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사 연예인이 되다-188화 (188/236)

# 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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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제목(假題目)이 듣기에 어감이 별로라고, 최종 제목이 심플하게 '라이프'라고 결정된 영화의 시사회가 시작되었다.

수빈은 관객들의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 귀를 쫑긋 세운 채 관객들을 예의주시하였다.

초반 객석의 분위기는 즐거웠다. 밝은 분위기의 음악과 톡톡 튀는 주인공들의 젊음과 활력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분위기였다.

- 음악 좋다. 들어본 거 같은데.

- 여주가 너무 이뻐요.

- 편집이 경쾌하고 속도감이 상당하네.

- 주인공들이 다들 멋지다.

중반 객석의 분위기는 암울하였다. 행여나 옆 사람에게 방해될까 봐 틀어막은 손 사이로 조금씩 스며나오는 관객들의 흐느끼는 소리가, 마치 고통에 몸부림치는 짐승들의 신음성 같았다.

- 이거 원래 이렇게 슬픈 영화였어?

- 연기가 너무 리얼해서 더 슬프다.

- 목소리 연기가 진심 대박인데.

- 설마 엔딩이 죽는 거로 끝나는 거야?

후반 객석의 분위기는 그냥 울음바다였다. 주변 관객들의 눈치 따위 보지 않고 펑펑 우는 관객들의 울음소리가, 아예 합창이 되어 대극장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 엉엉. 제발 죽지 마요.

- 아. 눈물이 안 멈춰져. 흑흑.

- 영화가 너무 슬프니까 힘들어.

- 빌어먹을.. 영화가.. 아..

수빈은 옆자리에서 소리 내어 펑펑 울고 있는 있는 박사장을 째려보며 한마디 했다.

"전에도 그러시더니.. 적당히 좀 하세요. 사장님 때문에 관객들이 뭐라 하는지 잘 안 들리잖아요."

수빈의 핀잔을 못 들은 척 외면하던 박사장이, 잠시 후 결국 목놓아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짜증이 살짝 난 수빈의 반대편을 쳐다보았다. 백성철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엉엉 울고 있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수빈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의자를 짚고서 백성철의 다리를 가볍게 뛰어넘었다. 수빈은 대극장 뒤쪽으로 걸어가 쪼그려 앉아서 울고 있는 스태프에게 말했다.

"울고 있는데 미안하지만.. 조명을 내가 단상으로 올라가 신호를 하기 전까지는 켜지 말라고 전달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네. 흐흑. 알겠습니다. 대표님. 흑흑."

수빈이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이윽고 영화가 끝이 났고, 스크린에는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객석에서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수빈은 관객들이 충분히 울수 있도록 넉넉하게 시간을 준 다음, 단상으로 천천히 올라갔다.

단상에 올라간 수빈이 손을 들어 신호를 보냈다. 그때야 조명이 하나둘씩 들어오며 대극장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불이 켜지자, 하나같이 다들 눈이 퉁퉁 부어 있는 관객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수빈이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다들 재밌게 보셨습니까?"

관객들이 아직도 영화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는지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머쓱해진 수빈이 다시 말을 이었다.

"밖으로 나가시면 간단한 설문 조사를 하기 위해서 종이랑 펜을 나눠드릴 겁니다. 작성이 끝나신 분들은 회식 장소로 이동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이것으로 시사회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너무 많이 울어서 진이 다 빠진 관객들이, 하나둘씩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대극장 밖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수빈이 단상에서 내려오자, 성강호와 그의 부인인 황정숙이 다가왔다. 눈이 퉁퉁 부은 황정숙이 수빈을 꼭 끌어안았다.

"강감독님. 고마워요. 이런 좋은 영화를 만들어 줘서.. 강감독님이 죽지 않고 이렇게 살아 있는 걸 보니.. 정말로 좋네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형수님."

황정숙이 수빈의 등을 두드리고 떠나자 성강호가 다가왔다. 아직도 눈가가 벌건 성강호가 웃으며 말했다.

"이번 영화도 무조건 천만이야. 만약 이걸로 천만 못 찍으면.. 내가 영화배우를 그만두마. 멋진 연기에 멋진 영화다. 고생했어. 강감독."

수빈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 말은 취소하시는 게 좋을걸요? 이 영화로 국내에서 천만 찍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성강호가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부릅뜨고 반박했다.

"무슨 소리! 내 눈을 믿으라고. 아무리 개봉을 해봐야 아는 게 영화라지만.. 이건 확실해. 이런 영화가 천만을 못 찍으면, 내가 손에 장을 지지마."

"네네. 알겠습니다. 회식 장소로 이동하시죠."

성강호의 뒤를 이어 곧바로 정도연이 다가왔다. 아직도 눈물이 그렁그렁 한 정도연이 수빈의 손을 꼭 붙잡고 훌쩍이며 말했다.

"감독님. 흑.. 영화가 너무 슬퍼요. 어떡하면 좋아. 흑흑. 전 앞으로 감독님 영화라면 무조건 출연할 테니까.. 꼭 연락 주세요. 알았죠?"

"네. 알겠습니다."

"우리 남편이 시사회에 초대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저보고 강감독님께 꼭 전달해 달래요. 흑. 그이가 하도 울어서 세수한다고 지금 화장실에 갔어요."

"네. 알았으니 그만 좀 우시고.. 회식하러 가시죠."

"네. 이따 봐요."

혼자 남은 수빈이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이 정도면 망하지는 않겠지?"

이윽고 수빈은 백성철과 함께 밴을 타고 인근에 있는 회식 장소로 이동하였다. 식당 하나를 통째로 빌렸는지 식당 안에는 영화와 관련된 사람들만 있었다, 수빈이 등장하자 열렬한 박수와 휘파람 소리가 터져 나왔다.

- 짝짝짝짝짝.

- 우리 감독님 최고!

- 휘익~ 삐익~

수빈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자 왼쪽에는 김샛별, 오른쪽에는 하이유가 앉아 있었고, 건너편에는 오상무와 박사장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같은 줄의 왼쪽 테이블에는 성강호 부부와 정도연 부부가 앉아 있었고, 오른쪽 테이블부터는 영화사 간부들이 쭉 착석하고 있었다. 다른 줄의 테이블에는 영화사 직원들과 극장 직원들이 앉아 있었고, 백성철과 김비서가 함께 앉아 있었다. 마동식 커플은 다른 일로 회식 자리에는 참석을 하지 못했다.

성강호가 자신의 자리에 착석하려는 수빈을 보며 말했다.

"강감독. 사람들에게 한마디 해야지."

수빈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식당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빙긋 미소를 지은 수빈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여러분들께 제가 소. 고. 기.로 거하게 한턱 쏘겠습니다. 하고 싶은 말들이 많으시겠지만 일단.. 밥 먹고 합시다!"

- 우와아아.

- 대표님. 사랑해요.

- 감독님. 멋져요.

수빈이 자리에 착석하자 눈두덩이 빨간 하이유가 말을 건넸다.

"감독님. 고마워요. 이런 영화에 출연하게 해줘서.. 정말.. 감사드려요."

"왜 또 이렇게 비행기를 태우십니까. 하배우가 연기를 잘해서 영화가 더욱 빛나는 거죠. 영화 음악으로 들어가는 리메이크 노래들도 아주 잘 불러주셨고요.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합니다."

"이제야 저도 배우가 된 기분이에요. 뭐랄까 온몸 가득 감성이 들어차 있는 기분이에요."

- 불판 들어갑니다.

자리마다 숯불이 넣어지고, 석쇠가 올려지고 있었다.

하이유가 말을 이었다.

"노래는.. 좀 아쉬워요. 지금 감성이라면 더 잘 부를 수 있을 거 같은데.. 재녹음하기에는 너무 늦었겠죠?"

같이 영화를 찍으며 많이 친해진 김샛별이 옆에서 듣고 있다가 타박을 주었다.

"언니. 정신 차려. 정식 시사회가 모레면 다음 주쯤에 개봉을 한다는 소린데.. 뭘 다시 불러요? 내가 듣기에는 잘만 불렀더만. 나도 노래를 그 정도만 부를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

"그렇지? 너무 늦었지?"

그때 수빈이 하이유를 묘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매번 편집실에서 혼자서 보다가.. 이렇게 여러 사람들과 함께 시사회를 하면서 저도 좀 오는 게 있었는데.. 재녹음 말고 차라리 신곡을 불러볼래요?"

하이유가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신곡요? 만들어 놓은 신곡이 있나요?"

"뭐 지금이라도 만들면 되죠."

수빈이 고개를 뒤쪽으로 돌려 백성철을 바라보며 말했다.

"백비서. 나 악보 좀.."

백성철이 집게로 석쇠 위에 고기를 올리려다, 수빈의 말에 화들짝 놀라 황급히 안주머니를 더듬었다. 백성철이 항상 들고 다니는 펜과 빈 악보가 수빈의 손에 건네졌다.

펜을 든 수빈이 거침없이 악보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제목은 영화 제목처럼 똑같이 라이프로 하고.. 마이너에 미디엄 템포로.."

수빈이 흥얼거리며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쳐다보고 있을 때, 건너편에 앉아 있던 오상무가 벌떡 일어났다. 오상무가 오른손 검지를 입에 대고 사방을 둘러보며 소리를 내었다.

- 쉬! 쉬! 쉬!

식당 안이 삽시간에 고요해졌다.

- 지글지글

석쇠 위에 올라간 소고기가 맛있게 익어가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순식간에 작곡을 끝마치고, 일필휘지로 가사까지 써 내려간 수빈이 악보를 하이유 쪽으로 내밀었다.

"부를 수 있죠?"

떨리는 목소리로 하이유가 대답했다.

"네. 가수잖아요."

하이유가 반짝이는 눈빛으로 악보를 쳐다보며 심호흡을 한 다음 첫 구절을 애절한 톤으로 불렀다.

"라이프~"

수빈이 손을 들어 노래를 중단시켰다.

"아뇨. 좀 더 가볍게 던지세요. 만약 이곡을 쓰게 된다면.. 영화 엔딩 부위에 쓸 겁니다. 누군가의 죽음이란 게 슬프고 가슴 아프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은 또 그 사람들의 인생이 있는 거죠. 죽음 자체도 윤회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스쳐 지나가는 것일 뿐.. 그러니 슬퍼하되 좌절하지 말고.. 아파하되 절망하지 말고.. 그런 마음으로 담담하게 불러주세요."

하이유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노래를 불렀다. 수빈이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박자를 맞춰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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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난 가끔 그대에게 물어보았죠

당신은 왜 항상 행복한건지

그대는 언제나 입버릇처럼 말했죠

인생이란 그 누구도 가질수 없는 소유물이라고

그져 스쳐가는 바람의 흔적일뿐

잠시 머물다가는 펜션의 하룻밤 꿈처럼

뛰어가도 잡을수 없는 아름다운 무지개라고

그러니 걱정말고 항상 행복하게 살으라고

뷰티플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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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이 끝이나자 수빈이 랩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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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라이프~ 유어 라이프~

언제나 행복한 피에로처럼

영원히 즐거운 어릿광대처럼

그대의 인생은 끝없이 돌아가는 회전목마

태어나 살고

아파서 죽고

다시 또 태어나는 수레바퀴

다람쥐 쳇바퀴처럼 끝없이 돌아가는 풍차 같은걸

외로워 말고

울지도 말고

소중한 인생에 감사하며 행복을 느껴봐

뷰티플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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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안의 모든 사람들이 눈을 감고 감상에 젖어 있었다. 수빈이 입으로 간주부분을 불렀다.

"다리리라~ 다라라 단단 다라라~ 다리리라~ 하나. 둘. 셋. 넷."

하이유가 2절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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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난 가끔 그대 얼굴 바라보았죠

당신은 왜 항상 웃고있는지

그대는 언제나 습관처럼 웃었죠

인생이란 그 무엇도 가질수 없는 무소유라고

평생 가슴속에 간직하는 빛바랜 추억일뿐

매년 보이는 어여쁜 나비의 한여름 꿈처럼

해를 보면 사라지는 영롱한 이슬방울이라고

그러니 울지말고 항상 웃으면서 살으라고

뷰티플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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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이 다시 랩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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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라이프~ 유어 라이프~

나의 인생은 채무자

너의 인생은 빚쟁이

먼지처럼 사라지는 통장속 머니처럼

순식간에 사라지는 숫자로된 신기루야

축복속에 탄생하고

위로속에 스러지고

끝이 보이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

다람쥐 쳇바퀴처럼 끝없이 돌아가는 물레 같은걸

괴로워 말고

슬퍼도 말고

기쁨속에 하루하루 웃으면서 살아봐

뷰티플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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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이 하이유를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하나. 둘. 셋. 넷."

감정이 고조되었는지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하이유가 목놓아 엔딩 부분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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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두손모아 행복을 기도해요.

마이 라이프~ 유어 라이프~

내일도 변함없이 행복하길 기원해요.

그대의 인생~ 나의 인생~

그리고~ 우리의 인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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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끝나자 수빈이 가볍게 박수를 쳤다.

- 짝짝짝.

"아주 잘 불렀습니다. 역시 타고난 가수네요."

하이유가 감정이 울컥했는지 테이블에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식당안의 사람들이 전원 자리에서 일어나 열광적으로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 노래 쩝니다. 완전 쩔어요.

- 역시 하히유! 울컥 울컥하네.

- 너무 좋아요. 눈물날거 같아요.

수빈이 잠시 생각을 하더니 백성철을 보며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백비서. YK에 연락해서 A&R 팀 전원 스탠바이 시키고, BBG 멤버들 즉각 다 소집시키세요. 지금 바로 녹음하러 갈겁니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백성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핸드폰을 들고 밖으로 뛰쳐 나갔다.

수빈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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