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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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8일 토요일
전날 엔넷의 '더 콜' 촬영을 마친 수빈은, 주말 오후를 맞아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인천 국제공항에서 스태프들과 함께 출국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현재 시간을 확인한 수빈이 외국 출장시 비서 역할을 겸하는 박상민 지원팀장에게 물었다.
"베니스까지는 직항으로 몇 시간 걸리죠?"
"11시간 20분 정도 걸립니다."
"그럼 우리가 3시 비행기니까.. 그쪽에 도착하면 한국 시간으로 새벽 3시가 다 되어 가겠군요."
"네. 서울과 시차가 7시간 나기 때문에, 베니스 현재 시간으로는 저녁 8시쯤 도착하게 됩니다. 짐을 찾고 숙소로 이동하기에 적당한 시간입니다."
"베니스 현지에서의 촬영 협조는 문제가 없는 거죠?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다 보니, 현지 경찰이나 관공서 직원들의 협조가 없으면 촬영하기가 굉장히 힘들 거예요."
"네. 대표님. 문제없습니다. 예전에 BJ에서 'SAT' 제작을 준비할 때 이미 협조를 다 구해놨던 거라, 현지 쪽 사람들과 별다른 이견이나 충돌 없이 조율이 잘 끝났습니다. 제가 직접 챙겼으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잘 됐군요. 제가 미리미리 좀 챙겼어야 하는 건데.. 어제부터 오늘 아침까지 하도 정신이 없어서, 미처 신경을 못 썼네요."
"고액의 월급을 받는 직원들은 뒀다가 엿 바꿔 드실 겁니까? 그런 간단한 일들은 그냥 팀장들에게 맡겨주시면 됩니다."
박팀장의 말에 수빈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베니스 쪽 촬영 스케줄이 정확히 어떻게 되죠?"
머릿속에 스케줄이 다 담겨있는 듯, 박팀장이 망설임 없이 줄줄 읊기 시작했다.
"촬영 분량이 많지 않아서, 2박 3일간의 짧은 일정입니다. 오늘 저녁 8시에 베니스에 도착해서 숙박을 하고요. 내일 아침 일찍부터 촬영 준비를 해서, 오전 10시쯤이면 촬영을 진행할 겁니다. 대표님은 오후 3시쯤 베니스 국제영화제 참석을 위해 이동을 하셔야 하고요. 대표님 부재 시에는 박수종 촬영팀장이 현장을 지휘해서 촬영을 진행할 겁니다. 그리고 다음 날인 10일 아침부터 다시 촬영을 재개해서, 저녁 6시경에는 촬영을 다 끝마치고 공항으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직항이 많지 않아서 8시 비행기를 타야만 해서요. 그럼 한국에는 11일 새벽에 떨어지게 될 겁니다."
"스케줄이 빡빡하군요. 그래도.. 이번 해외 촬영만 끝나면 숨통이 좀 트이겠죠?"
"네. 베니스에서 돌아오는 11일 화요일 하루는 단체로 휴식이 주어질 거고요. 다음날 수요일부터는 양수리 세트촬영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때부터는 국내 촬영이라서, 아무래도 여유가 좀 생길 것 같습니다."
"스위스. 미국. 캐나다 그리고 이탈리아까지.. 해외 로케 때문에 박상민 팀장이 수고가 많네요."
"아닙니다. 대표님. 한 달에 받는 돈이 얼만데요. 이 정도도 못하면 나가 죽어야죠. 근데.. '더 콜' 방청한 사람들 SNS 보니까, 어제 난리도 아니었다면서요? 대표님을 두고 레전드 가수들끼리 쟁탈전이 벌여져서 꿀잼이었다고 하던데요."
수빈이 쓰게 웃으며 대꾸했다.
"보는 사람들이야 꿀잼이었겠죠. 전 죽을 맛이었습니다. 촬영이 두 번이나 중단되었으니까요."
"두번씩이나요?"
"네. 더 콜'에는 원래 4팀이 있고, 그중 한 팀에 제가 속하게 되어 있는데.. 제가 속한 팀 말고 나머지 3팀들도 저랑 콜라보를 하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현장이 발칵 뒤집어졌죠. 그 바람에 촬영이 한번 중단되었고요. 그래서 제가 다들 동의하면 4팀 모두에게 곡을 주고 프로듀싱까지 하겠다고 의견을 내서 겨우 수습을 했습니다."
"4팀 모두에게 곡을 주시기로 하셨다고요? 짧은 시간에 네 곡을 만들고 녹음까지 하려면, 아무리 대표님이라고 하시더라도 무리 아닙니까? 안 그래도 영화 촬영 때문에 정신없으신데.."
"어차피 이번에 찍는 영화의 삽입곡으로 사용할 곡을 작곡한다고 생각해서, 그 정도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만.."
"다만?"
"다시 촬영이 재개되어서 새롭게 출연하는 가수들이 등장을 하기 시작했었죠. 근데.. 첫 번째로 등장한 가수가 이성철 선배였습니다. 첫 소절을 듣고 촬영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곧바로 알아차렸죠. 목소리 톤이 워낙 특이하시니까.."
"밖으로~ 그 이성철 말입니까?"
"네. 난리가 났었죠. 심사위원을 하셔도 모자랄 양반이, 까마득한 후배들하고 갑자기 콜라보 무대를 하겠다고 출연을 했으니까요. 더 놀라운 건.. 그다음으로 출연한 가수가 레전드이신 이성희 선배님이었다는 겁니다."
"허어.."
"거기에 저와 가까운 사이인 하이유와 뮤란까지 등장을 하는 바람에.. 촬영장이 완전히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촬영장에 도착했을 때, 백비서가 눈에 익은 밴이 보인다고 말할 때 눈치를 챘었어야 하는 건데.. 저한테 일언반구도 없이 몰래 출연을 했더라고요."
"대표님과 가까운 사이의 가수가 출연한다고 해서, 촬영장이 난장판이 될 이유가 있습니까?"
"원래 더 콜에서 발표하는 콜라보 무대라고 해서, 모든 가수들이 녹음을 다 하는 건 아니에요. 다들 잘 나가는 가수들이라 스케줄 문제도 있고, 목소리가 튀거나 장르가 겹치고 그러면.. 누구는 녹음을 하고 누구는 한주 빠지고 그러는 시스템인데.. 쟁쟁한 레전드 가수들에 저랑 친한 가수들까지 등장하다 보니, 어쩌면 자기가 소외될지도 모르겠다는 위기감을 강하게 느낀 거죠."
"그래서 촬영이 중단된 거로군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어제 현장에서 제작진에게 제가 새로운 의견을 제시했죠. 그래서 일단 다들 진정이 되어서 넘어갔는데.. 그 문제 때문에 오늘 아침까지 '더 콜' 제작진 하고 회의를 하고 왔습니다."
"결론이 어떻게 난 겁니까?"
그때 스태프 중 한 명이 다가와서 수빈과 박팀장에게 티켓을 건네며 말했다.
"탑승 수속이 다 끝났습니다. 짐도 다 부쳤고요. 지금 바로 출국장으로 이동하시면 되겠습니다."
수빈이 티켓을 받은 다음 박팀장에게 말했다.
"오늘 아침에 제작진하고 회의를 끝낸 후, 관련된 인터뷰를 하고 왔으니까.. 자세한 건 제 인터뷰 기사를 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이동하죠."
"알겠습니다. 대표님."
시간이 흘러 베니스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박상민은 자신의 옆자리에서 곤히 자고 있는 강수빈 대표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많이 피곤하신 모양이네. 타자마자 주무시더니 일어날 생각을 안 하시는군. 하기야.. 거의 초인 같은 스케줄을 소화하시는 분이시니 많이 힘드셨겠지."
박상민은 핸드폰을 꺼낸 다음 화면 밝기를 줄였다. 행여나 눈부심에 수빈이 깨어날까 염려해서였다.
'지금쯤이면 인터뷰 기사가 올라왔을 텐데.. 어디 보자. 여기 있군.'
국내 굴지의 모 신문사 문화부 기자가 올린 장문의 인터뷰 기사가 포털에 걸려있었다.
[천재 영화감독 강수빈. 뮤지컬 제작에 도전하다!]
- 어제 있었던 엔넷의 '더 콜' 촬영 중에 아주 재미있는 일이 발생했다. 이름 석 자만 들어도 전 국민이 알 정도의 전설적인 레전드 가수들과 현재 나름 잘 나간다는 가수들이 한 사람을 두고 치열한 쟁탈전을 벌인 것이다. 그들로 하여금 쟁탈전을 발발시킨 사람이 과연 누구일까? 다름 아닌 천재 영화감독으로 명성을 드날리고 있는 강수빈 영화감독이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기자는 한달음에 달려가, 더 콜 제작진을 조르고 또 졸라서 강수빈 영화감독과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 본디 강수빈 영화감독은 음악적인 재능으로 그 명성을 드날린 사람이다. 하이유 최고의 명반이라고 불리는 '달과 나의 이야기' 앨범을 작사, 작곡 및 프로듀싱까지 직접 한 천재 뮤지션이었다. 그 후 현재 일본에서 한류의 기치를 드높이고 있는 뮤란을 직접 꾸리고, '라퓨타' 앨범과 '구원' 앨범을 프로듀싱하여 연달아 빅 히트를 시키며, 뮤란을 명실상부한 일본 최고의 인기 그룹 위치로 끌어올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음악 순위 프로에서 1위를 차지한 '디스패치'와 얼마 전 빅 히트를 친 '라이프'도 강수빈 감독의 작품이다.
- 이런 천재적인 음악 재능을 지닌 이 젊디젊은 청년이 어느 날 우리들에게 영화감독으로 다가왔다. '달빛 속의 호위무사' 그리고 '라이프'를 연이어 제작하며, 전 세계적으로 흥행을 성공시킨 영화감독으로 말이다. 영화감독으로서의 강수빈 감독의 스토리는 요 근래 많이 알려져 있어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하지만 강수빈 감독이 본래 천재 뮤지션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절대로 안 될 것이다.
- 아래는 본 기자가 강수빈 감독과 일대일로 진행한 단독 인터뷰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기자 : 어제 강수빈 감독을 두고 유명 가수들끼리 쟁탈전이 벌어졌다면서요?
강수빈 : 그건 좀 과한 표현이고요. 저와 작업을 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좀 계셨죠. 후배 된 입장으로 선배 가수분들이 저와 작업하기를 원하셔서, 마음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했습니다.
기자 : 부담스러운 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만, 기쁜 이유는 뭔가요? 본인이 잘났다는 걸 증명할 수 있어서 그런 건가요?
강수빈 : 그럴 리가요. 질문이 너무 도발적이시네요. 뮤지션의 입장에서, 좋은 곡을 쓰기 위해서는 좋은 영감(靈感)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훌륭한 분들과 작업을 하면, 당연히 좋은 결과가 나오는 법이죠. 그래서 많이 기뻤습니다.
기자 : 그렇군요. 많은 분들이 강수빈 감독과의 작업을 원해서, 최종적으로 여러 가수들과 협업한 뮤지컬을 '더 콜'에서 선보이는 걸로 결정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강수빈 감독이 제작진에게 직접 제의를 한 걸로 아는데요.
강수빈 : 맞습니다. 제가 제의를 했죠. 여러 훌륭한 분들과 작업을 같이 하고 싶은 마음에, 제가 욕심을 좀 부렸습니다. 다양한 장르의 실력 있는 가수분들과 이렇게 작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언제 또 오겠습니까? 그래서 이번 기회에 제법 많은 곡을 녹음을 해서, 간단한 뮤지컬을 연출해 볼 생각입니다. 최종적으로는 이번에 만드는 곡과 기존의 곡들을 취합해서, 내년 상반기 중으로 뉴욕 브로드웨이에 제가 제작한 뮤지컬을 올릴 계획입니다. 이번에 '더 콜'에서 선보일 뮤지컬은, 브로드웨이에 올릴 뮤지컬의 파일럿 버전이라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기자 : 말로만 듣던 브로드웨이에 뮤지컬을 올린다니.. 생각만으로도 흥분되고 가슴이 뜁니다. 하지만 제가 알기로는 뮤지컬을 제작하는데 많은 비용이 들고, 위험부담도 굉장히 크다고 하던데요.
강수빈 : 그렇죠. 보통은 뮤지컬 제작이 영화 제작 보다 더 도박이라고들 말하죠. 영화는 관객 동원이 저조하면 나중에 IPTV라도 진출할 기회가 있지만, 뮤지컬은 그런 것도 없습니다. 흥행에 실패하면, 제작비 전부를 그냥 허공으로 다 날린다고 보시면 될 겁니다.
기자 : 얼마 정도의 제작비를 생각하고 계시나요?
강수빈 : 소규모의 뮤지컬도 제작비가 몇 십억씩 듭니다. 제가 생각하는 뮤지컬은 장편이고 대형이라서, 200억 정도는 족히 들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자 : 궁금합니다. 다른 분들이 가지 않는 길을 굳이 가시려는 이유가 있습니까?
강수빈 :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이라고 해서, 그 길이 반드시 틀린 길인 것은 아닙니다. 틀릴 수도 있지만, 때로는 지름길일 수도 있는 법이죠.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돌다리도 두드려 보는 조심성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그런 조심성이 자신의 인생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과감한 결단이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지요.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아니겠습니까? 제가 하고 싶은 일은, 일단 저지르고 보는 성향이라서요.
기자 : 강감독이 직접 제작할 뮤지컬이, 브로드웨이에서 흥행에 성공할 가능성이 어느 정도라고 보십니까?
강수빈 : 기자분은 뮤지컬의 가장 기본이 뭐라 생각하십니까? 유명한 노래? 그걸 부르는 뮤지컬 배우의 실력?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건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한 양념과 같은 거죠. 뮤지컬의 기본은, 노래로 소화할 수 있는 탄탄하고 흥미로운 스토리입니다. 뮤지컬에 최적화된, 음악과 어우러지는 스토리가 반드시 필요하죠. 그런 측면에서는 제가 나름 자신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외국 무대에 올리기 위해서는 외국어 번역 작업도 필요한데, 그쪽 분야도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요. 현재로서는 흥행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편이라고 개인적으로 믿고 있습니다. 물론 결과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죠.
기자 : 바쁘실 텐데 마지막으로 여쭤보겠습니다. 왜 뮤지컬입니까? 다른 방법들도 있었을 텐데요.
강수빈 : 제 욕심 때문이죠. 전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세계로 진출하길 원합니다. 요즘 한류가 유행이라고 하지만, 그걸로는 턱도 없죠. 지속적이고 꾸준한 세계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유능한 인재들이 연예계 쪽으로 유입되어야 하고, 그런 인재들이 꽃을 피울 충분한 시간이 주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 극히 소수의 성공한 사람들만이 대접을 받을 뿐, 대다수의 사람들이 생계유지도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중도 포기를 하게 되죠. 재능이 숙성할 기회조차 가지지 못한 채 말입니다.
기자 : 무슨 말인지는 알겠습니다만.. 그거랑 뮤지컬은 무슨 관련이 있죠?
강수빈 : 영화와 뮤지컬의 차이를 아십니까? 영화는 비록 흥행에 성공하더라도 단발에 그친다는 겁니다. 다음 작품에 투입되기 전까지, 수많은 스태프들이 제대로 된 수익원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알바를 뛰게 되죠. 공사판을 전전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뮤지컬은 다릅니다. 한번 흥행에 성공하면, 몇 십 년간을 지속해서 공연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뮤지컬이라고 하면 노래하고 연기하는 사람들만 떠올리지만, 그 뒤에는 수많은 스태프들이 있습니다. 연출, 음향, 무대 제작, 의상, 소품, 분장, 조명 등등 몇 백 명의 스태프들이 뒤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거죠.
기자 : 이제야 이해가 좀 되는군요. 한번 뮤지컬을 성공시키면, 거기에 따른 몇 백 명의 스태프들의 생계가 자연스럽게 보장된다는 거군요. 강감독님은 그걸 노리시고 있고요.
강수빈 : 바로 그겁니다. 하나의 대형 뮤지컬에는 보통 200여 명의 스태프가 참여합니다. 만약 그런 팀을 전 세계 순회공연을 위해 3개 정도를 유지한다면..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종사하는 600여 명의 안정된 생계가 보장되는 겁니다. 그럼 그 600명의 인재들 중 누군가는 반드시 성장해서, 송곳처럼 튀어나와 재능을 활짝 꽃피울 겁니다. 세계화를 위해서는, 그런 인재 육성 시스템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 지금 생각해 보니.. 그런 식의 이야기를 이전에도 하셨던 걸로 기억되는군요.
강수빈 : 그렇습니다. 제 지론이니까요. 이전에도 비슷한 말씀을 드린 적이 있었죠. 그때와 달라진 점은, 이제는 제가 그걸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겁니다. 능력이 되면, 당연히 실행에 옮겨야죠. 그게 절 아껴주시는 팬분들 그리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 대한 도리 아니겠습니까?
기자 : 오늘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강감독님의 원대한 포부와 도전하는 용기를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내년에 있을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아무쪼록 잘 되길 기원합니다.
강수빈 : 감사합니다. 많이 도와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기자 : 아. 마지막으로.. 왜 꼭 내년 상반기입니까? 날짜를 콕 집어 정한 이유가 있나요?
강수빈 : 달리 별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닙니다. 단지, 내년 상반기에는 제가 대학을 진학할 생각입니다. 하반기에는 군 입대를 할 예정이고요. 그래서 입대 전에 뮤지컬을 반드시 브로드웨이에 올려야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게 일정을 잡은 겁니다.
기자 : 그러시군요. 아무조록 몸 건강히 군 복무를 끝마치시길 바랍니다.
강수빈 : 네. 감사합니다.
- 기사가 나가는 지금쯤이면 강수빈 감독은 한국 영화계에 또 하나의 찬란한 선물을 주기 위해 이탈리아로 떠났을 것이다.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니스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할 가능성이 아주 높은 걸로 알고 있다. 아무쪼록 수상에 성공하기를 바란다.
- 마지막으로 본인의 영광만을 생각하지 않고,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미래까지 걱정하는 강수빈 감독의 앞날에 부디 행운이 깃들기를 기원해 본다.
기사를 다 읽은 박팀장은 심호흡을 깊게 하며 핸드폰을 조심스럽게 껐다. 수빈의 수면에 행여나 방해를 줄까 해서 말이다.
9월 9일 일요일
수빈은 베니스 영화제에서 그랑프리인 황금 사자상(Golden Lion)과 남자 주연상을 동시에 석권했다. 같이 참가한 김샛별은 신인 여배우에게 주어지는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Marcello Mastroianni) 상을 수상했다.
9월 11일 화요일
해외 로케를 무사히 끝마친 수빈은, 사람들이 잠든 새벽 시간에 인천 공항을 통하여 귀국했다. 백성철이 모는 밴을 타고, 고요한 새벽길을 달려 땅콩 하우스에 도착한 수빈은 짐을 풀었다.
간단하게 샤워를 한 수빈은 침대로 가지 않고, 컴퓨터 앞에 앉아 본격적인 뮤지컬 제작을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 이전에 제작한 라이프와 지금 제작하는 헤이즈를 적절히 섞은 창작 뮤지컬의 스토리를 거침없이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라이프 인 헤이즈(Life in Haze)]
제1막.
1장. 미로 속을 거닐다.
- 어스름한 새벽녘 짙은 연무 속에 길을 읽고 정처 없이 헤매는 사람처럼, 우리의 인생도 한 치 앞을 볼 수 없기는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런 인생을 산다는 건, 어쩌면 무섭기 짝이 없을 미로 속을 거니는....
고즈넉한 느낌까지 주는 조용한 방 안에서, 빠르게 키보드를 두들기는 소리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 달각. 달가닥. 탁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