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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연예인이 되다-232화 (232/236)

#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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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래미에 노미네이트되었다는 건 알고 계시죠?"

수빈의 질문에 제임스 코든이 호들갑을 떨었다.

"그럼요. 당연히 알고 있죠. 무려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제가 왜 여기를 가장 먼저 출연했는지 답이 나오지 않나요? 전통적으로 그래미는 CBS에서 중계를 맡아왔습니다. 올해도 마찬가지라고 하더군요."

"오우. 이 바닥의 의리가 뭔지 잘 알고 계시는군요."

수빈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그래야 의리를 봐서라도 1개라도 주지 않을까 해서요. 그걸 노리고 나왔습니다."

"겸손이 과하시군요. 제 친구들 중에 강수빈 감독의 앨범을 구매하지 않은 친구는 단 한 명도 못 봤습니다. 아무쪼록 그래미에서 좋은 결과가 있으시길 바랍니다. 그럼 이제.. 시청자분들을 위해 재미있는 테스트를 좀 해볼까 하는데요. 괜찮으시겠습니까?"

"테스트? 어떤 테스트를 한다는 말입니까?"

"저희 쪽에서 수집한 정보로는 강감독이 암산을 그렇게 잘하신다고 하시더군요. 절대 음감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도 있고요. 암기력도 무시무시하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테스트를 하시려는지 대충은 알겠군요. 근데.. 그냥은 안됩니다. 저도 조건이 있습니다."

"말씀해보시죠. 어떤 조건입니까?"

수빈이 코든을 가리키며 말했다.

"폴 포츠의 환상적인 노래 솜씨를 들어보고 싶군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제가 팬이라서요."

수빈이 방청석을 바라보며 가볍게 박수를 치며 호응을 유도했다.

- 짝짝짝짝.

방청객의 열띤 박수 속에 제임스 코든이 목청을 가다듬은 다음 말했다.

"원하시니 하긴 하겠는데.. 아마도 다들 후회하실 겁니다."

잠시 후 코든의 노래가 끝나자 이마를 잔뜩 찌푸린 수빈이 중얼거렸다.

"이건 사기야."

"이런.. 제 노래 솜씨가 별로라는 걸 잘 모르셨나 보군요?"

"원챈스 영화의 음향 엔지니어가 어떤 분인지 좀 만나봐야겠네요. 영화를 보면서 깜쪽같이 속았습니다."

"능력 있는 친구죠. 나중에 따로 제가 연락처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스카우트를 하셔도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그럼 이제 테스트를 해봐도 될까요?"

수빈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약속은 지켜야죠."

잠시 후 일단의 테스트가 다 끝난 후, 스튜디오 전체에 묘한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방청객들의 눈빛에는 경외감마저 떠올라 있었다.

도저히 믿지 못할 광경을 목도한 사람처럼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던 코든이,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 고개를 황급히 흔들었다.

"이건 잘하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걸로 보이는데요. 사람의 능력으로 가능한 겁니까?"

"암산이나 암기는 누구나 훈련으로 가능합니다. 하지만 음감은 좀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 하죠. 그래도 훈련을 통해서 어느 정도까지는 가능합니다."

"훈련으로 그게 가능하다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서슴없이 하시는군요. 전 백 년을 훈련해도 강감독님 반에 반도 못할 거 같습니다."

수빈이 빙긋 웃으며 대꾸했다.

"그건 훈련을 열심히 안 하셔서 그런 거고요."

코든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저희 제작진에서 문제를 난이도 별로 5단계로 나누어서 준비했는데.. 설마 다 맞출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겁니다. 끽해야 2~3단계에서 끝날 걸로 생각했을 거예요. 제가 장담할 수 있습니다."

"그냥 잔재주일 뿐이죠."

잠시 후 겨우 정신을 차린 코든이 질문을 이어나갔다.

"그럼 이제 제 친구가 물어봐달라고 부탁한 질문을 하겠습니다. 그 친구는 하버드에서 문학과 관련해서 교수 생활을 하고 있는 친굽니다. 그 친구 말로는, 라이프나 헤이즈가 빅 히트를 친 이유 중에 하나가 자막에 있다고 하더군요. 자막 그 자체만으로, 한편의 문학 작품이라고 불러도 손색없을 정도로 유려하고 뛰어나다고 평을 했습니다. 강감독 본인이 직접 자막 작업을 하셨겠죠? 어떤 방식으로 자막 작업을 했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수빈이 고개를 끄덕인 후 대답했다.

"제가 직접 한 게 맞습니다. 제가 특정 언어의 자막을 작업할 때는, 그 언어를 쓰는 나라의 문학 작품을 많이 참고해서 합니다. 영어의 경우에는 미국 작품을 참고해서 하고 있죠. 워렌, 윌버, 네머로브, 스트랜드, 브로드스키, 얼마 전에 작고한 도널드 홀까지.. 그분들의 훌륭한 작품들은 거진 다 외우고 있습니다."

"잠시만. 잠시만요. 지금 말씀하신 분들이 누구시죠? 전 처음 들어봅니다만.."

수빈이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요? 미국의 역대 계관시인들입니다."

"아. 계관시인. 그렇군요. 제가 그쪽으로는 문외한이어서.. 계속 설명해 주시죠."

"훌륭한 시인들의 작품들은 주로 참고만 하죠. 가장 기본 토대가 되는 건, 그 나라의 대중적인 소설가의 문체입니다. 그걸 많이 참고해서 작업을 하죠. 영어 자막일 경우에 제가 가장 많이 참고한 소설가는.. 마크 트웨인입니다.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왕자와 거지 같은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구하나 빠지지 않고 다 외우고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해서.. 제가 직접 자막 작업을 한 겁니다."

눈이 휘둥그레진 코든이 질문을 하려고 하자 수빈이 손을 들었다.

"더 이상의 테스트는 사양하겠습니다. 아무튼, 그런 문학 작품들을 참고로 해서 자막을 읽기 쉽고, 이해도 쉬우면서, 문장이 촌스럽지 않고, 유려하고 부드럽게 흘러나가도록 노력을 많이 기울이고 있습니다. 아마 그 교수님이 그런 부분을 캐치하지 않으셨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코든이 마치 자기 자신에게 독백을 하듯 중얼거렸다.

"마크 트웨인이라니.. 제가 강감독의 영화 자막을 보면서 익숙하면서도 그리운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 이유를 몰랐는데.. 오늘에야 알게 되었군요. 제가 어렸을 때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열 번 이상 읽었거든요. 그래서 익숙하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마크 트웨인이 세상을 뜬지 100년이 훌쩍 넘어갑니다. 영어로 된 자막을 작업하기 전에, 저 스스로 상당히 많은 고민을 했었습니다. 과연 미국인들의 마음속 가장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소설가가 누구일까? 해리 포터의 조앤 롤링? 반지의 제왕을 쓴 톨킨? 그것도 아니면 어니스트 헤밍웨이? 수많은 훌륭한 소설가들이 있습니다만, 저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허클베리 핀과 톰 소여를 탄생시킨 마크 트웨인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가장 많이 참고를 했습니다. 물론 전적으로 제 개인적인 판단일 뿐입니다. 아무쪼록 오해는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군요."

"그랬군요. 좋습니다. 그럼 이번에 또 다른 친구가 물어봐달라고 한 질문을..."

성공적으로 방송 출연을 끝마친 수빈은, 다시 공연에 참가하기 위해 곧바로 LA로 날아갔다.

1월 10일 목요일

전미 투어 도중 면접을 위해 한국으로 날아온 수빈은, 다른 수험생들과 함께 S대학 경제학과 면접장에 앉아 있었다.

"강수빈군이 경제학과에 지원한 이유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자신을 지목한 반백의 머리를 한 면접위원의 질문에, 수빈이 가볍게 목을 가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경제. 제가 경제라는 단어가 경세제민의 줄임말이라는 걸 알면서 받은 충격이 상당했었습니다. 경세제민(經世濟民). 말 그대로 세상을 잘 다스려 만백성을 가난과 고통에서 구제한다는 뜻입니다. 이건.. 예전 세상의 제왕학(帝王學)과 진배없습니다. 옛날 같으면 왕족 또는 고관 대신들이나 배울 법한 고급 학문인 거죠. 이런 학문을 현세에서는 평범한 일반인들이 대학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잠시 심호흡을 한 수빈이 말을 이었다.

"이 시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어떤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걸까? 과연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경영하고자 하는 걸까? 도대체 무슨 수단을 사용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가난에서 구제하겠다는 걸까? 마음속에서 수많은 궁금증들이 도미노처럼 생겼습니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그런 뛰어난 학문이 있다면, 저도 공부를 해보기로 말입니다. 제가 생각한 지원동기가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모르겠군요."

면접위원이 감탄 어린 표정으로 대꾸했다.

"경제학과 교수 생활 20년 동안 들어본 지원동기 중에 가장 멋지군요. 매번 점수가 어떻고, 부모님이 어떻고, 취업이 어떻고, 적성이 어떻다는 소리들만 들어왔었는데.. 강수빈군이 수능을 만점 받았다고 하셨죠?"

"네. 운 좋게도 만점을 받았습니다."

"그럼 무난히 합격을 하겠군요. 경제학과의 학과장으로서, 강수빈군의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환영하는 바입니다. 경세제민의 길이 어떤 건지 같이 한번 고민해 봅시다."

면접을 마치고 나온 수빈은 곧바로 미국으로 다시 날아갔다.

1월 19일 토요일

1월 15일 뉴욕 공연을 마지막으로 전미 투어를 무사히 끝마친 수빈은, 며칠째 센트럴파크 인근에 있는 뉴욕 플라자 호텔에 묵고 있었다. 수빈은 늦은 저녁 시간에 자신을 방문한 뱅상 회장과 함께 거하게 술을 마시고 있는 중이었다.

뱅상 회장이 술이 취했는지, 아까부터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미안하네. 나름 힘을 썼지만.. 3개밖에 못 타게 되어버려서 말이야."

수빈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또 그러시네. 몇 번이나 말씀드려야 합니까? 3개면 충분히 만족한다고요. 미국에서 제대로 활동도 안 했는데 이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죠. 체면치레로 덜렁 하나만 주면 어떡하나 걱정했었는데.. 이 정도만 해도 선방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얼큰하게 취한 뱅상 회장이 목에 힘을 잔뜩 주며, 주먹을 움켜쥐고서 흔들어댔다.

"그래도 본상 중에 하나인 올해의 레코드상을 수상했다고. 나머지 자잘한 상들 다 합쳐도 이거 하나만 못하단 말일세."

"그렇죠. 그래서 제가 말씀드렸잖습니까?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고요. 이제 그만 좀 하시죠. 혹시 주사가 그런 겁니까?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고.."

수빈의 말을 무시하며 뱅상 회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뭐든 처음이 힘든 법이지. 다음부터는 수상이 더 쉬워질 거야."

"네. 기대하겠습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뱅상 회장이, 갑자기 수빈 쪽으로 허리를 숙였다. 그러더니 마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한다는 듯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강감독. 강감독과 약속한 걸 이 뱅상이 결국 지켰다고. 물론 이게 다 강감독의 능력 때문이긴 하지만.. 나도 힘을 적잖이 많이 썼단 말일세. 내 공로도 분명히 있다고."

덩달아 허리를 숙인 수빈이. 마치 뱅상 회장을 어르듯 분위기를 적당히 맞춰가며 대꾸했다.

"물론이죠. 제가 그래서 감사하다고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습니까. 결과가 드디어 나온 모양이죠? 역시 대단합니다. UMG 회장 정도 되면 미리 결과를 알 수 있나 보군요."

"당연하지. 이 뱅상이 누구라고 생각하는 건가? 이 정도 능력은 당연히 가지고 있다고. 그리고.. 발표가 이제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잖아? 이때쯤이면 결과가 다 나와있지. 누가 힘을 쓴다고 결과를 뒤집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기쁜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왔다네."

"그럴 줄 알았습니다. 이 밤중에 회장님이 절 찾아올 일이 그것밖에 없을 테니까요. 이제 속 시원하게 결과를 말씀해 주시죠."

허리를 다시 펴며 어깨에 힘을 잔뜩 준 뱅상 회장이 말했다.

"비밀일세. 그래야 재밌지."

수빈이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 말도 벌써 3번째 하고 있는 거라는 걸 부디 알고 계셨으면 좋겠군요. 오늘 술이 많이 과하셨어요."

"오늘 같이 기쁜 날은 마셔야지. 암. 마셔야 하고 말고."

"아무튼 기대는 해봐도 된다는 말씀이시죠?"

"당연하지. 안 그럼 내가 이리 기분이 좋을 리가 있겠나?"

"알겠습니다. 이제 그만 마시고 돌아가시죠. 밤이 늦었습니다."

"왜? 좀 더 마시자고. 오늘 같은 날 코가 삐뚤어지게 마셔야 할거 아닌가."

"내일 제가 그래미 수상식에 참석해야 합니다. 잊은 건 아니시겠죠? 술 냄새를 풀풀 풍기고 참석하면 사람들이 욕합니다. 다음에 제대로 한번 마시죠. 제가 모시겠습니다."

더 마시지 못해 못내 아쉬워하는 뱅상 회장을 배웅한 수빈이 중얼거렸다.

"질긴 양반이야. 술이 취한 상태에서도 끝끝내 알려주지 않고 가는군."

1월 20일 일요일

수빈은 뱅상 회장이 보내준 리무진을 타고서, 맨해튼 한복판에 위치한 매디슨 스퀘어 가든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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