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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연예인이 되다-231화 (231/236)

# 231

71 - 1

1월 5일 토요일

LA 다운타운 인근에 있는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

스테인리스 스틸로 건물 외각 전체를 뒤덮어, 반사된 햇빛 때문에 지켜보는 사람의 눈을 부시게 만드는 LA 명물 중에 하나이다. 주변 온도를 상승시킨다고 가끔씩 욕을 먹기도 하는 이 건물은, 건물 전체가 활짝 핀 장미꽃을 연상시키는 형상으로 설계되어 외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건물이기도 하다.

디즈니 콘서트 홀 바깥 도로변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볼 정도로 수려한 외모를 가진 두 명의 동양인 남자가 어깨를 얼싸안으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두 남자가 어깨동무를 한 채 근처 카페로 들어가자, 다수의 사람들이 황급히 그 뒤를 쫓아갔다.

"오랜만이야. 미국에서 공부는 잘하고 있는 거야?"

자리에 앉으며 던진 수빈의 질문에 마빈이 환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잘 하고 있었지. 근데 친구라는 인간이 말이야. 자기가 미국에서 콘서트를 한다며, 내 이름을 자기 멋대로 출연자 명단에 올려놓았지 뭐야. 그 인간 덕에 당분간 공부를 못하게 생겼다고."

"리더가 까라면 까야지 말이 많군. 아직 탈퇴도 안 한 주제에 말이야."

"탈퇴는 절대로 안 된다며 뜯어말린 인간이 잘도 떠드는군. 근데.. 공연을 월트 디즈니 홀에서 꼭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거야?"

"왜? 건물이 아름답지 않아? 특이하기도 하고 말이야."

수빈의 물음에 마빈이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대꾸했다.

"내가 사는 곳이 어디라고 생각하는 거야? 설마 내가 디즈니 홀이 아름답다는 걸 몰라서 물어보는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렇긴 하겠군."

마빈이 턱짓으로 카페 창밖을 가리켰다.

"뮤직 센터도 바로 옆에 있는데 왜 디즈니 홀에서 공연을 하는 거야? 디즈니 홀은 좌석 숫자가 얼마 안 된다고.."

"뮤직 센터? 그 사각형 멋대가리 없는 건물? 이래 봬도 내가 심미안이 높은 사람이라고. 그리고 디즈니 홀이 좌석이 적다는 건 나도 사전에 알고 있었어. 맥시멈 2,500석밖에 안된다더군. 그 바람에 사람들이 표를 못 구해서 난리도 아니라고 듣긴 했어."

"그러니까 말이야. 팬들을 위해서라도 좀 큰 곳을 잡지 그랬어?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2만 5천 석 규모의 스테이플스 센터도 있는데.. 2천5백 석이면 규모가 너무 작다고."

"이봐. 지금은 NBA 시즌이라고. 스테이플스 센터를 빌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아. 그렇군. 내가 농구팬이 아니라서 깜빡했네."

"미국 콘서트 투어를  LA에서 시작한다는 기획서를 봤을 때, 내가 기획팀에게 요청한 건 딱 두 가지였지. 음향 시설이 LA에서 가장 훌륭한 곳 그리고 콘서트 장소가 영상으로 담았을 때 아름다울 것. 그렇게 말했더니 이곳을 추천하더군."

"그럼 여기가 맞긴 해.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주공연장이 여기니까 음향 시설이야 완벽하지. 외관이야 뭐 원래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니까.. 그래도 규모가 너무 작은데.."

"마빈. 이번 미국 콘서트는 공연 수익을 내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야. 내가 그래미에서 상을 받을 위해, 미국에서의 나의 인지도를 끌어올리기 위해서 하는 거라고. 그리고 각 방송국에 뉴스 보도 자료로 오늘 한 공연 실황 영상을 돌릴 계획이야. 규모보다는 그림과 음질이 더 중요해. 그리고.. 개업 첫날에는 자리가 없어서 미어터지는 게 다음을 위해서 더 좋아."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는데.. 미국에 거주하는 나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소리를 하고 있군."

수빈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내가 한 말 중에 뭐가 납득이 안된다는 거야?"

마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일단 뭐라도 한잔 마시자. 아메리카노 한잔 어때?"

"커피? 좋지."

"내가 주문을 할 테니 앉아 있어봐."

잠시 후 주문을 하는 카운터 앞에서, 자신이 자리를 뜨자마자 몰려든 팬들 사이에서 진땀을 흘리고 있는 수빈을 바라보며 마빈이 기가 차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지명도가 없기는 개뿔.."

주문한 커피를 들고 자리로 다시 돌아간 마빈이 말했다.

"어이. 미국에서 지명도 높은 인기인. 이제 현실을 알겠어? 헤이즈는 라이프와 차원이 다른 영화라고. 영화를 감상한 관객 숫자 자체도 차이가 나고, 보는 연령대도 차이가 난다고. 라이프가 아무리 명작이고 흥행에 성공했다고 하지만, 미국에서의 주된 관객층은 중장년층이었어. 앞날이 구만리 같은 젊은 친구들이 불치병 환자 이야기에 관심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하지만 헤이즈는 전혀 다르지. 미국에 거주하는 어지간한 젊은 친구들은 다 관람했을걸? 이미 미국 내의 거의 모든 연령층의 사람들이 널 알아본다고. 네 지명도는 이미 하늘을 찌르고 있단 말이야."

마빈이 커피를 들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라이프 때야 네가 비쩍 말라비틀어져서 다 죽어가는 모습을 주로 보여줬잖아? 그러다 보니 영화를 관람한 사람들이 널 잘 못 알아볼 수도 있었겠지만.. 헤이즈는 아니지. 처음부터 끝까지 멀쩡한 모습이었잖아? 영화를 관람했던 사람이라면 널 금방 알아볼 수 있어. 아까부터 사람들이 우리 쪽을 힐끔거리며, 네가 혼자 남을 때만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몰랐어?"

"너랑 나랑 얼굴이 잘 생겨서 쳐다보는 줄 알았지."

"널 보자마자 다들 한눈에 알아봤을 거다. 단지 나랑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사인을 요청하면 매너에 어긋나니까, 다들 꾹 참고 있었던 것뿐이라고. 인지도를 쌓니 마니 그딴 쓸데없는 소리는 집어치워. 넌 이미 미국인들에게 셀럽 중에서도 최상급 셀럽으로 자리 잡았으니까. 알아듣겠어? 이 멍청한 천재 영화감독아."

이해했다는 듯 수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예전과는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는 걸 내가 미처 인지 못했어. 콘서트를 계획했던 게 헤이즈 개봉 전이라서 말이야. 미국에 도착해서는 밖을 돌아다녀 본 적이 없어서, 내가 제대로 알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도 했고.."

"이제라도 알면 됐어. 근데.. 디즈니 홀을 용케도 빌렸네? 거기는 너 같은 셀럽이 부탁한다고 해도 막 빌려주고 그러는 곳이 아닌데 말이야."

"내가 제작한 작품이 훌루에 독점으로 올라가잖아. 훌루는 디즈니와 관련이 있고.. 이 정도도 못 빌려주면, 내가 가만 놔두지 않지."

"오우.. 이번 발언은 잘 나가는 세계적인 영화감독 다운 발언이었어."

어깨를 으쓱한 수빈이 대꾸했다.

"내가 잘 나가기는 하지."

"알았다고. 근데.. 왜 콘서트 홀 밖에서 보자고 한 거야?"

수빈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석권하기 위한 내 계획의 마지막 방점이 바로 네가 운영할 방송국이다. 한국 영화계야 이미 내가 먹었다고 봐야지. 음악계도 YK가 국내 탑으로 올라섰으니 두말할 필요도 없고. 남은 건 이제 방송국 뿐인데.. 네가 귀국했을 때 방송국을 제대로 운용하기 위한 두 가지 안건이 있다. 하나는 네가 맡을 방송국 책임자를 추천하기 위해서다. 내가 아주 쓸만한 인재를 발견했거든."

"네가 추천하는 인재라면 믿을 수 있지. 누구야?"

수빈이 명함 하나를 건네주며 말했다.

"KBC에서 일하고 있는 박지영 피디. 능력이 뛰어나고 머리가 잘 돌아가는 약아빠진 여자야. 처세술도 밝고 센스도 좋아. 더 중요한 건 욕심이 많은 여자라는 거지."

"다 좋은데.. 욕심이 많은 건 안 좋은 거 아닌가?"

"이봐. 넌 이익을 추구하는 사업가가 될 사람이지, 공무원이나 위정자가 될 건 아니잖아? 욕심 없는 사람만큼 다루기 어려운 사람은 없어. 무욕염담(無慾恬淡)인 자는 가장 기피해야 하는 부하직원이야. 적당히 욕심도 있고 명예욕도 있어야 다루기가 편해. 무슨 말인지 알겠어? 이 여자에게 높은 직위와 함께 돈을 듬뿍 안겨 주라고. 그러면 말 안 해도 최선을 다해서 자신이 맡은 일에 매진할 거야. 방송국이 씽씽 잘 돌아가게 해줄 둘도 없는 인재라고."

"오케이. 이해했어. 다른 하나는?"

"권력을 가지려는 암투는 내가 지겨울 정도로 지켜봤다. 부모 자식 사이에서도 나누지 않는 게 권력이지. 형제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고. 네가 할아버지 덕분에 방송국을 물려받는다고 해도, 네 할아버지가 죽는 그날부터 다른 형제들이 네 자리를 노리고 덤벼들게 뻔해. 형제들 중에 네가 가진 기반이 가장 약하니까.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겠지."

"그럴 테지. 대책은?"

"내가 돈을 아주 많이 벌었다는 건 알고 있겠지? 내가 다른 형제들 회사의 주식을 적당히 매입해서 가지고 있어 주마. 널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게 말이야. 다른 형제들의 가장 취약한 곳, 아킬레스건이 될만한 회사의 주식 명단을 작성해서 내게 넘겨줘. 방송국이 충분히 안정될 때까지, 내가 너의 방패막이 되어줄 생각이다."

"무슨 뜻인지는 알겠는데.. 굳이 그걸 내게 물어볼 필요가 있나? 그냥 주식시장에서 사면 되는 거 아닌가?"

"이런 건 그룹 내부의 사정을 잘 아는 자가 추천하는 주식을 사야만 되는 거야. 그룹 내부에서 힘의 역학 관계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의 조언이 필요해. 외부로 드러난 정보만을 믿고 샀다간 낭패를 볼 수도 있어. 빛 좋은 개살구일 수도 있으니까. 어떤 주식이 핵심적인 주식인지 네가 알아봐 줘. 그 정도는 해낼 수 있겠지?"

"알았어. 내가 조사해봐서 알려주지. 근데.. 수빈이 네가 유달리 서두른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이런.. 군 면제자 주제에 어찌 군 입대를 앞둔 남자의 마음을 이해하겠냐.. 올 상반기에는 브로드웨이에 뮤지컬을 올리는 작업과 학교생활만으로도 정신이 없을 거야. 그런 다음 곧바로 군 입대라고. 군대 가기 전에 국내 기반을 완전히 다져놔야 할거 아냐? 그래야 제대 후 본격적으로 세계시장에 뛰어들지."

"흠. 알았어. 군대 잘 다녀오라고. 내가 위문편지는 써주도록 하지. 그럼 오늘 저녁에 멤버들과 다 같이 술 한잔하는 건가?"

"아쉽지만 오늘은 안돼. 공연이 끝나면 바로 뉴욕으로 날아가야만 해. 내일 점심에 뉴욕에서 방송 출연이 잡혀 있어. CBS의 더 레이트 레이트 쇼에 나가야 해."

"제임스 코든의 토크쇼에 나간다고? 그럼 그냥 평상시 네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면 될 거야. 까칠하고 싹수없고 뒤끝 작렬인 네 본연의 모습 말이야. 인지도 따위를 신경 써서 굽신거릴 하등의 이유가 없어. 그 친구가 코미디 배우 출신이라 짓궂은 면이 좀 있어서 말이야. 약한 모습을 보이게 되면, 더 집요하게 파고들 거라고. 당당한 네 모습을 보여줘. 미국인들은 한국인들과 달리 그런 당당한 모습을 더 좋아하니까."

"참고하도록 하지."

"연애는 잘 하고 있는 거야?"

"그런 너는?"

"내가 먼저 물은 거 같은데.."

"리더가 물으면 대답을 해야지.."

한참 동안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더 나누던 두 사람은, 본격적인 공연 연습을 위해 월트 디즈니 홀로 돌아갔다.

그날 저녁 성황리에 미국 첫 공연을 끝마친 수빈은 뉴욕으로 날아갔다.

1월 6일 일요일

한국인들에게는 사람의 눈을 닮은 로고로 잘 알려져 있는 CBS 방송국의 뉴욕 본사. 여기저기 촬영 장소를 옮겨 다니는 더 레이트 레이트 쇼가, 이번 회차에는 본사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녹화를 뜨기로 결정하고서, 촬영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없는 게 없는 화려한 대기실을 둘러보던 수빈이 중얼거렸다.

"내가 미국에서도 뜨긴 뜬 모양이로군. 대접이 지나치게 융숭한데.. 이런 정도라면 마빈이 말했던 것처럼 편하게 촬영에 임하면 되겠군, 내가 굳이 동물원 원숭이 노릇을 할 필요는 없겠어."

도착부터 시작해서 메이크업부터 대기실까지, VIP 수준의 대접을 받은 수빈은 한결 편해진 얼굴로 촬영 시작을 기다렸다. 이윽고 대기실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수빈은 스튜디오 옆에 설치된 가림막 뒤에 서서, 제임스 코든이 오프닝 멘트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오늘 초대할 손님은 요 근래 정말 핫한 분입니다. 이 방송을 보시는 시청자분들 중에, 적어도 절반 이상은 이분이 제작한 영화를 보셨을 거라 확신합니다. 사우스 코리아의 제임스 카메룬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영화감독이죠. 라이프 그리고 헤이즈를 직접 제작하여, 전 세계적으로 연달아 대 히트를 시킨 젊은 천재 영화감독입니다. 요즘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 뛰어난 천재성으로 인해, 지니어스 강이라고 불리는 영화감독을 이 자리에 초대했습니다."

- 우와아아.

방청객들의 열렬한 환호성 속에 제임스 코든이 힘차게 외쳤다.

"사우스 코리아의 젊은 천재 영화감독. 강수빈 감독을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몸에 쫙 달라붙는 슈트를 멋지게 빼입은 수빈이, 잘 생긴 얼굴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을 절로 일으키는 매력적인 미소를 지은 채, 부드럽게 손을 흔들며 스튜디오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 삐이익. 삐이익.

- 잘생겼다.

- 너무 멋져요.

- 사랑해요. 수빈.

잠시 후 제임스 코든이 자리에 앉은 수빈에게 물었다.

"지니어스 강. 제가 누군지는 아시고 계시죠?"

"그럼요. 당연히 압니다. 영국 분이시죠?"

"오. 제 출신까지 알고 계시는군요. 맞습니다."

"제가 영국의 오디션 프로인 브리튼즈 갓 탤런트 때부터 팬이었습니다. 반갑습니다. 폴 포츠."

방청객 여기저기에서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이런.. 강감독이 제가 폴 포츠로 출연한 원챈스라는 영화를 보신 모양이군요. 제가 주연으로 출연한 몇 안 되는 영화인데 말입니다. 영화감독이시니 물어보겠습니다. 제 연기가 어떻던가요?"

"아주 훌륭한 연기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혹시 지니어스 강의 다음 작품에서 절 쓰실 생각이 혹시 있습니까? 주연을 욕심내지는 않겠습니다. 조연으로 쓰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수빈이 단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전혀 없습니다."

또다시 방청객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자, 제임스 코든이 난감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왜요? 제 연기가 좋았다면서요?"

"조연 치고는 출연료가 너무 비싸서요."

방청객들의 웃음과 박수세례 속에, 제임스 코든이 덩달아 웃으며 말했다.

"강감독이 유머 감각도 굉장히 뛰어나시군요. 영어도 훌륭하시고요. 그럼 본격적인 질문에 들어가 보겠습니다. 오늘이 강감독께서 미국 방송에 최초로 출연하는 거라고 들었습니다. 다른 방송국들도 많은데.. 굳이 이 프로에 맨 처음으로 출연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당연히 있죠."

"그 이유가 뭔가요? 궁금합니다."

보는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아름다운 미소를 머금은 수빈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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