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사 연예인이 되다-159화 (159/236)

#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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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실에서 사람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각자만의 생각에 빠져있었다. 세 명이 둘러앉아 있는 회의실 테이블 주위로 가슴을 짓누르는 무거운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

이윽고 세 사람 중 가장 성격이 급한 성강호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침묵을 깨버렸다.

성강호가 수빈에게 질문을 던졌다.

"강감독. 아까는 왜 그런 거야? 내가 보기에는 칭찬을 해줄게 아니라 둘 다 제대로 푸닥거리를 해야 할 상황인 것 같던데.. 갑자기 나보고 천만 배우라고 부르면서 평을 해달라고 하길래 내심 깜짝 놀랐다."

수빈이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 상황에서 질책을 했다가는 오히려 역효과를 볼 거 같아서요. 둘 다 열심히 준비해온 게 눈에 훤히 보이는데 어떻게 그럽니까?"

"그럼 앞으로 어쩔 건데. 촬영이 얼마 안 남았는데 대책은 있는 거야? 연기력이 저런 상태에서 영화를 찍을 수는 없잖아? 나름 열심히들 하니까 발연기 소리까지야 듣겠냐마는, 영화 말아먹기 딱 좋은 수준이던데."

수빈이 답답한지 짧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후. 제 머리를 쥐어짜서라도 대책을 세워야죠. 이대로 가면 망할게 뻔한데, 그냥 손 빨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일단.. 가장 먼저 타임 테이블부터 다 뜯어고쳐야 하겠습니다."

"그건 또 왜?"

"원래대로 라면 제가 2주 동안 체중 감량을 최대한 한 뒤, 영화 후반부인 병자(病者) 역할부터 찍어나갈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시점을 조금씩 앞으로 당기면서 살을 찌울 려고 했습니다만.. 지금 이 상태에서 영화의 하이라이트 부분부터 찍다가는 보나 마나 폭망입니다. 박팀장님?"

수빈의 호명에 박수종 팀장이 긴장한 얼굴로 즉각 대답했다.

"예. 대표님."

"회의 끝나고 박팀장님이 제작진들을 다 소집하셔서 타임 테이블을 전면 수정해 주세요. 영화를 앞에서부터 뒤로, 순서대로 찍어나가는 걸로 말입니다. 비교적 연기력이 덜 필요한 앞부분부터 영화를 찍으면서, 제가 조금씩 체중 감량을 하겠습니다. 당장은 그렇게 해서라도 시간을 벌어야 할거 같아요. 그런 다음, 여유를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해야겠습니다. 급한 마음에 서두르다가는 죽도 밥도 안될 거 같아요."

"알겠습니다. 대표님."

"세트장 예약이나 장소 섭외 같은 것들도, 콘티에 있는 신들을 한 번에 몰아서 다 찍겠다는 생각은 버리시고 촬영 순서대로 잡아두세요. 같은 장소를 여러 번 중복으로 잡아도 상관없습니다. 지금은 비용이 더 추가되더라도 어쩔 수 없어요. 제작비는 충분하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네. 대표님."

옆에서 듣고 있던 성강호가 끼어들었다.

"수빈아. 뒤로 갈수록 찍기 힘든 게 영화야. 알잖아? 체력은 바닥이고, 예산은 다 떨어지고, 다들 신경이 곤두서서 툭하면 쌈 나는 거. 그럴수록 촬영장에서 미쳐 날뛰어야 하는 게 영화감독인데, 그런 감독이 체력이 떨어져서 빌빌대면 제대로 된 영화 못 찍는다. 제작비야 네가 여유가 있다고 하니까 그렇다 쳐도.."

성강호의 걱정 어린 말에 수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형님. 저 아직 팔팔한 20대입니다. 몇 킬로 정도는 감량해도 끄떡없어요. 그리고 제 몸이 원래부터 체지방이 거의 없는 편이라, 조금만 빼도 표시가 확 날 겁니다.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그때 수빈의 핸드폰으로 문자가 한통 날아왔다.

- 대표님. 저 오상무에요. 지금 인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영화사로 바로 출발할게요.

오상무가 보낸 문자를 확인한 수빈은 시간을 슬쩍 본 후 입을 열었다.

"다들 점심이나 같이 하시죠. 벌써 2시가 다 되어 갑니다."

"강감독이 쏘는 거야?"

성강호의 물음에 수빈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제가 영화사 대표 자격으로 쏠게요. 다들 시장하실 텐데 빨리들 나가시죠."

세 사람은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편 그 시각.

종로구 돈화문로에 위치한 '서울 극장' 인근의 한 케이크 카페. 카페 안쪽의 한 테이블 위에 색색별 마카롱과 부드럽고 맛있어 보이는 케이크들이 올려져 있었다.

보고만 있어도 침이 나올 것 같은 얼그레이 크레이프 한 조각과 눈으로도 달달함이 절로 느껴지는 딸기 치즈 케이크 한 조각이 탐스러운 자태를 뽐내며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었지만, 자리에 앉은 두 명의 젊은 여성들은 케이크를 먹을 생각은 하지 않고, 계속해서 티격태격 다투고만 있었다.

두꺼운 뿔테 안경을 낀 여성이 인상을 팍 쓴 채, 앞자리에 마주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여성에게 짜증을 부렸다.

"야 이년아. 얼굴 좀 펴고 한숨 좀 그만 셔. 땅 꺼지겠다. 소유 니가 하도 풀이 죽어서, 내가 없는 용돈에 케이크까지 샀잖아."

비교적 예쁘장한 얼굴의 소유자인 소유라는 여성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선희야. 넌 지금 내 마음을 이해 못해. 내가 얼마나 비참한 기분인지.."

선희라고 불린 여성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흥. 웃기고 있네. 기껏 영화 잘 보고 와서는 뭔 개소리야. 너도 재미있었다며?"

"영화야 당근 재미있었지. 하지만.. 내 귀에는 탬버린 소리가 전혀 안 들렸다고."

"그게 뭐? 안 들리는 게 정상 이래잖아. 넌 어제 수빈 오빠가 한 인터뷰도 안 봤니? 그리고 탬버린인지 트라이앵글인지 그딴 요상한 소리는 나도 전혀 못 들었다고."

소유가 고개를 발딱 쳐들고서는 선희를 째려보며 말했다.

"너랑 나랑 입장이 같니? 넌 열심히 공부해서 공무원이 되는 게 꿈이고, 난 실용 음악 전공이라 가수가 꿈이잖아. 난 가수가 꿈인데.."

말을 하면서 소유의 고개가 다시 또 점점 더 숙여졌다.

"귀가 이렇게 막귀면 어떡하니.. 미칠 거 같아. 오빠는 왜 그런 영화를 만들어서 날 힘들게 하는 걸까."

"후.."

절친의 좌절에 덩달아 심란해진 선희가 인상을 쓰며 한숨을 길게 내쉴 때, 갑자기 깨톡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핸드폰에서 연신 들리는 깨톡 소리가 조용한 케이크 카페에 울려 퍼졌다.

선희가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깨톡 내용을 확인하던 선희의 얼굴이 점점 환하게 펴지기 시작했다. 선희가 건너편에 앉아 있는 소유의 어깨를 때리면서 급히 말했다.

"야. 소유야. 땅 그만 파고 깨톡이나 빨리 확인해봐. 보아하니 나한테 온 거랑 같은 내용일 거 같다."

"무슨 내용인데? 새로운 연예인 커플이 뉴스에 나오기라도 한 거니?"

"이년아. 닥치고 빨리 보기나 해."

소유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옆 의자에 올려놓은 핸드백에서 핸드폰을 꺼내었다. 그런 후 깨톡으로 날아온 내용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실용음악과 단톡방에 올려진 내용을 확인해 보았다.

- 야. 다들 이것 좀 봐라. 개웃겨.

첨부된 링크를 눌러보니 '감성변태 유희결'의 SNS로 연결이 되었다.

순서대로 두 장의 사진이 올려져 있었다. 첫 번째 사진에서는 극장을 배경으로 벙거지 모자에 선글라스를 낀 유희결이 극장표를 손에 쥔 채, 잇몸을 훤하게 드러내고선 환하게 웃고 있었다.

- 오늘 그동안 시간이 없어서 못 봤던 '달빛 속의 호위무사'를 보기 위해 조조로 표를 끊었음.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영화 음악 속에 등장한다는 탬버린이 어떤 코드로, 어떤 기법으로 진행되었는지 여러분들께 알려드릴 예정임.

두 번째 사진에서는 유희결이 벙거지 모자를 손에 쥐고 극장 계단에 걸터앉아 멍한 표정으로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 빌어먹을. 탬버린 소리는 개뿔 들리지도 않더만.. 내가 막귀인것인가. 괴롭다. 음악을 그만두어야 하나..

그리고 그 밑에는 수많은 댓글들이 달려 있었다. 그중에 유독 많은 '좋아요'를 얻은 댓글이 있길래 눌러 보았다.

- 희결군. 너무 낙담 말게나. 자네는 한번 봤지? 난 두 번 봤는데도 못 들었다네. 이상 '배청수의 음악캠프'의 배청수가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제 SNS로 놀러 오시면 재밌는 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많이들 놀러 와서 보세요.

소유의 얼굴이 조금씩 펴지고 있었다. 소유는 급히 배청수의 댓글을 타고 배청수의 SNS로 들어갔다.

허옇게 센 머리에 콧수염을 기르고서 손에는 헤드셋을 들고 있는 배청수의 사진 아래, 비교적 장문의 글이 띄워져 있었다.

- 조만간 '달빛 속의 호위무사' 영화의 음악 감독을 맡았던 수빈군을 저희 음악캠프 스튜디오에 모시기로 했습니다. 그때 영화 음악 마스터링 음원을 들고 오라고 제가 지시해 놨습니다. 정말 탬버린 소리가 나는지 그날 한번 제대로 분석을 해볼 생각입니다. 제가 볼 때 이거 백 프로 뻥입니다. 제가 이래 봬도 귀가 좋기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영화를 두 번이나 봤는데도 제 귀에 전혀 안 들렸거든요. 수빈군이 사기꾼인지 아닌지 그날 검증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저 말고도 영화를 보시면서 탬버린 소리가 안 들린다는 분들이 많이 계실 겁니다. 절대 실망하지 마세요. 그게 정상인 겁니다. 귀 좋다고 노래 잘 부르고 작곡 잘하는 거 아닙니다. 그랬다면 피아노 조율사분들이 빌보드 차트를 휩쓸었겠죠. 베토벤 인생 최고의 걸작이라고 불리는 교향곡 제9번 '합창'은 베토벤이 귀머거리 상태였을 때 만들었다는 걸 아셨으면 합니다.

- 정확한 날짜는 추후 다시 공지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늦어도 이번 달 중으로 수빈군을 초대해서 '배청수의 음악캠프'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장문의 글을 다 읽은 소유의 얼굴이 아침 햇살을 받은 나팔꽃처럼 환하게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걸 지켜보던 선희가 툴툴거렸다.

"좋냐? 이제 좀 맘이 놓여? 천하의 유희결과 배청수 아저씨도 안 들린다는데, 니까짓 게 뭐라고 그것 좀 안 들렸다고 땅을 파고 있냐?"

소유가 아무 말없이 빙그레 웃더니, 포크를 집어 들고 케이크를 먹기 시작했다. 친구가 낙담한 상태에서 벗어나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자, 기분이 좋아진 선희가 중얼거렸다.

"그래. 이년아. 많이 처먹고 돼지나 돼라. 모자라면 내가 더 쏜다."

한편 그 시각. 점심을 먹고 영화사로 다시 돌아온 수빈이 회의실로 들어서고 있었다.

회의실 테이블 위에는 두꺼운 서류철들이 여러 개 올려져 있었고, 오상무, 강부장, 조부장 그리고 지원팀 박팀장까지 해서 총 4명이 자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많이들 기다리셨나요? 성강호 형님이 대낮부터 자꾸 술 한잔 같이 하자고 붙들어서.. 뿌리치고 빠져나오느라 좀 늦었습니다."

오상무가 대표로 말했다.

"아니에요. 대표님. 저희들이 모여서 대기한지 10분 정도밖에 안됐어요."

수빈이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그래요. 다행이네요. 오상무. 중국 출장 중에 불편한 건 없었나요?"

"네. 청톈에서 생각보다 더 잘 대해줘서 큰 불편 없이 잘 마치고 왔습니다."

수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어디 중국 출장 결과를 들어볼까요?"

수빈의 말이 끝나자, 오상무가 A4 용지 한 장에 간략히 요약해 놓은 요약본을 수빈에게 건네며 말했다.

"자세한 세부 사항들은 저희 실무진에서 처리를 할 거예요. 중요한 것들만 추려서 보고를 드릴게요."

잠시 후 오상무가 열정적인 눈빛으로 출장 결과를 브리핑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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