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사 연예인이 되다-161화 (161/236)

#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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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은 영화사에 출근하자마자 이성호 소품팀장 그리고 박상민 지원팀장이 기다리고 있는 회의실로 이동하였다. 회의실로 들어서자 보자기에 싸여 벽 쪽에 세워져 있는 길쭉한 물체 두 개가 수빈의 눈에 들어왔다.

"저건 뭡니까?"

수빈의 물음에 이성호 소품팀장이 기합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제 박팀장에게서 대표님의 말씀을 전해 듣고, 급히 드림픽처스 소품팀과 접촉해서 실제 '달빛 속의 호위무사' 영화 촬영 때 사용하셨던 조선검과 월아산을 빌려 왔습니다."

"아. 그거군요."

수빈이 테이블에서 의자를 꺼내 앉으며 물었다.

"그럼 저걸 제가 중국 갈 때 들고 가면 되는 건가요?"

이팀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절대 아니죠. 저건 제가 실제 크기와 형태를 참고하기 위해 빌려왔을 뿐입니다. 중국으로 가실 때 들고 가실건 제가 직접 제작을 할 겁니다. 영화 소품과 쇼를 위한 소품은 엄연히 다른 목적이기 때문에, 소품 제작도 다른 방법으로 제작해야 합니다."

아침 댓바람부터 장인의 뜨거운 열기를 온몸에서 뿜어내는 이팀장을 보며, 기세에 밀린 수빈이 조심스럽게 의사 타진을 하였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요? 시간도 별로 없는 상황에서..."

이팀장이 수빈의 말을 잘랐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대표님. 다음 주 화요일까지면 충분히 만들고도 남습니다. 제가, 이 이성호가 책임지겠습니다."

이팀장의 박력에 수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팀장 의견이 정 그러시다면야.. 뭐 믿고 맡겨야 하겠죠. 근데 아침부터 보자고 하신 이유가 뭐죠?"

"어제 박팀장이랑 둘이서, 대표님이 무대 인사 때 하실 쇼에 대해서 의논을 해봤는데요. 영화 속 일부 배경을 아름답게 편집해서 영상으로 만들고, 그 영상에 맞춰 대표님이 실연(實演)을 하는 게 좋겠다고 의견 일치를 보았습니다."

옆에 있던 박팀장이 끼어들었다.

"그래서 제가 어제 1차적으로 작업을 해서, 개략적으로 영상 콘셉트를 잡아 왔습니다. 그걸 보시면서 수정이나 추가하고 싶은 게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이팀장이 말을 이었다.

"소품도 마찬가지입니다. 색깔이나 형태를 바꾸고 싶은 게 있으시면, 제가 거기에 맞춰서 제작할 생각입니다."

두 사람의 의견을 들은 수빈은 살짝 질린 얼굴로 말했다.

"이거 하루빨리 영화 촬영에 들어가야겠네요. 보아하니 다들 좀이 쑤신 것 같습니다. 이만한 일에 이렇게 열을 올리다니.. 그렇게까지 대단한 일은 아니에요."

수빈의 말에 이팀장이 주먹을 불끈 쥐고서 결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대표님. 중국 쪽 흥행이 잘 돼야 우리 영화사 재정이 튼튼해지고, 다음 영화를 찍기에도 한결 수월해지지 않겠습니까?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번 일은 굉장히 중차대한 일인 것입니다."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은 수빈이 피식 웃으면서 말았다.

"그래요. 듣고 보니 아주 중요한 일이네요. 영화의 흥행이 잘 돼야 월급이랑 보너스도 팍팍 잘 나가겠죠. 두 분 모두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해서 경영자로서 뿌듯합니다. 자. 그럼 어디 영상을 한번 보면서, 제가 원하는 걸 말해볼까요?"

잠시 후 수빈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제발 월아산 양쪽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군.. 설마 동네 차력쇼도 아닌데 그렇게까지야 하겠어.'

수빈은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당장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이 없는지, 진지한 얼굴로 열띤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이 보였다.

'이거 영 불안한데..'

걱정스러운 마음에 입맛을 다신 수빈은 회의실을 나섰다.

한편 그 시각.

YK 홍보실에서 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뉴스와 SNS 등을 보면서 동향 파악을 하고 있던 김시후 홍보팀장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건 뭐지? 지금까지는 영화에 대한 감상평이 우호적인 분위기로 잘 흘러가고 있었는데.. 이건 살짝 애매한걸.'

김팀장은, 모 교향악단의 수석 트럼펫 연주자라고 자신을 밝힌 남자가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을,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보았다.

- 오늘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달빛 속의 호위무사' 영화를 보고 왔습니다. 천만 관객을 찍을 만한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재미있더군요. 한가지 아쉬운 건, 후반부 영화 음악이 좀 빈약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음악 감독이 금관 악기는 쇳소리가 나고 시끄러운 악기라고 생각해서 다 빼버린 탓에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이 듭니다. 음악 감독이 모 방송의 인터뷰에서 주장했듯, 한국인이 정말로 금관 악기를 싫어할까요? 전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아무튼 금관 악기 중 하나인 트럼펫 연주자로서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글을 읽으며 김팀장은, 정체 모를 사람이 자신의 옆구리를 슬슬 긁는듯한 묘한 느낌을 받았다.

'이거 지금 돌려까는 게 맞는 거지? 걱정했던 탬버린 문제는 거의 없는데, 트럼펫이라니.. 갑자기 생뚱맞은 곳에서 치고 들어오는 거 같은데.'

김팀장은 원글에 달린 댓글들을 살펴보았다.

ㄴ 난 음악이 잔잔한 게 영화 보는데 방해 안되고 집중할 수 있어서 좋던데.

ㄴ 트럼펫? 군대 갔다 온 남자치고 트럼펫 소리를 누가 좋아하냐? 아침마다 개짜증.

ㄴ 나도 동감. 새벽에 자고 있는데 빰빠빠빰.. 자다가 경기 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님.

아직 달린 댓글도 몇 개 없고, 반응도 글쓴이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아서 김팀장을 살짝 안심을 하였다. 다른 글로 모니터 화면을 옮겨가며 김팀장이 중얼거렸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한 번씩 체크해 봐야겠군."

한편 그때. 수빈은 박사장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있었다.

"네. 사장님. 알겠습니다. 근데, 생각보다 약속이 빨리 잡혔네요?"

[KBC 오사장이 나중에 은퇴하고 미국에 놀러 오면, 김사장이 풀코스로 대접하겠다고 그러면서 힘을 좀 쓴 모양이야.  그리고 오사장 임기가 얼마 안 남았잖아. 슬슬 일에서 손 떼고 정리하고 있는 분위기 같더라고. 그래서 시간이 많은가 봐.]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내일 제가 시간 맞춰 나가겠습니다."

[아, 그리고 김사장이 자기 주식 남은 거 빨리 인수해 가라고 닦달하더군.]

"제가 잠도 안 자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전해주세요."

[그렇게 전하지. 그럼 내일 봄세.]

수빈은 박사장과의 통화를 끝내며 중얼거렸다.

"빨리 법적인 검토를 끝내고, 예산안을 작성해서 들고 오라고 해야겠군."

수빈은 회계부 강부장과 법무부 조부장을 채근하기 위해 다시 전화를 들었다.

다음날 오전 11시경.

- 따아아악

회색빛 구름이 잔뜩 낀 건조한 겨울 하늘에, 눈부신 하얀색 공이 실선을 그리며 힘차게 날아가고 있었다.

- 짝짝짝.

- 사장님. 나이스 샷.

- 굿 샷입니다. 굿 샷.

KBC 방송국 오사장이 고개를 뒤로 돌려, 자신의 샷을 칭찬하는 YK의 박사장과 허이사를 슬쩍 쳐다보며 감사의 표시로 손을 흔들었다.

아직 한강물도 채 녹지 않은 한 겨울에, 야외 골프 연습장에 나와서 떨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한심한지 박사장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굿 샷은 무슨 얼어 죽을 굿샷.. 허이사. 오사장이 난데없이 골프장에서 보자고 해서 널 끌고 나왔으니, 네가 한번 정확하게 평가를 해봐라. 저 정도면 남들에게 자랑질을 할 정도로 잘 치는 거야? 나야 젬병이지만 넌 전문가니까 딱 보면 알 거 아냐?"

"싱글인 내가 보기에는 평범한 수준이지. 100개에서 왔다 갔다 할거 같은데.."

허이사의 평가에 입을 불퉁하게 내민 박사장이 한마디 했다.

"그런 놈이 사람을 여기까지 오라고 그런 거야? 그럼 네놈이 오사장에게 시범을 한번 좀 보여 줘봐라."

박사장의 짜증 어린 말에 허이사가 대경실색했다.

"미쳤냐? 강이사가 부탁할게 있어서 보자고 그랬다며? 제 딴에는 좀 친다고 자랑삼아 우리를 불렀을 건데, 괜히 내가 쳤다간 오사장 빈정 상해서 강이사가 바라는 게 말짱 황되는 수가 있어. 오늘은 우리가 을 아니냐. 을. 강이사를 생각해서 자중해야지."

박사장이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입김과 함께 욕설을 내뱉었다.

"개자식. 이 추운 날씨에 야외 골프장에서 만나자고 하다니.. 제놈이야 운동하느라 추운 줄 모르겠지."

그때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오사장이 일행 쪽으로 걸어오더니 말을 건넸다.

"허이사도 골프라면 사족을 못쓴다고 내가 들었는데.. 공 몇 개라도 좀 치지 그래요?"

허이사가 양손을 앞에 모으고 공손한 자세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사장님. 제가 요 며칠간 필리핀에서 원 없이 치고 어제 귀국했습니다. 지금은 어깨가 아파서 도저히 못 칩니다. 오늘 컨디션도 좋으신 것 같은데 마저 치시죠. 5.16도 얼마 안 남았는데 미리미리 준비하셔야죠."

"그래요? 이거 내가 너무 미안한데.. 그럼 남은 거만 마저 치고 식사나 하러 갑시다."

"네. 사장님."

오사장이 돌아가자 박사장이 의문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5.16? 쿠데타 말하는 거냐?"

"그건 아니고.. 한국에서는 5월 16일 그러니까 5월 중순은 돼야 잔디가 제대로 올라오지. 그때쯤부터 골프를 재밌게 칠 수 있다고 해서 골프 좀 친다는 인간들끼리 하는 소리야. 일종의 골프 해금일 같은 날인 거지. 뭐 3월부터 치는 인간들도 널렸지만서도.."

박사장이 어이가 없다는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아주 놀고들 있네.."

골프에 문외한인 박사장이 입이 댓 발 나와 추위에 떨고 있을 때, 수빈은 영화사에서 서류를 챙긴 다음 밴에 탑승하고 있었다. 백성철 매니저가 뒤를 보며 물었다.

"강남에 있는 일식당으로 가면 되는 거지?"

"네. 형. 박사장이랑 허이사가 KBC 사장이랑 같이 골프를 치고 그쪽으로 식사하러 온다고 했어요. 지금 가면 얼추 시간이 맞을 겁니다."

"그래. 알았다. 그 양반들도 대단하네. 이 날씨에 골프를 다 치고.."

"그러게 말이에요. 저도 좀 배워놔야 할 건데 말이죠. 도통 시간이 안 나니.."

"너라면 금방 배울 수 있을 거다. 워낙 운동신경이 좋잖아."

그때 수빈의 핸드폰으로 문자가 도착했다. YK 홍보부 김팀장이 보낸 문자였다.

- 이사님. 조금 전 모 트위터에 올라온 mp 파일을 첨부해서 보내드립니다. 제목 없이 파일만 덜렁 올라온 상태라, 홍보팀 사람들과 같이 들어보았지만 어떤 음악인지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사님께서 클래식 음악에 대해서 정통하시니 이사님께 급히 여쭤봅니다. 들어보시고 혹시 아시는 음악이면 알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수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빠른 손놀림으로 첨부된 파일을 클릭했다.

'제목 미상의 mp 파일이라니.. 무슨 일이지?'

파일이 플레이 되자 아름답고 감미로우면서도 서정적인 선율이 밴 안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건.. 라벨이 작곡한 곡인데. 이게 왜?'

수빈은 바로 김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다리고 있었는지 신호가 가자마자 김팀장이 바로 전화를 받았다.

[네. 이사님. 김팀장입니다.]

"보내준 파일은 굉장히 유명한 곡이에요. 라벨이 피아노 곡으로 작곡한 '죽은 공주를 위한 파반느'라는 곡입니다."

[아, 그렇군요. 라벨의 죽은 공주를 위한 파반느라.. 라벨이 누굽니까?]

클래식에 무지한 박팀장의 물음에 수빈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혹시 '볼레로'라는 곡은 아십니까?"

[아. 압니다. 예전에 개그맨이 발레복 입고 나와서 춤추던 그 곡 아닙니까?]

"맞아요. 그 곡을 작곡한 사람입니다. 모리스 조세프 라벨."

[저기.. 이사님. 그럼 '파반느'는 뭡니까? 사람이나 도시 이름 같은 겁니까?]

"아뇨. 파반느라는 건 우아하고 비교적 템포가 느린 춤곡을 뜻하는 겁니다. 전체적인 곡 분위기가 그렇다는 걸 나타내는 거죠.."

[그렇군요. 그런데, 제가 들어본 바로는 피아노 곡은 아니던데요?]

"아. 라벨이 1899년에 피아노 곡으로 작곡한걸, 1910년에 관현악으로 편집을 했죠. 지금 들은 건 관현악 버전입니다. 하지만 원곡은 피아노 곡이에요."

[관현악으로 편집을 한 거였군요.]

"근데, 이걸 갑자기 왜 물어보는 거죠?"

[그게 말입니다. 어제 모 교향악단 트럼펫 연주자라면서, '달빛' 영화 음악을 은근슬쩍 디스 하는 트위터가 하나 올라왔습니다. 음악 감독인 강이사님이 '금관악기가 쇳소리가 나고 시끄러운 악기라고 생각하는 건 잘못된 생각이다' 이런 식으로요. 그래서 제가 예의주시하고 있었는데, 좀 전에 거기 밑에 방금 들은 곡이 달렸습니다. 그래서 이게 뭘까 해서 들어봤는데..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이사님께 여쭤본 겁니다.]

김팀장의 말을 듣자마자 수빈은 흠칫했다.

'이것.. 봐라? 설마..'

수빈의 머리가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트럼펫 연주자가 먼저 디스를 한 다음 이곡이 올라왔다 이거지? 마치 자신의 순서가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말이야.'

수빈이 생각에 잠겨있느라 잠시 침묵을 지키자, 핸드폰 너머 김팀장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사님. 강이사님?]

머릿속으로 정리를 끝마친 수빈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팀장?

[네. 이사님.]

확신을 가진 수빈이 단정적인 어투로 말했다.

"그 트위터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전부 저를 노리고 들어온 저격입니다. 미리 잘 짜인 각본대로 진행이 되고 있는 거라고 보시면 되요."

수빈의 대답에 깜짝 놀란 김팀장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올라갔다.

[정말입니까? 설마설마했는데.. 이게 우연히 올라온 게 절대 아니라는 거죠?]

"네. 정확히 절 노리고 순서대로 올리고 있는 거죠. 누군가 작업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게 판단할 만한 근거가 있으십니까?]

"새롭게 올라온 음악이 그 증거죠. 김팀장은 링크된 음악을 들으면서 어떤 느낌을 받았습니까? 특히 초반부에 솔 라 파# 미 레.. 아니 음계로 말씀드리면 잘 모르겠구나. 그러니까 관현악 버전 도입부에 우~ 우우우~ 하며 진행되는 부분 있죠?"

[아. 제가 그 부분을 처음 들으면서 받은 느낌은 '우아하다'였습니다. 그리고 몇 번 계속해서 듣다 보니 음악 자체가 누군가를 위로하듯 부드럽고, 괜히 애잔한 마음이 든다, 뭐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거 김팀장이 생각보다 감성이 좋으신데요. 그럼 그런 느낌을 받게 만드는 주선율 악기가 뭐라 생각하십니까? 도입부에서부터 한 악기의 소리가 주도적으로 음악을 이끌고 있잖아요."

[글쎄요. 제가 악기에 대해서는 잘 몰라기는 한데.. 소리가 부드럽고 우아한 게 클라리넷? 바순? 뭐 그런 종류의 목관 악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수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기가 쉬울 겁니다. 하지만, 그 악기는 '호른'이라는 이름의 금관 악기입니다."

[네? 그 부드러운 소리가.. 금관 악기가 내는 소리라고요?]

다시 또 올라간 김팀장의 톤과 달리 수빈은 담담한 톤으로 대답했다.

"네. 호른이라고 트럼펫과 함께 금관악기를 대표하는 악기죠.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트럼펫이라는 금관악기로 먼저 밑밥을 깔고, 그다음 비교적 덜 알려진 호른이라는 악기가 음악과 함께 등장한 겁니다. 금관 악기가 절대 쇳소리가 나거나 시끄러운 악기가 아니라는 물적 증거를 가지고 말입니다. 김팀장도 '죽은 공주를 위한 파반느'를 들으면서, 이게 트럼펫 같은 금관 악기의 소리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했잖아요? 그런 반전을 노린 겁니다. 그게 훨씬 임팩트가 강하니까요."

[아. 이사님 말씀대로 라면 이놈들이 처음부터 미리 계획을 완벽하게 짜놓고 올리고 있는 중인 거군요.]

"맞아요. 처음부터 절 타깃으로 정하고 시작한 겁니다. 작전을 짠 사람이 누군지 모르지만, 머리가 아주 스마트해요. 음악에도 정통한 사람이고요. 한발 한발 천천히 단계를 밟으면서 절 천천히 옥죄겠다는 계획 같은데.. 전형적인 노련한 사냥꾼 타입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절대로 서두르지 않죠."

[이사님. 그럼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까요? 저대로 그냥 놔둬선 안될 거 같은데요.]

"저쪽에서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가 먼저 치고 나가야겠죠.. 일단 우리가 댓글을 달아서 김빼기를 시도해야 합니다. 선제적으로 음악의 정체를 까발리면서, 우리에게 유리하도록 댓글 작업을 해야겠죠. 그와 동시에, 어디서 누가 이런 작업을 하는지 조심스럽게 추적을 해야 할 겁니다."

[무슨 말씀인지 이해했습니다. 이사님. 제가 직접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수고 좀 해주세요. 그리고 이번 일 자체는 크게 걱정을 안 하셔도 될 겁니다. 김팀장 덕분에 조기에 발견해서 신속히 대응을 할수 있게 됐고, 거기에다 저쪽에서 세운 작전에는 치명적인 약점까지 있으니까요."

[어떤 치명적인 약점이?]

수빈은 자신감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지켜보시면 차차 알게 될 겁니다."

그때 백성철의 말이 들렸다.

"수빈아. 약속 장소에 다 왔다."

수빈은 백성철의 말에, 이따 YK로 직접 찾아가겠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었다. 차 문을 열고 밴에서 내리면서 수빈은 속으로 뇌까렸다.

'내가 했던 인터뷰를 공격하기 위해, 트럼펫에 이은 호른을 설계했다 이거지.. 상대방에게 제법 머리를 굴릴 줄 알고 음악 쪽으로 잘 아는 책사가 한 명 있는 것 같은데. 하지만.. 어설프게 덤비면 오히려 되치기를 당하기 쉬운 법이지. 어떤 식으로 반격을 가하는 게 가장 유리할까..'

수빈은 약속 장소인 일식당 쪽으로 빠르게 걸어가면서, 머릿속으로는 계속해서 최적의 계략을 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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