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굴복하거나, 죽거나-9화 (9/221)

009화 가문을 장악하다 (2)

그녀가 숙청으로 생긴 빈자리들을 채우고 가문을 안정화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가문을 지키라는 어머니의 유언을 충실히 행했다.

그것은 사명이었으니까.

그녀는 책상에서 서신들을 읽었다.

그것들을 읽고는 깔끔하게 한곳에 모아 놓았다.

그리고는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실리, 루비로즈의 이웃들은 우리 가문이 만만한가 봐. 그러니 나를 자극하는 짓거리를 하지.”

가문이 평온해지니까 외부에서 그녀를 자극했다.

수도나 다른 지역에서는 여전히 그녀는 영애들의 모범인 페루제였다.

그렇지만 남부 귀족들은 그것이 거짓임을 알았다.

이웃이자 적의 상황은 언제나 관심을 갖게 되니까.

이웃 영주들은 여인 따위에게 지배권을 빼앗긴 허접한 가문이 루비로즈라고 조롱했다.

몸을 팔아서 남자들의 도움을 받았을 거란 모욕도 서슴지 않았다.

또한, 병사를 움직여 영지를 위협했다.

그녀는 가문을 지키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

그녀가 단정한 글씨로 서신을 썼다.

그것을 부하에게 건네줬다.

“영지전을 선포하렴.”

그것은 전쟁을 알리는 포문이었다.

남부 귀족들은 평화에 찌들어 나태해져 있었다.

그들이 빈둥거리는 동안, 그녀는 그들에 대해 정보를 수집했다.

“모든 것을 알아 와야 한다. 누구를 만났는지 어떤 말이 오갔는지는 물론이고 그들이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전부 알아야 해.”

영지부터 그들의 식사까지 세세하게 알아냈다.

그들을 먹어 치우기 위함이다.

그들이 현재에 안주하고 있는 동안, 그녀는 변화를 선택했다.

누구도 하지 않았던 변혁을 위해 명령을 내렸다.

“지리에 밝은 자, 힘이 좋은 자, 검술 실력이 좋은 자 누구라도 좋다. 야심이 있다면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루비로즈 가문으로 와라!”

전쟁에 필요한 인재라면 신분과 배경을 보지 않고 대우했다.

그들이 현재에 만족하고 있는 동안, 그녀는 현재에 만족하지 않았다.

“작은 것 하나로 패배가 결정될 수 있다. 무조건 다른 영주들보다 좋은 것들을 준비해라. 무기도, 갑옷도 그들보다 더 단단하고 강해야 한다. 그들보다 좋은 것을 준비할 수 없다면 더 좋은 것을 만들어서 줘야 한다. 이에 관한 투자를 아끼지 마라.”

그녀는 주변 영지의 병사들이 쓰는 무기와 갑옷보다 더 좋은 것을 만들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그들이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 동안, 그녀는 끊임없이 미래를 걱정했다.

“앞으로 왕국의 정치, 경제, 군사 등 여러 분야가 어떻게 될지 계속 주시하고 분석해야 한다. 최대한 많은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여 미래의 향방을 누구보다 먼저 파악해야 한다.”

왕국을 이루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아놓았다.

미래의 정책 계획을 세우기 위한 싱크탱크(모든 학문분야 전문가들이 모여서 조사·분석 및 연구 개발하고 그 성과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집단)를 만들었다.

그녀는 승리를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을 전부 했다.

영지전은 그 노력의 성과를 확신하기에 할 수 있었다.

영지전을 선포했으나 그들은 비웃었다.

“전쟁이 쉬운 일인 줄 아나 봅니다.”

“그러게요. 여인이 할 일이 아니다 보니 모르는 거겠지요.”

그녀를 몰랐기에 할 수 있는 오만함이었다.

그녀는 영지전을 선포하고 곧바로 자신의 계획을 알렸다.

“독을 몰래 강가에 풀어. 사람들이 죽지는 않고 앓아누울 정도로만 말이야. 치료제는 그 영지에 없는 재료로 만드는 것들이니까. 살고 싶으면 밖에 나가야겠고 그러면 영지민들이 알아서 문을 열어 주겠지.”

그녀는 영주를 불신하는 영지의 백성들을 자극하여 스스로 성문을 열도록 유도했다.

군사적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승리할 길이 있다면 망설임 없이 그것을 선택했다.

“마법으로 인위적으로 바람을 만들어 내야겠어.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바람이 불어야 화공을 쓰기 좋으니까. 하급 마법사들이라고 해도 바람 마법을 할 줄 알면 모조리 데려와. 돈을 걱정하지 말고.”

그녀는 지형과 환경이 자신을 돕지 않는다면 마법사들을 이용해서라도 자연을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자연의 이치는 중요치 않았다.

“병으로 죽어 가는 영주와 어린 아들. 그리고 그 영주의 형제들이 있는 영지. 그 형제들이 아무리 사이가 좋아도 내면에 있는 욕망을 감출 수 없지. 영지전 준비로 모두의 시선이 루비로즈 가문에 있는 때야.”

승리를 위해 사이가 좋았던 형제 사이를 갈라놓는 것은 아무렇지 않았다.

“이 틈을 노려서 자신의 형제를 암살하고 조카를 몰아내려고 한다는 소문이 들리게 해. 영지전 하기도 전에 서로 간에 피를 보면 좋지.”

사람 간의 불신으로 내부에 피바람이 불게 했다. 외세의 적과 싸우기도 전에 지키게 하고 쉽게 영지를 점령했다.

준비하고 또 준비했던 루비로즈 가문은 승리했다.

하지만 그녀는 더 큰 계획이 있었다.

“근처 영지에다가도 영지전을 선포하렴.”

“우리가 점령한 영지와 친분이 있었으니 복수할 수도 있어.”

하나의 영지가 점령되고 바로 다른 영지에 싸움을 걸었다.

“기왕 영토를 넓히는데 더 해도 괜찮겠지. 더 나아가라고 해라.”

속전속결로 영지로 밀고 들어오는 군대에 많은 영지가 루비로즈 가문의 것이 되었다.

“여기서 더 하고 싶지만 과한 것은 부족한 것보다 못한 법이지. 이제 충분하다. 돌아오라고 해.”

위기를 느낀 영주들이 연합을 형성하고 제대로 대응하기 전에 그녀는 얄밉게 영지전을 그만뒀다.

남부 알짜배기 영지가 그녀의 손에 들어왔다.

이 일로 루비 로즈 가문은 다섯 손가락에 드는 명문 가문으로 탈바꿈되었다.

영지에서 나오는 곡물과 특산품은 그 규모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다.

그것들은 가문의 자금줄 중 하나가 되었다.

남부를 통솔할 만한 부와 군권을 가졌다.

가문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는 충분했다.

새롭게 생긴 자금줄은 비단 가문만을 위해 쓰이는 것은 아니었다.

영지전으로 인해 피해를 본 백성들의 생활이 다시 안정될 수 있도록 곡식을 베풀었다.

남부 지역의 백성들도 처음에는 소작료가 오르는 등의 불합리한 대우를 받는 것이 아닌가 걱정했지만, 생활은 오히려 나아졌다.

배에 기름때만 낀 귀족들은 다 척결되고 대신 일을 잘 하는 새로운 하급 귀족들이 자리를 채웠다.

그저 영지를 잘 굴리기 위해 한 페루제의 행동은 다른 쪽에도 좋은 인상을 준 것이다.

페루제는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하늘은 루비 로즈 가문에게 준 부와 군사력으로도 부족했던 모양이다.

라스타 왕국에 일부 백성과 군부 세력이 힘을 합쳐 봉기를 일으켰다.

농민들은 농기구를 들었고 병사들은 검을 들었다.

원래라면 각 영지에서 차출된 군사들과 왕실 군으로 진압이 가능했다.

페루제가 이끄는 루비 로즈 가문이라는 변수가 없었다면 말이다.

그리고 봉기는 루비 로즈 가문에는 이득이었다.

봉기 세력들이 무리를 지어서 큰길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 그들 앞에 제대로 갖춰진 갑옷과 무기를 무장한 병사들이 보였다.

그동안 상대했던 자들과 다름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봉기 세력들의 우두머리 격인 사내가 소리쳤다.

“모두 긴장을 늦추지 말되 도망치면 아니 됩니다. 방심하는 것과 도망치는 것 둘 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이뤄 주는 것이에요.”

그들은 긴장하며 누군가는 자신의 농기구를,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무기를 잡은 손에 힘을 줬다.

아름다운 흑발의 여인이 앞장서서 군대를 이끌고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가 그들의 코앞까지 다가와서 말을 멈췄다.

그들을 잠시 내려다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장교들과 백성들이 나라를 위해 움직이는데 우리가 가만히 있어서 되겠는가?”

그녀는 친히 말을 타고 선언했다.

“우리는 여기를 완전히 처리할 테니 수도로 진격하시지요.”

남부 세력이 봉기 세력에 합류했음이다.

만약 그녀가 남부의 군대를 이끌고 그들을 지원하지 않았다면 봉기는 실패했을 것이다.

봉기세력의 리더가 활짝 웃었다.

그도 잘 알았다.

무기도, 숫자도 부족하다.

이대로라면 필패가 확정이다.

죽더라도 죽기 전에 발악은 해 봐야겠다 싶어서 한 봉기였다.

그런데 저 아름다운 여인이 군대를 이끌고 지원을 해주겠다고 하지 않는가!

신이 도움이리라!

이것은 이제 단순한 백성들의 발악이 아니다.

혁명이다!

혁명이란 왕국이 바뀌는 시대의 분기점!

새로운 시대를 알기는 계기!

우리는 눈으로, 피부로 혁명의 성공을 누리라!

“귀족이라면 다 나쁜 놈들인 줄 알았는데 이런 귀족도 있구려. 고맙소. 수도에서 만납시다!”

그들의 봉기를 틈타 그들이 지나간 지역의 귀족들을 몰살했다.

도망가는 귀족들 하나하나 찾아내어 죽였다.

“같은 귀족들끼리 왜 이러는 것이오!”

“살려 주시오! 죽은 듯이 살겠소!”

“아내와 아이들만은 보내 주시오!”

나중에 돌아와서는 재산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면 골치가 아팠다.

귀족들의 애원에도 칼날은 예외 없이 적용되었다.

“귀찮은 일이 생길까 봐 걱정하는 것보다 없애고 마음 편히 있는 것이 좋지.”

이제 그들의 재산은 남부의 것이며 페루제 영애의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녀는 12살 이하의 아이들은 죽이지 않았다.

단지 어딘가로 데려가도록 했는데, 지금으로서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것을 빼앗기지 않는다.

라스타 왕국의 권력 판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봉기에 참여했던 백성 무리의 간부, 군부, 남부 귀족이 권력의 중심이 되었다.

비워진 귀족의 자리는 백성 무리의 간부들과 봉기를 도왔던 장교들이 차지했다.

그들은 권력의 상징이라고 하는 귀족이 되었다.

그들은 다른 백성들에게 그 불만을 고스란히 가져다줄 것이다.

페루제 루비로즈의 덕분에 봉기를 성공시킨 그들은 왕국의 국정 운영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왕국 회의장은 난장판이었다.

왕과 그 가족들은 왕궁에 감금된 상태로 있다가 풀려났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그들을 죽이고 새로운 왕을 세워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우리가 봉기하게 한 원흉인 왕을 살려 두라니요!”

“어허! 국왕 폐하를 죽인다는 것은 아니 될 말이네.”

“지금 왕을 살려 두면 저희 혁명은 반쪽짜리가 될 것입니다!”

백성들을 위해 일어났다면서 정작 그들은 백성에 대해 말을 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봉기를 더 값지게 만들기 위해서 국왕을 죽이기를 원했다.

솔직히 국왕이 그들에게 잘못한 것은 없었다.

그들이 살던 영주들이 잘못한 것이지.

처음부터 대다수에게 지지를 받고 시작한 일이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현왕의 사형은 지금 새롭게 권력을 잡은 작자들이 죄 없는 왕을 죽이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짓이었다.

서로가 개처럼 짖는 모습이 참으로 잘 보였다.

그녀는 라스타 왕궁 회의실에서 곧은 자세로 앉아서 말했다.

“이번에 성공했지요. 그렇다고 왕족들을 저희 마음대로 죽이는 것은 부담이 큽니다.”

나라 전체가 불만을 품었던 것이 아니다.

남부 귀족들과 일부 군부 장교들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봉기였다.

작은 영지에서의 일로 끝날 봉기는 페루제 루비로즈가 왕국을 흔들 혁명으로 만들어 놓았다.

회의실 안의 모든 사람이 한 사람에게 집중했다.

“지금은 숨죽이고 있지만, 저희를 인정하지 않는 이들도 많으니까요. 괜히 빌미를 줘서 좋을 건 없죠.”

그녀의 의견은 타당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권을 잡았다고 해도 너무 강경하게 나서다가는 역공을 당할 수 있었다.

“대신에 폐하께서 태자께 양위하도록 하죠. ‘나라의 변화’를 알리는 데 공포보다는 효과가 좋을 거예요.”

평민에서 귀족이 된, 일반 장교에서 권력자가 된 그들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왕궁까지 왔다고 주장했다.

갑작스러운 죽음들에 두려워하는 백성들을 다독여야 했다.

그것을 진실로 만들어야 하니까.

갑자기 얻게 된 권력은 사람을 타락하게 했다.

그녀의 뜻이 받아들여지면서 회의는 끝났다.

쓸데없는 이야기로 시간을 낭비하는 그들을 슬쩍 비웃으며 그녀가 제일 먼저 회의장을 나섰다.

“웃기는군. 귀족에게 불만을 품고 일어난 사람들이 결국 귀족이 되지 않았는가.”

그녀는 홀로 나서면서 혼잣말을 했다.

귀족들은 하루아침에 바뀐 세상에 당황스러워했다.

군이라도 움직이고 싶었으나 이미 늦었다.

왕은 양위했고 새로운 왕은 그들의 봉기를 인정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신들도 그리할 수 있다는 욕망에 다른 지역에서도 봉기하려는 시도가 늘어났다.

그들은 새로운 세상에 적응해야 했고 가진 것을 지켜야 했다.

이를 위해 새롭게 권력층이 된 파벌들을 견제해야 했다.

자신들의 구심점이 될 리더가 필요하다.

그들은 그 사실을 절실히 느꼈다.

살아남은 귀족들은 은밀히 모여서 의논을 나눴다.

“아쉽게도 우리 하나 건사하기 힘든 상황이에요. 각자 영지에 발생한 봉기 때문에 힘들지 않았습니까?”

“진압을 하기는 했지만 불안하기는 하죠.”

“수도에 남아서 그들 사이를 비집고 자리를 지켜야 했는데 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들은 갑작스러운 권력 변화에 적응할 틈도 없이 영지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수도를 떠나야 했다.

왕국의 권력층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난 것과 같았다.

자기 자리에 대해 항의조차 하지 못하고 빼앗긴 것이었다.

“이런 우리를 수도에 다시 입성시켜주고 힘을 줄 리더가 필요합니다.”

“이번 봉기로 이득을 보고 권력을 얻게 된 귀족 가문들에게 손을 뻗어야겠지요.”

한 귀족이 한숨을 쉬었다.

처음부터 답이 나와 있는 것을 가지고 이러는 것이 한심했기 때문이다.

“남부 귀족 가문 중에서 선택해야 하는데 답은 정해져 있는 거 아닌가.”

의욕이 넘친다고 해도 각자 다른 방향으로 향한다며 서로에게 피해만 줄 뿐이다.

그리고 그 리더는 페루제 영애였다.

고심할 필요도 없었다.

남부의 지배자는 루비 로즈 가문이었고 그 가문의 주인은 페루제 영애였으니까.

비록 여러 귀족 가문을 멸문시키는 데 일조했지만, 귀족들은 그녀의 알량한 호의가 절실했다.

“그거야 그렇죠.”

“대체할 인물이 없으니까요.”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남부뿐 아니라 타 지역의 귀족 세력까지 자기 아래에 두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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