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사 연예인이 되다-228화 (228/236)

#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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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일 토요일

헤이즈의 정식 시사회가 끝난 다음날.

YK 사장실에서 박사장과 수빈이 만남을 가지고 있었다. 수빈은 박사장이 건네준 공연 계획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수빈이 공연 계획서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이거 누구 아이디어입니까?"

"누구긴 누구야. 나지. 강이사가 하도 천하태평이라서 내가 발 벗고 나섰네. 미국의 유명 가수들이 그래미 시즌이 다가오면 어떻게 하는지 몰라?"

"콘서트를 열거나 전미 투어를 시작하죠. 방송 출연도 열심히 하고요."

"잘 알고 있군. 그래미에 노미네이트될 가능성이 높은 가수들은 그때쯤 돼서 활동을 열심히 한다고. 대중들에게 자신의 얼굴을 알리기 위해서 말이야. 하지만 강이사는 여태껏 미국에서 아무런 활동도 안 하고 있지 않은가?"

답답하다는 표정의 강사장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후우..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미네이트가 되었으니 천만다행이지. 하지만 그런 식으로 계속해서는 그래미에서 상을 받기가 힘들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이제부터라도 그래미 시상식 전까지 미국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야만 해. 그쪽에서 노미네이트라는 방식으로 성의를 보여줬으면, 이쪽에서도 거기에 걸맞은 성의를 보여줘야만 한다고. 안 그럼 괘씸죄에 걸려서 상을 하나도 못 받을 수도 있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자신보다 더 자신의 그래미 수상을 신경 쓰는 박사장을 보며, 수빈이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1월 5일부터 미국에서 YK 패밀리 투어라.. 시간상으로 문제는 없을 거 같습니다. 신작 영화가 12월 6일이 개봉이니까, 그때쯤이면 흥행 여부는 이미 다 결판이 난 상태일 거니까요."

"당연히 그런 점을 다 고려해서 짠 거라고. 1월 5일부터 LA, 휴스턴, 마이애미를 거쳐서 최종적으로 그래미 수상식이 열리는 뉴욕까지 공연 일정을 잡았네. 나름 강행군이야. 강이사는 공연 외에도 몇 군데 방송 출연까지 하게 될걸세. 공연에 방송까지 하느라 힘들겠지만, 그런 식으로라도 미국 대중들에게 인지도를 쌓아야만 해. 그런 다음 뉴욕에서 열리는 그래미 시상식에 참여하면 되는 걸세."

"제가 방송 출연을 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어디 프로에 나가게 되는 겁니까?"

"미국의 3대 방송사가 어딘지 알지?"

"ABC, NBC 그리고 CBS죠."

수빈의 대답에 박사장이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ABC 방송국의 지미 키멜 라이브쇼, NBC의 엘렌 드제너러스쇼, CBS의 더 레이트레이트쇼에 나가게 될걸세."

수빈이 살짝 놀란 표정으로 대꾸했다.

"이야.. 대단하시네요. 공연 계획서를 보니 작성한지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그 짧은 시간에 미국의 3대 메이저 방송사 유명 프로를 다 잡으셨군요?"

"그게 다 강이사의 힘이야. 세계적으로 명성이 드높은 젊은 천재 감독의 이름값이라고. 우리 기획사가 뭔 힘이 있다고 미국의 방송사를 쥐락펴락하겠는가? 우리 쪽에서 조심스럽게 접촉을 해봤는데, 강감독이라고 하니까 다들 쌍수를 들어 환영하더군. 언제든지 오케이라고 답변이 왔어. 사실.. 방송 출연을 한다는 건, 그것도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외국 프로에 출연한다는 건 양날의 검이야. 나가서 임팩트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차라리 안 나가느니 못한 거라고. 하지만 강이사가 누군가? 그 누구보다 잘 할 거라고 믿고 있다네."

수빈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서는.. 방송에 나가서 열심히 이빨을 털어야 하겠군요."

"암. 그래야지. 미국인들의 마음을 확 뺏어버리라고. 강이사의 매력에 빠져서 두 번 다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란 말이야."

"사장님.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별소리를 다하는군. 내가 왜 이 자리에 앉아 있는지 잘 알지 않은가?"

그때 사장실의 인터폰이 울리더니, 김비서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사장님. 기다리시던 손님이 도착하셨습니다.

잠시 후 수빈이 의아하다는 얼굴로 성강호에게 인사를 건넸다.

"형님이 여기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수빈의 물음에 성강호가 반문했다.

"응? 바빠서 강감독은 모르고 있었나 본데? 어제부로 우리 회사가 YK에 합병되었잖아. 그래서 내가 예전 소속사 배우들을 대표해서 박사장님에게 인사나 드리려고 찾아온 거지."

깜짝 놀란 표정의 수빈을 보며, 박사장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성강호에게 말했다.

"반가워요. 성강호씨 같은 대배우와 한 솥밥을 먹게 돼서 기분이 좋습니다."

"사장님. 한두 번 본 사이도 아니잖습니까? 강감독 때문에 숱하게 봐온 사인데 뭘 그렇게 조심하십니까? 피차 잘 아는 사인데.. 그냥 형 동생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래도 될까요?"

"그럼요. 저보다 연배가 6년이나 위이신 걸로 압니다. 편하게 동생이라 부르시죠."

"좋아. 동생. 우리 기획사로 오게 돼서 정말 반갑네. 앞으로 잘 지내보자고."

"네. 형님. 근데 제가 2008년 이후로 CF도 못 찍고 해서.. 영화 말고는 제대로 버는 게 없어요. 회사에 민폐만 끼치는 게 아닌가 걱정됩니다."

"별 걱정을 다 하는군."

박사장이 수빈을 힐끗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우리 옆에 있지 않은가. 무리하게 돈 벌어 오라는 소리는 안 할 테니, 앞으로도 강감독과 함께 좋은 연기를 보여주게나."

"그거야 당연하죠. 근데.. YK에서 요 근래 합병을 많이 추진하시나 봅니다? 다른 기획사 하고도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문이 은밀히 돌고 있던데요."

"예전에 강이사랑 이야기가 다 된 거야. 3개 정도의 기획사를 합병할 계획이라네. 강호 동생이 몸담고 있던 기획사가 뛰어난 배우들이 많이 있어서, 가장 먼저 합병을 추진했지. 강이사 영화 제작을 도와주는 차원에서 말이야. 물론.. 최종 목표는 SN을 잡아먹는 거고."

"SN까지 먹으시게요? 그러려면 돈이 장난 아니게 깨질 건데요."

"강이사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뭐가 걱정인가? 그리고.. 어차피 대형 배우들은 결국 강이사가 있는 이곳으로 오게 되어 있어. 두고 보라고."

박사장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성강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죠. 저도 예전 소속사 사장이 합병을 한다고 하길래, 처음에는 반대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대상이 YK라고 해서.. 두말없이 동의해 줬으니까요. 배우라면 다들 강감독이 있는 YK에 몸담고 싶어 할 겁니다."

이런저런 인사말을 나눈 후 성강호가 수빈에게 물었다.

"강감독. 내가 시사회를 본 이후에 궁금한 게 생겼는데 말이야. 영화 결말이 갑자기 왜 바뀐 거야? 각본상으로는 마지막에 주인공이 죽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수빈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제가 죽는 걸로 끝이 나야죠. 갑자기 바꾼 이유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제가 영화 속에서 항상 죽는 걸로 나와서 슬프다고 하시는 분들이 제법 많이 계시더군요. 형님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나름 열린 결말로 바꿔봤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가 핵심인데, 영화가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 빠졌어요. 그래서.. 어쩌면 애초에 기대했던 것보다 흥행이 더 잘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속편 제작을 노려봐야겠다는 욕심에.. 최종 편집을 하면서 결말을 좀 비틀었습니다. 많이 이상하던가요?"

"이상해? 그럴 리가.. 내가 살면서 본 액션 영화 중에 최고였다고."

흥분한 박사장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맞아. 나도 보면서 피가 끓었다고. 마치 젊은 날로 돌아간 기분이었네. 영웅본색을 보며 감동받았던.. 그 혈기왕성하던 청춘일 때로 말이야. 이건 분명 대박이 날 거야. 이런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면, 내가 손에 장을 지지지."

"이것 참.. 두 분 다 너무 좋은 말씀만 하니, 제 간덩이가 점점 더 부풀어 오르는 것 같습니다. 이러다 쫄딱 망하면 타격이 장난 아니겠는데요."

성강호가 단호한 어투로 대꾸했다.

"절대 안 망해. 그런 쓸데없는 걱정 따위는 안 해도 된다고. 그건 그렇고.. 6일 날 개봉을 하게 되면 국내 무대 인사는 어떻게 할 거야? 시사회 때 말한 대로 내가 샛별이랑 에리카랑 같이 돌면 되는 건가?"

"네. 형님. 박수종 영상팀장이 저 대신 참석할 겁니다. 거기에 형님이랑 샛별이, 에리카. 이렇게 네 명이서 무대 인사를 좀 해주세요. 전 5일 날 오후 2시 비행기로 한국을 뜰 겁니다. 9박 11일 동안 중국을 거쳐서 미국, 유럽 쪽을 돌고 올 게획입니다."

"알았어. 국내 쪽은 내가 책임지고 돌도록 하지. 인센티브를 듬뿍 받으려면 열심히 해야지."

잠시 후 수빈이 개봉 준비로 바쁘다며 먼저 자리를 뜨자, 성강호가 박사장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형님. SN까지 먹으시려는 게 돈 때문은 아니신 거죠?"

"그렇지. 돈은 이미 충분히 벌었다네."

"결국 수빈이에게 도움을 주려고 그러시는 거 같은데.. 정말로 YK가 SN을 잡아먹으면, 독과점이라며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게 될지도 모릅니다."

"독과점? 기획사가 무슨 공장도 아니고.. 말도 안 되는 소리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

"대중들은 받아들이는 게 다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돈질을 했다고 사람들이 비난을 할 수도 있어요. 대형 기획사의 횡포라고 욕먹을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형님. 그러지 마시고.. 제게 좋은 생각이 있는데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어떤 생각?"

이윽고 두 사람이 진지한 얼굴로 게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12월 5일 수요일

며칠간을 영화 개봉 준비로 정신없이 보낸 수빈은, 아침 일찍부터 출장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전 9시가 되자 수빈은 컴퓨터 앞에 앉았다.

'하나는 일부러 오답을 찍긴 했었는데 말이야. 과연 점수가 어떻게 나왔으려나..'

한국 교육과정평가원에 접속하여 수험번호를 친 다음, 자신의 수능 점수를 확인한 수빈의 얼굴이 급격히 일그러졌다.

"이런.. 난리 났군. 뭐가 잘못된 거지?"

수빈이 황급히 백성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수빈아. 무슨 일이야?]

"형님. 지금 바로 절 데리러 오셔야 하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공항으로 나가야겠어요. 예정보다 일찍 중국으로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벌써? 2시 비행기라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최대한 빠른 걸로 바꿔 타고 출국해야 합니다."

[그래? 갑자기 무슨 일 있는 거야? 아무튼 알았다. 지금 바로 출발할게.]

전화를 끊은 수빈은 인터넷을 뒤지며 중얼거렸다.

"왜 만점이 되어버린 거지? 분명히 하나는 오답을 찍었는데.."

잠시 후 수능 관련 기사 하나를 발견한 수빈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오답을 찍은 문제가 정답이 여러 개인 걸로 바뀌었군. 하기야 나도 풀면서 문제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었지. 바빠서 미처 확인을 못 했더니.. 기자들이 난리 치기 전에 빨리 한국을 벗어나야 하겠어.'

시간이 흘러 수빈은 백성철이 모는 밴을 타고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 상주하며 공항 패션을 전문적으로 찍는 기자들이 다가오자, 수빈이 환하게 웃으며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윽고 급하게 베이징행 비행기 표를 끊은 수빈이 출국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 순간 공항에 상주하고 있던 한무리의 기자들이 수빈을 향해 개떼처럼 뛰어오고 있었다.

'빌어먹을.. 이미 기사가 난 모양이로군.'

수빈이 발걸음을 재게 놀렸다. 뛰다시피 해서 출국장을 빠져나가는 수빈의 뒤통수를 향해 기자들이 고함을 치고 있었다.

- 강감독님. 잠시만요!

- 잠깐만 인터뷰 좀 해주세요.

- 수능 만점 비결이 뭔가요?

기자들을 피해 무사히 비행기에 탑승한 수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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