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사 연예인이 되다-203화 (203/236)

#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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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2일 화요일

오전에 제작 회의를 주재했던 수빈은 오후가 되자 YK에 들렸다. 분장실에 잠시 들렸던 수빈은 창백해진 얼굴로 사장실에 올라갔다. 사장실에 들어서는 수빈을 보며 박사장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강이사. 어디 아픈가? 얼굴이 왜 그래?"

수빈이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대답했다.

"제가 다음 주에 파리에서 열리는 패션위크에 갈 일이 있어서요. 사전에 옷을 제작하는 것 때문에 정확한 신체 치수가 필요하다고 해서, 분장실에 계시는 코디 분에게 부탁을 하려고 잠시 들렸는데.. 치수를 재는 동안 기가 다 빨린 기분이네요."

박사장이 소파에 앉으며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 언니들이 좀 집요한 구석이 있긴 하지. 그것 때문에 온 건가?"

"아뇨. 그건 YK에 온 김에 겸사겸사해서 처리한 거고요. 사장님께 신인 배우와의 계약을 좀 부탁하려고 왔습니다."

박사장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신인 배우와 계약이라고? 그걸 굳이 나에게까지 보고할 필요가 있나? 자네가 알아서 처리하면 되지 않는가."

"좀 특이한 케이스라서요. 제가 제작하는 새로운 신작 영화에 단발로 출연할 배우입니다. 보통의 계약처럼 장기간 계약도 아니고, 계약금이나 처우도 좀 특별한 경우라서.. 제가 사전에 사장님께 미리 보고를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찾아왔습니다."

"그래? 그럼 강이사가 원하는 대로 서류를 꾸며서 올리게나. 내가 군말 없이 결재해 줄 테니. 근데.. 뭐 하는 친군가? 새로 제작하는 영화에 투입된다고?"

"네. 저처럼 어릴 때부터 무술을 배운 친굽니다. 제대로 배웠죠. 어정쩡하게 배운 사람들이랑은 차원이 다릅니다."

"갑자기 그 친구가 왜 필요한 건가?"

"제가 제작할 이번 신작 영화는.. 전 세계 영화팬들에게 진정한 액션이 뭔지, 미장센이 액션에서 어떻게 빛을 발하는지, 편집의 진가가 어떤 건지.. 제대로 한번 보여줄 생각입니다. CG 작업에 수천 억씩 쏟아붓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주름잡는 세계 영화판에서, 진정한 영화란 본디 인간의 몸짓과 대사의 예술이자 총합체라는걸 깨닫게 해주겠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습니다. 그러려면 그 친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거창하군. 딴 사람이 그런 소리를 했다면 주제넘는다고 욕부터 하겠지만.. 강이사 입에서 나온 소리니 기대가 한 끗 올라가는군. 어떤 영화인지 궁금하네만?"

"아시잖습니까? 이전에 BJ에서 찍으려다 엎어졌던 'SAT'를 기반으로 해서 찍을 생각입니다."

"그 영화야 나도 알지. 하지만 그 영화는 배역이 다 결정 났었다고 들었는데.. 새로운 배우와 계약을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SAT 각본을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수정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영화는 철저하게 세계 시장을 목표로 제작하는 상업 영화이자 오락 영화입니다. 그런 영화에 국정원 특수요원 같은 세상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고, 이름도 생소한 주제로 영화를 찍으면 흥행이 안되죠. 보다 대중적인 소재로 각본을 바꾸고 있습니다. 주(主) 무대도 한국이 아니라 미국으로 변경될 겁니다."

"대중적인 소재라.. 그게 뭔가?"

수빈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일반 사람들이 생각할 때 액션이라고 하면 보통 첩보원, 경찰, 형사, 조폭물이라고 생각합니다만.. 한가지 분야가 더 있죠. 바로 킬러물입니다. 이번 영화는 킬러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입니다."

"킬러?"

"네. 제가 피도 눈물도 없는 전문 킬러로 등장하죠. 일전에 말씀드렸잖습니까? 제가 가장 자신 있는 연기는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연기와 사람 죽이는 연기라고요. 잘 할 자신 있습니다."

"라이프에서 뼈만 남은 채 불치병으로 죽어가던 강이사가 갑자기 킬러로 변신한다라.. 나름 센세이션을 일으키기에 충분하겠는걸. 제작기간은 얼마 정도로 생각하는가?"

"아무리 빨리 찍는 저라도, 지금 제가 생각하고 있는 스케일의 영화면 1년은 족히 걸릴 겁니다. 하지만 SAT를 준비하면서 BJ 쪽에서 장소 헌팅이나 섭외, 소품 및 의상 그리고 콘티나 배역 분석 작업 등을 미리 해둔 게 있어서.. 시간이 많이 단축될 것 같습니다. 바짝 찍으면 6개월이나 7개월 후면 개봉이 가능할 거 같습니다. 올 연말이나 내년 초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엄청나게 빠르군."

"할리우드와 경쟁하려면 빨라야죠. 자본력이나 기술력으로 승부하기에는 아직은 무립니다. 지금은 빠르게 제작하고, 빠르게 개봉해서, 최대한 빨리 우리 영화사를 세계 영화팬들에게 각인시키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진정한 경쟁은 그다음부터 시작되는 거죠."

"각본이 바뀌면.. 그럼 주연 배우들도 다 바뀌는 건가?"

"네. 바꿀 생각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배역에 어울리는 배우들이 몇 명 있습니다. 그런 배역들을 제외하고는, 오디션을 봐서 선발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주연 배우와 관련해서 사장님의 허락이 필요한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뭔가?"

"뮤란 멤버 중에서 에리카를 제 영화에 출연시킬 생각입니다. 그러려면 아무래도 뮤란을 쉬게 해야 하는데.. 수익 측면에서 YK가 손해를 좀 볼 거 같아서요."

"수익이야 충분히 벌어놨으니까 별 상관없네. 그 문제는 내가 뮤란 멤버들의 의견을 직접 물어보고 결정하지. 걔들이 활동한지 좀 됐으니, 쉬고 싶다고 그러면 단체로 휴식기간을 줘야겠지. 계속 활동을 하고 싶다고 그러면 에리카만 따로 빼서 영화 쪽으로 돌려주겠네. 다른 멤버들 입장에서는 한창 잘 벌고 있는데 굳이 쉴 생각이 없을 수도 있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일주일 내로 결정해서 알려주시죠. 그럼 제가 개인적으로 에리카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본인이 영화에 출연하는 걸 싫다고 거절할 수도 있으니까요."

"거절? 자네가 감독인데 그럴 리가.. 다른 또 도와줄 일이 있나?"

"지금 현재는 이 정도로 충분합니다. 본격적인 제작은 파리를 다녀와서 7월 초부터 시작할 계획이라서요."

박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만 하게나. 그럼.. 미국에 있는 김사장 주식은 자네가 다 인수할 거지? 내가 한손 거들 필요는 없는 거지?"

"네. 제가 다 할 겁니다. 자금 여유가 충분할 때 빨리 처리를 해놔야 잊어버리죠."

"알겠네. 그럼 이제 강이사가 명실상부한 1대 주주로 올라서는 거로군."

"자금이 필요하시면 말씀하시죠. 제가 사장님 주식도 인수해 드리겠습니다."

"내 주식을? 일없네. 그걸 다 팔았다가는 강이사가 날 괄시하거나 쫓아낼지도 모르지 않은가?"

"왜 또 그러십니까? 그럴 리가 없잖아요."

"농담이야. 농담. 그건 그렇고.. 중요한 이야기는 다 끝난 것 같으니, 개인적인 일 좀 물어봐도 되겠나?"

"네. 물어보시죠."

진중한 얼굴의 박사장이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자네 요즘 하이유랑 연애하나?"

뜬금없이 날아온 박사장의 질문에 수빈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잠시 후 황당한 얼굴로 사장실을 나서는 수빈이 중얼거렸다.

"박지영 피디.."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백성철이 수빈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얼굴이 왜 그래? 뭐 안 좋은 이야기라도 들었어?"

"형님. 내일 KBC 박피디랑 다시 면담 약속 좀 잡아주세요. 이상한 소문이 더 퍼지기 전에 빨리 확정을 지어야겠습니다. 이러다 큰일 나겠어요."

"그래. 알았다. 몇 시쯤으로 잡을까?"

"점심 경으로 잡아주세요."

"알았어. 내가 그렇게 잡아놓으마. 그럼 이제 이관장을 보러 가면 되는 거지?"

"네. 전시회 건 말고도 의논할게 생겨버렸네요."

6월 13일 수요일

점심 무렵 수빈은 KBC 신관에서 박지영 피디와 작가들 그리고 하상원 예능국장과 미팅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빨리 다시 보자고 하실 줄은 몰랐어요."

박피디의 말에 피곤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수빈이 대꾸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빨리 결정을 짓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요즘 제가 연애를 하고 있다는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어서 말입니다."

"네? 그런 소문이 돌고 있나요?"

수빈은 박피디의 질문을 무시하고 말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시죠. 새롭게 론칭할 프로그램의 내용에 대해서는 저도 어느 정도 파악을 했습니다. 프로그램에 출연할 네 명의 여성분에 대해서 말해보시죠."

"어머. 프로그램의 내용이 벌써 소문이 났나 보죠? 그렇게 비밀을 지켜달라고 했었는데 말이죠."

매섭게 작가들과 국장을 째려보는 박피디를 보며 수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다른 정보통에게서 얻은 거니, 애꿎은 사람들 쳐다볼 필요 없습니다."

"그런가요? 그럼 네 명의 여성분들에 대해서 말씀드리기 전에.. 먼저 물어볼게요. 출연하기로 완전히 마음을 먹으신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2가지 조건만 들어주시면 출연하겠습니다."

"어떤 조건이죠?"

"방송이 나가기 전 최종 편집본을 저에게 보여줄 것. 박피디님의 악마의 편집에 당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요."

잠시 생각에 빠져있던 박피디가 대답했다.

"좋아요. 그 대신 피디의 편집권을 지나치게 침해하시면 안 돼요."

"이상한 쪽으로 편집하지 않으시면, 제가 충분히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나머지 하나는요?"

"국내 판권에 대해서는 손대지 않겠습니다. 그 대신 외국 판권에 대해서는 저에게 전권을 넘겨줄 것. 단, 거기에 합당한 대가를 KBC와 협의해서 지불하겠습니다. 로열티도 충분히 책정해드리고요. 제가 파는 게 훨씬 더 비싸게 팔아먹을 수 있을 겁니다."

박피디가 허국장을 쳐다보자, 허국장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판권은 어차피 제 권한도 아니고요. 방송국에 소유권이 있으니, 강감독님께서 방송국이랑 알아서 협상을 하시면 될 것 같네요. 그럼 출연하기로 약속하시는 거죠?"

"네. 약속드리죠."

"그럼 강감독님이 약속을 하셨으니, 출연 여성분들을 알려드리죠. 저도 고민을 많이 했어요. 강감독님 명성이 워낙 높으셔서.. 거기에 걸맞은 여성분들이 나와야 하기 때문에 심사숙고해서 선정을 했어요."

잠시 뜸을 들인 박피디가 입을 열었다.

"프로그램의 재미와 흥미를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들을 골랐어요. 최종적으로 각 분야에서 여신이라고 불리는 네 명의 여성을 선발했죠. 영화계의 여신, 음악계의 여신, 클래식계의 여신 그리고 재벌가의 여신. 이렇게 말이죠."

옆에서 말없이 듣고 있던 하국장이 어이가 없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거창해도 너무 거창한 거 아닌가.."

박피디가 자신 있는 얼굴로 하국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극장님. 절대 거창한 게 아니에요. 국장님은 영화계의 여신하면 제일 먼저 누가 떠오르세요? 신인 여배우들 중에서 말이죠."

"그거야 당연히 김샛별이지. 그 친구 말고 누가 또 있을까.. 응? 설마?"

"맞아요. 디스패치 뮤비로 주목을 받기 시작해서, 디젤 CF로 대중들에게 여신 소리를 듣기 시작했고, 얼마 전 개봉한 라이프에서 연기력까지 인정받은 영화계의 여신. 김샛별이 출연하기로 약속했죠."

"허어. 대박인데.. 무슨 재주로 섭외한 건가?"

박피디가 손을 들어 수빈을 가리켰다.

"강수빈 이름 석자로 승낙을 받았죠."

"그럼 음악계의 여신은 누군가? 설마.. 하이유는 아니겠지?"

수빈이 대신 대답했다.

"아마도 하이유 선배가 맞을 겁니다. 어제 오전까지만 해도 저도 몰랐습디다만..  제가 오늘 급하게 온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하이유 선배가 이번 프로에 출연하는 바람에, 지금 소속사에서 하이유 선배랑 저랑 사귀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박피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요. 철저하게 비밀을 지키기로 저랑 약속했다고요."

수빈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하아.. 하이유 선배가 얼마 전 요리 학원에 등록했다고 합니다. 그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사람이 말이죠. 그 목적이.. 같은 집에서 살게 될 남자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기 위해서라는 말이 측근에서 새어 나왔어요. 그리고 같은 소속사에 있다 보니, 그 남자가 저라고 사람들이 추측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새로 론칭되는 프로그램과 관계된 거라는 걸 사람들이 모르다 보니까, 오해를 하고 있는 거죠. 제가 지금 입장이 아주 난처해요. 그래서 오늘 아예 출연 확정을 지으려고 급히 찾아온 겁니다."

"정말 하이유도 출연하는 건가?"

다급한 하국장의 물음에 박피디가 턱을 치켜세우며 대답했다.

"맞아요. 하이유도 출연하기로 약속을 했죠."

하국장의 입과 작가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하국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건 그냥 대박 정도가 아니라 완전 초초대박인데.."

"거기에 클래식계의 여신이라 불리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최아림도 출연하죠. 마지막으로 재벌가의 여신인 김성희라고 있는데.. 여러분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BJ 그룹의 패밀리 중 한 명이에요. 이번 프로그램의 공식 스폰서 중에 하나인 BJ에서 적극적으로 밀은 여성이기도 하고요. 직접 보시면 다들 깜짝 놀랄걸요? 미모나 몸매가 연예인 못지않아요. 학벌도 뛰어나고요."

다들 충격에 빠져있는 와중에서, 수빈이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제 보니.. 박피디님이 저에 대해서 조사를 많이 하셨군요."

박피디가 뿌듯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럼요. 이번 프로그램은 제 피디 인생에 있어서 역사적인 프로그램이 될 거예요. 근데 어떻게 대충 준비를 하겠어요? 밤을 새워가며 철저하게 조사를 했죠. 연예계에 떠도는 소문부터 시작해서 강감독님이 연출한 영화 작품, 음악 앨범, 광고, 드라마, 라이브 무대, 각종 방송 및 잡지 인터뷰 등등.. 샅샅이 훑어서 만든 리스트라고요."

박피디가 마치 독안에 든 쥐를 바라보듯 수빈을 바라보았다. 회심의 미소를 지은 박피디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그럼 강감독님의 출연 계약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눠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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