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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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은 베이징에서의 무대 인사를 마치고 충칭으로 이동하였다. 초저녁부터 시작된 충칭에서의 무대 인사까지 모두 다 끝마친 수빈은, 차를 타고 미리 예약되어 있는 호텔로 출발하였다. 비교적 공항과 가까운 충칭 위베이구에 있는 티안 라이 호텔에 도착하니, 어느덧 밤이 깊어져 11시를 훌쩍 넘어가고 되었다.
차에서 내리기 전 베이징에서부터 계속 안내를 맞고 있는 쳥톈 직원이 수빈에게 말했다.
"강감독님. 충칭에서 상하이까지 2시간이 넘게 걸립니다. 그래서 내일 오전 7시 반 비행기를 예약해 놨으니, 늦어도 아침 6시 반에는 호텔에서 출발을 해야 합니다."
수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시간에 맞춰 내려가도록 하죠."
잠시 후 호텔 객실에서, 수빈은 노트북으로 열심히 편집 작업을 하고 있는 박팀장을 보며 물었다.
"금방 끝납니까? 피곤할 텐데 박팀장도 빨리 쉬어야죠. 웬만하면 내일 하시죠."
"아닙니다. 대표님. 베이징에서 찍은 건 아까 비행기에서 작업을 해서 바이두 사이트를 비롯해서 몇 군데에 이미 올렸습니다. 충칭에서 찍은 것들만 작업하면 됩니다. 이동 중에 미리 작업을 좀 해둬서 30분 정도면 다 끝날 겁니다."
"그래요? 그럼 최대한 빨리 끝내시고 주무시도록 해요."
"네. 알겠습니다."
박팀장이 열심히 작업을 하는 동안 수빈은 핸드폰으로 바이두 사이트에 접속해서, '달빛 속의 호위무사'의 중국 영화 제목인 '月光武士'를 관람한 중국 관객들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반응이 나쁘지 않군. 하기야 영화 내용상 굳이 나쁠 이유가 없지. 중국 관객 입장에서 보면, 조선의 공주가 목숨의 위협을 느껴서 압록강을 넘어 상국(上國)인 중국으로 피신하는 게 주된 골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테지. 어쩌면 중국에서 재기의 기회를 노리다가 다시 조선으로 되돌아가서, 공주가 복수에 성공하는 내용으로 2편을 찍을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이미 사망한 나랑은 상관없겠지만..'
수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낮에 박팀장이 올렸다는 무대 인사 때의 동영상을 찾아보려고 할 때, 호텔 객실의 전화가 큰 소리로 울어댔다. 수빈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그래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수빈이 짧게 통화를 끝마치고 전화를 끊자, 박팀장이 물었다.
"무슨 전화입니까?"
"오늘 영화 흥행 성적이 집계된 걸 참고하라고 알려주더군요."
"그렇군요. 얼마나 된다던가요?"
"7,080만 위안이라고 하더군요."
"에.. 그럼 그게.. 어떻게 되는 거죠? 제가 계산이 약해서.."
"영화표가 35위안 정도 하니까 대충 계산하면, 오늘 하루 200만 명이 영화를 봤다는 얘기죠."
수빈의 대답에 눈이 휘둥그레진 박팀장이 기염을 토하며 외쳤다.
"200만 명요? 하루 만에요? 이거 완전 대박 난 거 아닙니까?"
수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중국을 자꾸 한국 기준으로 판단하시는 거 같은데.. 대박 아닙니다. 중국 역대 흥행 1위 작품의 관객 수가 얼만 줄 아십니까? 1억 6천만 명입니다. '특수부대 전랑 2'라는 제목의 영화였죠. 그 영화 한편으로 거둔 수익이 한화로 계산하면 거의 1조 원에 가까워요."
"1억 6천만.. 1조.."
상상을 초월하는 숫자에 박팀장의 사고 회로가 잠시 버벅거릴 때, 수빈이 간단하게 정리를 해줬다.
"한국 기준으로 생각하시려면 숫자를 십분의 일로 줄이면 비슷해질 겁니다. 중국에서 오늘 하루 200만 명이 봤으니, 한국에서 하루 관객이 20만 정도 들은 영화라고 보시면 될 겁니다."
정신을 차린 박팀장이 말했다.
"한국 기준으로 하루 20만 명이면 나쁘지 않은데요? 거기다 오늘이 1월 31일 수요일이니까 주중 아닙니까? 대략 한 달을 개봉했다고 치면.. 800만은 가뿐히 돌파할 거 같은데요. 10배로 뻥 튀겨서 계산하면 무려 8,000만 명이 영화를.."
수빈이 고개를 저으며 박팀장의 말을 잘랐다.
"그렇지가 않아요. 중국 최대의 명절인 춘절(春節)이 며칠밖에 남지 않았어요. 아무리 청톈에서 협조를 해준다고 해도, 춘절 때 개봉을 준비하고 있는 영화를 제쳐두고 우리 영화를 계속해서 걸어줄 수는 없습니다. 2월 15일부터 춘절 연휴에 들어가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어봐야 열흘입니다. 만약 흥행 성적이 시원찮으면 일주일 정도만 걸고 바로 스크린에서 내릴 수도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안타깝네요. 되도록 오래 걸면 좋을 텐데.."
"뭐 그렇다고 너무 실망할 필요 없습니다. 오늘 하루 7천만 위안을 벌었으니 한화로 117억 정도 하겠군요. 수익 배분을 따져보면 대략 25%가 우리 쪽 수익으로 잡히니까.. 오늘 하루에 30억을 벌었군요."
"하루에 30억.."
"단 하루 만에 드림픽처스에 지불한 해외 판권 대금을 뽑고도 남았죠. 주 중에 분위기를 띄워서 주말에 제대로만 터져준다면.. 짭짤하게 벌수 있을 겁니다."
그 순간 박팀장의 눈에 불꽃이 점화되었다.
"이거 아무래도 제가 올릴 영상을 좀 더 세심하게 작업을 해야겠습니다. 고퀄리티로 감성 돋게 작업을 해서 중국 관객들을..."
수빈이 손을 들어 흥분한 박팀장을 달랬다.
"이미 개봉을 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럴 단계는 지났습니다. 대충 하고 자자고요.
수빈의 말에도 불구하고, 박팀장은 집념이 불타오르는 눈빛을 거두지 않은 채 씩씩하게 대답을 하였다.
"알겠습니다. 대충 하고 올리겠습니다."
다음날 새벽 6시.
아침 일찍 눈을 뜬 수빈은 한참 꿈나라에서 놀고 있는 박팀장을 깨웠다.
"박팀장. 일어나세요. 박팀장."
비몽사몽 간인 박팀장이 바로 일어나지 못하자 수빈이 혀를 차며 말했다.
"그러게 대충 하고 주무시라니까."
"아웅.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새벽 4시가 넘어서 눈을 붙였더니 정신이 없네요."
"먼저 씻고 나올 테니까 정신 좀 차리세요."
"알겠습니다. 대표님."
시간이 흘러 오전 9시 10분경.
충칭 장베이 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탄 일행은 상하이 푸둥 국제공항을 향해서 날아가는 중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조식을 챙겨 먹은 수빈과 박팀장은 부족한 잠을 메꾸기 위해 눈을 감고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
상하이 도착까지 40분도 남지 않았을 때, 일행과 함께 이동하던 청톈 직원이 황급히 수빈에게 다가와 어깨를 두드렸다. 수빈은 자신을 깨운 직원을 쳐다보며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좀 전에 본사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지금 상하이 푸둥 공항이 거의 마비 상태라고 합니다."
"왜요? 상하이에 폭설이라도 내렸나요?"
"그게 아닙니다. 강감독님 팬분들이 공항에 너무 많이 몰려서 그렇다고 합니다. 작년에 방영했던 '특수본' 드라마 때, 대본상 강감독님의 본거지가 상하이라서 현지 촬영도 하시고 그러셨잖습니까."
수빈이 어리둥절하며 물었다.
"갑자기 그게 왜요? '특수본' 드라마 약발은 오래전에 이미 다 떨어졌을 건데요?"
그때 자다가 깨어난 박팀장이 끼어들며 말했다.
"대충 들어보니 아무래도 제가 새벽에 올린 영상 때문인 것 같은데요."
수빈이 박팀장을 쳐다보며 물었다.
"어떤 영상을 올렸길래?"
"베이징 무대 인사 때 찍었던 거랑 비슷한 영상을 또다시 올리기가 뭐 해서, 충칭에서 찍은 영상과 특수본 드라마 영상을 교차 편집해서 작업을 했습니다. 그게 좀 효과를 본 것 같은데요."
청톈 직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제 생각에도 그런 것 같습니다. 올리신 영상을 저도 봤는데, 상당히 멋지게 편집을 하셨더군요. 상하이 명물인 상하이 타워, 동방명주 등을 배경으로 찍은 장면들도 있고 해서, 누가 봐도 상하이에서 찍은 거라는 걸 바로 알겠더라고요. 그래서 예전 '특수본' 드라마 팬분들이 영상을 보시고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렸는지, 아침부터 공항으로 잔뜩 몰려든 것 같습니다. 지금 본사 쪽 이야기로는 영화 예매율도 상하이를 기점으로 제법 많이 상승하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이것 참.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로군요. 그렇다면..."
말을 하는 도중 수빈은 손가락으로 의자 손잡이를 톡톡 두드리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빠르게 머리를 굴려 예정에 없던 작전 하나를 돌발적으로 수립한 수빈은 청톈 직원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왕 일이 이렇게 된거, 상하이에서 분위기를 한번 제대로 띄워 봅시다. 청톈 쪽에서 협조를 좀 해주셨으면 하는데요."
"어떤 일을 도와드리면 됩니까? 말씀만 하시죠."
수빈이 돌발적으로 세운 계획을 다 듣고 난 청톈 직원이 대답했다.
"공항에서 그런 일은 하면 불법이긴 합니다만.. 그 정도 사건을 무마시킬 힘은 청톈에게 충분히 있습니다. 제가 본사에 연락해서 미리 작업을 해놓도록 추진해보겠습니다."
청톈 직원이 돌아가자 박팀장이 수빈이 보며 물었다.
"대표님. 시간 관계상 아무래도 준비가 부실할 거 같은데, 너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행여 사고라도 난다면.."
"박팀장이 고생해서 분위기를 잡아줬는데, 명색이 영화사 대표라는 제가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박팀장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위험한 일도 아니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수빈이 박팀장을 바라보며 칭찬을 이어갔다.
"드라마랑 교차 편집이라..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좋은 아이디어였습니다. 박팀장이 새벽까지 잠도 못 자고 고생한 보람이 있네요. 영화 흥행을 위해서는 중국 내에 붐을 일으키는 게 중요한데, 박팀장 덕에 도움이 많이 될 거 같습니다."
"아닙니다. 원래 제가 해야하는 일인데요. 뭘.."
"이번 일로 예상보다 영화 흥행이 잘되면, 나중에 정산이 끝나고 나서 제가 보너스를 두둑하게 드리죠."
수빈의 갑작스러운 보너스 지급 발언에 박팀장이 좋아 죽겠다는 얼굴로 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감사합니다. 이사님."
이윽고 비행기가 상하이 푸둥 공항에 도착을 하자 청톈 직원이 다가와 입을 열었다.
"안전을 위해서 다른 승객들이 다 내린 후에 내리실 겁니다. 그리고 부탁하신 건 급하게 작업을 끝냈다고 합니다. 현장에서 대기하고 직원이 한 명 있는데, 강감독님이 보시면 바로 알아보실 거라고 하더군요."
"그래요? 알겠습니다. 그럼 전 옷부터 갈아입어 볼까요."
잠시 후 수빈은 무대 인사 때처럼, 중국 전통의 우슈 복장을 하고서 한 손에는 월아산을 들고 입국장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사전에 공항 측 직원들에게 통보가 되어 있는지, 흉기(凶器)로 오해할 수도 있는 수빈의 월아산을 보고서도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다.
미리 대기해 있던 경호원들의 엄중한 호위를 받으며 수빈은 입국장 밖으로 나섰다. 수빈이 모습을 드러내자 구름처럼 운집해 있던 수빈의 팬들이 고함과 환호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플래시가 터지는 가운데, 수빈은 마치 양치기 목동처럼 팬들을 이끌고 공항 입구 쪽을 향하여 천천히 걸어나갔다. 어느덧 공항 입구에 거의 다 와 갔을 때였다.
수빈의 눈에 입구 쪽 한쪽 벽면에 택배 상자로 보이는 상자들이 여러 겹 쌓여 산을 이루고 있는 게 보였다. 사람 키의 두 배는 족히 넘어 보일 정도로 높게 쌓인 상자들의 탑 앞에, 공항 직원 복장을 한 건장한 체격의 남자 한명이 상자들을 지키고 있었다.
수빈은 상자의 탑을 지키고 있는 공항 직원 차림의 남자를 발견하자마자 곧바도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제 밤 팽연숙을 만나기 위해 찾아갔던 호텔 라운지 바 입구를 지키던 세 명의 남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내공을 지니고 있던 남자였다.
팽가 소속의 무인으로 짐작되는 그 남자가 수빈과 눈길이 마주치자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이었다. 수빈은 마치 비호처럼 날렵한 몸놀림으로 경호원들 사이를 잽싸게 헤져나가서, 박스를 지키는 남자를 향해 쏜살같이 빠른 속력으로 뛰어갔다. 자신을 향해 쾌속하게 달려오는 수빈을 보며, 남자가 당황한 표정으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연출하였다.
달려가던 탄력으로 가볍게 공중으로 뛰어올라, 오른발로 남자의 왼쪽 어깨를 밟으면서 수빈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연기가 제법인데..'
어깨를 밟으며 남자가 슬쩍 위로 밀어주는 힘까지 합쳐 힘차게 공중으로 도약한 수빈은, 앞쪽으로 공중제비를 한 바퀴 돌며 박스 맨 위쪽으로 올라섰다. 창졸간에 그 광경을 지켜본 팬들이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난리법석을 떨 때, 수빈은 태연한 표정으로 품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바닥에 내려놓으며 미리 준비해놓은 음악을 플레이 시켰다.
수빈의 핸드폰에서 중국 특유의 악기 소리와 뱃전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가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일순 팬들의 떠드는 소리가 잦아들었다.
아래쪽에서 경호원들이 안간힘을 쓰며 상자 쪽으로 달려드는 팬들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을 때, 수빈은 탑처럼 높은 상자 위에서 월아산 자루의 중간 부위를 양손으로 부여잡으며 스위치를 켰다.
그때 전주를 귀 기울여 듣고 있던 눈치 빠른 일부의 팬들이 소리치기 시작했다.
"이건.. 소호강호(笑傲江湖). 소호강호의 주제가야."
"창해일성소(滄海一聲笑)다. 창해일성소야."
"틀림없어. 소호강호의 창해일성소야."
그때 핸드폰에서 창해일성소를 부른 쉬관제(許冠傑)의 걸걸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 캉하이위솅지아오(滄海一聲笑 : 푸른 바다에서 한바탕 크게 웃노라)
- 타오타오리앙차오(滔滔兩岸潮 : 도도한 물결은 해안에 파도를 만들고)
거침없이 밀려오는 바다의 푸른 물결처럼 호호탕탕한 노래 속에서, 상자 꼭대기에 올라선 수빈의 월아산이 천천히 회전을 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경악과 감탄 속에 수빈의 시연을 지켜보던 팬들 중 몇 명이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팬들의 노랫소리가 떼창이 되어 상하이 푸둥 공항 로비에 울려 퍼졌다. 그런 팬들의 떼창속에서, 팔랑개비처럼 빠르게 돌아가는 월아산과 달리 수빈의 몸은 마치 구름 위를 노니는 신선처럼 부드럽고 가볍게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이윽고 절정이 찾아왔다. 경이로운 속도로 돌아가는 월아산에서는 눈이 부시도록 밝은 황금색 빛이 터져 나오고, 팬들의 노랫소리는 공항 로비 천장으로 가없이 치고 올라갔다.
- 캉솅지아오뿌짜이지리아오(蒼生笑不再寂寥 : 사람들은 웃으며 살고 속세의 영예를 멀리하니)
- 하오큉렝자이취취지아오지아오(豪情仍在癡癡笑笑 : 호탕한 사나이도 어리석고 어리석어 껄껄거리며 크게 웃노라)
창해일성소의 마지막 구절이 끝나자 수빈의 월아산도 덩달아 회전을 멈췄다. 시연을 끝낸 수빈은 아래쪽 팬들을 향해 정중히 포권지례를 올리며 큰 목소리로 인사를 하였다.
"셰셰(谢谢)."
아슬아슬하게 쌓아올린 높다란 상자의 탑 위에서 펼쳐진 수빈의 멋들어진 시연에, 커다란 감동과 아련한 추억에 잠긴 팬들이 손바닥이 터져라 힘차게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때, 포권을 취한 수빈의 몸이 그 상태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지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깜짝 놀란 팬들의 비명 속에, 공중에 있던 수빈의 몸이 순간적으로 빙글 한 바퀴를 돌며 마치 고양이처럼 가볍게, 별다른 소음도 내지 않고 바닥으로 사뿐히 착지했다.
그러자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던 경호원들이 황급히 달려와 수빈을 빈틈없이 에워쌌다. 경호원들의 삼엄한 경호 속에 공항 밖으로 빠져나온 수빈은 미리 대기해 있던 차량에 올라탔다.
차 안에서 수빈은 놀란 가슴을 연신 쓸어내리고 있는 박팀장에게 물었다.
"영상은 잘 찍었습니까?"
수빈의 물음에 박팀장이 매서운 눈빛으로 째려보며 대꾸했다.
"지금 영상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렇게 위험한 일을 하시면 어떡합니까? 전 그냥 대표님이 조금 높은 단상에서 깜짝 시연을 하시는 건 줄 알았죠. 청톈 이놈들이 누굴 잡으려고 그렇게 높이 쌓아서.."
수빈은 단호한 목소리로 박팀장의 말을 자르고 들어갔다.
"세상에 공짜가 있습니까?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해야 사람들의 이목을 잡아끄는 퍼포먼스를 할 수 있는 거죠. 박팀장이 어렵게 만들어준 기회다 보니 제가 좀 무리를 했습니다. 그 건은 이쯤하고 그만 넘어가시고.. 영상은 어때요?"
수빈의 재촉에 박팀장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후우. 영상은 잘 찍었습니다. 조금만 손을 보면 바로 올릴 수 있을 겁니다."
"잘하셨습니다.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말고 잡아야죠.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때 몰아쳐야 합니다. 최대한 빨리 올려주세요."
"알겠습니다. 대표님."
수빈을 태운 차량이 상하이 케세이 극장으로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날 오후 5시 30분경. 상하이와 홍콩에 들러 계획된 무대 인사 일정을 모두 끝마친 수빈은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하고 있었다. 출국 전 미리 출연 약속을 해두었던 '배청수의 음악캠프'에 행여나 늦을까 봐, 빠른 발걸음으로 공항 로비를 벗어난 수빈은 미리 대기하고 있던 밴에 올라탔다.
"형. 시간 안 늦었나요?"
수빈의 물음에 신속하게 밴을 출발시키던 백성철이 대답했다.
"아직은 괜찮아. 7시부터 시작하는 2부에 출연하기로 했으니, 지금 출발해도 시간 내에 충분히 도착할 거다."
"혹시 사고라도 나서 도로가 막히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최대한 빨리 가주세요. 운전 조심하시고요."
"그래. 알았어. 안전 운행할 테니까 걱정 마라."
수빈을 태운 밴이 서울 상암동에 위치한 MBS 신사옥을 목표로 질풍처럼 내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