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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탬버린 연주가 끝나자마자 배청수가 탄성을 터뜨렸다.
"이야. 이거.. 대박인데요. 솔직히 말해서 영화 음악을 듣는 것보다 탬버린 연주만 단독으로 듣는 게 훨씬 더 좋습니다. 듣다 보면 신이 절로 나고 어깨가 자연스럽게 들썩이는 게 굉장히 흥겹군요. 차라리 이걸 영화 음악으로 쓰지 그랬습니까?"
수빈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러면 관객들 눈에 영화가 잘 안 들어옵니다. 음악이 너무 튀어서 영화 감상을 방해하죠. 주객이 전도되는 격입니다."
"아하. 영화 음악이다 보니 그런 문제가 있겠군요."
수빈이 배청수의 눈치를 보며 슬쩍 운을 뗐다.
"맘에 드십니까?"
"아주 맘에 듭니다. 명인의 솜씨로 보이는데요. 리듬감이 끝내줍니다. 그리고 탬버린이라고 해서 단조로운 소리가 연속될 걸로 생각했었는데.. 아주 다양한 소리가 섞여 있군요."
수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실제로는 각기 다른 6종류의 탬버린 소리가 들어가 있는 겁니다. 그걸 편집 작업을 해서 하나로 만든 거죠. 조만간 다양한 버전의 탬버린 연주를 영화 OST와 함께 묶어서 CD로 출시할 계획입니다. CD가 나오게 되면, 제가 선생님 아니 배청수씨에게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수빈의 말에 배청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제 보니 수빈씨가 CD 광고를 하고 있었군요. 그런 의미에서 광고 듣겠습니다. 배청수의 음악캠프입니다. 1부 2부 모두 안사돌 플러스, 엘카운트.....슈테커 안마의자에서 함께 합니다."
수빈은 5분 남짓한 짧은 휴식 시간에 배청수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급하게 들어오느라 제대로 인사도 못 드렸습니다. 선생님. 일전에 SNS로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아냐. 그럴 필요 없어. 난 영화를 보면서 진짜로 탬버린 소리를 못 들었거든. 수빈군이 이렇게 나와주니 오히려 내가 더 고맙지. 지금 수빈군 앞에 있는 모니터에 글 올라가는 속도 보이지? 작가들 말로는 게시판이 터지기 일보직전 이래. 2부에서는 팬들이 올린 글들 중에 몇 가지 골라서 질문을 할 테니까, 정 답하기 곤란한 게 있으면 가볍게 넘기면 될 거야."
"알겠습니다. 선생님. 최대한 성실히 답변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래주면 좋지. 최고 청취율 한번 찍어보자고. 그리고.. 혹시 2부에서 내가 도와줄게 있나? 아까처럼 광고할게 있으면 내가 적당히 언급해 줄 테니까."
"아. 광고는 아닙니다만.. 한가지 다루어 주셨으면 하는 주제가 있습니다."
"어떤 주제?"
"요즘 SNS 상에 제가 금관 악기를 싫어해서, 영화 음악을 제작할 때 고의로 빼버렸다는 이상한 루머가 돌고 있어서요. 제가 직접 해명을 좀 했으면 합니다만.. 괜찮겠습니까?"
"그런 재밌는 주제면 우리에게 더 좋은 거지. 내가 알아서 주제를 끌어내 줄 테니까, 맘 편하게 이야기를 해봐."
"감사합니다. 선생님."
- 방송 10초 전입니다. 10, 8, 6, 4.
수빈은 담당 피디의 카운트다운에 다시 헤드셋을 써고 방송 준비를 하였다.
"배청수의 음악캠프입니다. 강수빈씨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수빈씨?"
"네. 강수빈입니다. 제가 조금 전 작가님으로부터 전해 듣기로는, 원래 목요일은 팝 칼럼니스트 임진보 선생님과 함께 '스쿨 오브 락'을 진행하는 날이라고 하더군요. 임진보 선생님께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저 때문에 오늘 방송을 못..."
배청수가 빙긋 웃으며 수빈의 말을 자르고 들어왔다.
"수빈씨가 그런 애까지 일일이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제가 잘 이야기를 하면 되니까요. "
수빈이 멈칫하며 되물었다.
"임진보 선생님이 나이가 어리십니까?"
"걔가 머리숱도 빠지고 겉늙어 보여서 나보다 많아 보이는 거죠. 실제로는 한참 어립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 임진보는 초등학생이었어요. 59년 생이라 아직 환갑도 채 안됐습니다. 자. 그런 이야기는 관두고.. 3047님이 물어보시네요. 수빈 오빠는 좋아하는 여성상이 어떻게 되시나요? 수빈씨?"
"특별히 정해진 여성상이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몸매가 55 사이즈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너무 날씬하신 분들은 좀 부담스럽더군요."
"약간 통통한 스타일의 여성을 좋아하시는군요?"
"55가 통통한 사이즈는 아니죠. 여성으로서 딱 좋은 건강한 몸매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순간. 음악캠프를 듣고 있던 전국의 55사이즈 여성들이 동시에 글을 올리는 건지, 그렇지 않아도 버벅거리던 시청자 참여 게시판이 결국 퍼져버리고 말았다.
"이런.. 한꺼번에 너무 많은 분들이 글을 올리셔서 게시판이 다운되었네요. 그럼 제가 청취자분들을 대신해서 수빈씨에게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네. 말씀하시죠."
"얼마 전 인터뷰를 보니까 영화 음악을 작업할 때 금관 악기를 다 빼버리고 탬버린을 넣었다고 말하더군요. 개인적으로 금관 악기를 싫어하십니까?"
"그런 오해를 하시는 분들이 간혹 계신데.. 가장 중요한 팩트를 항상 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가장 중요한 팩트? 그게 뭐죠?"
수빈이 살짝 호흡을 가다듬은 후 미리 생각해 놓은 답변을 늘어놓았다.
"영화 음악 제작비가 부족했다는 게 팩트죠. 저라고 금관 악기 잔뜩 넣어서 사운드 빵빵하게 작업하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금관 악기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금관 악기 연주자를 구할 돈이 없어서 못한 거죠. 실제로 피아노나 바이올린, 기타 같은 대중적인 악기들은 연주자를 구하기가 비교적 용이합니다. 제 주변에도 많이들 있기 때문에, 친분을 이용해서 비교적 적은 액수에 녹음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트럼펫이나 호른 같은 금관 악기를 제대로 불줄 아는 연주자는 구하기가 쉽지 않아요. 제가 아는 분도 없고요.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금관 악기를 빼고 작업을 했던 게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 같습니다."
"돈이 없었다라.. 그런 아픔이 있었군요. 실제로 시중에 피아노나 바이올린 교습 학원들은 많이 보이지만, 트럼펫이나 호른을 가르쳐준다는 학원들은 본 기억이 별로 없는 것 같군요."
"그렇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금관 악기의 사운드를 굉장히 좋아하는 편입니다. 가끔씩 집에서 연주를 하기도 하고요."
수빈의 말에 배청수가 살짝 놀란 음성으로 물었다.
"집에서 금관 악기 연주를 한다고요? 어떤 악기를 연주하십니까?"
"호른을 좋아해서 한 번씩 하곤 합니다. 혹시나 해서 악기를 들고 왔는데.. 이 자리에서 한번 들려드릴까요?"
"좋죠. 아주 좋습니다."
수빈이 의자 아래 놓여 있던 가방을 집어 들어 테이블 위에 올리자 배청수가 말했다.
"아까부터 그게 무슨 가방인가 했는데.. 호른 가방이었군요. 그래서 한쪽 배가 그렇게 불룩하게 튀어나온 거군요."
수빈은 악기를 세팅하며 말했다.
"보통 분들은 금관 악기라고 하면 트럼펫과 호른을 떠올리실텐데.. 둘다 연주법은 비슷하지만 호른이 사람을 약간 더 가리는 악기입니다."
"그건 또 왜 그런가요?"
"트럼펫 같은 경우 악기 중간에 단추 같은 게 튀어나와 있는 걸 보셨죠? 흔히 피스톤이라 부르는 건데요. 그걸 누르는 방법에 따라서 원하는 음정을 거의 비슷하게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호른은 그게 잘 안됩니다. 관이 길게 구부러져 있어서 정확한 음정 잡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죠. 그래서 호른 연주자는 귀가 예민해야만 합니다. 자신이 현재 내고 있는 음정이 정확한지를 자신의 귀로 직접 파악을 해가면서 연주를 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런 차이가 또 있군요."
"네. 다행히 제가 귀가 예민한 편이라서요. 제가 지금 들려드릴 곡은 '모리스 조세프 라벨' 작곡의 '죽은 공주를 위한 파반느' 관현악 버전의 초입 부분입니다."
잠시 후 스튜디오 내부에 아름다운 호른의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수빈의 연주가 끝나자 배청수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바로 앞에서 호른 연주를 듣는 건 처음이지만.. 막귀인 제가 듣기에도 상당히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로군요. 호른을 이렇게 잘 부는 거 보니, 수빈씨가 금관 악기를 싫어한다는 건 잘못된 소문이었군요. 훌륭한 연주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게시판이 다시 살아났군요. 2876님이 질문하셨습니다. 수빈 오빠. 결혼은 언제쯤 하실 건가요? 저도 55사이즈인데 저에게도 기회가 있을까요?라고 물으셨습니다. 상당히 적극적이신 분인 것 같습니다. 수빈씨?"
"결혼은 당분간 생각이 없습니다. 아직 군대도 다녀오지 않아서요. 그리고 기회는.. 인연이 닿는다면 누구와도 좋은 만남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 나온 김에, 군대는 언제쯤 가실 건가요?"
"지금 계획으로는 내년 연말쯤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역으로?"
"부사망 독자라 아마 사회복무요원으로 갈 거 같긴 한데.. 정확한 건 그때가 돼봐야 알 것 같습니다."
"사회복무요원이란 게.. 공익을 말하는 거죠?"
"네. 맞습니다. 몇 년 전에 명칭이 바뀐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제가 그쪽은 잘 몰라서요. 전 일반 하사로 군 복무를 해서 말이죠. 그럼 여기서 음악 하나 듣고 가겠습니다. 'Deep Purple'의 'Soldier Of Fortune'입니다."
음악이 나가는 동안 배청수가 수빈에게 물었다.
"조금 전에 말한 정도로 충분한 건가? 필요하면 한번 더 언급을 해도 돼."
"아닙니다. 선생님. 충분합니다."
"그래? 그럼 남은 시간은 시청자들 질문 위주로 진행을 할 테니까 지금처럼만 해줘라. 침착하게 아주 잘하고 있어. 밖에 피디랑 작가들 얼굴 봐라. 좋아 죽으려고 그런다."
"네. 선생님."
어느덧 시간이 흘러 음악캠프가 끝날 시간이 다가오자 배청수가 마지막 멘트를 진행하였다.
"오늘 초대 손님으로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아이돌 출신의 영화감독 강수빈씨를 모셔서, 이런저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나눈 것 같습니다. 아쉽지만 벌써 끝마칠 시간이 다 됐군요. 오늘 끝 곡은 'Sting'의 'Englishman in New York' 이 음악 들으면서 배청수의 음악캠프를 마칩니다. 프로듀스 박준, 작가 배성탁, 김경미, 서혜지, 디스크자키 배청수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라디오가 끝나자 수빈은 배청수와 제작진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 후, 빠른 걸음으로 주차장으로 걸어가 밴에 올라탔다. 밴을 출발시키며 백성철이 말을 건넸다.
"수빈아. 고생했다. 방송 아주 대박이더라. 지금 게시판이 난리 났어."
"그래요? 다행이네요."
"그리고 좀 전에 YK 홍보팀 김시후 팀장이 전화 왔었는데.. 너 오는 대로 전화 좀 부탁한다고 그러더라."
백성철의 말에 수빈은 핸드폰을 꺼내어 김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사님. 저 김팀장입니다.]
"네. 전화 달라고 했다면서요?"
[네. 이사님. 잠시 후 2번째 봉투의 마지막 3단계인 CD 발매 소식과 3번째 봉투의 중국을 비롯한 해외 개봉 소식을 한데 엮어서 뉴스로 내보낼 겁니다. 아마 10분 정도면 올라갈 겁니다.]
"잘 하셨네요. 어차피 '달빛 속의 호위무사' 국내 흥행은 이제 거의 끝물입니다. 더 이상 신경을 안 써도 되니까, 그 정도 뉴스를 내보는 걸로 최종 마무리를 지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사님을 음해하는 트위터도 이제는 신경 안 쓰셔도 될 것 같습니다. 조금 전 라디오에서 이사님이 직접 연주하신 걸 편집해서 올리면, 그쪽에서 더 이상 찍소리 못할 겁니다.]
"그럴 목적으로 나간 거니까요. 그쪽에서는 제가 금관 악기인 호른을 이렇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연주할 거라는 생각을 못했을 겁니다."
[그럴 겁니다. 저조차도 몰랐으니까요. 대단한 연주였습니다. 듣는 내내 감탄을 금치 못하겠던데요. 언제부터 그렇게 호른 연주를 잘하게 되신 겁니까?]
"사실은.. 오늘 나간 그 부분만 제대로 연주할 수 있습니다. 연주할 곡을 그쪽에서 직접 지정해준 거나 마찬가지니까 편했죠. 그 부분만 계속 반복해서 연습하면 됐으니까요. 제 귀가 예민해서 그나마 짧은 시간 내에 그 정도 수준의 연주가 가능했던 거죠."
[아. 그렇게 되는군요.]
"이번에는 미리 그쪽 계획을 알아차려서 쉽게 반격할 수 있었습니다만.. 언제 또 다른 계획을 들고 나올지 모르니 계속해서 예의주시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이사님.]
집으로 가는 밴 안에서 수빈은 머릿속으로 차후의 일정을 검토했다.
'달빛은 이제 내 손에서 완전히 떠났다고 봐야지. 나로서는 할 만큼 했어. 트위터 건도 일단은 성공적으로 막은 상태고. 이제는 새로운 영화 촬영에 집중해야 할 때야.'
어느 정도 머릿속을 정리한 수빈이 중얼거렸다.
"가장 급한 문제는 샛별이랑 하이유 선배의 연기로군.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영화 전체가 흔들릴 수도 있어. 일단 내일 만나기로 한 샛별이 문제부터 해결해야겠지."
수빈은 샛별이 부모님과의 면담에서 사용할 작전을 머릿속으로 하나씩 차분하게 점검하다가,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 있어서 핸드폰을 집어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네. 대표님. 이성호입니다.]
"이팀장? 만들어준 월아산은 중국에서 아주 잘 써먹고 왔어요. 혹시 동영상 보셨나요?"
[네. 저도 박팀장이 중국에서 올린 동영상 찾아봤습니다. 영상이 너무 멋져서 제가 다 뿌듯했습니다.]
"그래요. 제작하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출국하기 전에 부탁드린 건 어떻게 됐나요?"
[아. 그때 대표님이 설명해주신 걸 참고해서, 제가 임의로 제작을 다 끝마친 상태입니다.]
"그럼 내일 회사에서 받을 수 있겠군요?"
[네. 제가 내일 들고 가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내일 봐요."
수빈이 전화를 끊으며 중얼거렸다.
"준비물을 다 되었고.. 이제 샛별이 부모님만 설득하면 되겠군."
그때 백성철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수빈아. 집에 다 왔다. 오늘 밤은 딴 거 하지 말고 좀 쉬어라."
"알았어요. 형."
"내일 아침 10시 넘어서 데리러 올 테니까, 잠 좀 푹 자고 일어나."
"그래요. 형. 내일 봐요."
수빈은 밴에서 내려 자신의 집으로 올라갔다.
다음날 아침 수빈은 늦은 아침을 챙겨 먹고 영화사로 출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