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사 연예인이 되다-236화 (236/236)

# 236

Epilogue

2029년 4월 1일 일요일

서울 강남에 있는 고급 호텔의 한 연회장에서는 돌잔치가 한창 벌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갑자기 입구 쪽을 바라보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 영화감독 강수빈이다!

- 어머! 여전히 너무 멋지다.

- 꿈 깨라. 이미 품절남이야.

수빈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돌잔치 중인 아기의 가족석으로 걸어갔다.

"여어. 왔는가?"

60대 중반에 들어선 박사장이 수빈을 보며 환하게 웃으며 손을 치켜들었다.

"죄송합니다. 손자 돌잔치라고 하셔서 하던 촬영을 접고 서둘러서 오긴 했는데.. 비행기가 연착하는 바람에 좀 늦었습니다."

"샛별이는 어떡하고 혼자 온 거야?"

"지금 LA에 있습니다. 몸이 너무 무거워서요. 저 혼자 왔습니다."

"그래? 언제 출산이지?"

"한 달도 안 남았습니다."

"아들이야? 딸이야? 병원에서 알려줬을 거 아닌가."

"딸이라고 하더군요."

"이제 곧 애 아빠가 되겠군. 축하하네. 그리고.. 얼마 전 아카데미에서 4번째 감독상을 수상한 것도 축하하고."

"감사합니다. 이제 좀 덤덤하네요. 하도 자주 받아서요."

"남들이 알면 욕먹을 소리를 잘도 하는군. 근데.. 난 언제 풀어줄 건가?"

"5년만 더 일하시죠. 그럼 제가 놓아드리겠습니다."

"이봐. 강이사. 5년 뒤면 내가 칠순일세. 고희연을 열어야 하는 나이라고."

"아직 정정하시잖습니까? 제가 약수도 꼬박꼬박 잘 챙겨드리고 있고요. 좀만 더 현역으로 있으시죠. 5년 후면 제 목표가 달성될 겁니다."

"작년에 훌루가 결국 넷플릭스를 잡아먹었잖아? 자네가 훌루 쪽에만 독점적으로 작품을 공급하는 바람에 말이야. 강이사가 훌루의 최대 주주라고 들었는데.. 아직도 모자란가?"

"모자라죠. 올해 뱅상 회장의 주도 아래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합병에 성공해서, 미국에서 제가 활동하기가 더없이 편해지기는 했지만.. 디즈니는 아직도 멀었습니다."

"내 생각에는 지금으로도 충분한 거 같은데.."

"애니메이션 쪽도 반드시 먹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계 엔터테인먼트 시장을 완전히 제 손아귀에 넣어서 쥐락펴락할 수 있어요. 앞으로 넉넉잡고 5년이면 충분합니다. 그때는 제가 틀림없이 놓아드리겠습니다."

"다 좋은데.. 난 언제 놀러 다니냐고? 5년 뒤면 기력이 떨어져서 세계 여행할 힘도 없단 말일세."

"거짓말을 하시는군요. 제가 척 보면 압니다."

"후우.. 알았네. 최대한 힘을 써주게나. 자네와 함께 하는 피 끓는 모험을 즐기는 게 신나는 일이긴 하지만, 이제는 좀 쉬고 싶다고. 강이사. 나도 이제 많이 늙었어."

"제가 노력하겠습니다."

"그래. 바쁠 텐데 이렇게 와줘서 고맙네. 온 김에 뭐라도 좀 먹고 가게나."

"그러죠."

수빈이 돌잡이를 준비하고 있는 아기를 보며 말했다.

"저 친구가 빨리 커야 박사장님 소원이 이루어지겠군요?"

"그러게. 손자를 무릎에 앉혀놓고, 강이사가 만든 영화를 같이 보면서 자랑하는 게 소원인데 말이야. 언제쯤 같이 볼 수 있으려나."

"뭐 금방이죠. 5년 뒤면 충분히 같이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박사장 손자 돌잔치에 참석했다가 수빈은 다시 영화제작을 위해 미국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LA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수빈은 꿈을 꾸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 자신의 불치병을 치료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 황궁 서고에서 정화(鄭和)가 해외 원정을 마치고 가져온 책들을 살펴보고 있는 중이었다.

희미한 등잔불 속에서, 책상에 앉아 빠르게 책을 훑어보던 수빈이 갑자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콜록. 콜록."

힘겹게 마른 기침을 내뱉던 수빈이 중얼거렸다

"아버지가 황궁에 제갈세가 비전의 진(陳)을 설치해주는 대가로 얻은 소중한 기회야. 나에게는 남은 시간이 얼마 없어."

수빈은 자신이 보고 있던 책에 다시 집중하였다.

'공공회회록(空空回回錄)? 마라티어로 적힌 거 보니 정화 대장군이 인도에서 수집해 온 책같 은데. 돌고 또 돈다라..'

잠시 더 책을 살펴보던 수빈이 실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건 그냥 윤회와 환생에 관련해서 적어놓은 잡서에 불과하군. 나에게 필요한 건 내 병을 치료할 의학 서적이라고."

그 순간 수빈이 기침을 격하게 하기 시작했다.

"콜록. 콜록. 컥. 커억.."

수빈이 각혈을 토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겨우 기침이 진정된 수빈이 중얼거렸다.

"피를 토하는 거 보니 벌써 약 먹을 시간이 지났나 보군."

약을 챙겨 먹기 위해 수빈은 책상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 수빈이 황궁 서고를 나설 때였다.

수빈의 피가 튄 공공회회록이 파란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비행기 속에서 꿈을 꾸던 수빈은, 그 모습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지켜보고 있었다.

놀라 꿈에서 퍼뜩 깬 수빈이 중얼거렸다.

"설마.. 그 책 때문에 내가 환생한 건가? 아니겠지. 그냥 단순한 나의 상상일 뿐일 거야."

수빈이 다시 천천히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언젠가 영화 소재로 쓰면 좋겠군."

수빈이 다시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