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사 연예인이 되다-211화 (211/236)

# 211

64 - 4

7월 5일 목요일

무명의 배우들을 대상으로 한 여자 조연 오디션이 끝이 났다. 다른 심사위원들은 오디션장에 남겨두고서, 수빈은 혼자 오디션장을 나와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였다. 사전에 미리 따로 잡아놓은 회의실로 이동한 수빈은, 회의실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봤다. 낯이 익은 여배우들 여러 명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나름 잘 나가는 여배우들이라 그런지, 서로 상대방을 견제하느라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무거운 침묵에 감싸인 방안으로 들어가며, 수빈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일부함원(一婦含怨)이면 오월비상(五月飛霜)이라.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데.. 제발 아무쪼록 뒤탈 없이 잘 끝나야 할 텐데.'

잠시 후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회의실 밖으로 나온 수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역시 돈이 좀 깨지더라도 이 방법이 최고였어. 다들 만족해 하는 거 같군.”

걱정거리가 하나 해결된 수빈이 밝은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디션이 다 끝난 후, 수빈의 지시에 따라 본격적인 촬영 준비가 착착 진행되었다. 특히 해외 로케가 많은 영화다 보니, 그 준비의 철저함이 더욱 요구되고 있어서 영화사 직원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었다.

7월 7일 토요일

가제목이 '헤이즈(haze)'로 정해진 신작 영화의 주조연 배우와 카메오들이 최종 확정되었다.

7월 9일 월요일

일본에서 활동하던 에리카가 한국으로 귀국했다. 에리카와 상관없이 뮤란은 계속 활동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에리카와 김샛별이 정식으로 출연 계약서에 사인을 한 다음, 액션 스쿨에서 훈련을 받기 위해 등록을 하였다.

7월 12일 목요일

한 주 가까이를 밤잠을 설쳐가며, 수빈이 부랴부랴 수정 작업을 한 최종 시나리오가 완성이 되었다. 인쇄된 시나리오가 배우들에게 보급되었다.

7월 13일 금요일

일전에 제작회의에서 결정된 내시경을 이용한 촬영 시스템이 완성이 되었다.  최종적으로 EVIS(Endoscopic Virtual Image System)라고 명명된 시스템을 이용하여, 수빈은 즉각적으로 시험 촬영에 들어갔다.

7월 16일 월요일

수빈은 월요일 아침부터 영화사 간부들과 회의를 하고 있었다.

"다들 아시겠지만 해외 로케 나갈 일정이 보름밖에 안 남았습니다. 가을이 끝나기 전에 해외 촬영분을 다 찍어야 하는 관계로, 이것저것 재고 고민할 시간이 이제는 없습니다. 정해진 일정에 맞춰 칼같이 딱딱 추진해 나갈 겁니다. 당분간은 오늘이 마지막 간부 회의가 될 것 같으니까, 건의 사항이나 부족한 것들이 있으면 오늘 이 자리에서 다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먼저.. 주조연 배우들과의 계약부터 들어봅시다."

수빈의 질문에 오상무가 대답했다.

"주조연 모두 한 명도 빠짐없이 계약이 다 완료됐어요. 현재 다들 체중 관리와 액션 훈련에 매진 중이에요."

"좋습니다. 배우들에게 체중 조절은 2주 이내로 끝마쳐 달라고 전해주세요. 그럼 다음으로.. 카메오로 출연하기로 한 여배우들 문제는 어떻게 돼갑니까? 한두 명이 아니라서 힘들었을 텐데요. 해외 일정과 관련된 조율이 다 끝났나요?"

뭔가가 마음에 안 드는 듯, 살짝 인상을 찌푸린 오상무가 대답했다.

"네. 끝났어요. 맨 먼저 유아영씨가 8월 7일 스위스 촬영지로 오기로 했고요. 김해수씨가 8월 25일 미국으로, 신세정씨가 8월 30일 캐나다로 오기로 했어요. 그리고 정도연씨가 9월 7일 이탈리아로 오기로 결정이 났고요. 마지막으로 하이유씨는 국내 일정이 바빠서, 10월 중에 가까운 일본으로 오기로 했어요."

"다행이군요. 날짜랑 국가가 겹치지 않고 골고루 분배가 잘 됐네요. 인기 여배우들이라 일정 짜는 게 힘들었을 텐데.. 오상무가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대표님. 아무리 잘 나가는 여배우들이라고 해도.. 카메오를 굳이 외국까지 데리고 나가서 찍을 필요가 있나요? 제작비 낭비가 너무 심해요."

수빈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걸 제가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제 돈으로 제작하는 영환데.. 좀 전에 오상무가 말한 분들은 다들 자존심이 강한 여배우들입니다. 그런 분들이 조연 오디션을 보러 왔다는 건, 나름 각오를 하고 온 겁니다. 하지만 오디션 배역과는 다들 맞지 않습니다. 유아영, 김해수, 정도연은 극중 배역보다 나이가 너무 많아요. 신세정과 하이유는 제가 직접 겪어봐서 아는데, 둘 다 몸치라서 전직 킬러 느낌이 제대로 안 납니다. 그렇다고 그냥 다 돌려보내기에는 아무래도 좀 그렇죠. 조연 배우로 계약을 하기에는 더더욱 무리가 있고요. 한두 명도 아니고.. 그래서 제가 카메오로 나와주십사 부탁을 드렸던 겁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과해요. 누가 보더라도 카메오로 출연하는 여배우들을 해외여행 보내주는 모양새잖아요? 안 좋은 소문이 날 수도 있어요. 그리고 영화사 자금이 넉넉하다고는 하지만, 한 푼이라도 아껴야죠. 굳이 그들을..."

오상무가 계속 반박을 하려고 들자 수빈이 손을 들었다.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오상무가 그분들과 제가 한 약속을 몰라서 그래요. 구두로 한 약속이라 제가 따로 말을 안 했지만.. 아시다시피 12월이면 영화사에서 다섯 명의 감독 후보가 단편 영화를 제작할 겁니다. 감독의 능력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제대로 된 배우가 필요한 게 당연하죠. 카메오로 출연하시는 그분들에게 단편 영화 출연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 대가로 해외여행을 보내주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빠를 거 같습니다."

"그래요? 그런 이면 약속이 있다고 하면 이해가 되네요. 진작 좀 말씀을 해주시지 그러셨어요. 잘 알겠어요."

오상무가 한발 물러나자, 수빈이 낮은 목소리로 구시렁거렸다.

"구두쇠 시어미 같으니라고.."

"어머. 대표님. 당연히 돈을 아껴 써야죠. 대표님은 유달리 여자들에게 약해서 더욱더 조심해야 한다고요. 영화 몇 편 망하면, 여유 자금이 바닥나는 건 금방이라고요."

수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귀까지 밝으시네. 네네. 안 망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럼 다음으로는.. 조부장? CG 팀장 건은 어떻게 돼가고 있나요?"

"네. 대표님. 7월 말까지 전에 다니던 회사를 정리하고, 짐을 꾸려 한국으로 오기로 했습니다. 며칠 있으면 입국할 겁니다. 도착을 하는 대로 제가 바로 대표님께 소개를 시켜드리겠습니다."

"능력은 믿을만하겠죠?"

"물론입니다. 제가 미국 현지에서 고르고 골라서 뽑은 인재입니다."

"좋습니다. 도착하는 대로 발령을 내시고, CG 팀을 셋업 하라고 하세요. 필요한 장비가 있으면 바로 발주 주문을 내시고요. 해외 로케를 끝내고 돌아오는 대로 바로 작업을 할 수 있게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이번에 찍는 영화가 괴수물도 아니고 SF 장르도 아니라서, CG 작업을 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겁니다. 나중에 결과물을 보고 실망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그런 일은 절대로 없을 겁니다. 대표님."

"믿겠습니다. 그럼 다음은.. 김종호 팀장?"

"네. 대표님."

"제가 넘긴 영상을 작업해 오셨나요? 오늘 간부 회의 때 봤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아직 시스템이 손에 익지 않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더 많이 걸렸습니다만.. 다행히 넘겨주신 영상의 분량이 길지 않아서, 오늘 새벽에 무사히 작업이 끝났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간단히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김종호 페스 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동식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는 벽 앞에 섰다.

"EVIS. Endoscopic Virtual Image System을 줄여서 '에비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잠시 후 보시는 영상들은 에비스 버전 1로 촬영이 된 것들입니다."

김팀장이 여성욱 부팀장에게 눈짓을 하자, 스크린에 여러 개로 분할된 이미지 화면이 떴다.

"보시다시피 총 12장의 사진이 있습니다. 이번 시험 촬영에 동원된 각 카메라에서 뽑은 이미지들입니다. 일반 카메라 6대와 에비스용 특수 카메라 6대. 합쳐서 총 12대의 카메라가 동원되었습니다. 에비스에 사용되는 특수 카메라는 각 배우의 이마와 무기 손잡이 그리고 무기 끝에 달았습니다. 그리고 사이드 앵글에서 찍는 달리, 오버 앵글에서 찍는 지미집 그리고 대표님과 팽석상 배우의 풀샷을 찍는..."

수빈이 손을 들었다.

"김종호 팀장. 열심히 작업한 걸 자세히 설명하고 싶은 기분은 알겠는데.. 너무 깁니다."

"알겠습니다.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카메라 세팅에만 6시간이 걸렸고, 시험 촬영 시간은 30분입니다. 그럼 최종적으로 대표님이 편집을 끝마친 영상을 보시겠습니다."

김팀장이 여부팀장에게 눈짓을 하였다. 화면에 영상이 플레이 되었다.

어두운 화면 속에서 후욱~. 후욱~. 하는 남자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일순간 화면 속에서 시퍼렇게 날이 벼려진 칼날이 벼락같이 날아들었다.

- 엄마야.

- 깜짝이야.

- 어우. 놀래라.

화면이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하며, 두 남자의 결투 영상이 흘러나왔다. 마치 지켜보는 관객 본인이 결투를 하고 있는 듯, 남자들의 생생한 얼굴 표정과 살기 어린 눈빛, 흘러내리는 땀방울과 거친 호흡 소리가 손에 잡힐 듯 선명했다. 자신들의 눈 바로 앞에서 시퍼런 칼날이 빠르게 지나갈 때마다, 보고 있던 사람들이 오금이 저리는지 몸을 움찔거렸다. 다양한 앵글의 화면과 원근감이 급변하는 영상들이, 지켜보는 간부들을 숨 쉴 틈도 없이 거세게 몰아붙였다.

30초 정도의 짧은 영상이 끝이 나자 수빈이 입을 뗐다.

"쓸만하죠?"

- 어우. 장난 아닙니다.

- 몰입감이 대박인데요.

- 이거 완전 짱이에요.

"애초에 제가 상상했던 것보다 영상이 더 잘 빠졌습니다. 수정 작업을 하고 나니, 편집 때 보였던 눈에 거슬리는 장면들도 거의 없어졌네요. 하지만 작업을 실제로 진행을 해보니까, 심각한 문제점들도 발견되었습니다. 10분 정도의 결투 영상을 뽑아내려면, 같은 장소에서 못해도 사나흘은 내리찍어야 한다는 겁니다. 찍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어요. 그리고 또 한 가지의 문제가 존재하죠. 김팀장?"

"네. 대표님. 제가 마저 설명드리겠습니다. 방금 보신 영상이 30초짜리입니다. 편집된 영상을 수정 작업하는데, 사흘이 꼬박 걸렸습니다. 10초당 하루가 걸린 셈이죠. 10분짜리 영상이라면.. 못해도 두 달은 걸린다는 겁니다."

"20분이면 수정 작업에만 4달이 걸린다는 소리죠. 시간이 중요한 신생 영화사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겁니다. 해결책은 있습니까?"

"지금 작업에 사용되는 컴퓨터가 이 분야에서는 거의 최상급입니다. 슈퍼컴퓨터라도 사용하지 않는 이상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습니다. 하지만 작업 시간을 줄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아직 시스템이 손에 익지 않은 상태라 오래 걸렸습니다만, 경험이 쌓일수록 작업 시간은 더 단축될 걸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작업을 하다 보면 자연적으로 시스템 기능들이 업그레이드가 될 걸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버전 2, 버전 3가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죠."

"만약 제가 10월 말에 편집본을 넘겨준다고 가정하면, 얼마까지 줄일 수 있을 것 같습니까?"

"10월이라면.. 10분에 한 달까지는 가능할 거 같습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수빈이 말했다.

"좋습니다. 그 정도만 해도 12월에 영화를 개봉하는 데에는 큰 차질이 없을 거 같네요. 지원을 아끼지 않을 테니까, 시스템을 최대한 업그레이드해보세요."

"알겠습니다. 대표님."

"에비스 이야기는 그 정도로 해두고.. 이성호 소품팀장?"

"네. 대표님."

"브루클린 다리 아래서의 결투 신을 현장에서 다 찍을 수는 없어요. 에비스를 이용해서 찍으려면, 못해도 사나흘은 찍어야 합니다. 머나먼 미국에서 1 신을 위해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낼 수는 없죠. 대책은 세워놨습니까?"

"네. 주말에 대표님 연락을 받고 바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미국 현지에 부탁을 해서, 다각도로 찍은 브루클린 현장 사진을 이미 입수했습니다. 사진을 참고로 어제부터 세트 제작에 착수 한 상태이고요. 늦어도 이번 주면 제작이 다 끝날 겁니다."

수빈이 박상민 지원팀장을 보며 물었다.

"박팀장? 보완 대책은요?"

"네. 대표님. 이팀장과 의논을 해본 결과, 배경 화면이 되는 그라피티가 가장 문제가 될 걸로 보입니다. 미국 쪽과 협상을 이미 시작한 상태입니다. 현지의 그라피티가 세트와 차이가 많이 나면, 우리 쪽에서 수정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부탁을 해놨습니다. 조만간 답장이 올 것 같은데.. 아마 가능한 쪽으로 확답을 줄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게 안되면 다 찍은 다음 CG 처리를 또 해야 한다는 건데.. 쓸데없는 시간 낭비에 불과합니다. 우리에게는 그럴만한 여유가 없어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승낙을 받아내시길 바랍니다. 이번 주에 세트가 다 완성이 되면, 다음 주부터 한 주간은 세트장에서 다리 밑 액션 신을 찍겠습니다. 출국 전에 다 찍고 갈 생각이니까, 차질이 없도록 다들 만전을 기해주시길 바랍니다."

- 알겠습니다. 대표님.

"국내에서 급한 문제들은 대충 정리가 된 것 같으니까.. 해외 로케 이야기를 해봅시다. 스위스부터 의논을 해보죠. 오상무?"

"네. 제가 지금까지 정리된 걸 말씀드릴게요."

영화 제작을 위한 마지막 간부 회의가 길어지며 마라톤 회의가 되어가고 있었다.

7월 23일 월요일

아침 일찍부터 님양주 종합촬영소에서는 '헤이즈' 크랭크인을 기념하는 고사상이 차려지고 있었다. 애초의 일정보다 열흘 정도 늦어진 크랭크인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