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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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론칭하는 프로그램을 스폰 하기로 약속한 곳이 3곳이에요. 화랑 그룹, 한호 그룹, BJ 그룹. 이렇게요. 그리고 이 3개의 그룹과 오디션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박피디의 말에 하국장이 황당한 얼굴로 다급히 손을 흔들었다.
"잠깐. 잠깐만.. 아니 기획서 올린지 며칠이나 됐다고.. 하나같이 국내 굴지의 그룹들이잖아? 그런 그룹들에게서 정식으로 스폰을 받기로 벌써 약속을 받아냈다고? 사실인가?"
박피디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아까 제가 말했잖아요. 사전 준비를 철저히 했다고요."
"허어.. 놀랍군. 그럼 그 그룹들과 오디션과는 무슨 관련이 있는 건가?"
"이번 프로그램은 우리 프로를 스폰 하는 기업들을 1년간 대표할 공식 모델을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라고 보시면 돼요. 보다 자세히 들어가면.. 한호 그룹의 한호 자동차, 화랑 그룹의 화랑 백화점 마지막으로 BJ 그룹의 또래쥬르. 그 3개사와 정식으로 계약을 맺고, 1년간 광고 모델로 활동할 모델을 선발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에요. 다른 시시한 연애 프로그램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니까요."
하국장이 그제야 뭔가를 깨달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촉이 왔어. 이제 어느 정도 감이 잡히는군. 그러니까 4명의 여자 연예인과 강감독을 한 팀으로 묶어서, 3개사의 CF 제작을 하는 거지? 그렇지? 그리고 그걸 오디션 방식으로 해서 한 명씩 탈락시키는 거고.. 최종적으로 1명의 여자 모델이 남을 때까지 말이야. 그리고 투표는 시청자들이 직접 하도록 만들 거고.. CF 콘티를 짜는 거나 CF 촬영은 당연히 강감독이 직접 하겠지. 세계적으로 명성 높은 강감독이 직접 찍는 CF라.. 업체 입장에서는 광고 효과가 대박일 테지."
"맞아요. 보다 자세히 말하면 이런 거죠. 강감독이 특정 제품, 그러니까 첫 주는 화랑 자동차의 광고 콘티를 강감독이 직접 짜서 여자 출연자들에게 전해 주는 거죠. 그럼 그걸 가지고 4명의 여자 출연자들과 강감독이 같이 합숙을 하면서 연습을 하겠죠? 그런 다음 실제로 4명이 각각 자신이 출연하는 CF를 찍는 거예요. 그럼 최종적으로 4편의 자동차 CF가 완성되는 거죠. 그걸 가지고 시청자들의 투표를 받을 거예요. 그리고 한 명 탈락. 그다음은 뭐.. 같은 일의 연속이죠. 최종 1명이 남을 때까지 말이죠. 그러는 동안 강감독을 둘러싼 여자들 간의 암투, 눈치 싸움, 경쟁 그리고 연애질.. 그런 것들을 지켜보는 재미는 그야말로 덤인 거죠."
하국장이 감탄한 얼굴로 말했다.
"끝내주는 아이템을 잡았군. 이건.. 무조건 대박이야. 그룹 입장에서는 몇 달간 자신의 그룹이나 제품을 지속적으로 노출시키는 효과를 볼 테고..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박피디 말대로 전미 박스 오피스 1위를 기록한 강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을 안방에서 공짜로 볼 수 있는 기회지. 거기에 선남선녀들의 연애를 지켜보는 재미도 있을 테고.. 박피디. 방송 기간을 얼마 정도로 잡고 있나?"
"최하 4개월 최장 6개월로 보고 있어요."
"더 늘릴 수는 없나? 이건 늘릴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늘려야 하는 프로라고.."
박피디가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은 힘들어요. 한주 콘티를 짜고, 한주 연습, 한주 촬영 그리고 투표. 이런 식으로 진행을 하면 4개월 정도가 딱 알맞아요."
"외부에서 힘 싸움과 알력이 시작되었다.. 사장님이 오늘 나에게 하신 말씀이지. 이제야 그 말씀이 이해가 되는군. 이번 프로에서 제외된 다른 굴지의 그룹들 그리고 누군지 모르지만 출연하기로 되어 있는 여자 연예인들을 제외한 다른 기획사들 입장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거야. 폭탄이 투하된 거나 마찬가지라고.."
"아직까지는 그렇게 심하지는 않을 거예요. 제가 철저히 비밀 유지를 해왔으니까요."
"아냐. 이런 일은 절대로 비밀이 지켜지지 않아. 박피디가 섭외하는 과정에서 이미 조금씩 말들이 퍼져나갔을 거야. 사장님이 왜 내게 그런 말을 했겠나? 이미 알만한 사람들은 아는 것 같다고 넌지시 알려주신거야. KBC 사장과 다이렉트로 통할 수 있는 고위층에서 벌써부터 압력이 들어오고 있다는 소리라고. 비밀은 이미 새어나갔다고 보고 일을 진행해야 돼."
"흐음. 그렇다면 일을 빨리 진행해야 하겠네요."
"박피디. 내가 모든 협조를 아끼지 않을 테니 최대한 빨리 진행을 하게. 잘못하면 소외된 그룹에서 역공이 들어올 수도 있어.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영 방송에서, 특정 기업들에게만 유리한 편파적인 방송을 제작한다고 말이야. 론칭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 일단 배를 바다에 띄워야 하네. 그래야 그나마 공격을 적게 받을 거야."
"알겠어요. 스피드를 내보죠."
"그럼 보자.. 이번 프로는 누가 뭐래도 강감독이 키를 가지고 있단 말이야. 강감독의 이름값에 기대고 있는 프로란 말이지. 그 친구가 아니었으면 기업들이 이렇게 쉽게 스폰에 나서지 않았을 거야. 특정인에게 자신들의 광고를 통째로 맡기겠다는 생각 자체를 아예 안 했겠지. 내 말이 맞지?"
하국장의 발언에 박피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강감독이 없으면 시작조차 못하는 프로죠,"
"결국 핵심은.. 강감독이 스폰 하는 업체들과 계약을 맺고, 본인이 CF에 직접 출연을 하면서, 콘티부터 촬영까지 자신이 직접 제작을 하겠다고 나서야 프로그램이 돌아간다는 소린데.. 설득할 자신은 있나?"
"네. 있어요. 그리고.. 아까 다녀간 강감독에게 제가 과장되게 말한 것처럼, 1 대 4로 여자들과 꽁냥꽁냥하는 연애 프로보다는 차라리 이런 방식의 프로가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할 거예요."
하국장이 무릎을 탁 쳤다.
"좋아. 설득만 가능하다면 아무 문제없지. 박피디를 믿고 사장님께 내가 그렇게 보고를 드리겠네. 이제 빨리 프로그램을 출범시키자고. 하시라도 빨리 말이야. 진행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으면 언제든지 나에게 말하게나. 뭐든지 다 들어줄 테니.."
"감사해요. 국장님."
박피디의 대답에 자리에서 일어나던 하국장이,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 질문을 던졌다.
"내가 말 안 해도 박피디가 잘 알고 있겠지만.. 이런 오디션 형식의 프로에 어설픈 여자 연예인은 절대로 안 돼. 무게추가 한쪽으로 너무 기울면, 프로그램 자체의 흥미가 급감한다고."
"잘 알고 있어요."
"자신 있나?"
"그럼요. 심혈을 기울여서 선택했는걸요. 자신 있어요."
"그래. 어련히 알아서 잘 골랐겠지. 박피디만 믿고 있겠네."
하국장이 한마디 던지고 자리를 떠나자 김작가가 물었다.
"피디님. 저희들한테는 알려주셔야죠. 그래야 각자의 캐릭터에 맞춰서 대본을 만들죠."
"아직은 안돼요. 최종 계약을 맺기 전까지는 비밀 유지가 더 중요해서.. 조만간 알려줄 테니 좀만 참으세요. 그럼 불청객도 갔으니.. 우리끼리 세트나 소품, 촬영 장소, 제작에 투입할 인원 등에 대해서 의논을 좀 해볼까요?"
- 네. 피디님.
6월 12일 화요일
수빈은 예전 영화사에서 아침부터 회의를 하고 있었다. 제작 부서의 직원들만 참석한 회의 석상에서, 평상시보다 진중한 표정의 수빈이 입을 열었다.
"오늘 회의는 우리 영화사의 제작 부서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자리입니다.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말씀드릴 테니, 의문이 있거나 궁금한 점들이 있으면 눈치 보지 마시고 이야기를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서로들 허심탄회하게 토론을 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다들 아시겠습니까?"
- 네. 대표님.
"이 자리에 장진석 영화감독과 정도홍 무술 감독이 참석을 하셨는데.. 뭐 다들 친한 사이시니까 굳이 따로 인사를 하지 않아도 될 거라 봅니다. 제일 먼저 말씀드릴 건, 앞으로 영화사를 어떻게 운영할 건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영화사 경영과 관련해서 인사 문제나 조직 관리, 자금 운용 같은 골치 아픈 것들은 이 자리에서 다 빼겠습니다. 어차피 다들 영화 제작에만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 그런 문제들로 골머리를 앓는 건 저 혼자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아. 혹시라도 관심 있는 분 있으신가요?"
"....."
"역시.. 아무도 없군요. 그럼 그런 머리 아픈 문제들은 다 빼고.. 영화인들끼리 모였으니 영화 제작에 대해서만 의논해 봅시다. 제가 목표로 하는 건 '조지 루카스'가 설립한 '루카스 필름'의 방식과 유사합니다. 감독으로서 제가 계속해서 영화를 찍겠지만, 저 말고 다른 영화감독들도 우리 영화사에서 영화를 찍을 수 있도록 할 겁니다. 당연히 거기에 따른 인원 확충과 장비 구입도 진행할 거고요. 물론 저 말고 다른 감독들이 찍는 영화들은 제작자가 저라는 타이틀이 붙어서 나갈 겁니다. 그리고 그런 영화들은 제가 감수를 하고, 최종 허락이 떨어져야만 스크린에 걸 수 있을 테죠. 그걸 받아들이시겠다는 감독들만이 우리 영화사에서 영화를 찍을 수 있는 겁니다. 여기까지는 이해가 되시나요?"
- 네. 대표님.
"이런 시스템을 이용해서, 가장 먼저 이 자리에 계시는 박수종 팀장과 장진석 감독 두 분께 영화를 찍게 해드릴 생각입니다. 두 분께 6개월의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그동안 모든 준비를 마쳐주세요."
장감독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어떤 준비 말인가?"
"자신들의 영화를 찍을 준비를 하셔야죠. 지금 영화사에 있는 제작 인원들은 제가 찍는 영화에 투입될 겁니다. 두 분이 찍을 영화에 같이 작업할 인원들을, 본인들이 새롭게 꾸리셔야 해요. 그분들의 고용은 당연히 우리 영화사에서 책임질 겁니다. 일전에 말씀드린 대로 장감독님도 영화사와 고용 계약을 맺으셔야 하고요."
"그런 이야기였군. 잘 알겠네."
"6개월이 지나기 전에 인원, 장비, 시나리오, 캐스팅 목록 등을 다 준비하셔서 제게 제출하시길 바랍니다. 그걸 가지고 제작 회의를 해서 별문제 없이 통과가 되면, 영화를 찍으실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해드리겠습니다. 자금이나 행정 문제들은 영화사에 맡기시고, 두 분들은 자신의 영화를 열심히 찍기만 하시면 됩니다. 이해가 되시죠?"
"네. 대표님."
"이해했다네. 강감독."
"시스템이 정착되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분들 중에서도 영화감독을 꿈꾸시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남은 자리는 딱 2자리입니다. 영화감독을 4명 이상은 뽑지 않을 테니까요. 제 능력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 이상은 무립니다. 그러니 영화감독을 꿈꾸시는 분들은, 자리가 다 차기 전에 자신이 찍고 싶은 영화의 계획서를 철저하게 준비하셔서 제게 보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어설프게 해 온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다들 아시죠? 제가 보는 눈이 상당히 높다는 거.."
좌중의 사람들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세운 우리 영화사의 최종 목표는.. 1년에 6편의 영화를 출품하는 겁니다. 제가 찍은 영화 2편, 4명의 감독들이 제작한 영화 4편. 합쳐서 총 6편입니다. 아무리 영화가 좋아도, 물량이 받쳐주지 않으면 세계적인 영화사로 성장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 정도의 물량은 찍어내야 세계 유수의 영화사들과 경쟁할 수 있어요.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시죠?"
- 네. 대표님.
"좋습니다. 내년 하반기에는 제가 군대에 입대할 계획이기 때문에, 그전에 시스템을 최대한 빨리 그리고 안정적으로 정착시키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때까지 다들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이셔야만 할 겁니다. 그럼 세부 항목에 대해서 의논을 해봅시다. 지금 가장 시급한 건, 정도홍 무술감독님이 운영하시는 교육 센터와 합병하는 문제와 우리 영화사에서 가장 뒤떨어지는 분야인 CG 팀 구성 문제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의논을 해보죠."
이날 아침 회의에서, 향후 10년간 국내 시장에서 흥행불패를 자랑하며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수준 높은 영화를 물경 52편이나 제작하여, 수박 프로덕션을 세계적인 영화사로 우뚝 서게 만들 계획들이 착착 논의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