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사 연예인이 되다-217화 (217/236)

#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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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중간에 위치한 둥근 원형의 리깅(Rigging) 장치 안에 들어간 수빈은 '더 콜' MC들의 멘트를 듣고 있었다.

"유명 뮤지션들이 비밀에 싸인 아티스트에게 직접 콜을 합니다. 의기투합한 그들의 조합으로 놀라운 콜라보 무대들 보여드리는, 여기는 엔넷의 '더 콜'입니다. 유세문씨. 오늘 신승훈씨가 해외 일정 관계로 부득이하게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른 대체 뮤지션이 준비되어 있겠죠?"

파산의 아이콘이라 불리는 이성민의 물음에, 개그맨 출신의 유세문이 호들갑을 떨며 대답했다.

"당연히 준비되어 있습니다. 신승훈씨가 싱어송라이터에 프로듀싱까지 가능한 만능 뮤지션이지 않습니까? 그에 걸맞게! 저희 제작진에서 극비리에! 작사, 작곡은 물론이고 프로듀싱까지 가능한 실력파 뮤지션을 섭외했습니다."

이성민이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극비리에라고요? 누가 출연하는지 이미 만천하에 다 공개된 거 아니었나요? 제 주변 분들 중에, 이번에 출연하시는 그분 사인 좀 받아달라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에요."

방청석 여기저기에서 웃음소리가 터졌지만, 유세문은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잘 모르시는군요. 요즘 가짜 뉴스가 횡행하지 않습니까? 뉴스에 나온 것처럼 정말로 그분이 출연할지 아닐지는 지켜봐야 아는 거죠."

"그래요?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 출연할 분이 어떤 분인지 키워드를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모니터를 봐주시죠."

무대 상단에 위치한 큼지막한 모니터에 키워드가 세 줄 떴다.

"첫 번째 키워드는 '아이돌 출신의 유명 기획사 이사'입니다."

이성민의 설명에 유세문이 아는 척을 하고 나섰다.

"아. 이분이 나오셨군요. 저 이분 잘 압니다. '공타'아닙니까? 아이돌의 시조새라고 불리면서 모 기획사 이사로 재직 중이신 분. 어쩌면.. '보아'일수도 있겠고요."

이성민이 코웃음을 치며 유세문의 말을 무시했다.

"두 번째 키워드는 '작사, 작곡, 프로듀싱이 가능한 만능 뮤지션'입니다."

"공타네요. 보아씨는 아직 프로듀싱을 한 적이 없는 걸로 압니다. 틀림없이 공타입니다."

"닥치시고요. 마지막 키워드는 '7천만 장이 넘는 앨범 판매고 기록'입니다. 응? 이거 정말인가요? 7천만 장을 팔아치웠다고요?"

이성민의 의문에 유세문이 동조했다.

"그러게요. 이상한데요. 공타 그분의 그룹 시절과 솔로 활동할 때를 다 합쳐도 그 정도 숫자는 안 될 텐데요. 7천만 장이면 정말 어마어마한 판매량이라서요."

이성민이 큐시트를 보며 말했다.

"제가 알기로는 얼마 전까지 앨범 판매량으로 역대 1위를 기록하고 계시던 조용필 선생님이 2천만 장. 오늘 자리를 비운 신승훈씨가 2위로 1,500만 장. 3위인 서태지씨가 1,200만 장. 4위 김건모씨가 1,100만 장. 안타깝게 이미 고인이 되신 신해철씨가 5위로 850만 장 정도 되는 걸로 압니다만.. 이분들의 기록을 다 합쳐도 7천만 장이 좀 안되는군요."

그 순간 1차 라인업 가수로 자리에 앉아 있던 김종국이 답답한 듯 마이크를 집어 들고 말했다.

"MC 님들. 아까 대기실에서 출연자들끼리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이번에 출연하는 분과 같은 팀이 아닌 사람들은 지금 다들 멘붕 상태입니다. 거미씨와 에일리씨는 좋아서 방방 뛰고 있고요. 그러니 그만 떠들고 이제 소개를 해주시죠? 이 자리에 그분이 대단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안 그래요?"

큐 시트를 열심히 보고 있던 이성민이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이분을 소개해드릴 내용이 좀 더 남아있지만.. 거두절미하고 7천만 장의 음반 판매고를 기록 중이신 그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성민의 멘트와 함께 리깅 원통 주위로 여러 대의 스포트라이트가 빛을 내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여러분. 박수로 맞이해 주시길 바랍니다. 천재 뮤지션이자 세계적인 영화감독인 강! 수! 빈!씨를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 짝짝짝짝.

- 우와아아.

사람들의 뜨거운 함성과 박수 속에 둥근 원통이 올라가자, 마이크를 손에 쥔 수빈이 해맑게 웃으며 등장했다. 하얀색 운동화를 신고, 청바지에 심플한 베이지색 니트를 받쳐 입은 수빈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두 MC 가운데 수빈이 자리 잡자 방청석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 어머어머. 얼굴 잘생긴 것 좀 봐.

- 키 차이가 엄청나네. 장난 아니다.

- 너무 멋지다. 오빠! 사랑해요!

이성민이 감탄스럽다는 눈빛으로 수빈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훤칠하고 잘 생겼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강수빈씨를 보면서 이해가 되는군요. 요즘 많이 바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더 콜'에 나오게 된 겁니까?"

"다양한 아티스트들과의 콜라보라는 '더 콜'의 기획의도가 제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 친한 친구가 이쪽 방송사에 근무하고 있는데, 친구가 나와달라고 부탁을 해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러시군요. 친구와의 우정을 아주 소중하게 여기시나 봅니다. 그럼.. '더 콜'에 출연하신 소감이나 각오를 말씀해 주시죠."

"이렇게 여러 훌륭하신 선배 가수분들과 콜라보 무대를 하게 되어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좋은 노래를 만들어서, 여러분들에게 좋은 무대를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기대해 보겠습니다. 그럼 신승훈씨가 있던 자리로 이동하시면 되겠습니다."

자리를 이동한 수빈은 신승훈과 한 팀이었던 거미와 에일리 사이에 착석했다. 수빈이 왼편에 앉은 거미에게 인사를 건넸다.

"거미 선배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뇨. 오히려 제가 잘 부탁드려야죠. 수빈씨와 작업을 하게 되다니.. 로또라도 당첨된 기분이에요."

"제가 아직 나이가 많이 어립니다. 말씀 낮추시죠."

"다음에.. 다음에요. 제가 초면에 말을 잘 못 놔요."

수빈이 고개를 끄덕인 후 오른 편에 앉아 있는 에일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에일리 선배님. 잘 부탁드립니다."

에일리가 호들갑을 떨며 대답했다.

"수빈 오빠. 전 예전부터 수빈 오빠 팬이었어요."

"제가 동생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 정도로 잘 생기면 다 오빠죠. 오빠. 잘 부탁해요. 어떤 곡을 주실지 정말 기대가 돼요"

에일리의 발언에 수빈이 살짝 당황해할 때, 무대 위에 있던 이성민이 멘트를 시작했다.

"매번 새로운 주제를 가지고 콜라보 무대를 가지고 있는 '더 콜'. 이번 주에는 과연 무슨 주제를 가지고 무대를 꾸밀지 기대가 되는데요. 유세문씨?"

"네. 이번 주제는 '자유 주제'가 되겠습니다. 각 팀에서 자신 있는 주제, 하시고 싶은 주제를 가지고 콜라보 무대를 만들어 주시면 되겠습니다. 먼저 주제를 선정한 다음, 잠시 후에 등장할 아티스트들 중에 그 주제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시는 사람을 콜 해주시길 바랍니다. 팀원들끼리 의논할 시간을 1분 드리겠습니다."

유세문의 멘트가 끝나자 수빈이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물었다.

"특별히 하시고 싶은 게 있으십니까?"

거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어차피 작사, 작곡, 프로듀싱까지 수빈씨가 다 할 거잖아요? 알아서 정하면 전 따라갈게요."

에일리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오빠. 오빠 하시고 싶은 거 다 하세요."

"제기 동생이라니까요.. 이왕 곡을 만들고 무대에서 발표까지 할 거면, 목적과 방향이 뚜렷한 게 좋지 않겠습니까? 영화 주제가 어떻습니다? 제가 이번에 찍는 신작 영화에 삽입곡으로 쓰면 어떨까 하는데요. 최종적으로 영화 OST 앨범에 실어도 좋고요."

갑작스러운 수빈의 제안에 눈이 동그래진 에일리와 거미가, 동시에 소프라노 같은 하이톤으로 비명 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정말요?"

"진짜로?"

두 사람의 비명 소리에 무대에 있던 이성민이 급히 물었다.

"그쪽 팀. 무슨 일 있습니까? 비명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던데요."

흥분한 에일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했다.

"수빈 오빠가 이번에 우리랑 같이 콜라보 하는 곡을, 지금 찍고 있는 신작 영화의 주제곡으로 쓸 거래요. 영화 OST 앨범에도 실을 게획이래요."

에일리의 돌발성 폭탄 발언에 방청객과 가수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성민이 다급히 확인을 했다.

"수빈씨. 정말입니까?"

수빈이 마이크를 들고 대답했다.

"네. 맞긴 한데.. 같이 작업할 곡을 신작 영화의 삽입곡으로 쓸 생각을 하고는 있습니다만, 주제곡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건 일단 곡이 나와봐야 알겠죠. 그리고 영화 OST 앨범에 실을 계획을 가지고 있긴 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얼마 전 상영했던 영화 '라이프'의 동명 주제곡이었던 '라이프' 앨범이, 전 세계적으로 2천만 장이 넘게 팔린 걸로 알고 있는데요. 맞습니까?"

"현재까지 2,500만 장 정도 나갔을 겁니다. 제가 듣기로는.. 지금도 꾸준히 나가고 있어서, 조만간 3천만 장을 달성할 거라고 하더군요."

"알겠습니다. 정말 대단하네요. 잘 하면 그쪽 팀원들은 대박이 날 수도 있겠어요."

그때 휘성이 손을 번쩍 들었다.

"네. 휘성씨.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십니까?"

"저희 팀은 오늘 저랑 환희 두 명이 한 팀인데요. 좀 전에 둘 다 의견일치를 봤습니다."

"뭐라고요?"

"오늘은 우리가 따로 콜을 하지 않고, 수빈씨가 속해 있는 팀과 콜라보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에일리가 발딱 일어나서 외쳤다.

"말도 안 돼! 그런 게 어딨어요."

그 순간 김범수와 김종국도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우리도 그러기로 결정했습니다."

"저희 팀도 마찬가지입니다."

잠시 후 수빈을 두고 가수들 간에 때아닌 논쟁이 불붙기 시작했다,  난감한 표정의 수빈이 이마에 손을 짚은 채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너무 무리한 건가? 성희 부탁대로 화제성을 최대한 키우려고 세운 계획이었는데.. 나름 유명한 가수들이라서, 이렇게까지 대놓고 들이댈 거라고는 미처 생각을 못했단 말이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욕심이란..'

이윽고 촬영이 중단되고, 제작진들과 출연진들 간의 긴급회의가 시작되었다.

비교적 말수가 적고 조용한 성격이라는 거미가 입을 열었다.

"정해진 규칙이 있잖아요. 그럼 규칙대로 해야 맞는 거죠."

거미의 오랜 절친이라는 휘성이 반박했다.

"그건 편리한 진행을 위해 만든 규칙이지 법은 아니죠. 이런 좋은 기회가 있으면, 출연자들에게 똑같이 기회를 주는 게 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콜을 다시 해서, 팀을 새롭게 정하는 게 맞을 거 같은데요."

화끈한 성격으로 소문난 에일리가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말도 안 돼요. 다들 대기실에서 짠 거죠? 나랑 거미 언니가 수빈 오빠랑 한 팀이잖아요. 그럼 팀별로 미션을 수행해야죠. 이제 와서 바꾸는 게 어딨어요?"

김종국이 입을 열었다.

"그건 일반적인 상황이지. 지금은 비상 상황이잖아. 전 세계적으로 팔려 나갈 앨범에 참여하고 싶지 않은 가수가 어디 있어? 내 생각에는..."

이신영 피디가 손을 들어 김종국을 제지했다.

"잠시만요. 이번 사태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분의 말부터 들어보죠. 수빈씨?"

입장이 난처한 수빈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네. 피디님."

"수빈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새로 팀을 꾸리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아님 그냥 있는 팀으로 진행하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수빈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가장 확실한 해결책은 제가 주제를 바꾸는 거죠. 영화 삽입곡 말고 그냥 일반적인 곡을 콜라보 무대에 올리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러면 너무 심심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제안을 하나 할까 합니다."

"어떤 제안이죠?"

수빈을 주위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제가 할 제안은..."

잠시 후 다시 촬영이 재개되었다. MC인 이성민이 무대 중앙에서 큐 시트를 보며 정해진 멘트를 읊었다.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이 되겠습니다. 평상시에는 콜라보를 위해서 네 분 정도의 아티스트를 초대합니다만, 오늘은 숫자가 좀 많다고 하죠?"

유세문이 고개를 끄덕이며 멘트를 받았다.

"네. 그렇습니다. 강수빈씨가 출연한다는 기사가 나간 이후로. 엔넷 제작진 전화가 불이 났답니다. 쟁쟁한 가수들의 출연 요청이 물밀듯이 쇄도했다네요. 그래서 오늘은 무려 14팀의 아티스트가 무대 뒤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가 제작진에게 얼핏 듣기로는, 한 분 한 분이 다들 엄청난 분들이라고 들었습니다. 이거 한 주 분량으로 방송이 다 될지 모르겠어요. 어쩌면 2주로 나눠서 나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첫 번째 아티스트를 모셔보겠습니다."

무대 천장에서 둥근 원통의 리깅 장치가 다시 천천히 내려왔다.

정체불명의 아티스트가 원통 안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첫 소절을 듣는 순간 사람들이 다들 깜짝 놀랐다.

- 어라. 이 목소리는?

- 맞지? 그 가수가 맞는 거지?

- 레전드가 왜 여길 나오는 거야?

- 강수빈 이름값이 높긴 높구나.

자리에 앉아 있던 수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사태의 심각성을 감지한 수빈은, 손가락으로 의자들 톡톡 두들기며 머릿속으로 빠르게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프로그램이 애초에 예상했던 거와 너무 다른 방향으로 나가고 있어. 내가 출연한 여파가 이 정도 일 줄이야. 도가 너무 지나쳐. 이러다간 안 한만 못하게 될지도 몰라. 이럴 바에는 차라리.. 그래. 완전히 새로운 계획이 필요하겠어.'

수빈은 머릿속으로 새로운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잠시 후 계획이 완성되자 수빈이 얼굴을 풀며 중얼거렸다.

"내가 봐도 나쁘지 않은 계획이야. 화제를 몰기에도 딱이고.."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노래를 감상하던 수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잘 부르시는군. 달리 레전드가 아니지.. 이거 기대감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리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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