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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연예인이 되다-163화 (163/236)

#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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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12시가 좀 넘어서 수빈은 밴을 타고 결혼식이 열리는 장충동 앰배서더 호텔로 이동하고 있었다.

한편 그 시각.

최성미는 신부 대기실에서 신부 지인들과 한동안 수다를 떨다가, 결혼식장이 있는 쪽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머리를 위로 올린 채 풀 메이크업을 하고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엄마 옆으로 다가간 그녀는 입을 비쭉 내밀며 말했다.

"신부 엄마가 신부 보다 더 이쁘게 하고 오면 어떡해? 혹시 계모 아냐?"

"이것아. 모르면 가만히 있어. 첫 딸 치우는데 이 정도는 하고 와야지. 안 그럼 남들이 딸 결혼에 신경도 안 쓰는 엄마라고 계모 아니냐고 욕한다."

"아빠는?"

"긴장이 돼서 잠깐 화장실 간다고 갔는데.. 모르지 또. 화장실 안에서 울고 있는지."

"좋은 날에 울긴 왜 울어? 형부 정도면 사윗감으로 괜찮잖아."

"재벌 아들을 데리고 와바라. 부모 마음이 그런가.. 원래 다 그런 거야."

"그럼 난 시집가지 말고 엄마랑 평생 살까?"

"쓸데없는 소리 하고 있네. 너도 빨리 남자 구해서 시집이나 가. 이 엄마는 네 아빠랑 단둘이서 오붓하게 살고 싶으니까.."

"요즘 세상에 직장도 없는 백조를 누가 데리고 가냐? 남자들이 다들 같이 맞벌이할 여자만 찾는데.."

"그러게 잘 다니던 직장은 왜 그만둔 거니? 계속 다니면 좋았잖아."

"아. 말도 하지 마. 거기 개쓰레기 같은 부장이.. 그 이야기는 관두자. 엄마. 곧 다시 직장 잡을 테니까.. 근데, 오늘 신랑 측 손님들은 다들 개성이 넘치신다."

"그러게 말이다. 조서방이 음악 쪽 일을 해서 그런가. 다들 복장이나 머리 색깔이 자유분방하네. 특히 저 양반은 되게 무섭게 보인다. 나중에 식장에서 깽판이라도 칠까 봐 걱정되네."

"누구?"

"저기 머리 빡빡 밀고 덩치가 좋은.. 어머. 이여사님. 바쁘실 텐데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해요."

최성미는 손님을 맞이하는 엄마 옆을 떠나서 신랑에게로 다가갔다.

"형부. 오늘 너무 잘생겨 보여요."

처제의 칭찬에 기분이 좋은지 신랑 조민석이 헤벌쭉 웃으면서 대답했다.

"고마워. 처제. 앞으로 용돈은 걱정하지 마. 내가 언니 몰래 팍팍 줄 테니까."

"고마워요. 형부. 앞으로 형부만 믿을게요. 근데.. 저기 머리 빡빡 밀고 덩치가 곰 같은 아저씨는 누구예요? 형부가 아는 사람이에요?"

조민석은 최성미의 눈길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아. 성호형. 나랑 같은 팀에서 일하는 형이야. 인상이 좀 험상궂어 보여도 마음씨가 비단결같이 고운 형이야. 좋은 사람이니까 걱정 안 해도 돼."

그때 두 사람의 눈에 이성호가 누군가에게 황급히 90도로 허리를 꺾으며 인사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 모습을 본 최성미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뭐야. 갑자기 조폭 두목이라도 등장한 거야?"

그 순간 식장에 찾아왔던 많은 손님들이 마치 홍해가 갈라지듯 좌우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헌칠한 키의 한 젊은 남자가, 순백색 핀 칼라 와이셔츠에 진청색 스트라이프 넥타이를 매고 검은색 더블 버튼의 슈트를 멋지게 빼입고서, 갈라진 공간 사이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이성호를 필두로 여러 사람들로부터 정중하게 인사를 받으며 걸어오는 모습이, 마치 개선장군의 행진을 지켜보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이윽고 조민석에게 다가간 수빈은 축하의 말을 건네면서 악수를 청하였다.

"결혼 축하드립니다."

조민석이 허리를 90도로 접으며 수빈의 손을 두 손으로 맞잡았다.

"감사합니다. 강이사님. 바쁘실 텐데 이렇게 직접 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조민석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최성미는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을 내뱉어버렸다.

"너무 멋있다.."

수빈은 조민석 옆에 서있는 여자의 혼잣말이 귀에 꽂히는 순간, 여자의 정체를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이전 '달빛'의 첫 번째 시사회 때 한번 들어봤던 목소리로, 수빈의 뇌리에 아직까지 선명하게 남아있는 목소리였기 때문이었다.

수빈은 최성미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예전에 '달빛 속의 호위무사' 시사회 때 참석하셨죠? 영화가 다 끝난 뒤 한 번에 두 편의 영화를 본 것 같다고 외치셨던.. 그분 맞으시죠?"

수빈의 말에 화들짝 놀란 최성미가 말을 더듬거렸다.

"아. 네. 제가.. 그랬던 적이 있긴 한데.. 그걸 어떻게.. 아시는지.."

수빈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조금 전 말씀하시는 목소리를 듣고 알았습니다. 제 귀가 남들보다 많이 예민한 편이라서요."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조민석이 당황하여 급히 끼어들었다.

"강이사님. 이쪽은 제 와이프가 될 사람의 여동생, 그러니까 제 처제가 되는 사람입니다. 시사회는 제가 바빠서 처제 보고 대신 가달라고 부탁을 했었습니다. 혹시 문제가 있는 겁니까? 만약 문제가 있다면 그건 전적으로 제 책임입니다. 제가 책임을 지고..."

수빈이 조민석의 말을 잘랐다.

"오해를 하고 계시는군요.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처제 분을 스카우트나 한번 해볼까 해서 그러는 거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뜬금없는 수빈의 말에 조민석이 눈을 끔뻑끔뻑하면서 대꾸했다.

"스카우트요? 처제를요?"

옆에 서있던 최성미도 갑자기 이게 뭔 소린가 싶어 황당한 눈빛으로 수빈을 쳐다보고 있었다.

결혼식 참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밴 안에서 수빈이 백성철에게 말을 건넸다.

"형. 오상무 보고 조민석씨 처제 되는 분과 약속을 잡아서 면접을 한번 보라고 하세요."

"영화사 쪽에 채용하게?"

"네. 영화 보는 눈이 상당히 예리한 사람이에요. 배급부에 적합할 거 같은데.. 이제 그런 일은 오상무가 처리해야죠."

"연락처를 알아?"

"당연히 전 모르죠. 조민석씨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을 겁니다."

"알았다. 내가 알아봐서 오상무에게 전달할게."

"그래요. 형."

"이제 집으로 바로 가면 되는 거지?"

"네. 출장 때문에 준비할게 많아요."

수빈을 태운 밴이 집 쪽 방향으로 빠르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1월 29월 월요일 오후.

수빈은 두 번째 대본 리딩을 막 끝마치고, 성강호랑 회의실에서 독대를 하고 있었다. 인상을 잔뜩 찌푸린 성강호에게 수빈이 질문을 던졌다.

"강호 형님. 오늘 대본 리딩 어떻게 보셨습니까?"

수빈의 물음에 성강호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하아. 강감독. 대한민국에서 천만 관객을 넘긴 감독이 12명밖에 안돼. 주말에 '달빛'이 천만을 찍었으니, 강감독 포함해서 이제 겨우 14명이 된 거지. 솔직히 몇 안되는 천만 감독 반열에 오른 강감독에게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이대로 찍으면 이번 영화는 진짜로 망한다. 쫄딱 망할 거라고."

수빈이 방긋 웃으며 반문했다.

"그렇게나 안 좋던가요? 제 눈에는 저번보다 훨씬 더 잘 하는 것 같던데요."

"똑같은 걸 두 번째 하니 당연히 저번보다야 낫겠지. 그동안 계속 연습도 더 했을 거고. 근데 말이야. 둘 다 계속해서 연기가 겉돌아. 그때나 지금이나 각본에 나와있는 캐릭터인 '척'만 하고 있는 거야. 카메라라고 하는 게 얼마나 무서운 물건인지 아냐? 그럴듯하게, 그런 척, 제아무리 포장을 잘해봐야 소용없어. 겉포장 따위는 한순간에 깡그리 찢어발겨서 보여주는 게 카메라라고.. 쟤들 나중에 영화가 개봉되면 틀림없이 질질 짤 거다. 카메라에 찍힌 자기 연기를 자기 눈으로 보면 비참하기 짝이 없을 테니까.."

부정적인 성강호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수빈은 웃음을 잃지 않고 대답했다.

"그렇군요. 그럼 이대로는 안되겠군요."

성강호가 수빈을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빈이 너. 계속 웃는 게 영 수상하다? 저번에는 나랑 같이 괴로워하더니.. 무슨 생각으로 계속 웃고 있는 거냐?"

수빈이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형님. 어떤 문제가 있을 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일 먼저 해야 되는 게 뭔지 아십니까?"

"뭔데?"

"문제가 뭔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우선입니다. 그래야 거기에 맞는 올바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으니까요. 일전에는 말입니다. 저도 둘의 연기에 문제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정작 어떤 점이 문제인지를 정확하게 파악을 못하겠더라고요."

수빈의 말에 성강호가 눈을 반짝이더니 의자를 바짝 당겨 앉으며 물었다.

"오호라. 그 말은.. 이제 파악이 끝났다는 소리로군. 그런 거지? 그래서 아까부터 혼자서 실실 웃고 있었던 거지?"

수빈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두 번째 지켜보니까 문제점이 뭔지 정확히 파악이 되더군요."

"그럼 해결책은? 당연히 해결책도 있는 거겠지? 천만 감독이 그 정도 능력은 있어야지."

수빈이 한 손으론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샛별이 같은 경우는 생각보다 간단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샛별이 부모님만 협조를 해주시면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같은데?"

"하이유 같은 경우는 아무래도 자연의 협조를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날씨가 도와줘야 할 것 같은데.."

"자연? 날씨? 그게 뭔 소리냐. 삼국지에서 제갈공명이 동남풍이 불기를 기다리던 뭐 그런 거냐?"

"뭐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아무튼.. 이제 문제점도 파악했고 해결책도 세워졌으니, 제가 중국에서 돌아오는 대로 바로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것 참. 듣던 중 반가운 소리로세. 역시 강감독이야. 그럼 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되겠네."

수빈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러시면 곤란하죠. 돈을 받았으면 돈값을 하셔야죠. 주말쯤에 저랑 같이 샛별이 부모님을 좀 만나주셔야 하겠습니다."

"내가? 내가 왜? 난 걔 부모 얼굴도 몰라."

"샛별이 부모님은 샛별이가 연예인이 되는 걸 많이 반대하셨어요. 그나마 영화배우라서 참고 계시는 상황이죠. 그런 상황에서 어른들에게 인지도도 떨어지는 제가 샛별이 부모님을 설득하기가 쉽겠습니까? 이 나라에서 영화 배우하면 누가 뭐래도 1억 배우 성강호 아닙니까. 형님이 같이 가주셔야겠습니다."

"그러니까.. 강감독이랑 같이 가서 나보고 얼굴마담이나 하라는 소리 아니냐."

"맘에 안 드시면 그냥 이대로 영화를 찍을까요? 형님 말로는 쫄딱 망할 거라면서요?"

"알았어. 인마. 감독이 까라면 까야지. 날 잡히면 연락 줘라."

"알겠습니다. 형님."

"이야. 그래도 강감독이 해결책이 있다고 하니, 내가 이제야 좀 마음이 놓인다. 오늘 대본 리딩 때 둘이 하는 연기를 지켜보면서, 내가 정말 피가 바짝바짝 마르더라.. 내가 이래서 골치 아픈 영화감독 따위는 절대로 안 하는 거야."

"그건 그렇고.. 일전에 제가 부탁드린 건 어떻게 됐습니까?"

"수간호사? 일단 내가 말은 해놨다. 아직 확답은 못 받았어."

"이번 영화는 형님만 믿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수빈의 말에 성강호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감독님. 저도 노력할 테니 제발 애들 잘 좀 지도해 주세요. 천만 한번 더 찍으셔야죠."

영화가 잘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한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1월 30일 밤 8시경.

수빈은 영화 홍보를 위해 박상민 지원팀장과 단둘이서 단출하게 짐을 꾸려, 인천 국제공항을 출발해 중국 베이징으로 날아갔다. 두 시간의 비행 끝에 중국 시간으로 밤 9시경 두 사람은 베이징 수도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미리 마중 나와있던 청톈 소속 경호원들의 보호를 받으면서, 두 사람은 구름처럼 몰려 있는 팬들 사이를 간신히 헤집고 나가 대기해 있던 차량에 올라탔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부터 카메라를 돌리고 있던 박팀장이, 수빈의 얼굴 쪽으로 카메라를 바짝 들이대며 물었다.

"대표님. 이 시간에 대표님 팬분들이 엄청나게 많이 나와 있는데요? 깜짝 놀랐습니다."

박팀장의 말에 수빈이 카메라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내일 개봉할 영화 흥행을 위해서 청톈 쪽에서 알아서 흘렸을 겁니다. 그래야 인파가 모이고, 뉴스나 신문에 나갈 수 있을 테니까요."

"대표님 인기가 중국에서 장난 아니신데요."

"아무래도 이전에 방영됐던 '특수본' 드라마 영향이 커죠. 그리고 중국 쪽에서는 제가 친중 연예인이라고 알려져 있어서, 이미지도 비교적 괜찮은 편이고요."

"대표님께서는 친중이십니까?"

"제 입으로 그런 말을 한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제가 중국 권법을 배웠다는 사실 하나로 그냥 친중이라고 알려진 거죠. 굳이 아니라고 억지로 해명할 필요도 없는 거고요."

"그렇군요. 요 부분은 편집. 지금 저희는 어디로 가는 거죠?"

"청톈에서 잡아준 호텔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박팀장님. 피곤한데 오늘은 여기까지만 찍죠."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중국 세계 무역 센터 및 라마 사원이 인근에 있는, 베이징의 중심 비즈니스 지구에 위치한 '그랜드 밀레니엄 베이징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고층으로 올라간 두 사람은 슈피리어 룸에 짐을 풀기 시작했다.

- 따르르릉

짐을 푼지 30분쯤 지났을 때 호텔의 전화벨이 울렸다.

수빈이 전화를 받았다.

"喂.(여보세요.)"

<<<아래부터는 중국어로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강수빈 감독님 맞으십니까?]

"네. 맞습니다만 누구시죠?"

[청톈 소속 직원입니다. 팽여사님께서 잠깐 보시자고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전 상관없습니다. 어디로 가면 될까요?"

[라운지 바에서 뵙자고 하십니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올라가겠다고 전해주세요."

수빈은 전화를 끊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드디어 시작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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