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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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라의 설명을 듣고 난 수빈이 물었다.
"오상무 말대로 라면 우리 영화사가 청톈에 제시한 조건들이 거진 다 무리 없이 받아들여진 거군요?"
"네. 맞아요. 중국 개봉시 우리 영화사와 청톈의 수익 배분율은 일전에 대표님이 정하신 대로 5:5로 합의를 봤어요. 하지만, 청톈이 아시아 쪽 다른 국가에서 영화를 개봉할 때에는 6:4로 나누기로 했습니다. 청톈이 6이고 우리가 4입니다."
"그건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지금 당장은 우리 영화사에서 아시아 여러 나라에 배급을 할만한 역량이 없으니, 청톈이라도 대신 뛰어준다면 오히려 고마운 일인 거죠. 그리고 중국에서 개봉을 할때, 4개의 직할시와 홍콩에 반드시 개봉을 해야만 한다는 우리 측 조건에도 별다른 반대가 없던가요?"
"네. 대표님. 청톈 쪽 말로는 북경, 상해, 천진, 중경 직할시 말고도 23개의 성(省)에 있는 대도시 중심으로 개봉을 할 계획이라고 했어요. 여기에는 대만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단, 영화 개봉관의 숫자, 지역별 개봉일시, 일일 상영 횟수 등은 관객들의 반응을 보면서 청톈에서 직접 조율을 하겠다고 했어요."
수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맞는 겁니다. 워낙 땅덩어리가 넓은 나라라서.. 그리고 중국은 아직까지 필름을 사용하는 영화관도 많아요. 우리가 그런 걸 일일이 조사해가며 협상을 하는 건 시간 낭비입니다. 뱀의 길은 뱀에게.. 중국 쪽 일은 청톈에게 맡겨두는 게 최선입니다."
수빈이 요약본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나머지 소소한 것들도 무난히 잘 처리되었고.. 결국 하나가 문제로군요."
수빈의 말에 오소라가 분한지 살짝 입술을 깨물더니 말했다.
"그 건에 대해서는 합의는 커녕 제대로 말도 못 섞어봤어요. 청톈 쪽에서 워낙 강경하게 나오는 바람에, 기본적인 의견 교환도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죄송해요. 대표님."
수빈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오소라씨가 죄송할 일은 아닙니다. 그렇게 급한 안건도 아니고요."
"개봉관에서 영화가 내려진 뒤, 유쿠와 훌루에 작품을 집어넣는 것까지는 별다른 잡음 없이 서로의 의견이 일치했어요. 근데, 차후에 우리 영화사 섹션을 따로 만드는 것에 대해서 협의를 해보자고 말을 꺼냈더니.. 어떠한 경우에도 불가하다고 말하더군요."
"조금의 고민도 없이 말입니까?"
"네. 듣자마자 그 년 아니 그 여자가 딱 잘라 말했어요. 협상의 여지 자체가 아예 안 보였어요."
오상무의 말에 수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이해가 안 되는군요. 사실 이번 청톈과의 협상은 그쪽에서 많이 양보를 해준 겁니다. 우리 쪽과 계속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 당장 섹션을 만들어 달라는 것도 아니고, 몇 년 후 작품 수가 충분해질 때를 대비해서 의논을 좀 해보자는데.. 그걸 그 자리에서 단칼에 거절한다? 굳이 그렇게까지 날을 세울 필요가 있는 건지 의문이네요."
수빈이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그리고 일말의 고민이나 망설임이 없었다는 건, 이미 다른 대책이나 방안이 확실하게 세워져 있다는 소린데.. 그게 뭔지 짐작이 안되는군요."
수빈이 고민에 빠져있자 오소라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대표님. 대표님께서 청톈에 직접 말을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쪽에서는 대표님을 엄청 중요한 인물로 생각하고 있던데.."
오소라의 말에 수빈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당연히 날 중요한 인물로 생각하겠지. 어차피 수박 프로덕션에 내가 없다면 앙코 빠진 찐빵에 불과.... 가만? 내가 중요해?'
수빈은 섬전처럼 뇌리를 관통하는 생각에 급히 오소라에게 물었다.
"어제 나랑 전화 통화할 때, 청톈에서 나에게 달포 내로 부탁할게 하나 있다고 그랬었죠?"
"네. 청톈에서 대표님께 그렇게만 전달해 달라고 말했어요. 어떤 종류의 부탁인지는 말을 안 해줘서 저도 모르고요."
그 순간 수빈의 머릿속에서 퍼즐이 착착 들어맞아 가고 있었다.
이윽고 수빈의 눈가에 새파란 살기가 올라왔다.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지은 수빈은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게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제 보니.. 꾀 많고 욕심 많은 암여우가 날 뼈째로 아작아작 씹어먹고픈 모양이군. 겁도 없이 말이지."
수빈은 머릿속을 깔끔하게 정리한 후 오소라에게 물었다.
"오상무. 중국에서는 언제쯤 개봉을 하겠다고 말하던가요? 오늘이 24일이니까, 내일이면 해외 개봉이 풀리는 걸로 아는데요."
그동안 조용히 앉아 있던 조부장이 대신 대답했다.
"오늘 내일 제가 국내에서 법적인 절차들을 다 처리해서, 청톈 쪽과 최종 계약을 끝마칠 겁니다. 다음 주 중에는 문제없이 개봉이 가능할 겁니다."
오소라가 말을 보탰다.
"청톈 말로는 다음 주 수요일쯤에 1차적으로 개봉할 예정이라고 했어요. 이번 주말 이전에 정확한 날짜를 픽스해서 통보해 주겠다고 말했고요. 그리고 그쪽 말로는 개봉일에 맞춰서 대표님이 중국으로 넘어가서 무대 인사를 하기로 예정되어 있다고 하던데요?"
"맞습니다. 이틀 정도 제가 시간을 빼주기로 팽연숙과 미리 이야기가 되어 있습니다. 그럼 이번 주말이면 확정된 중국 쪽 일정표가 나오겠군요?"
"네. 그럴 거예요."
수빈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런 후 목소리에 힘을 가득 실어 말했다.
"좋습니다. 그동안 다들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해외 개봉 건은 이제 우리의 손을 떠났습니다. 대박이 나든 쪽박이 나든 하늘에 맡겨야겠죠.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회사 내실을 꾀하는 겁니다. 오상무와 조부장은 이제 당분간 건물 리모델링에 관심을 가져 주세요. 전 새로운 영화 제작에 전력투구하겠습니다. 강부장은 양쪽 모두 신경을 써주시구요. 그럼 오늘 회의는 이걸로 마치겠습니다."
- 네. 알겠습니다.
"아. 지원팀장은 잠시 남아주세요."
수빈은 회의실에 혼자 남은 박상민 지원팀장에게 말했다.
"제가 중국에 무대 인사를 하러 갈 때 박팀장도 같이 가야 할 겁니다."
"홍보 영상 때문입니까?"
"맞아요. 그리고 무대 인사때 제가 쇼를 좀 해볼까 생각 중입니다."
"쇼요?"
"네. 쇼. 영화의 흥행을 위해서라면 제가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음 같아선 무대 인사 때 발가벗고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입니다."
"아. 그럼 틀림없이 대박이 날 겁니다. 대표님."
수빈은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잠시 박팀장을 째려본 뒤 말했다.
"그러니 박팀장이 중국 가기 전에 준비를 좀 해줘야겠어요."
수빈의 매서운 눈빛에 짜그라진 박팀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떤 준비 말입니까?"
"영화에 나온 액션이 CG가 아니란 걸 현장에서 직접 보여줄까 합니다. 자기 눈으로 꼭 확인을 해야만 믿는 사람들이 있죠. 특히 중국 사람들은 그런 경향이 더 심해요. 짝퉁의 천국이니까요."
"아.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했습니다."
박팀장의 말에 수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니 이성호 소품팀장을 만나서 둘이서 의논을 좀 해보세요. 쇼를 어떤 식으로 하는 게 사람들의 흥미와 관심을 끌지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잠시 후 수빈은 영화사를 나와서 YK 사옥으로 이동했다.
YK에 도착한 수빈은 사장실로 바로 올라가 박사장과 차를 마시며 독대를 하고 있었다.
"강이사. 요즘 너무 뜸한 거 아닌가?"
"제가 이렇게 시간 날 때마다 찾아뵙지 않습니까. 왜 또 그러십니까?"
"꼭 뭔가 부탁할게 있을 때만 찾아오는 거 같아서 서운해서 그러는 거지. 자주 좀 놀러 오게나."
"알겠습니다. 사장님. 이왕 말 나온 김에.. 부탁 좀 드릴게 있는데요."
박사장이 흥분해서 소파 손잡이를 한차례 두드리며 말했다.
"이것 봐. 이것 보라고. 꼭 이럴 때만 찾아오지."
박사장이 투덜대자 수빈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럼 그냥 갈까요? 사장님 말고 다른 분에게 부탁들 드려도 되긴 합니다만.."
"어허. 힘들게 왔는데 뭘 또 그냥 가나. 내가 그래도 명색이 수박 프로덕션 초대 감사 아닌가. 최대한 도와줘야지. 무슨 일인데?"
기대감에 빛나는 박사장의 눈을 들여다보며 수빈이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KBC 방송국 쪽에 아는 간부들 좀 있습니까? 되도록 고위 직급이었으면 좋겠는데요."
수빈의 부탁에 박사장이 오래간만에 생색을 내고 싶은지 잔뜩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어느 직급이 필요한 건가? CP? 국장? 아니면 본부장? 본부장 정도야 내가 전화만 하면 당장이라도 만날 수 있지."
수빈이 잠깐 생각을 해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본부장 정도로는 안될 거 같습니다. 더 위로는 모르십니까?"
"응? 본부장 보다 더 위?"
수빈이 오른손 검지를 세워서 천정을 콕콕 찌르며 잘라 말했다.
"더 위."
수빈의 반응에 비로소 일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박사장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사라졌다. 박사장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조직상으로야 정책기획 센터장이나 인력 관리실장 같은 사람들이 더 위긴 한데.. 그 사람들은 사실상 실권이 없어. 보도본부장, 편성본부장, 제작본부장 같은 본부장들이 핵심 실세들이라고. 본부장 보다 더 위라고 하면, 사실상 사장이라고 보는 게 맞아."
"그럼 사장을 아십니까?"
"지금 KBC 사장은 나보다 연배가 위야. 서로 잘 모르는 사이지. 김사장과 고교 동창이라는 소리는 들은 적이 있네. 무슨 일 때문에 갑자기 KBC 사장을 찾는 건가?"
"KBC 방송국 쪽에 부탁을 좀 할게 있어서 그러는데.. 여기저기 찔러보는 것보다 사장을 만나서 다이렉트로 부탁을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흠. 내가 나서도 되긴 하겠지만, 아무래도 미국에 있는 김사장을 통하는 게 일이 스무드하게 진행될 거야.. 혹시 정치적인 일인가? 그런 거라면 차라리 국회의원을 만나는 게 어떤가? 내가 미방위 쪽 의원들을 잘 알고 있네만."
수빈이 도리질을 하며 부인했다.
"정치적인 일은 전혀 아닙니다. KBC 사장이 충분히 전결(專決)로 처리할 수 있는 사항이죠. 그럼 김사장님에게 연락하셔서 자리를 한번 마련해 주세요. 저랑 사장님이랑 KBC 사장님이랑 같이 식사나 한번 하자고 말입니다."
"언제까지 자리를 주선해야 하는 건가?"
"다음 주 수요일 중국에서 영화가 개봉될 예정이라서, 제가 화요일 저녁에는 한국을 뜰 겁니다. 그러니 늦어도 담 주 월요일까지 해주셨으면 합니다."
"시간이 얼마 없군. 알겠네. 결정되는 대로 바로 연락을 하지."
"감사합니다. 사장님."
수빈은 박사장에게 감사의 말을 건네고선 사장실을 나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비서실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백성철을 보며 말했다.
"형. 이제 볼일 다 봤으니까 퇴근하죠. 집에 가서 출장 준비 좀 해야겠어요."
"그래. 알았다. 그리고.."
백성철이 수빈에게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이게 뭐예요?"
"청첩장."
"청첩장요? 누구?"
"A&R 팀 조민석이 들고 왔더라. 네가 회사에 왔다는 소식을 들은 모양이야. 방으로 들고 왔길래 내가 받아 놨다."
"아. 조민석씨. 얼마 전에 집 사서 조만간 결혼식 날 잡는다고 그러더니.. 언제라고 하던가요?"
"이번 주 토요일 오후 1시."
"삼일 뒤네요. 그날 별일 없으면 가도록 하죠. 형. 같이 주차장으로 내려가요."
"그래. 알았어."
수빈은 비교적 이른 시간에 집으로 귀가해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컴퓨터 전원 스위치를 누르며 수빈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후우. 팽연숙을 만나기 전까지 어느 정도 기본적인 뼈대는 만들어 놔야 할 거니까.. 당분간 잠을 또 줄여야 하겠군. 빨리 영화사가 자리를 잡아야 내가 편해질 텐데. 다른 일 신경 쓰지 않고 영화만 찍기가 이렇게 힘든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혼잣말로 툴툴대던 수빈은 컴퓨터가 켜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 작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수빈이 작업에 몰두해 있던 수요일 밤 '달빛 속의 호위무사'가 예상했던 것처럼 관객 800만을 돌파하고 천만을 향해 쾌속 질주 중이었다.
다음날 목요일 아침.
아침 8시 반부터 '모닝 마당'의 목요 특강 코너 방송이 시작되었다. 햇살처럼 눈부신 조명 속에서 수빈이 환하게 웃으며 걸어 나왔다. 마치 순정만화에 등장하는 왕자님처럼 잘생긴 수빈이 등장하자, 방청객들의 환호성과 열광적인 박수 소리에 스튜디오가 떠나갈 것 같았다.
잠시 후 세련된 스타일로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수빈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차분하게 강연을 하기 시작했다.
성공적으로 강연이 끝나고 두 시간 뒤. 최신형 TV 화면을 통해 수빈의 강연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남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괴성을 질렀다.
- 으아아악
치밀어 오르는 분노로 얼굴이 벌게진 남자가, TV를 공중으로 번쩍 들은 다음 바닥으로 세차게 집어던져버렸다.
- 와장창창
괴성과 기물이 부서지는 소리가 터진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남자가 있던 방의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30대 중반의 남자가 자다가 일어난 듯 잠옷을 입고 부스스한 얼굴로 엉망이 된 방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도련님. 얼마 전에는 술병을 집어던져서 TV를 부수더니, 이번에는 아예 작살을 내놓으셨군요. 이렇게 자꾸 부수면 어떡합니까."
"또 사면 될 거 아냐. 본가에서 보내온 돈이 모자라?"
남자가 주섬주섬 바닥에 내팽개쳐진 TV를 다시 똑바로 세우며 말했다.
"그런 뜻이 아니잖습니까. 그러게 그놈이 나온 걸 다운을 받으면서까지 굳이 보십니까. 그것도 이 새벽에요. 지금 아직 6시도 안됐습니다."
"딴따라 새끼가 강연이랍시고 나와서 뭐라 지껄이는지 궁금해서 말이야."
"그런 하찮은 놈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나중에 귀국하셔서 제대로 한번 밟아주면, 평생 도련님 얼굴도 못 쳐다보고 다닐 놈입니다."
"그런 하찮은 놈이 감히 내 여자를 건드렸다고. 알기나 해? 이 더러운 기분 말이야. 내가 애지중지했던 여자가 벌레 같은 놈에게 더렵혀 졌다고."
"조금만 참으시죠. 귀국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말 잘했어. 조비서.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 거야? 천한 개돼지나 들어간다는 군대 때문에, 이 오성식이 얼마나 더 LA에서 시간을 허비해야 하냐고."
"늦어도 두 달 내로 시민권이 나올 겁니다. 대통령이 트럼프로 바뀌고 난 뒤, 시민권 받기가 예전보다 많이 어려워졌습니다. 아시잖습니까?"
"돈이면 안 되는 게 어딨어. 미국이라고 다를 게 없잖아."
남자의 생떼에 조비서라는 남자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아. 저도 그러고 싶죠. 하지만 회장님이 뒤탈이 없도록 처리하라고 말씀하셨잖습니까. 한국 내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고요. 괜히 기자들에게 꼬리를 잡히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말입니다."
"빌어먹을 기자 새끼들. 있는 집 자식이 군대 좀 면제받는게 뭐 대수라고.."
"그리고 영화사를 물려받으려면 할리우드가 있는 LA에서 지내는 게 좋겠다고 말씀하신 건 도련님이잖습니까? 여배우를 꿈꾸는 예쁜 애들이 많아서 좋을 거라고 하셨잖아요."
남자가 질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한두 번이지. 이제 그런 년들은 진절머리가 난다고. 가까이 가기만 해도 양키 냄새가 코를 찔러. 몸에 털은 또 얼마나 많은지.. 여자는 역시 한국 여자가 최고야. 향기로운 체취, 매끄러운 살결, 말도 잘 듣고 얼마나 좋아. 돈만 많으면 천국인 게 한국이라고. 이거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데.."
"알겠습니다. 제가 최대한 빨리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테니까 그만 주무시죠."
"아. 그건 어떻게 됐어? 그 새끼 밟을 건수가 하나 생겼다면서?"
"지금 한국에서 한창 작업 중입니다. 며칠 내로 제대로 터질 겁니다. 연예인이라는 게 뻔하잖습니까? 사건사고 터지고 인기 시들해지면, 동냥하는 거지보다 못한 것들이 그 족속들입니다. 조금만 기다려 보시죠."
"알았어. 기대해 보지. 내가 조비서를 안 믿으면 누굴 믿겠어."
한편 그 시각.
수빈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영화사로 출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