 관례였다.
형식적이라고 해도 친해지자고 호의를 보내는 상대에게 악의를 갖는 경우는 드물다.
단, 상대의 격이 너무 떨어지는 경우가 아니라는 가정하에 이뤄지는 것이다.
보통의 경우는 그렇다.
그렇지만 페루제 공작부인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부, 권력, 명예를 모두 가졌다.
남들이 그 사실을 몰라서 문제였지.
“아, 참… 초대가 있었지.”
모두가 만만하다고 여기고 있다.
그런 여인이 공작성에 입성한 지 좀 되었다.
그런데 남들이 생각하기엔 하찮은 존재인 자신이 아직까지 그들을 초대하지 않았다.
공작부인의 초대를 기다리던 부인들은 황당했고 분노했다.
관례를 지키지 않는 무례함이었으니까.
자신들을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초대해 달라고 공작부인에게 말하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
칸나 백작 부인을 위시한 여러 부인은 집사에게 난리를 쳤다.
이를 견디지 못한 집사가 페루제 공작부인에게 말을 꺼낸 것이다.
“하긴 그것이 관례지. 내가 생각을 못 했군. 그대가 말해 줘서 다행이야.”
그녀는 대답과 행동이 반대였다.
집사의 말을 한 귀로 듣고 다른 한 귀로 흘려보내듯이 다시 밖을 보며 차를 음미했다.
생각할 가치조차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내가 허락할 때까지 그 어떤 부인들의 출입도 불가하네. 업무상의 방문이 아니면 그 어떤 방계도 오지 못하게 하게나.”
그러더니 집사는 보지도 않고 눈을 감으며 차향을 맡았다.
생각해 보면 집사가 할 일이 없는 모양이다.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귀찮게 하고 있다.
“그리고 다음부터 내가 따로 말이 없으면 그냥 넘어가게. 그대가 말을 꺼낼 일이 아니야.”
말을 꺼내지 않으면 없다고 생각하고 알아서 칸나 부인과 그 무리의 요구를 잘라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른 이들에게도 전부 전하게나.”
그는 경악했다.
그 어떤 부인도 하지 않을 행동이었다.
가문의 모든 방계와 부인들과 척을 지겠다는 선포였으니까.
“부인! 이렇게 자기 측근이 될 사람들과 척을 지는 안주인은 없습니다!”
집사가 자신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그러자 그녀의 한쪽 눈이 치켜 올라갔다.
찻잔을 우아하게 내려놓고 그를 바라봤다.
엄연히 윗사람인데 그런 자신에게 집사라는 작자가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집사, 그날, 내가 시녀장만 내친 것은 그대가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야.”
집사는 그날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굳었다.
살다 살다 그런 충격적인 일을 눈앞에서 보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오랜 세월 동안 내 남편과 가문을 보필했기 때문이지.”
객관적인 사실만 읊는 듯이 담담한 말투였다.
실제로 시녀장을 때려죽일 때, 집사도 같이 죽일까 하고 잠시 고민했었다.
“자네는 그것 때문에 ‘한 번의 기회’를 얻은 것뿐이야.”
그녀는 가문의 일을 주도적으로 도울 집사를 마치 무생물에 관해 설명하는 것처럼 감정 없이 말하고 있었다.
남편 때문에 죽이지 않은 것인지라 집사의 행동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이미 사라진 그 기회를 믿고 내 머리 위에 있으려고 한다면 나는 어찌해야겠는가?”
그녀는 귀족적이었다.
귀족적이었기에 귀족으로 책임을 다하고 그 권리를 누리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그 권리에는 지배가 있었다.
조언을 가장한 월권은 그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였다.
“내가 그때처럼 못 할 것으로 생각하나? 수도에 있는 남편이 그대를 지키는 것이 빠르겠는가? 아니면 여기에 있는 내가 그대를 벌하는 것이 빠르겠는가?”
집사는 표정이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