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사 연예인이 되다-168화 (168/236)

# 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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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이 밴에서 내려 백성철과 함께 영화사 안으로 들어가니, 입구 왼편에 위치한 휴게실 원탁 테이블에서 두 명의 여성이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수빈을 발견한 오소라가 손을 높이 들며 크게 소리를 질렀다.

"대표님. 대표님."

수빈은 오소라에게 다가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오상무. 3일 만에 보는 건데도 굉장히 오래간만에 보는 기분이군요. 잘 지내셨습니까?"

"네. 대표님. 출장 가신 일은 잘 되셨나요?"

"염려해준 덕분에 생각보다 결과가 괜찮은 것 같습니다."

"다행이네요. 대표님."

오소라가 옆에 있는 젊은 여성을 소개해 주었다.

"여기는 최성미씨라고 얼마 전 대표님이 결혼식에서 보셨다는 분이에요. 제가 면접을 봐서 어제부터 출근을 하고 있어요. 부서는 배급부로 정했고요. 직책은 부서에 사람이 아직 성미씨 혼자여서 실장으로 정했습니다. 최성미씨. 대표님께 인사하세요."

최성미가 아주 조심스러운 태도로 수빈에게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2월 1일부로 영화사에 입사한 최성미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수빈은 순식간에 찰색을 해내어 최성미의 현재 심경을 빠르게 읽어냈다. 그런 후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상대방에게서 위협감을 느낄 때 나타나는 찰색인데. 내가 대표라서 무서운 건가? 아니야. 이건 두려움이나 공포가 아니라 마치..'

수빈은 자신이 내린 판단이 정확한지 확인을 해보기 위해,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러자 그녀가 바짝 긴장한 얼굴로 수빈의 손을 살짝 잡았다. 그 상태에서 수빈이 입을 열었다.

"입사한 걸 축하드립니다. 업무와 관련해서 조만간 둘이서 이야기를 나눴으면 합니다만.."

그러자 맞잡은 그녀의 손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하더니 힘겹게 대답을 하였다.

"제 생각에 둘보다는.. 오상무와 같이 뵈면 더 좋을 거 같은데요."

최성미의 반응을 확인한 수빈은 마음속으로 짜증을 내며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이건 공포가 아니라 혐오야. 길 가다 변태 새끼를 만났을 때 나타나는 반응이랑 유사한데.. 왜 나를 보며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거지?'

수빈은 무심한 척 그녀의 손을 놓으며 말했다.

"그것도 좋죠. 아무튼 열심히 하시길 바랍니다."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살짝 내쉬며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대표님."

수빈이 몸을 획 돌려 자신의 집무실로 가기 위해 걸음을 뗄 때, 뒤에서 오소라가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수빈의 귀에 날카롭게 꽂혔다.

"전 대표님의 취향을 존중해요. 힘내세요. 대표님."

풀리지 않는 의혹을 품은 채 빠르게 집무실로 이동한 수빈은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백성철에게 물었다.

"형. 형 눈에는 내가 변태같이 보여요?"

"네가? 변태라고? 그럴 리가 있겠냐. 내 눈에는 멀쩡해 보이는데."

수빈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우. 도무지 원인을 모르겠는데.."

"갑자기 웬 변태 타령이야? 누가 너보고 변태라 그러던?"

"저한테 대놓고 그러는 사람은 당연히 없죠. 근데 느낌이 왠지 싸한 게.. 그 이야기는 그만하죠. 지금 제작부 사람들 모여 있나요?"

"우리가 예정보다 조금 늦어서 도착했으니, 지금쯤 다들 회의실에 모여 있을 거다. 그리고.."

백성철이 책상 위에 놓인 서류철을 집어서 수빈에게 내밀었다.

"오늘 회의자료다. 새로 작성한 영화 타임 테이블과 소요 예산 그리고 제작부에서 신규로 구입했으면 하는 장비 리스트야."

수빈은 서류철을 펼쳐서 안에 있는 서류들을 빠르게 훑어보며 말했다.

"타임 테이블은 잘 조정된 거 같고.. 새로운 장비 구입에 필요한 예산이.. 생각보다 너무 많은데요?"

"수빈이 네가 필요한 게 있음 뭐든지 말해라고 해서 그런지, 제작부 인간들이 욕심을 부리고 있나 봐. 기존에 있는 장비들도 노후화됐다고 그러면서 다들 최신형으로 교체하고 싶어 한다고 들었다."

"뭐 어차피 영화사 자산으로 잡힐 거니까 최대한 구매를 해주는 게 맞긴 한데.. 이걸 다 사려면 중국에서 돈을 많이 벌어야겠는데요."

수빈이 소파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형. 난 제작부 회의 들어갈 테니까, 형은 성배우에게 연락해서 오늘 갈수 있는지, 어디서 어떻게 만나서 갈 건지, 다시 한번 확인을 해보세요."

"그래. 알았다."

수빈은 서류철을 들고 회의실로 걸어갔다. 회의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수빈은, 눈에 들어오는 기괴하고 섬찟한 광경에 기겁을 하며 들고 있던 서류철을 바닥에 떨어뜨려 버렸다.

- 투두둑.

사정없이 떨리는 목소리로 수빈이 물었다.

"도대체.. 이게.. 뭡니까?"

금발의 머리에 검은색 수면 안대로 눈을 가리고, 각기 특이한 장치를 하나씩 두르고 팔다리가 꺾인 기묘한 자세를 취한 채, 회의실 한쪽 벽에 줄지어 나란히 세워져 있는 발가벗은 세 대의 등신대(等身大) 여자 마네킹을 보며 수빈이 경악에 찬 표정으로 질문을 던지자, 이성호 소품팀장이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대표님이 부탁하신 걸 제작해서 들고 왔죠. 어제 통화할 때 오늘 회사로 가져와 달라고 하셨잖습니까?"

이팀장의 태연한 답변에, 수빈이 벙찐 표정으로 세 대의 등신대 마네킹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한대의 마네킹에는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검은색 깃털로 둘러싸인 수갑이 양쪽 팔을 묶고 있었고, 또 한대의 마네킹에는 갓 흘린 피처럼 선명한 붉은색 밧줄이 마네킹의 사지(四肢)를 결박하며 옷 몸을 꽁꽁 묶고 있었다. 나머지 한대의 마네킹은 흉악한 죄수들이 입는다는 강압복(強壓服)을 핑크색으로 제작해서 입고 있었다.

수빈이 의혹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이런 걸 부탁드렸다고요?"

수빈의 질문에 이팀장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네. 출장 가시기 전에 말씀하셨잖습니까? 한 명의 아름다운 여성이 있는데, 자고 일어났을 때 꼼짝 못하도록 구속을 하는 도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여성의 몸에 상처나 멍울이 생기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부탁하셨잖습니까?"

화가 치미는지 수빈의 눈초리가 조금씩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차가운 어조로 수빈이 다시 물었다.

"그래서요?"

"제가 아무리 대본을 뒤져봐도 영화에 그런 소품이 필요한 신은 없더라고요. 그래서 아. 이건 대표님이 여친이나 아니면 애인분이랑 같이 사용할 물품이구나. 대표님이 의외로 독특한 취향을 가지고 계시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죠."

애끓는 표정으로 수빈이 물었다.

"왜 그런 얼토당토않은 생각을.. 그런 다음에요?"

수빈의 물음에 칭찬을 갈구하는 표정으로, 이팀장이 주먹을 불끈 쥐고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제가 성인 용품 사이트에 들어가서 연인들끼리 구속(拘束) 플레이를 할 때 사용하는 비슷한 물품들을 찾아봤습니다. 그런 다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명품으로 제작을 했습니다. 첫 번째 수갑 같은 경우에는 손목에 멍이 드는 걸 방지하기 위해 안쪽에는 최고급 융으로 된 옷감을 받쳤고, 겉에는 공작 깃털을 검은색으로 도색해서 아름답게 장식을 했습니다. 두 번째 밧줄은 피부에 상처가 나는 걸 방지하기 위해, 붉은색 실크를 이용해서 제작을 한 다음 실리콘으로 바깥 부위를 얇게 코팅했습니다. 지금 보시는건 '거북 묶기'라는 기술로 구속을 한 상태입니다."

뿌듯한 표정으로 마네킹을 바라보는 이팀장을 보며, 어느 정도 마음을 비웠는지 수빈의 눈꼬리가 다시 아래로 처지기 시작했다. 수빈은 자신을 괴롭히는 번뇌를 떨치려는 듯 고개를 흔든 후 길게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하아. 마지막 건?"

"세 번째 마네킹이 입고 있는 건 강압복, 구속복 또는 억압복이라고 부르는 건데, 따로 특별히 꾸밀만한 부분이 없어서 핑크색 비단으로 제작을 하고 버클을 황금색으로 도색을 해서 포인트를 줬습니다."

"뭔 또 포인트까지.."

말을 하다 수빈은 문득 자신의 뇌리를 스쳐가는 생각이 있어서 황급히 물었다.

"혹시 말입니다. 이걸 여직원들이 봤나요? 오상무나 최성미 같은.."

이팀장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보셨죠. 다들 성격이 좋고 친절하신 분들이던데요. 제가 차에서 끙끙거리며 마네킹을 하나씩 꺼내서 입구에 세워 놓으니까, 두 분이 휴게실에서 쉬고 계시다가 저 혼자 옮기면 힘들다고 도와주시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회의실까지 그분들하고 같이 옮겼습니다."

수빈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급히 물었다.

"이게 뭐냐고 안 물어보던가요?"

"물어보시던데요."

그 순간 수빈은 모든 걸 내려놓은 표정으로 천천히 물었다.

"그래서.. 이팀장은 뭐라고 하셨습니까?"

"대표님이 개인적으로 사용하시겠다고 제작을 부탁하셔서, 제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왔다고 말했죠."

모든 연유(緣由)를 파악한 수빈은 고개를 힘없이 바닥으로 푹 떨구며 말했다.

"참으로.. 잘 하셨네요. 앞으로 이팀장에게 뭔가를 부탁할 때에는.. 오해가 없도록 제가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수고가.. 참 많으셨습니다."

이팀장이 물색없이 수빈의 칭찬에 희희낙락할 때, 겨우 정신을 차린 수빈이 고개를 들고 테이블을 힘차게 내려쳤다.

- 콰앙.

수빈은 한여름 아지랑이처럼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회의실에 앉아 있는 제작부 직원들을 한 명 한 명 매섭게 째려보며 말했다.

"오늘 회의는 빡세게 한번 진행해 봅시다. 어디 한번 다 같이 죽어보자고요."

수빈의 대갈일성(大喝一聲)에 그동안의 진행과정을 여과 없이 지켜본 제작부 직원들은, 똥 씹은 표정을 한채 마치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없이 조용히 고개만 끄덕거리고 있었다.

한편 그 시각 미국 LA.

- 콰앙.

조비서는 자신의 방에서 노트북으로 자신이 작업하던 트위터에 올라온 '배청수의 음악캠프' 편집본을 듣다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해 노트북을 집어 들어 바닥으로 거세게 던져버렸다.

"이 새끼가.. 연예인 나부랭이 주제에 제법 영악한 놈인데."

치미는 화를 참지 못해 한참을 씩씩대던 조비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생각을 정리한 조비서가 중얼거렸다.

"나 못지않게 클래식에 정통한 놈이라 이거지. 그렇다면 네놈이 자신하는 분야로 밟아주마. 그래야 내가 직성이 풀릴 거 같아."

조비서는 품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한국에 있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 신호가 울리더니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묘령의 여자 목소리가 핸드폰을 통해 들리자, 조비서가 호흡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나 일전에 만났던 센트럴 그룹의 조양호요."

[어머. 조비서님. 어쩐 일로 전화를 다 주셨어요?]

"부탁을 좀 할게 있어서 전화드렸소."

머나먼 미국에서 수빈을 노리는 새로운 음모가 발아하는 그 시각. 수빈은 한국에서 열심히 회의를 주재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오후 5시경. 회의를 끝마친 수빈은 밴을 타고 강남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성강호 형님이 지금 강남에 있다고 하시던가요?"

수빈의 물음에 백성철이 대답했다.

"그래. 지금 강남에 있는 '올레 스튜디오'에서 잡지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단다. 그거 끝나면 이 차에 동승해서 샛별이 집으로 같이 가기로 했어. 지금쯤 다 끝나갈 거야."

"그렇군요. 샛별이 집은 어디에 있다고 하던가요?"

"삼성동 미래주택단지에 있다고 하더라."

"삼성동 미래주택단지라면.. 경기고 근처에 있는 단지 말하는 건가요?"

"맞아. 거기에 산다고 하더라."

"그쪽이면 집값이 장난 아닐 건데.. 잘 사는 집안인가 봐요?"

"샛별이 아버지가 무슨 사학 재단 이사장인가 그렇다고 하더라. 더 이상 자세한 건 나도 잘 모르고."

"그렇군요."

잠시 후 수빈은 강남에 있는 올레 스튜디오 주차장에서 성강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이 열리며 성강호가 밴 안으로 들어왔다.

"오셨습니까. 형님. 인터뷰는 잘 하셨습니까?"

성강호가 수빈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 잘 끝냈지. 근데.. 너 얼굴이 왜 이렇게 썩었냐? 뭔 일 있냐?"

수빈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오늘 낮에 그럴만한 일이 좀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일이라서 말씀드리기에는 좀 그렇네요. 앉으시죠."

성강호가 자리에 앉자 수빈이 백성철에게 말했다.

"출발하죠."

수빈과 성강호를 태운 밴이 삼성동 미래주택단지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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