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사 연예인이 되다-194화 (194/236)

# 194

60 - 1

5월 25일 금요일

라이프가 개봉한지 열흘이 지났다. 해외로 무대 인사를 하기 위해 출국했던 수빈은, 오래간만에 영화사로 출근하는 밴 속에서 SNS에 올라온 라이프의 평들을 보고 있었다.

- 라이프는 너무 지나쳐!

인간의 집중력에는 한계가 있어. 왜 학교에서 50분 수업을 하고 나면 10분간 휴식 시간을 주잖아? 하지만 '라이프'라는 영화에는 그런 배려가 단 1분도 보이질 않는다고. 초반을 지나 중반을 접어들고 나면, 끊임없이 관객을 몰아치기만 해. 그래서 영화가 끝이 나면 관객들은 탈진 상태가 되고 말지. 뭐 그래서 나쁜 영화냐고? 그럴 리가.. 나쁜 영화를 포스팅하고 있을 만큼 한가한 인생을 살고 있지 않다고. 궁금하면 당신도 가서 봐. 단, 당신이 지방에 살고 있다면 라이프를 상영하는 영화관을 찾는 게 쉽지는 않을 거야. 이상하게 개봉관이 적더라고.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 어머니랑 같이 본 라이프 영화 후기.

얼마 전 시어머니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갔어요. 어버이날 용돈 좀 드린 거 말고는 특별히 해드린 것도 없고 해서.. 결혼한 지 1년이 좀 지났지만, 어머님과는 아직도 좀 서먹서먹한 관계였죠. 근데 말이에요. 영화가 끝나서 나서 어머니랑 저랑 서로 끌어앉고 펑펑 울었어요.ㅠㅠ 그날 얼마나 울었던지.. 밖으로 나와서 어머니랑 차를 마셨는데, 어머님이 살아오신 이야기를 잔잔하게 들려주시더라고요. 평상시라면 잔소리처럼 들릴 이야기가 어찌 그리 귀에 쏙쏙 들어오던지.. 그 이후로 엄마와 딸처럼 서로 친하게 지내고 있어요. 저 같은 분들은 꼭 모시고 가셔서 한번 보시길 권해요.

- 우울증 치료에 좋은 영화.

참고로 저는 정신과 닥텁니다. 환자분 중에 빈둥지증후군을 앓고 계시던 분이 있었습니다. 과거형이죠. 증세가 심해서 우울증 약까지 처방해야 했던 분인데, 이분이 오셔야 할 날짜가 지났는데도 병원을 찾아오지 않으셨습니다. 걱정이 돼서 전화를 드렸더니, 이제 다 나으셨다고 말씀하시더군요. '라이프'라는 영화를 보고 말입니다. 그 영화를 보고 나서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게 되었고, 자신의 삶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분은 이틀에 한 번씩 라이프를 보러 간답니다. 병원에 약 받으러 간다 생각하고 말입니다. 이러다 병원 문 닫는 거 아닌지 걱정됩니다.

"다들 평이 나쁘지 않네요."

수빈의 말에 백성철이 대답했다.

"나쁠 리가 있겠냐? 너 출장 간 사이에 와이프가 틈만 나면 또 보러 가고 싶다고 졸라댔었다고. 이번 주말에도 보러 가자고 그러는데.. 그러면 세 번째 보러 가는 거야. 자기는 세 번째지만 난 시사회 때 봐서 다섯 번째 인걸 좀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도통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들어서.."

"남자들보다는 여자들이 더 좋아할 만한 영화긴 하죠."

"그래도 두 번까지는 남자들도 많이 찾아서 보는 거 같더라고. 그 이상은 조금 무리긴 하지만.. 남자들 특성상 액션 영화가 아닌 이상 서너 번씩 찾아서 보지는 않지."

"그렇군요. 근데.. SNS에서 평은 좋은데 라이프 관련 기사는 거의 안 보이네요. 확실하게 틀어막고 있나 봐요?"

"그렇지. BJ라는 국내 굴지의 재벌 그룹에서 싫어하니까, 다들 눈치만 보고 있지. 그리고 우리 쪽에서라도 소스를 주고, 기사를 부탁하고, 촌지도 좀 돌리고 그래야 기사가 나갈 건데.. 네가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했었잖아? 공성 어쩌고라면서.."

"스프링은 강하게 누를수록 더 강하게 튀어 오르는 법이죠. 충격 요법을 제대로 쓸려면, 당할 때는 확실히 당해줘야 하는 겁니다. 이제 슬슬 반격을 시작해야죠. 외국에서 개봉하는 게 잘 마무리되었으니까요."

수빈이 다시 SNS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밴은 영화사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회의실로 향했다. 수빈이 회의실로 들어서니, 사전에 연락을 받았는지 대기하고 있던 모든 영화사 간부들이 다들 기립을 하고 있었다. 수빈이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니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 짝짝짝짝.

그리고 함성소리도 터져 나왔다.

- 와아아아.

- 대표님. 고생하셨어요.

- 대박입니다. 대표님.

- 대표님. 사랑해요.

평상시와 달리, 수빈이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턱을 치켜들어 천장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양손을 펴서 좀 더 하라는듯 격렬하게 흔들었다.

- 우우우우와아.

- 대표님. 짱!

- 대표님. 짱!

- 대표님. 짱!

수빈이 빙긋 웃더니 그만하라는 듯 손을 저었다.

"감사합니다. 다들 자리에 앉으세요."

수빈이 자리에 앉아서 입을 열었다.

"출장가서 매일 굽신굽신 거리며 돌아다니다가, 이렇게 여러분들의 아부를 받으니 기분이 좋군요."

오소라가 강력하게 항의했다.

"아부 아니에요. 마음속에서 우러나와서 하는 거라고요."

"그래요? 그럼 이번 영화의 인센티브를 제 마음으로 드려도 됩니까?"

"그건 좀.. 곤란하죠."

"농담입니다. 농담. 자. 밀린 이야기 좀 해봅시다. 일단 국내 현황부터 좀 들어보죠."

"네. 대표님. 현재 개봉관이 좀 더 늘어나서 396개의 개봉관에서 라이프가 상영 중이에요. 예매율과 점유율이 점점 더 올라가고 있어요. 어제까지의 관객 동원 수는 340만이었어요."

"개봉관 수자에 비해서는 성적이 상당히 좋네요. 메이저는 아직 그대롭니까?"

"네. 4대 메이저 배급사에서는 아직 별다른 접촉이 없었어요."

그때 강부장이 끼어들었다.

"제가 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직도 제가 매일 배급사를 돌아다니고 있어서, 그쪽 분위기를 가장 잘 압니다. 현재 메이저 중에서 흔들리는 곳이 두 군데가 있습니다. 가장 많이 흔들리는 곳이 나우이고, 그다음은 쇼박스입니다. 하지만.."

수빈이 말을 받았다.

"눈치가 보여서 못하겠죠. 어차피 때는 늦었고, 버스는 출발했습니다. 지금 와서 따로 접촉이 오더라도 그냥 무시하세요. 이번 사태는 결국 BJ와 메가박스를 굴복시켜야 끝이 나는 겁니다. 영화관을 가지고 있지 않은 다른 두 배급사는 그냥 쩌리에 불과해요. 그리고 강부장은 이제 그만 돌아다니셔도 되니까, 본연의 자리로 복귀하세요."

"알겠습니다. 대표님."

"제가 알아야 할 다른 일이 또 있습니까?"

YK 김팀장이 손을 들었다.

"말씀하세요."

"현재 라이프 앨범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는 건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지금 CD 공장에서 24시간 풀가동으로 찍어내고 있는 중입니다만.. 찍어내는 족족 다 팔려나가고 있습니다."

"그건 저도 들어서 알아요. 미국하고 중국 그리고 일본 시장에서 계속해서 구매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면서요?"

"네. 그렇습니다. 근데.. 지금 양방향에서 YK 쪽으로 압력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압력이 들어온다고요?"

"네. 하나는 방송국 쪽입니다. 지금 모든 음악 프로의 1위 곡이 라이프 록 버전이고, 2위 내지는 3위가 언플러그드 버전인데.. 아직 방송 무대를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번 주는 하이유씨가 영화 개봉에 맞춰 무대 인사하러 돌아다닌다고 바빴고, 이번 주부터는 당분간 휴식을 취하겠다고 모든 출연을 거절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방송국 쪽에서 출연 좀 해달라고 자꾸 압력이 들어오고 있는 상태입니다."

"뭐 그건 다음 주에 저랑 하이유 그리고 BBG 멤버들이 방송에 몇 번 출연을 하면 되니까 별문제가 안되겠군요. 제가 없어서 하이유씨가 출연을 사양한 거 같으니, 방송국 보고 며칠만 더 참으라고 하세요. 그럼 되겠죠?"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압력이 들어오고 있는 나머지 한 군데는 음원 유통 회사들입니다. 이전 뮤란에서부터 BB 그리고 지금 라이프 앨범까지.. 이사님이 계속해서 음원을 등록하지 않으셔서 불만이 많습니다. 이런 식으로 자꾸 나오면, YK에서 나오는 모든 음원을 보이콧하겠다는 말까지 나온 상태입니다."

수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웃기고 있네요. 자신들이 아직 갑이라고 착각하나 본데.. 그러라고 하세요. 지금처럼 음원 유통사들이 대부분의 수익을 가져가는 비정상적인 상태에서는 공급할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수익률을 뜯어고치던지 아니며 YK 소속 가수들 전체를 보이콧하던지 알아서 하라고 전하세요. 그리고 이 말도 반드시 전하세요. 수틀리면, YK에서 음원 유통사를 자체적으로 설립할 생각이라고 말입니다."

화들짝 놀란 얼굴의 김팀장이 되물었다.

"..정말로 설립하실 생각이십니까?"

"못할 건 또 뭡니까? 음원 유통사는 허가제가 아니라 신고제입니다. 등록만 하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두 가진데.. 음원 서비스 업체들인 통신사와 계약을 맺는 것과 좋은 음원을 다수 확보하는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둘 다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겁니다. 여유 자금만 확보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거죠. 만약 제가 설립을 하게 되면, 음원 유통으로 돈 벌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최저의 수익률로, 창작자들의 이익을 최대한 보호해줄 생각입니다. 그럼 가수나 작곡가들이 어느 쪽을 선호할까요?"

"당연히 저희 쪽을 선호하겠죠."

"그렇겠죠? 문제는 기존 업체들의 텃세와 방해공작을 이겨내야 한다는 건데.. 그 정도야 뭐 이제 이골이 나서 그러려니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수익이 창출될 때까지 회사가 망하지 않고 버텨줘야 하는 건데.. 그건 돈으로 메꾸면 간단히 해결되는 문제죠. 제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고 그쪽에 넌지시 말해주세요. 그럼 더 이상 괴롭히지 않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이사님."

"또 다른 사항이 있나요?"

오상무가 손을 들었다.

"말씀하세요."

"첫째는 중국 이야기에요. 지금 청톈사에서 많이 섭섭해하고 있다네요. 이전보다 계약 조건도 더 좋게 해줬는데.. 일본, 미국, 유럽 쪽만 무대 인사를 돌았다고 서운하다고 전해달래요."

"그쪽도 참.. 달빛 개봉할 때 제가 중국을 한번 돌았잖습니까? 그럼 이번에는 좀 양보를 해야죠. 그리고요?"

"지금 라이프가 인기절정이니까, 이 기세를 몰아서 드라마를 공급하고 싶다고 언제쯤 가능할지 물어왔어요."

수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라이프가 내려갈 때 즈음해서, 최종 마무리를 짓고 보내주겠다고 전해주세요. 그럼 별말 없을 겁니다. 또 있습니까?"

"이건 청톈의 팽여사가 전해달라고 부탁을 했는데요. 대표님 보고 다음 달에 중국에 꼭 한번 들려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따로 이유는 말하지 않았고요."

'태상가주가 소주천 완성 단계에 들어간 건가? 생각보다 빠른데..'

"알겠습니다. 제가 들리겠다고 전해주세요."

"그럼 다 끝났어요."

"좋습니다."

수빈의 좌중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다들 라이프의 해외 개봉 성적을 들어서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저번 주에는 주 중에 개봉을 한터라 전미 박스 오피스 2위에 그쳤지만.. 이번 주는 1위가 확실시되고 있습니다. 아마 미국과 시차 관계로 다음 주 월요일 저녁쯤이나 화요일 오전 중에 이번 주 관객 동원 숫자가 발표될 겁니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반격을 시작할 겁니다. 일반 대중들에게 전달할 메시지는 짧고 간명할수록 임팩트가 강하죠. [전미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한 자랑스러운 한국 영화. 하지만 한국에서 왕따 당하다. 그 이유는?] 어떻습니까?"

수빈이 잠시 짬을 둔 다음 말을 이었다.

"심플하죠? 내용 자체도 간명합니다. 더 이상의 설명도 필요 없을 정도죠. 그리고 한국인의 특성상 애국심에 호소하는 게 효과가 더욱 좋을 거고요. 다음 주 화요일부터는 제가 인터뷰와 음악 프로 출연 등 방송 활동을 재개할 겁니다. 그 자체로 압력을 행사하는 거니까요. 그리고 명심하세요. 우리의 주적은 이번 담합을 주도한 메가 박스입니다. 그쪽과는 제 허락 없이 그 어떤 접촉이라도 하시면 절대 안 됩니다. 그쪽 목은.. 대표인 제가 쳐야죠. 아시겠습니까?"

- 알겠습니다. 대표님.

"좋습니다. 김팀장은 다음 주 화요일부터 제가 말한 내용으로 기사를 적극적으로 내주시고, 방송 스케줄을 확실하게 잡아 주세요. 한밤도 좋고 아침 장터도 좋고 예능도 좋고 다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이사님."

"오상무는 중국 쪽과 계속해서 긴밀히 접촉해 주시고요. 관객 숫자와 동향을 수시로 보고해 주세요. 혹시 청톈쪽에서 급한 연락이 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제게 바로 연락을 주세요."

"네. 대표님."

"강부장은 자금을 충분히 확보해 주세요. 어떤 돌발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르니까요."

"알겠습니다."

"조부장은 배급사들의 담합을 법적으로 고소를 할 수 있도록 철저하게 준비를 해주세요. 이제는 소송을 걸어도 되는 시간이 도래했습니다. 그리고 고소를 하는 그 자체가, 그들을 성토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단단히 한몫할 겁니다."

"이미 준비 중입니다."

"마지막으로.. 제작부서에 계시는 모든 분들은 다음 영화 촬영을 준비해 주세요. 장비나 인원들을 확실히 점검해 두세요. 제가 다음 주 중으로 새로운 시나리오를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수빈이 손을 들어 테이블을 가볍게 내리쳤다.

- 탕.

"이제 반격을 시작해 봅시다. 이번 일만 잘 끝나면, 더 이상 국내에서 우리를 방해하는 세력은 없을 겁니다. 그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영화사를 확장해 나가겠습니다. 우리 영화사가 세계를 주름잡는 영화사로 발돋움하도록, 다 같이 힘써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회의에 참석한 모든 간부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 알겠습니다. 대표님.

수빈이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나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