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사 연예인이 되다-187화 (187/236)

# 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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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은 참석자 리스트를 확인한 후 오소라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BGV와 메가가 스크린을 내어주지 않고, 4대 메이저 배급사가 배급을 다 거절한다면, 우리가 걸 수 있는 스크린 수가 얼마나 될 거 같습니까?"

"제 생각에는 아마도 예전 봉순호 감독의 '옹자'와 비슷할 거예요. 200개 정도? 그 정도에 걸 수 있을 거예요. 전국 영화관의 10프로에도 못 미치는 점유율이죠."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수빈이 좌중을 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제가 생각한 대응 전략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작전은 아까 말씀드린 대로 양동에 공성 그리고 고육과 반간입니다. 먼저 양동작전(陽動作戰)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조부장이 물었다.

"양쪽을 동시에 공격할 때 그 양동입니까?"

수빈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제가 말한 건 성동격서(聲東擊西)와 비슷한 뜻의 양동작전입니다. 두 양(兩) 자를 쓰는 양동(兩動)은 실제로 양쪽을 다 공격하거나 작전을 펼칠 때 씁니다. 하지만 양동(陽動)은 두 방향 모두 공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쪽만 공격하는 거죠. 나머지 한쪽은.. 눈속임입니다."

수빈이 탁자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밖에서 보기에는 우리 영화사가, 국내에서 어떻게든 개봉을 많이 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여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건 페인트(feint)죠. 실제로는 세계 시장을 노릴 겁니다. 공성계(空城計). 말 그대로 성을 비우는 거죠. 본진인 한국 시장은 포기하고, 세계를 상대로 개봉을 하기 위해 영화사의 모든 전력을 쏟아부을 생각입니다. 하지만 우리를 방해하려는 세력에게 우리의 작전을 들키면 안 되겠죠? 그러기 위해서는 고육지책(苦肉之策)이 필요합니다. 적의 눈을 속이기 위해 누군가 고통을 좀 받아야 할 것 같은데.."

수빈이 손가락을 멈추고 좌중을 둘러보았다.

"고육지책을 잘 수행하려면 언변과 연기력이 좋고 적절한 직급이 있어야 하는데.. 강부장?"

회계부 강부장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네. 대표님."

"제가 보기에 강부장이 적격입니다. 어차피 영화 시사회가 끝나고 나면 특별히 자금 쪽으로 신경 쓰실게 없잖아요?"

"네. 급여 계산 말고는 특별한 게 없습니다. 영화 촬영이 다 끝난 상태라서요."

"좋습니다. 강부장이 보험 영업을 해보셨으니까 잘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시사회가 끝난 다음날부터, 강부장님은 국내 메이저 배급사를 매일같이 돌아다니세요. 우리의 안타까운 사정을 설명하고 어떻게든 개봉관을 잡아달라고 매달리세요. 우리 영화사가 어렵고 힘들다는 생각을 그들에게 팍팍 심어주셔야 합니다. 물론 문전박대를 당하고 구박을 받겠죠. 하지만 참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적들을 속여 넘길 수 있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근데.. 제가 그렇게 설득을 하며 작업을 하다가, 저쪽에서 정말로 개봉을 해주겠다고 나오면 어떡하죠?"

"그럼 당연히 좋은 거죠. 제 생각에 그런 일은 없을 것 같은데..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강부장에게 충분한 인센티브를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배급사에 죽치고 앉아서 설득 작업을 해보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양동에 공성 그리고 고육까지는 끝이 났고.. 오상무?"

"네. 대표님."

"제가 회의가 끝나는 대로, YK 박사장님에게 한 분의 연락처를 받아서 드리겠습니다. 그분을 어떻게든 이번 시사회에 모셔오세요. 그분을 제가 시사회장에서 만날 수 있도록 해주셨으면 합니다."

오소라가 야무진 얼굴로 대답했다.

"알겠어요. 제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분을 시사회장에 반드시 모셔오겠어요."

"부탁 드리겠습니다. 그분을 모셔와야 반간계를 시작할 수 있으니까요."

"근데.. 어떤 분인가요?"

"미술관 관장이라는 것 말고는 저도 아는 게 별로 없습니다. 연락처를 드릴 테니, 자세한 건 오상무가 직접 조사를 해보세요."

"네. 알겠어요."

수빈이 가볍게 손뼉을 쳤다.

- 짝.

사람들의 이목을 모은 후 진중한 목소리로 말을 하였다.

"그럼 시사회가 끝나고 나면, 강부장 빼고 간부진들 전원은 출장 준비를 해주세요. 세계를 상대로 열심히 영업을 뛰어야만 할 겁니다. 영화사의 모든 간부들이 국외로 나간다고 생각하시고, 만반의 준비를 해주세요. 지역별로 적절한 인원 배분은 제가 나중에 다시 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방에서 있었던 대화는 철저하게 비밀입니다. 만일 어디론가 새어 나간다면.. 반드시 그 책임을 묻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잘 아시겠습니까?"

- 알겠습니다. 대표님.

"좋습니다. 이번 일에 우리 영화사의 미래가 걸려 있습니다. 이번 위기만 극복하고 나면, 국내에서는 더 이상 우리를 방해할 만한 세력이 없을 겁니다. 조금만 더 힘을 냅시다. 다음 회의는 시사회 전날인 5월 9일 아침에 열겠습니다. 그때 우리끼리 시사회를 먼저 한 다음, 최종적으로 시행 방법 및 인원들을 결정하겠습니다."

수빈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전 영화 작업이 밀려 있어서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큰 줄거리는 정해졌으니, 나머지 세부적인 내용들은 간부진들이 알아서 의논을 해보세요."

수빈은 영화사를 나와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곧바로 작업에 매진했다.

5월 7일 화요일

어린이날 대체 휴일을 맞이해서 수빈은 자신의 집에서 막바지 작업에 한창이었다. 아침부터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수빈의 기지개를 펴며 중얼거렸다.

"이제 자막 번역도 거의 끝났군. 몇 개 국어만 미리 해놓으려고 했더니.. 세계를 노리려면 아무래도 다양한 언어로 준비를 해놓는 게 유리하겠지. 오늘 중에 다 마무리하고 내일 최종 점검을 한 다음, 모레 자체적으로 시사회를 열면.."

그때 수빈의 핸드폰이 울렸다. 백성철이라고 생각했던 수빈이 살짝 혀를 찼다.

"여보세요?"

[오빠. 나 아림이.]

"그래. 독일 공연 다 끝나고 한국에 돌아온 거야?"

[응. 어버이날 이전에 다 끝낼 수 있도록 스케줄을 잡아놨지. 안 그러면 부모님이 삐지셔.]

"그렇구나. 언제 밥 한번 먹어야지."

[요즘 오빠 바쁜 거 알아. 나도 시사회 초대장 받았거든. 영화 개봉하고 난 담에 내가 연락할게. 그때 보자. 오빠.]

"너. 이제 보니 철 좀 들었구나?"

[오빠만 하겠니? 난 요즘도 가끔 헛갈려. 정말로 내가 아는 그 오빠가 맞는지..]

"좀 그렇긴 하지? 원래 남자가 군대 갈 나이가 되면 철든다고 하잖아."

[벌써 군대를 가게? 남자 연예인들은 보통 서른 다 돼서 가지 않아?]

"난 내년에 갈까 한다. 작년과 올해는 너무 정신없이 보낼 거 같아서. 재충전도 할 겸 빨리 다녀오려고."

[그래? 다들 다녀오면 속은 편하다고 하더라. 암튼 시간 나면 조만간 한번 봐요.]

"알았어. 연락할게."

전화를 끊은 수빈이 다시 작업에 몰두했다.

5월 8일 수요일

영화가 완성 단계라 수빈은 점심을 먹은 뒤 영화사 편집실에서 모니터를 보며 느긋하게 편집 작업을 하고 있었다.

'특별히 손볼 곳이 안 보여. 이 정도면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잘 빠진 것 같은데. 음악도 나쁘지 않고. 확실히 디지털이 편해. 수정하기도 간편하고.. 자막만 입혀주면 끝나겠군. 다행히 시간 내에 다 마무리 지을 수 있겠어..'

수빈의 표정이 마치 개학 전날 방학 숙제를 다 끝내놓은 학생처럼 여유로웠다. 그때 수빈의 핸드폰이 울렸다.

"네. 형."

[후. 수빈아. 지금 내 핸드폰이 불이 난다.]

"그새 또 무슨 일이 있나요?"

[특별한 일은 없는데..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이 자꾸 전화를 해와서 말이지. 영화를 언제 볼 수 있냐고..]

"모레 10 일날 시사회를 하잖아요?"

[그건 다른 초대 손님들이랑 다 같이 보는 거고. 영화 출연자인 자신들한테 왜 먼저 안 보여주냐고 난리 난리 생난리를 쳐서..]

"거참. 사람들이 진득하지 못하게.. 지금 오상무 어디 있어요?"

[개관식 겸 시사회 준비한다고 대학로에 있는 본사 건물에 나가 있지.]

"그럼 오상무에게 전화해서 대극장 테스트도 할 겸 오늘 좀 잠깐 쓸 수 있냐고 물어봐요. 어차피 일하는 날이라 직원들은 다 출근해 있을 테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예요. 영화야 디지털 시스템이니까 가서 틀면 그만일 거고.."

[그래. 알았다. 내가 물어볼게.]

"네. 오상무가 가능하다고 그러면.. 형이 배우들한테 전화를 하셔서, 저녁 5시까지 대극장으로 오라고 하세요. 테스트도 해볼 겸 미리 시사회를 한번 하죠. 끝나고 간단하게 회식도 좀 하고요. 제가 쏜다고 하세요. 그리고 오늘 시간 안되는 사람은 모레 정식 시사회 때 오라고 하세요."

[오케이. 내가 알아보고 다시 연락할게.]

잠시 후 백성철이 구구절절 장문의 문자를 보내왔다.

- 수빈아. 주연 배우들이 시간은 다 가능한데 부부동반을 했음 좋겠다고 그러는데.. 어떡할까? 그리고 직원들도 같이 보고 싶다고 난린데 어떡하지? 어차피 직원들 절반은 본사 건물에 입주해 있는 상태고, 나머지도 이삿짐 정리 중이거든.

문자를 읽은 수빈이 혀를 찼다.

"형이 여기저기에서 어지간히 쪼이나 본데. 하긴 완성된 영화를 나 말고는 아직 아무도 본 적이 없으니. 그리고.. 아무리 가정의 달이라고 해도 그렇지. 대스타라는 양반들이 뽕을 뽑으려 드네. 뭐 직원들이야 상관없는 거고."

수빈이 답신을 보냈다.

- 부부동반 가능. 직원들 가능. 단 어떠한 경우에도 사진이나 동영상 촬영 불가.

시간이 흘러 수빈은 밴을 타고 새로 완공한 본사 건물에 도착했다. 5층짜리 백색 건물 두 채가 중간에 다리 형식으로 연결이 되어 있었다. 신축 건물답게 외관이 하얀색으로 깨끗하게 도색이 되어 있었고, 건물 맨 꼭대기에는 쪼개진 수박이 V자 형태로 걸려 있었다.

"왼쪽 큰 건물은 극장으로 사용하는 건물이야. 오른쪽에 비교적 작은 건물은 영화사가 입주할 건물이고. 큰 건물 1층 일부는 상업 용도래. 1, 2, 3층은 털어서 대극장으로 사용하고, 4층하고 5층은 소극장 4개가 들어간다고 들었다. 원래 큰 건물 이름은 수박 시네마 빌딩이고, 작은 건물은 수박 프로덕션 빌딩인데.. 직원들끼리는 큰 건물을 대박 빌딩, 작은 건물을 수박 빌딩이라고 부른다더라."

"극장 직원들은요?"

"총무과에서 이미 알아서 다 뽑았지. 한 달간 교육까지 다 시켰다던데. 이미 일주일 전인 5월 1일부터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더라. 그런 일들은 오상무가 알아서 잘 처리하니까."

"잘했네요. 이제 어지간한 일들은 이쪽 본사에서 보면 되겠군요. 이전 벨 프로덕션 건물은 영화 제작과 관련해서 편집이나 CG 작업 전용으로 쓰면 될 테고."

"거긴 제작부 직원들이 주로 사용한다고 들었어. 촬영 장비나 기계들은 그쪽에 보관하고, 이쪽은 행정 업무나 손님 접대용으로 사용한다고 들었다."

"그럼 어디 한번 둘러볼까요?"

밴에서 내린 수빈이 큼지막한 수박 마크를 보며 중얼거렸다.

"남들이 보면 청과 도매시장인 줄 착각할 수도 있겠는걸요."

"그럴 리가 있겠냐. 조만간 대학로 수박 시네마라고 하면 누구나 다 아는 명물이 될 거다."

수빈은 자신의 소유인 본사 건물 안으로 당당하게 걸어 들어갔다.

그렇게 예정보다 빠르게 급작스럽게 잡힌 시사회가 열렸다.

시사회에 참석할 사람들이 하나둘 도착하기 시작했다.

성강호와 그의 부인인 연극배우 출신의 황정숙, 정도연과 사업과 남편 강석규, 마동식 예정하 커플, 하이유, 김샛별 그리고 백비서가 따로 연락을 했는지 YK 박사장과 김비서까지 도착했다. 영화사 직원 25명과 극장을 관리하는 직원 12명을 합쳐 총원 47명이 시사회장에 자리를 잡았다.

규모는 세종회관 대극장의 절반 수준인 1,500석에 불과하지만, 3층의 객석으로 이루어진 으리으리한 최신식 극장 무대에 올라선 수빈이 마이크를 잡았다.

"다들 아시는 분들이라 특별한 소개나 인사를 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이 영화를 본 사람이 아직까지는 감독인 저밖에 없습니다. 간단하게 이번 영화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우리가 아등바등 거리며 살아가고 있는 인생 또는 삶의 의미가 과연 뭘까 하고 사람들이 한 번씩 곱씹어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수빈이 잠깐 짬을 둔 다음 말을 이었다.

"이전에 제작한 달빛과 다른 점은 액션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영화 음악으로 국내 케이팝 음악을 많이 사용했다는 겁니다. 아무래도 달빛은 사극이라 좀 무리가 있었죠. 하지만 이번 영화는 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BBG, 하이유의 곡들을 영화 분위기에 맞게 리메이크를 해서 많이 사용하였고, 이번에 데뷔하는 YK 신인 아이돌의 음악들도 사용했습니다. 그럼 소개는 이 정도로 끝내고 시사회를 시작하겠습니다."

- 짝짝짝.

사람들 박수 소리에 맞춰 수빈이 가볍게 손을 들자, 대극장 조명이 순서대로 꺼지기 시작했다. 무대 아래로 내려간 수빈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영화 관람에 있어서 로열석이라고 할 수 있는 1층 중간쯤 되는 좌석에 도착하여, YK 박사장 옆자리에 수빈이 착석하자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백성철이 조용히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마침내 첫 번째 시사회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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