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사 연예인이 되다-219화 (219/236)

# 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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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0일 목요일

이탈리아에서 귀국한 후 열흘이 눈 깜박할 새 지나갔다.

수빈은 지난 열흘 동안 아침부터 저녁까지는 양수리 세트촬영장에서 촬영을 진행하고, 밤에는 뮤지컬 각본 작업과 작곡에 매달려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보냈다.

오래간만에 소집된 간부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을 둘러보던 수빈이 입을 열었다.

"다들 몰골이 말이 아니네요. 세트촬영을 몰아서 찍느라 다들 힘드셨나 봅니다."

수빈의 말에 박수종 영상팀장이 쓰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래봐야 대표님만 하겠습니까? 저희들은 촬영이 끝나고 밤에는 휴식을 취했지만, 대표님은 뮤지컬 작업 때문에 밤잠을 설쳐가며 일을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야 아직 젊어서 버틸만하죠. 보시다시피 얼굴도 말끔하잖아요? 암튼 그동안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해외 로케도 끝났고 세트촬영분도 많이 진행되어서, 앞으로는 여유를 가지고 촬영을 진행할 생각입니다. 그럼 먼저.. 제가 여러분들께 안타까운 사실 하나를 알려드려야 하겠네요."

박팀장이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회사에 무슨 일 생겼습니까? 아니면 대표님 신상에 문제라도?"

수빈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올 연말에 차기작을 제작할 감독을 뽑기 위한 단편 영화 심사가 있지 않습니까? 단편을 찍기로 한 다섯 분 중에 한 분이 포기를 하셨습니다. 자신의 역량이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된다며, 영상에 대해서 좀 더 공부를 해서 다음 기회를 노리겠다고 제게 말을 전해왔습니다."

"아, 그럼 네 명이 심사를 받겠군요?"

"그렇습니다. 박수종 촬영팀장, 최진후 조명팀장, 박상민 지원팀장 그리고 지금 촬영지 헌팅을 다닌다고 오늘 참석을 못 한 장진석 감독. 이렇게 네 명이 심사를 받게 될 겁니다. 장진석 감독이 단단히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다른 분들도 연말까지 열심히 준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 알겠습니다. 대표님.

- 네. 대표님. 노력하겠습니다.

-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세 팀장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수빈이 오상무를 쳐다보았다.

"오상무. 특별히 보고할게 있나요?"

"네. 있어요. 먼저 뮤지컬 관련해서 보고드릴 게 있어요. 지금 인터뷰 요청과 투자를 하고 싶다는 요청이 너무 많이 들어오고 있어요. 아주 지긋지긋할 정도로요."

"다 거절하세요. 인터뷰는 뮤지컬이 발표된 이후에 하면 됩니다. 투자는 당연히 필요 없고요."

"다른 분들은 제가 알아서 다 거절을 했는데요. YK 박사장님이 투자를 꼭 해야 하겠다고 강짜를 부리셔서..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겠네요."

"그 양반도 참.. 날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전화를 하실 것이지. 알았어요. 그 문제는 제가 알아서 처리할게요. 다른 보고 사항이 또 있나요?"

"네. 이틀 전부터 유쿠와 훌루에 라이프가 정식으로 올라갔어요. 수익 배분은 이전과 동일하고요. 그리고.. 그쪽에서 대표님께 꼭 전해달라는 말이 있었어요."

"제게요? 무슨 말을 전하라고 합디까?"

"다음 작품부터는 유쿠와 훌루에서 동시에 대표님 이름으로 된 스페셜 코너를 만들 예정이라고 하네요. 그러니 앞으로도 잘 부탁드린다고 전해 달래요."

수빈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와서요? 우리가 해달라고 부탁할 때는 생까더니.. 그쪽과의 계약 기간이 어떻게 되죠?"

"3년간 전속 계약입니다. 예외 조항으로 영화 5편 이후로는 전속이 풀린다는 게 걸려 있었는데.. 현재 달빛, 특수본, 라이프까지 총 2편의 영화와 한편의 드라마가 걸려 있어요. 이중 특수본은 영화 2편으로 계산이 되어서, 현재 총 4편이 걸려있다고 보시면 될 거예요."

"그럼 이번에 제작하는 영화만 걸면, 전속이 다 끝나는 거로군요?"

"네. 맞아요. 그래서 똥줄이 타나 봐요. 우리 쪽에서 부탁도 안 했는데 코너를 만들어주겠다고 나오는 게.. 이렇게 빨리 5편을 걸 거라고 그쪽에서는 상상도 못했을 거예요."

"그렇겠죠. 3년에 5편이면 누가 봐도 실현 불가능한 조건이었으니까요. 제 생각에는 굳이 그쪽과 척을 지면서까지 거래처를 바꿀 필요는 없을 거 같군요. 조부장과 의논을 해보세요. 계약 조건을 우리 쪽으로 유리하게 손보는 걸로 해서, 전속 기간을 연장해 주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세요."

"알겠어요. 대표님. 더 이상 보고 사항은 없어요."

"다른 분들 중에 보고할 게 있나요?"

수빈의 말에 강성호 재무부장이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수빈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강부장. 회사 재정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그럴 리가요. 재정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딴 게 아니라.. 다음 주에 추석이 있지 않습니까? 다들 추석 떡값이 얼마나 나올지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규정대로 처리할까 하다가 대표님께 여쭤보는 겁니다."

"규정이 어떻게 되죠?"

"월급의 100프로가 추석 상여금으로 나가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럼 200프로를 지급하세요. 보아하니 영화가 대박을 쳐서, 다들 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강부장을 괴롭히는 모양인데.. 그 정도면 되겠죠?"

"네. 대표님. 충분하다고 봅니다."

"그래도 강부장을 괴롭히는 사람이 있으면 저에게 알려주세요. 그럼.. 또 보고할 사항이 있으신 분?"

수빈이 좌중을 둘러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보고 사항이 없군요, 그럼 이제부터는 제가 지시 사항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수빈이 김종호 페스 관리팀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김팀장. 그동안 찍었던 액션 영상을 확인했으면 하는데요. 그래야 거기에 맞춰 다음 촬영을 진행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에비스 수정 작업이 언제면 다 끝날 거 같습니까?"

"추석 때 쉬지 않고 작업을 하면.. 다음 주 목요일 그러니까 27일쯤이면 끝날 거 같습니다."

"추석 때까지 일한다는 건 말이 안 되죠. 추석 때는 쉬시는 걸로 하고.. 10월 1일까지 완료해 주세요. 가능하시죠?"

"네. 충분히 가능합니다."

"좋습니다. 그럼 오늘부터 10월 1일까지 영화 촬영은 일단 스톱합니다. 다들 많이들 지치셨을 텐데, 오늘부터 추석 연휴까지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겠습니다"

수빈이 오상무를 바라보았다.

"오상무. 29일 토요일과 30일 일요일 양일간 대극장을 비울 수 있습니까?"

"네. 비울 수 있어요. 현재 우리 쪽에서 수입한 유럽 쪽 독립 예술 영화를 걸고 있기 때문에, 말씀만 하시면 언제든지 가능해요."

"좋습니다. 엔넷의 '더 콜' 제작진과 협의를 해서, 29일과 30일 양일간 제가 준비한 뮤지컬을 대극장에 올릴 생각입니다. 비싼 돈 들여 아시아 최대의 시설을 갖췄으면 써먹어야죠. 추석이 끝나는 대로 제작부서의 모든 인원은 뮤지컬에 투입될 거니까, 준비에 만전을 기해 주시길 바랍니다."

- 알겠습니다. 대표님.

"그리고.. 조명팀 최팀장과 지원팀 박팀장 두 분에게는 제가 따로 숙제를 내어드리겠습니다."

최진후 조명팀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떤 숙제를 말입니까?"

"제가 여왕들의 게임이라는 프로에 출연하는 건 알고 계시죠? 거기에서 얼마 전 두 번째 탈락자가 생겼습니다. 최아림이 탈락했죠. 이제 남은 사람은 김샛별과 하이유 두 명입니다. 그들 두 사람 중 마지막 탈락자를 결정하는 CF 제작을 두 분에게 맡길 생각입니다."

"저희들에게 말입니까?"

"네. 장진석 감독이랑 박수종 팀장은 이미 감독으로서 영화를 찍어본 경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두 분은 아직까지 그런 경험이 없어요. 그래서 단편 영화 이전에 CF 감독으로서 제대로 된 작품을 찍어 볼 경험을 드리고자 합니다. 광고 대상은 자동차입니다. 두 분이서 협의하셔서 누구를 주연 모델로 해서 찍을 건지 결정하세요. 그런 다음 CF 콘티를 제작해서 저에게 제출해 주세요. 기간은 10월 1일까지입니다. 아시겠습니까?"

- 네. 알겠습니다.

- 알겠습니다. 대표님.

"좋습니다. 이걸로 오늘 회의를 마치겠습니다. 다들 추석 잘 보내시고.. 27일 목요일 오전에 다시 보는 걸로 하겠습니다."

회의를 끝마치고 나온 수빈은 백성철이 기다리고 있는 밴으로 이동했다.

"다 끝났어? 지금 바로 식당으로 출발할까?"

백성철의 물음에 수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형. 지금 바로 출발하면 시간이 맞을 거 같아요."

잠시 후 수빈은 강남에 있는 한 이탈리아 식당에서 최아림과 같이 점심 식사를 하고 있었다.

"오빠. 솔직하게 물어볼게. 우리 사이에 있었던 예전의 일들이 오빠를 많이 힘들게 해?"

갑자기 훅 들어오는 아림의 질문에, 파스타를 집으려던 수빈이 포크를 내려놓으며 되물었다.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는 거야?"

"땅콩 하우스에서 같이 지내면서 내가 그렇게 느꼈으니까.."

"솔직하게 말하면.. 힘들다기보다는 불편하다는 게 더 정확하겠지. 널 보고 있으면 예전의 못났던 나 자신이 자꾸 떠올라. 그게 날 불편하게 만들어."

최아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역시 그렇구나. 과거가 우리 사이를 방해하는 거구나."

"네가 신경 쓸 일은 아니야. 내가 저지른 잘못 때문이니까.. 아무리 철이 없을 때라고는 하지만 잘 못한 건 잘 못한 거지. 내가 다시 한번 사과를 하마."

"그만 사과해도 돼. 나도 그때는 철이 없었던걸. 그리고 그때 내가 오빠를 많이 좋아했던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고.. 이제는 힘들겠지?"

"뭐가?"

"연인으로 다시 발전하기에는.. 이제 둘 다 너무 멀리 온 거 같아서.."

"글쎄.. 사람 앞날을 누가 알겠냐?"

"난 알 거 같아. 오빠가 날 선택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말이야."

"그런 말을 하기에는 둘 다 아직 어리잖아? 무거운 이야기는 그만하고 밥이나 먹자. 나 때문에 방송에 출연하고 탈락까지 했잖아. 어딜 가나 대접받는 클래식계의 공주가 말이지. 내가 한턱내는 거니까 많이 먹어."

최아림이 수빈의 잘생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나도 소원 들어줘."

"응?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성희 언니한테 들었어. 오빠를 포기하고 힘들어할 때, 오빠가 언니의 소원 하나를 들어줬다며? 그래서 '더 콜'에 출연하고 뮤지컬까지 하는 거잖아."

"꼭 그런 건 아닌데.. 어떤 소원이야? 고생하고 탈락까지 했는데,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들어주마."

"엄청 힘든 소원은 아니야. 둘이서 같이 공연 한번 해. 어쩌면 둘이 하는 마지막 공연이 될 수도 있잖아. 안 그래?"

"공연? 어떤 공연?"

"추석 연휴 마지막 날에 열린 음악회 녹화가 있어. 다문화 가정들을 초대해서 하는 공연이야. 거기에 나도 초대됐어. 10월부터는 다시 해외로 공연을 나가야 하는데.. 그전에 국내에서 마지막으로 잡은 공연 스케줄이야."

"그래? 며칠 안 남았네. 내가 뭘 어떻게 도와주면 되는 거야?"

"내가 피아노를 치고 오빠가 바이올린을 연주해줬으면 해."

"연주를 하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그러려면 같이 연습을 좀 해야 할 것 같은데? 곡은 정했어?"

"아니. 아직 못 정했어. 25일 저녁에 만나자. 그날 곡도 정하고 연습도 해."

"25일이면.. 추석 다음날이구나. 알았어. 그렇게 알고 있을게."

수빈의 대답에 최아림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아.. 끝까지 나에게 안 물어보는구나."

"응? 뭘?"

"이제 포기했냐고.. 그만 단념했냐고.. 나에게 물어보질 않잖아. 그냥 모른 척 넘어가고 싶어서 그런 거겠지만.."

수빈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나에게 그럴만한 자격이 있기나 하냐? 그리고.. 오빠 아직 군대도 안 다녀왔다.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거잖아. 안 그래?"

수빈의 변명 아닌 변명에, 최아림이 마음을 비웃듯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뻔히 알면서 돌려 말하기는.. 내가 포기할게. 오빠와의 만남은 철없던 젊은 날의 추억으로 남길게. 그래도 친한 오빠 동생 사이로는 계속 볼 수 있는 거겠지?"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냐? 오빠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해. 만사 제치고 나갈 테니까.."

"누가 남자 아니랄까 봐 뻥은.. 바빠서 밥 먹을 시간도 제대로 없다는 걸 내가 몰라? 알았어. 말이라도 고마워. 오빠. 내가 가끔씩 연락할게."

잠시 후 두 사람은 한결 편해진 얼굴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9월 25일 화요일

추석 연휴를 포함한 지난 5일 내내, 수빈은 녹음실에 처박혀 뮤지컬용 AR 작업에 매달렸다. 미친 듯이 작업에 매진한 수빈은 마침내 AR 작업을 끝마칠 수 있었다. 수빈은 완성된 AR을 각 파트를 맡은 가수들에게 발송하며, 27일부터 뮤지컬 리허설을 시작한다고 메시지를 첨부해서 보냈다.

그리고 쓰러지듯 의자에 기대어 잠에 빠져들었다.

"수빈아. 수빈아.."

한참을 잠에 빠져 있던 수빈은, 잠결에 들려오는 소리에 눈을 떴다. 백성철이 걱정 어린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형.. 언제 왔어요?"

"좀 전에 도착했다. 잠을 자려면 편하게 자야지. 이게 뭐냐?"

"괜찮아요. 오래간만에 푹 자고 일어났더니 온몸이 다 개운하네요. 어떡해요? 저 때문에 추석 연휴에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난 삼 일간 집에서 푹 쉬었다. 이제는 집에 있는 게 더 힘들어. 약속 시간이 다 되어서 찾아왔는데.. 조금 더 쉬었다 갈까?"

"아뇨. 형. 충분히 쉬었어요. 출발하죠."

잠시 후 수빈을 태운 밴이 SN 기획사를 향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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