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사 연예인이 되다-191화 (191/236)

#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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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은 자신을 마중 나온 백인과 함께 미리 대기하고 있던 리무진에 올라탔다. 동승한 백인이 차 안의 냉장고에서 샴페인을 꺼내었다. 샴페인 잔을 받으며 살펴본 리무진의 내부는 영화에서 보듯 화려하기 짝이 없었다.

수빈은 자신에게 샴페인을 따라주는 건장한 백인 경호원에게 물었다.

"차가 좋군요. 차종이 뭡니까?"

"2011년식 링컨 타운카 리무진입니다. 연식은 좀 있지만, 방탄 차량이라서 아직도 회장님이 애용하고 계시는 차량입니다."

경호원의 말에 수빈은 의문을 느꼈다.

"회장님? 지금 짐 자무시 감독을 만나러 가는 길 아닌가요?"

무뚝뚝한 표정의 경호원이 대답했다.

"가서 보시면 아실 겁니다."

"그래요?"

수빈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짐 자무시 감독과 약속을 했는데 난데없는 회장의 등장이라.. 도깨비가 나올지 뱀이 나올지 가서 보면 알겠지.'

수빈은 느긋한 얼굴로 들고 있던 샴페인을 기울였다. 수빈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이거.. 맛있군요."

"입맛에 맞으십니까?"

"네. 아주 깔끔하고 상쾌한데요. 그리고.. 향이 일품이네요."

"아르망 드 브리냑 미다스(Armand de Brignac Midas)라고 합니다. 회장님께서 강감독님을 위해서 특별히 준비하신 샴페인입니다."

"그래요? 이런 좋은 샴페인을 준비해 주시다니.. 만나 뵈면 감사하다고 말씀을 드려야겠군요."

"그러시면 회장님께서 기뻐하실 겁니다."

수빈은 샴페인을 홀짝거리며 생각했다.

'굉장한 샴페인이로군. 이 정도라면 굳이 안 물어봐도 비쌀게 뻔하지. 방탄 리무진에 최고급 샴페인이라.. 누군지는 몰라도 돈이 넘쳐나는 사람인가 본데. 한국 재벌을 제외하고 나와 관련된 사업가들 중에 이 정도의 재력가는 딱 한 곳뿐인데. 내 예측이 맞는지는 가서 보면 알겠지..'

리무진은 LA 시내로 진입하여 비버리 힐스를 통과했다. 비버리 힐스를 들리는 관광객들의 사진 명소인 비버리 힐스 사인(Beverly Hills Sign)을 지나 계속해서 내달렸다. 릴리 연못(Lili Pond)을 지나친지도 어언 30분이 넘었다. 마침내 비버리 힐스 북쪽의 산 중턱에 다다른 차량이 서서히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스르륵 열린 검은색 방탄 유리창 너머로 경호원들 여러 명이 지키고 있는 정문이 보였고, 그 뒤로 성벽처럼 높다란 담장이 보였다. 차 안을 들여다보는 날카로운 인상의 경호원에게 수빈과 동승한 경호원이 말했다.

"회장님이 정식으로 초대하신 손님일세. 한국에서 오신 강수빈 영화감독이시네."

"사전에 연락받았습니다.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경호원의 들어가라는 손짓과 함께 정문이 활짝 열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수빈이 속으로 뇌까렸다.

'확실히 미국은 미국이로군. 하나같이 안주머니가 불룩한 게 다들 총기를 소지하고 있어. 까딱 잘못하다간 총든 인간들이랑 싸워야 될지도 모르겠는걸.. 대주천만 완성했어도 별거 아닌데 말이야. 지금 상태로는 조금 위험할 수도 있겠는데..'

수빈이 마음속으로 걱정을 하는 동안, 안으로 들어선 리무진이 드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는 지역을 지나가고 있었다. 잠시 후 저 멀리 웅장한 저택이 보였다. 1분가량을 더 달리던 리무진이, 저택에 못 미쳐 마련되어 있는 넓은 주차장에 정차했다.

"여기서부터는 내리셔서 걸어가셔야 합니다. 저택까지는 도보로도 금방이니까, 크게 불편하시지는 않을 겁니다."

수빈이 가볍게 대답했다.

"그러죠."

차에서 내리는 수빈은 속으로 웃고 있었다.

'웃기는군. 저택 앞에도 차가 몇 대 주차되어 있는 걸 분명히 봤는데, 굳이 나를 여기에서 내리게 한다? 아마 이쪽 주차장은 직원들이나 경호원들 차량을 주차하는 곳이겠지. 회장이라는 작자가 나를 시험하고 싶은 건가? 방금 전 경호원의 호기심 어린 눈빛도 그렇고..'

잔디밭 사이로 나있는 길로 발걸음을 떼며 수빈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쇼를 원한다면 보여줘야지.."

수빈이 몇 발 옮겼을 때, 자신을 향해 들이닥치는 살기를 느꼈다.

'점입가경이로군. 주변의 경호원들에게서는 살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 그냥 방관자라는 거지. 그리고 이런 거친 살기라니.. 이건 마치..'

- 컹컹. 컹. 컹컹컹. 컹컹.

"짐승의 살기와도 같군."

잔디밭 저 멀리에서 검은색 도베르만 두 마리가 미친 듯이 짖으면서 수빈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수빈이 혀를 찼다.

"쯧.. 아무리 쇼도 좋다지만, 아무 죄 없는 짐승을 두들겨 팰 수야 없는 노릇이지."

말을 하며 수빈은 내공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끌어올린 내공을 살기로 바꾸어 달려오는 두 마리의 도베르만에게 쏘아보냈다. 금방이라도 수빈을 물어뜯을 듯 무섭게 달려오던 도베르만들의 기세가 팍 꺾였다.

- 끼잉. 낑. 끼잉.

자신의 앞에서 어쩔 줄을 모르는 도베르만들에게 손을 내밀며 수빈이 명령했다.

"앉아."

도배르만들이 계속 낑낑거리며 내밀은 수빈의 손을 핥았다.

"아.. 미국 개들이지. sit down."

수빈은 자신의 앞에 철퍼덕 주저앉아 꼬리를 흔들고 있는 도베르만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놀란 토끼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경호원에게 말했다.

"귀여운 강아지들이네요. 교육을 아주 잘 받은 것 같은데요."

그 순간 경호원이 리시버로 누군가로부터 지시를 받고 있었다. 그 후로 수빈은 별다른 일 없이 저택으로 안내를 받았다. 저택 안으로 들어가니 짐 자무시 감독과 또 다른 초로의 백인 남자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빈은 짐 자무시 감독에게 악수를 하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짐.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다시 보니 반갑네. 그때는 다 죽어가더니.. 그새 몸이 좋아졌군."

"영화 촬영이 끝난지 좀 됐으니까요.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죠."

수빈은 짐 자무시 감독 옆에 서있는 백인 남자에게 손을 내밀며 인사를 건넸다.

"Bonjour."

머리가 백발인 정체미상의 백인 남자가 살짝 놀란 얼굴로 수빈의 손을 잡으며 인사를 했다.

"Bonjour. 내가 누군지 아나?"

수빈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모릅니다. 얼굴도 처음 뵙고 이름도 모르죠. 하지만.. 어떤 분인지는 충분히 추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지?"

"오면서 긴가 민가 했었습니다만, 실제로 발음을 들어보니 확신이 드는군요. 회장이라 불리고, 프랑스어 발음이 완벽하면서, 저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비방디(Vivendi) 그룹의 회장님 아니십니까? 이름은 잘 모르지만요."

"허어.. 놀랍군. 어떻게 알았나? 예전부터 비방디 그룹을 알고 있었나?"

"그럼요. 프랑스 굴지의 그룹 아닙니까? 한국인들에게는 한때 스타크래프트와 WOW로 유명한 블리자드 사를 소유했던 그룹으로 잘 알려져 있죠. 한국 남자라면 그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얼마 전 제가 낸 앨범을 대량으로 구매해간 UMG(Universal Music Group)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그룹이기도 하죠."

수빈의 추리에 백인 남자가 탄복한 눈빛으로 악수를 하며 말했다.

"마치 셜록 같군. 뱅상 볼로레(Vincet Bollore)라고 하네. 자네 말처럼 비방디 그룹의 최고경영자이기도 하지. 우연히 사업차 미국에 들렀다가, 자네가 온다는 소리에 내가 짐 자무시 감독에게 부탁해서 이쪽으로 초대를 했다네. 짐이 하도 칭찬을 하길래, 어떤 사람인지 너무 궁금해서 말이야."

수빈이 싱긋 웃으며 물었다.

"그래요? 짐이 뭐라고 했는지 궁금하군요. 제법 영화를 잘 만드는 신인 감독이라고 칭찬을 하던가요?"

"내가 영화인이 아니라서 말이지. 짐이 내가 알아듣기 쉽게 속담을 인용해서 말하더군."

수빈이 고개를 갸웃했다.

"뭐라고 말입니까?"

"The goose that laid golden eggs."

뱅상 회장의 대답에, 수빈이 짐 자무시 감독을 쳐다보며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라니요.. 너무 속물적인 표현 아닙니까? 예술 영화의 대부라는 분이 그래도 되는 겁니까?"

짐 자무시 감독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내 생각에는 딱 맞는 표현인걸. 영화도 그렇고 얼마 전 출시한 앨범도 그렇고.. 자네는 향후 몇 십 년간 황금알을 순풍순풍 낳아주는 특별한 거위가 틀림없다고."

"뭐 그렇다고 치죠. 근데.. 두 분이서는 어떻게 아시는 사이입니까?"

"내가 20대 중반 때 프랑스에서 2년간 유학을 했었지. 그때 알게 된 친구야. 그저께 미국에 왔다고 하길래, 만나서 같이 술 한잔했지.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네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야. 내가 강감독 이야기를 꺼냈는데.. 뱅상 이 친구가 강감독을 알고 있더라고. 얼마 전 출시한 BB 앨범 때문에 말이지."

뱅상 볼로레 회장이 말을 받았다.

"이번에 자네가 새로 제작한 영화의 미국 배급 문제 때문에 짐을 만나러 온다고 이야기를 하더군. 그래서 내가 부탁했네. 같이 만나자고.. 영화도 보면서 말이야."

수빈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야 좋죠. 하지만 그전에 말이죠. 한 가지 드릴 말이 있습니다."

"뭔가? 말해보게?"

수빈이 기세를 한껏 끌어올렸다. 수빈의 눈빛이 서늘하게 변하더니, 눈동자에서 새파란 살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한 번만 더 애꿎은 짐승들로 절 시험하면 참지 않습니다. 정 시험을 하고 싶으시다면, 경호원에게 총을 쥐여줘서 덤비라고 하세요. 그럼 제가 응해드릴 테니까.. 아시겠습니까?"

수빈의 서슬 퍼런 말투에 뱅상이 진중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건 내가 정식으로 사과를 하지. 그 애들은 교육을 잘 받은 애들이라서, 실제로 사람을 물지는 않는다네. 그냥 단순히 겁을 줘볼까 해서 풀은 것뿐이야. 자네의 반응이 궁금해서 말이지. 어쨌든 내가 잘못한 건 확실해. 다시 한번 사과를 하겠네."

수빈이 기세를 풀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정식으로 사과를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럼.. 영화부터 보고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적당한 장소가 있습니까?"

뱅상 회장이 한결 편해진 얼굴로 대답했다.

"그럼. 이 집에는 없는 게 없다네. 녹음 스튜디오까지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지. 홈시어터 정도야 당연히 있다네. 내가 안내를 하지."

잠시 후 세 사람은 어지간한 아파트만 한 크기의 방 안에서, 사방의 불을 다끈 어두컴컴한 상태에서 '라이프' 영화 시사회를 하고 있었다. 영화가 끝나갈 즈음, 짐 자무시 감독과 뱅상 볼로레 회장의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 흑흑. 흑. 훌쩍. 흑.

어느덧 시사회가 다 끝나고, 화려한 거실 응접실에 둘러앉은 세 사람이 진지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직도 눈가가 빨간 뱅상이 입을 열었다.

"내가 인종차별주의자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네. 명색이 프랑스인 아닌가.. 그렇지만.. 설마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 그것도 동양인 감독이 만든 영화를 보고 쳐울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상상을 안 해봤어. 이건.. 정말.. 엄청난 거라고.."

눈덩이가 퉁퉁 불은 짐 자무시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영화도 영화지만.. 강 감독의 연기가 엄청나. 그 목소리가 변화하는 건 더빙을 한건가? 계속해서 보고 있으니 소름이 다 끼치던데.."

수빈이 슬쩍 목소리를 바꾸어 가며 대답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직접 연기한 겁니다."

짐이 감탄 어린 얼굴로 말했다.

"대단하군. 대단해. 자네는 감독 말고 배우로 아카데미를 노려봐도 될 거 같아. 엄청난 연기력이야.. 이 영화를 미국에서 배급하고 싶단 말이지? 그렇다면.."

그때 뱅상 회장이 황급히 끼어들었다.

"이보게. 강감독. 짐은 영화 제작하는 것과 여배우랑 노는 것 빼고는 재주가 없어. 자기 와이프도 제대로 못 챙기는 인간이라고. 그런 인간에게 뭘 맡긴다는 건가? 그러지 말고.. 차라리 나에게 맡기게. 내가 유니버설 스튜디오와 이야기를 해서 제대로 배급을 해주지. 어떤가?"

"저야 더없이 좋은 이야기입니다만.. 당연히 공짜는 아니겠죠?"

"명색이 비즈니스 아닌가.. 서로 주고받는 게 있어야지."

"제게 뭘 원하십니까?"

뱅상 회장이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세 가지. 딱 세 가지만 들어주게나. 그럼 내가 이 영화를 책임지고 미국에서 히트시켜 주겠네. 만약 유럽 쪽에서 개봉을 원한다면, 유럽 쪽에서 힘 있는 유력자를 자네에게 직접 소개해 주지."

수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 입장에서는 더없이 좋은 조건이군요. 말씀해 보시죠. 어지간한 부탁이라면 들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뱅상 회장이 신중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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