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사 연예인이 되다-157화 (157/236)

# 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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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C 방송국에서 '모닝 마당' 녹화를 무사히 끝마친 다음 날인 화요일 밤 7시경.

수빈은 YK 사옥 내의 자신의 집무실에서 핸드폰 통화를 끝내며, 살짝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계약이 예상보다 좋은 조건으로 마무리되었다니 다행이야. 근데, 달포 내로 팽가에서 나에게 부탁을 하나 할 거라는 게 뭔지를 모르겠군. 그날 본 게 정확하다면, 팽세옥이 한 달 내로 소주천을 달성하기에는 절대 무리야. 못해도 1년은 족히 넘어 걸릴 테니, 그쪽 문제는 아닐 거 같은데.."

수빈은 좌우로 가볍게 목을 돌리며,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하루 종일 예민하게 곤두세웠던 신경을 부드럽게 풀어주었다.

'지금으로서는 전혀 감이 안 잡히는군. 뭐 사소한 부탁이라고 하니 그때가 되면 저절로 알게 되겠지. 다행히 계약이 잘 끝났으니, 세계 무대를 향해 드디어 한발 내디딘 셈이로군. 지금은 이런 역사적인 날을 즐겨야겠지. 고민은 그다음에..'

수빈은 홀가분한 얼굴로 퇴근을 하기 위해, 청톈과의 계약 관련 서류가 잔뜩 올려져 있는 테이블을 힘차게 양손으로 집으며,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잠시 후 집에 도착한 수빈은 샤워를 하고선 냉장고에서 맥주를 한 캔 꺼냈다. 거실 소파에 주저앉아 리모컨을 집어 들어 TV를 켠 수빈은, 중국 쪽과의 계약 성사를 자축하고 자신의 첫 작품이 해외로 진출한 걸 기념하기 위해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소파에 등을 기댄 채 맥주를 마시며 느긋하게 TV를 보던 수빈은, 시간을 확인한 후 '본격연예 한밤'이 나오는 SBC로 채널을 돌렸다. 이런저런 연예계 뉴스가 나오더니 드디어 자신이 인터뷰를 했던 '화제의 연예인' 코너가 시작되었다.

수빈은 소파에서 등을 떼고 앉아 TV에 집중했다.

잠시 후 화면에 긴 생머리를 하고 순백의 원피스를 입은 아름다운 여성이 나타났다.

한때 '롤챔스의 여신'이라고 불렸던 게임 전문 아나운서인 조은진 아나운서가, 등받이가 없는 동그란 의자에 올라앉아, 늘씬한 롱다리를 한껏 뽐내며 밝은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조은진입니다. 이번 주에는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가지고 시청자 여러분들을 찾아뵙게 되었는데요. 지금 전국적으로 특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전국 노래방 연합회와 한국 저작권 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지금 전국에 소재한 노래방 매출이 전주에 비해 무려 15프로에서 20프로 가까이 수직 상승을 했다고 하는데요. 놀랍지 않습니까?"

잠시 여유를 둔 조은진이 말을 이었다.

"연말연시도 지났고,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특수한 시즌도 아닌데, 무려 20프로 가까이 노래방 매출이 상승한 이유가 과연 뭘까요? 저희 SBC가 그 원인을 조사하던 중, 이미 이런 현상이 발생할 것을 몇 주전에 예측했었다는 대단한 분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급히 그분을 섭외했습니다. SBC 방송국의 섭외력, 대단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조은진이 눈을 상큼하게 치켜뜨고 목소리 톤을 한 톤 위로 올리며 말했다.

"요즘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화제의 영화죠. '달빛 속의 호위무사'의 영화감독이자 음악 감독이신 강수빈 감독님을 어렵게 이 자리에 모셨습니다. 박수."

조은진의 박수소리와 함께, 어색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서 덩달아 박수를 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화면에 잡히자, 수빈은 좌절감에 고개를 푹 떨구며 중얼거렸다.

"왜 저렇게 멍청하게 나오는 거야. 방송을 한두 해 한 것도 아닌데.. 편집을 이상하게 해서 그런 건가.."

TV 속에서 다시 조은진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안녕하세요. 강감독님. 제가 실물로 뵙는 건 오늘이 처음인데요. 정말 잘생기셨어요. 먼저 시청자 여러분들께 인사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시청자 여러분. '달빛 속의 호위무사'의 공동 감독인 강수빈입니다. 현재 아이돌 그룹 BBG의 리더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본격연예 한밤'의 인터뷰를 통해 시청자분들께 인사드리게 돼서 영광입니다."

"네. 강감독님. 반갑습니다. 인터뷰 시간이 짧다 보니, 빨리 여쭤볼게요. 이런 현상이 일어날 것을 어떻게 예측할 수 있었나요?"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예측을 했다기보다는 이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한 게 좀 와전된 것 같습니다."

"가능성이 있다? 그럼 그게 예측 아닌가요? 어떠한 이유를 근거로, 노래방 매출이 무려 20프로 가까이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셨던 건가요?"

"말씀 드리자면 좀 긴데, 간략하게 줄여서 말씀드리면 저희 영화를 보신 분들 중에서 많은 분들이 노래방을 찾아가셔서 즐기시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발생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신 분들이 노래방을 간다.. 이게 무슨 말이죠? '달빛 속의 호위무사'라는 영화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이잖아요? '라라랜드'처럼 음악을 주제로 한 영화가 아닌데 말이죠."

"제가 이번 영화의 후반부 음악 작업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작업을 하려다 보니, 제작비가 별로 안 남은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제작비가 모자라다 보니, 아무래도 다양한 악기의 조합으로 음악 작업을 하기에는 무리다 싶어서, 영화 음악을 녹음할 때 악기들을 많이 뺐습니다."

수빈이 조은진을 쳐다보며 물었다.

"사람들은 조은진씨처럼 목소리가 좋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칭찬을 하곤 합니다. 목소리가 곱다, 낭랑하다, 청아하다, 꾀꼬리 같다, 은쟁반에 옥구슬이 구른다 등등 많은 방식으로 표현을 하죠. 하지만 사람들 중에서는 목소리가 듣기 안 좋거나, 듣기에 거북한 분들이 간혹 계세요. 그런 분들에게 뭐라고 표현을 하는지 혹시 아십니까?"

"나쁘다? 듣기 싫다? 귀에 거슬린다? 뭐 그런 식으로 표현하지 않나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예전에는 주로 '쇳소리가 난다'라고 표현을 했었죠. 요즘에야 '허스키 보이스'라고 많이들 이야기하지만요."

"아. 강감독님 말씀을 듣고 보니 저희 할머니도 그렇게 표현하셨던 거 같아요."

"맞습니다. 예전 어르신들이 특히 그렇게 많이들 표현하시죠. 여기서 우리가 유추를 통해 하나 알 수 있는 게 있죠? '한국 사람들은 예전부터 쇳소리를 듣기 싫어한다'라는 사실을 말이죠. 오랜 세월에 걸쳐, 한국 사람들 유전자 속에는 쇳소리는 듣기 싫은 소리라고 각인(刻印)이 되어 있다는 겁니다."

수빈은 잠시 호흡을 고른 후 말을 이었다.

"우리 나라에서 오케스트라가 크게 성행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라고 전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케스트라 연주를 할 때 박력 있고 강한 음량으로, 화려함과 웅장함을 잘 드러낼 수 있는 금관악기들은 다 서양에서 들어왔으니까요. 옛날부터 전해져 오는 우리나라 전통의 악기가 아닌 거죠. 그러다 보니, 우리들 귀에 왠지 거북하고 불편하게 들리는 겁니다."

수빈은 조은진에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조은진씨는 '달빛 속의 호위무사' 영화를 보셨습니까?"

조은진이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그럼요. 너무 재미있어서 전 두 번이나 관람했는걸요."

"두 번이나 봐주셨다니.. 감사합니다. 그럼 영화를 보고 난 다음, 귀에 맴도는 악기 소리가 특별히 있던가요?"

"글쎄요. 바이올린 연주하는 소리는 자주 들렸던 것 같은데.. 특별히 맴도는 악기 소리는 딱히 없었던 것 같아요."

수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럴 겁니다. 제가 영화 음악을 녹음할 때 바이올린 같은 현악기를 주로 쓰고, 귓속으로 강하게 파고드는 금관악기들은 다 뺐으니까요. 튜바, 트럼펫, 호른, 심벌즈.. 그뿐만 아니라 재료는 금속으로 만들었지만, 분류상 금관악기에 들어가지 않는 플루트, 피콜로, 색소폰 같은 악기들 마저도 다 빼버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예전부터 친숙하게 들었던 현악기 소리만이 귀에 남을 겁니다."

수빈의 말에 조은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지금 강감독님이 하시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는 대충 알아듣겠는데요. 그거랑 노래방 매출이 오르는 거랑 무슨 관련이 있나요?"

수빈이 오른손으로 턱을 매만지며 대답했다.

"막상 그렇게 해서 영화 음악 작업을 하고 난 뒤에 들어보니, 뭔가 모자라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어요. 악기가 너무 한쪽으로 편중되다 보니, 소리 자체도 편중되어 있었던 거죠. 고민 끝에, 결국 쇳소리가 나는 악기를 하나 정도는 집어넣는 게 좋겠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럼 어떤 악기를 집어넣는 게 가장 좋을까.. 한참 동안 고민을 하다가 결정을 내렸죠. 한국인들에게 가장 친숙하고, 실제로 많은 분들이 직접 연주까지 해봤던 악기를 집어넣기로 말이죠."

조은진이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급히 물었다.

"그게 어떤 악기죠."

수빈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탬버린입니다."

수빈은 턱에서 손을 떼고, 허리를 세우면서 긴 다리를 쭉 뻗으며 말을 이었다.

"조은진씨도 노래방 가셔서 많이 들어보고 직접 연주도 여러 번 해보셨을 겁니다. 탬버린을 들고 흔들면 짤랑짤랑 쇳소리가 나죠? 마치 방울 소리처럼 들리는 쇳소리가 아름답고, 한국 국민들에게는 다른 어떤 악기보다 더없이 친숙한 악기라고 볼 수 있겠죠. 아마 전 세계에 있는 탬버린 숫자보다, 한국 노래방에 있는 탬버린 숫자가 더 많을 겁니다."

그때야 이해를 했다는 듯 조은진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하. 그래서 노래방 매출이.."

"그렇습니다. 영화 음악을 들어보시면 탬버린 소리가 아주 미세하게 베이스로 깔려서, 영화가 끝날 때까지 지속적으로 나옵니다. 영화를 보시면서 계속해서 탬버린 소리를 듣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친구들이랑 노래방이나 한번 갈까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 거죠. 그래서 제가 이번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게 된다면, 어쩌면 노래방 매출이 오를지도 모르겠다고 말을 했던 겁니다. 정확한 예측까지는 아니고,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 게 좀 부풀려졌던 것 같습니다."

수빈의 말이 끝나자 조은진이 의아한 얼굴로 질문했다.

"감독님. 이상해요. 전 영화를 두 번이나 봤는데도, 탬버린 소리를 들은 기억이 전혀 없는걸요?"

"그게 정상입니다. 귀가 예민한 분이 아니라면, 탬버린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제가 영화를 개봉하기 전에, 시사회를 두 번 하면서 대충 조사를 해봤더니.. 5에서 10프로 정도의 사람만이 탬버린 소리를 알아채더군요.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귀로는 못 듣는 게 정상입니다. 하지만.."

"하지만?"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무의식에서는 그 소리를 계속 듣고 있었던 거죠. 직접적으로 인식은 못하지만요."

"그렇군요. 그래서 노래방 매출이 갑자기 오른 거였군요. 감독님 말씀을 듣다 보니, 제가 영화를 다시 한 번 더 영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마구 드네요. 탬버린 소리가 제 귀에 들리나 안 들리나 확인을 해보게 말이죠. 제가 막귀라니.. 자존심이 상하는걸요. 저도 평상시에는 나름 귀가 예민한 편이라고 자부했었는데 말이에요.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강감독님은...."

이윽고 인터뷰가 끝나자 수빈은 리모컨을 집어 들고 TV를 끄면서 중얼거렸다.

"마지막 문장들이 핵심이지. 다시 한번 영화를 더 봐야겠다.. 비록 짧은 시간의 인터뷰였지만, 이 정도 내용의 인터뷰면 애초에 목적했던 재관람 붐 조성에 충분할 거 같은데.. 흥행 성적을 지켜보면 알 수 있겠지."

수빈은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소파 옆에 놓여 있던 시나리오를 집어 들었다. 내일 있을 첫 번째 대본 리딩을 위해, 수빈은 편안하게 소파에 등을 기댄 채로 시나리오 검토에 몰두하였다.

하지만 이때까지 수빈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방금 전 전파를 탄 인터뷰로 인해, 자신에게 거세게 들이닥칠 향후의 일들을 말이다.

다음날 아침 일찍 수빈은 밴을 타고 영화사로 나갔다. 아침 9시경 영화사에 도착한 수빈은, 밴에서 내려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수빈이 안으로 들어서자, 입구 왼편에 위치한 휴게실 원탁 테이블 쪽에서 익숙한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이. 강감독님."

수빈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박수종 영상팀장과 같이 휴게실에 앉아 있던 성강호가 손을 높이 치켜들고 흔들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수빈은 한달음에 달려가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세요. 형님. 대본 리딩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일찍 오셨네요."

"지방에 촬영이 있어서 끝내고 바로 이쪽으로 달려왔습니다. 이야. 곧천감독님. 오랜만에 뵈니 신수가 훤하십니다 그려?"

수빈이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형님. 안 어울리게 갑자기 존대를 하고 그러십니까? 편하게 말씀하세요."

"뭔 소립니까? 여기 박팀장도 존대를 하신다는데.. 박팀장이나 나나 나이가 몇 살 차이가 안 나요. 어디서 감히 배우가 영화감독에게 반말을 찍찍한다는 말입니까? 그건 배신입니다. 배신!"

수빈은 과장되게 연기를 하고 있는 성강호를 보며, 미소를 머금으면서 말했다.

"박팀장님이야 같은 회사 식구고, 직급이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러는 거죠. 형님. 저 불편해서 영화 못 찍습니다. 적당히 좀 하세요."

"그랴? 알았다. 다른 사람들 있을 때는 공손히 하고, 우리들끼리 있을 때는 적당히 하마. 그럼 되겠지?"

"네. 형님. 근데, 곧천감독은 또 뭡니까?"

"우리 강감독이, 곧 천만 감독 반열에 오르실 거 아닌가. 그래서 그렇게 부른 거지."

"형님도 참.. 저 혼자 단독으로 찍은 영화도 아닙니다. 뭘 또 그렇게 오버를 하십니까."

"얼씨구? 달빛이 강감독 덕분에 천만 찍게 됐다는걸, 이 바닥에서 모르는 사람이 있을 거 같냐? 뻔히 다 아는 사실인데 뭘 또 빼고 그래. 강감독 아니었음 잘해야 사오백만 들었겠지."

성강호가 수빈의 어깨에 팔을 올리며 말했다.

"수빈아. 근데 이번 영화 말이다. 내가 소속사에게 들어보니 계약 조건이 너무 좋더라. 신생 영화사가 너무 출혈이 심한 거 아니냐? 나야 돈 많이 줘서 좋긴 하다마는.."

수빈은 자신의 어깨에 둘러진 성강호의 팔을 가볍게 두드리며 대답했다.

"명색이 1억 배우 아닙니까. 그 정도 대접은 당연히 해드려야죠. 그리고 일전에 제가 폭력 사건으로 무고 당했을 때, 형님이 방송에 나가셔서 하셨던 인터뷰를 글자 한자 안 빠트리고 다 외우고 있습니다. 감사의 표시라고 생각해 주세요. 형수님에게도 감사드린다고 전해주시고요."

"형수? 아 그때 했던.. 알았다. 내가 전달해 주마. 근데.."

성강호가 갑자기 인상을 굳히며 목소리를 조용히 깔았다.

"좀 전에 내가 박팀장에게 이번 영화에 캐스팅된 배우들 리스트를 들었는데 말이지. 내가 좀 걱정이 되는 게 있어서.."

수빈이 성강호의 말을 잘랐다.

"하이유 때문에 그러시는 거죠?"

성강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 그 친구가 가수 출신치고는 연기를 곧잘 해. 하지만.. 내 예상으로는 강감독 성에는 절대 안 찰 거란 말이지. 강감독도 이제 이 바닥 밥을 먹어봐서 잘 알겠지만, 여배우랑 감독이랑 싸우기 시작하면 영화는 그날로 맛탱이 가는 거야. 촬영장 분위기도 개판 오분 전으로 되는 거고.. 그런 영화치고 잘 된 영화를 내가 여지껏 본 적이 없다."

"저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나름 생각해 놓은 게 있습니다. 제가 알아서 잘 컨트롤할 테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그래? 하기야 천만 감독이 여배우 하나 못 다뤄서 영화 말아먹으면 나가 죽어야지. 그 정도 역량도 없으면 천만 절대 못찍지. 암. 그렇지. 그럼 난 앞으로 강감독만 믿고 가면 되겠지? 그럼 되는 거지?"

"형님. 어디서 감히 스리슬쩍 뒤로 빠지시려고 그럽니까? 같이 도와주셔야지. 아까 그러셨잖아요? 돈을 많이 준다고. 돈값을 하셔야죠. 전 형님만 믿고 영화 찍는 겁니다."

"어허. 이런 나쁜 감독을 봤나? 출연료 좀 후하게 줬다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배우에게 떠넘겨? 그러면 안 되지."

수빈은 성강호의 투정을 깔끔히 무시하고 박팀장에게 물었다.

"벨 스튜디오 합병건은 잘 끝났나요?"

수빈의 말에 박수종 영상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손하게 대답했다.

"네. 대표님. 어제 강부장에게서 전액 입금했다고 연락받았습니다. 생각보다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표님."

"본사 건물은 수리하는데 3개월 정도가 소요돼서, 당분간 이쪽에서 모든 일들을 진행할 겁니다. 수리가 끝나는 데로 옮길 거고, 여기는 영화 배급 부서를 따로 편성해서 들일 생각입니다. 그렇게 알고 계세요."

옆에서 지켜보던 성강호가 한마디 거들었다.

"강감독 각이 제대로 나오는데. 가다가 완전 사장 가다야."

수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시고요. 형님. 제가 형님께 부탁드릴게 하나 있습니다."

"부탁? 어떤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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