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사 연예인이 되다-196화 (196/236)

#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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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방송이 시작되자 수빈은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꺼내와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프린트된 대본을 옆에 두고, 맥주를 마시며 TV를 시청했다.

TV 속에서 유재식이 힘차게 멘트를 시작했다.

"한호 홈쇼핑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홈쇼핑 진행을 맡은 유재식입니다. 그리고 제 옆에는, 요즘 모 방송 때문에 국회의원들이 가장 무서워한다는 바로 그분! 개그우먼 출신의 기자, 줄여서 개기자죠. 개기자 방유미씨가 나오셨습니다. 방유미씨. 시청자분들께 인사하시죠."

"안녕하세요. 요즘 일이 별로 없어서 방구석에서 개기고 있는 방유미입니다."

"잘 나오셨습니다. 방유미씨. 오늘 저희가 쇼핑의 명가, 한호 홈쇼핑에 왜 나왔는지 아십니까?"

"전 잘 모르죠. 오빠가 전화해서 그러셨잖아요? 너 요즘 밥벌이가 힘들겠다면서, 몸만 오면 되니까 시간 되면 나와서 용돈벌이나 하고 가라고. 그래서 엉겁결에 따라 나온 거잖아요."

그 순간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던 수빈이 고개를 갸웃하며 대본을 집어 들었다..

"두 사람이 인사말을 새로 짰나? 나랑 작가가 협의 한 대본이랑 다르게 진행을 하고 있는데?"

수빈이 약간 의아한 표정으로 대본을 확인하고 있을 때,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YK에서 야근을 하고 있는 홍보팀 김팀장에게서 문자가 날아왔다.

- 실시간 시청률 급상승 중. 홈쇼핑 이야기가 SNS 상에서 급속히 퍼지고 있음. 유재식씨가 출연한 효과를 제대로 보는 것 같음.

자신의 예상대로 일이 흘러가자, 엷은 미소를 지은 수빈이 대본을 다시 내려놓았다.

.

"뭐.. 인사말 정도야 대본이랑 달라도 별 상관없겠지. 확실히 개그맨들이라 보는 재미가 있네."

TV 속에서 유재식과 방유미가 멘트를 주고받고 있었다.

"유미야. 아무리 날로 먹고 싶어도 그렇지. 기본적인 건 사전에 미리 숙지하고 왔어야지. 너 '라이프'라고 알지?"

"생명 보험요?"

유재식이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그건 라이나고.. 요즘 음악 방송에서 1위 하고 있는 라이프 있잖아. BBG 출신의 아이돌 겸 프로듀서 겸 영화감독인, 내 동생 수빈이가 만든 노래."

"아. 강수빈 감독님. 엄청 잘생기신 분. 그분이 만든 노래는 저도 알아요."

"그렇지. 오늘 말이야. 그 라이프 앨범을 우리 둘이서 팔아야 되는 거야."

"왜요? 시중에서는 잘 안 팔리나요?"

"얘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지금 그 앨범은 단시간 내에 전 세계로 300만 장 넘게 팔려나간 초대박 베스트셀러 앨범이라고."

"근데 왜 홈쇼핑에서 앨범을 파는 거죠?"

"라이프가 원래 동명(同名)의 영화인 '라이프'의 영화 음악으로 제작이 된 거야. 근데 그 영화가 말이야. 이번에 아주 경사가 났어."

"어떤 경사요?"

유재식이 갑자기 정면을 쳐다보며 말했다.

"시청자 여러분들도 궁금하시죠? 어떤 경사냐면요. 라이프가.. 전미 박스 오피스에서 무려.. 1위를 달성했습니다."

- 빰 빠바빠 빰.

갑자기 울려 퍼지는 팡파르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방방 뛰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 콩그레이츄~레이션~. 콩크레이츄~레이션. 콩그레츄. 레이션. 레이션. 콩그레이츄~ 레이션.

잠시 후 방유미가 유재식에게 물었다.

"오빠. 정말이에요? 라이프가 전미 박스 오피스 1위라는 게? 한국 영화로서는 처음 있는 일 아닌가요?"

"한국 영화로서는 당연히 처음이지. 조만간 외국계 영화로서, 미국 내 박스 오피스 1위 기록을 가지고 있는 리안 감독의 '와호장룡' 기록도 뛰어넘을게 확실시되고 있다고. 대단하지 않냐?"

"우와. 정말 대단하네요. 한국 영화가 미국에서 1등을 하다니. 같은 한국인으로서 정말 자랑스러워요. 근데.. 왜 난 아직도 그 영화를 못 본 걸까요?"

"응? 넌 라이프를 아직 못 봤냐?"

"네. 보려고 해도 집 근처에는 라이프를 상영하는 극장이 없더라고요."

"흠. 라이프가 개봉관 숫자가 적긴 하지."

"왜 그런가요? 그런 훌륭한 영화가 왜 개봉관이 적은 거죠?"

"그건 나도 모르지. 영화계 쪽 일이니까.. 내가 '티라노의 발톱' 이후로는 영화계에 발을 끊어서 말이야. 나랑은 좀 스타일이 안 맞더라고."

"오빠가 못생겨서 안 불러주는 건 아니고?"

"허 참. 내 얼굴이 어때서?"

TV를 보고 있던 수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렇지. 그렇게 가볍게 툭.. 의문만 슬쩍 던지고 빠져야지. 결론은 대중들 스스로가 직접 내릴 수 있게. 대본대로 잘 하고 있으시네.."

흡족한 표정의 수빈이 캔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그때 갑자기 TV 속에서 방유미가 유재식에게 질문을 던졌다.

"재식 오빠. 혹시요. 강수빈 감독이 영화계에서 왕딴가요?"

- 풋. 콜록콜록.

맥주를 마시다 깜짝 놀라 사레가 걸린 수빈이 기침을 해대었다. 겨우 진정이 된 수빈이 기겁을 하며 소리를 쳤다.

"아니 갑자기 왜 그런 소리를 해? 방송 말아먹을 일 있나? 대본대로 좀 하라고.."

TV 속에서 유재식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글쎄다. 영화계 일이라 난 잘 모르지."

"강감독이 오빠랑 친한 동생이라며?"

"그럼. 수빈이가 나랑 엄청 친하지."

"그럼 전화 걸어서 직접 물어봐요."

"지금? 생방송 중인데?"

"뭐 어때요? 우리야 앨범만 잘 팔면 되는 거 아니에요? 당사자가 목소리라도 직접 출연하면, 앨범이 더 잘 팔릴 수도 있는 거죠."

"그럴까? 어이. 매니저.. 내 핸드폰 좀 가지고 와봐라."

예상치도 못한 급작스러운 전개에, 얼이 빠진 수빈이 멍한 눈으로 TV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수빈의 핸드폰이 맹렬하게 울어댔다. 잠시 고민에 빠져 있던 수빈이 긴 한숨을 내쉰 후, 마지못해 전화를 받았다.

"네. 형님."

[그래. 수빈아. 재식이 형이다. 너 지금 뭐하고 있냐?]

"하아.. 지금 집에서 TV로 형님 얼굴 보고 있습니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많이 당황스러운가 보다?]

"형님. 작가가 써준 대본이랑 다르잖아요. 전화를 왜 갑자기.. 그냥 대본대로 좀 하시는 게.."

그때 방유미가 끼어들어 물었다.

[강수빈 감독님. 저 방유미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방유미씨."

[솔직히 말해봐요. 영화계에서 왕따 당하고 있죠?]

"왕따라니요? 절대 그런 거 없습니다."

[그럼 왜 개봉관이 적어요? 한국도 아니고 머나먼 미국에서 박스 오피스 1위까지 하는 훌륭한 영화가? 그런 영화가 정작 한국에서는 개봉관도 제대로 못 잡고 있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그건 배급사마다 자체적인 심사 기준에 의해서 결정하는 겁니다. 영화의 퀄리티나 예상 관객 수, 예상 수익, 수익 배분율, 차후 스트리밍 시장에서의 가치, 국외 배급 등등.. 많은 변수들이 있습니다. 그걸 기준으로 판단하는 거기 때문에, 제가 왈가왈부할 수 있는 게 아니.."

[아. 됐고요. 그런 어려운 말은 모르겠고요. 결론은 배급사에서 라이프라는 영화를 저평가 했다는 거잖아요?]

"그렇..다고 봐야겠죠."

[그분들 눈이 어떻게 된 거 아닌가요? 이런 훌륭한 영화를 저평가한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그랬다면 전문가로서 안목에 문제가 있는 거죠. 배급사분들이야 개봉하기 전 시사회에 당연히 참석하셨을 건데.. 그때 보시고 난 다음에 영화 평을 뭐라고 하던가요?]

"....."

[응? 이 오빠가 왜 갑자기 말이 없지?]

[야. 수빈이가 왜 오빠야? 동생이지. 그것도 한참 동생이야.]

[잘 생기면 다 오빠죠. 여보세요? 강감독님? 강감독님?]

"네. 듣고 있습니다."

[배급사분들이 영화평을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안 나세요? 머리가 좋은 분으로 알고 있는데요.]

마음을 굳힌 듯 수빈이 비교적 평온해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죠? 그분들이 영화를 보고 아무 평도 안 했다는 건가요?]

"그분들 중에 시사회에 참석하신 분이 없어서요."

[어머? 설마.. 그럼 강감독님이 초대를 안 하신 거예요? 혹시 셀프 왕따?]

"아뇨. 저희 쪽에서는 정중하게 초대를 다 드렸습니다만.. 아무도 참석을 안 하셨죠."

[그럼 왕따 맞네. 영화계에서 강감독님이 왕따 당하는 게 맞구먼. 왜 자꾸 아니라고 거짓말해요?]

"그러게 말입니다. 이제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만.. 너무 단정적으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 곤란할 거 같습니다."

[알았어요. 전화 통화 감사해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전화기를 내려놓은 수빈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빠르게 중얼거렸다.

"분명히 배후가 있어. 내가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가 손을 쓴 게 분명해. 이번 일은 두 사람이 자체적으로 판단해서 저지를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니야. 개그맨 둘이서 감당하기에는 일이 너무 중대하지. 나에게 던지는 질문의 내용들도 그렇고.. 요점을 정확하게 파악을 하고 있었단 말이야. 이번 사태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의 솜씨 같은데.. 그게 누구지?"

TV 속에서 유재식과 방유미 두 사람이 스페셜 리미티드 에디션 앨범에 대해서 침을 튀기며 열정적으로 설명을 하고 있었다. 잠시 TV를 지켜보며 생각에 잠겨있던 수빈은, 리모컨으로 TV를 꺼버렸다.

"이미 엎질러진 물. 지금 급한 건 이번 일의 배후를 알아내는 게 아냐. 대중들의 반응이 어떤지 확인을 하고서, 거기에 맞는 대책 마련이 우선이야."

수빈은 핸드폰을 집어 들고 김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이사님.]

"조금 전 방송 사고 보셨죠?"

[사고요? 조금 전께 방송 사고였습니까? 전 아주 재밌게 보고 있었는데요.]

"네. 방송 사고였어요. 그렇게 노골적인 내용으로 방송을 할 생각이 절대 아니었으니까요. 그건 일단 넘어가고.. 지금 사람들 반응이 어떻습니까?"

[지금 분석으로는..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네 가지요?"

[네. 가장 주된 반응은.. 방송 개 웃긴다. 이겁니다. 두 번째로는 사이다다. 속이 시원하다는 반응입니다. 안 그래도 SNS에 그런 소문이 돌았었는데, 내가 그럴 줄 알았다며.. 주로 이미 영화를 감상하신 분들이 적극적으로 의사 표시를 하고 있습니다.]

수빈이 의외라는 말투로 물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반응이 너무 좋은데요? 지나치게 노골적이다 아니면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소리는 없습니까? 영화 흥행을 위한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소리도 나올 법 한데요."

[그런 걸 걱정하기는 했습니다만.. 그런 의견은 거의 없습니다. 아마 세 번째 반응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그게 뭐죠?"

[강수빈 감독이 까방권을 한 장 획득했습니다라는 반응이죠. 전미 박스 오피스 1위라는 타이틀이 역시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자랑스러운 한국인, 한국을 빛낸 젊은 천재 감독, 할리우드를 정복한 토종 한국인 감독 등등.. 호의적인 반등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인의 정서상 아무래도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하니까요.]

"이거.. 반응이 너무 좋아서 오히려 더 불안한데요. 마지막은 뭡니까?"

[BJ나 메가 박스 같은 대형 배급사들을 욕하고 성토하는 거죠. 자라나는 젊고 유능한 감독을 짓밟으려 들었다고, 사람들이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붓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것 역시 세 번째처럼 타이틀의 효과가 큰 것 같습니다. 앞으로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자랑할 수 있는 영화감독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단체로 갑질을 행사했다는 거에 대중들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수빈이 다시 물었다.

"누군가 여론을 선동하고 있다는 느낌은 못 받았습니까?"

[물론 저희 홍보팀에서 여론을 좋은 쪽으로 유도를 하고 있긴 합니다만.. 저랑 홍보실 직원들 다 합쳐봐야 고작 5명이 다라서요. 여론에 큰 영향을 줬다고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아뇨. 제 말은 우리 쪽 말고, 또 다른 세력이나 조직이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냐고 물어본 겁니다."

[그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 지금 SNS 상에서 워낙 많은 사람들이 반응을 쏟아내고 있어서요. 저희들 인원으로 거기까지 파악하기에는 무립니다.]

"흠. 잘 알겠습니다. 계속 수고 좀 해주세요. 내일 아침에 다시 통화를 했으면 합니다."

[네. 이사님. 새벽까지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해서, 아침에 정리해서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그래요, 부탁해요. 제가 홍보팀 쪽에 보너스를 넉넉하게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사님.]

전화를 끊은 수빈이 중얼거렸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대중들의 반응이 지나치게 좋고, 지나치게 빨라. 이건 분명히 누군가의 손을 탔어. 문제는 그게 어디 쪽이냐는 건데.."

잠시 머리를 굴리던 수빈이 고개를 저었다.

"도무지 감이 안 잡히는군.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진행되고 있어서 어느 정도 안심이 되기는 한데.. 도대체 누구지? 난데없는 키다리 아저씨도 아니고.."

수빈이 고민에 빠져 있는 그 순간.

모처에서 세 남자가 모여 술을 한잔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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