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사 연예인이 되다-155화 (155/236)

#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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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태풍이 거세게 휘몰아치고 간 이사실 안에서, 수빈은 소파에 길게 널브러져 있었다. 가벼운 노크 소리와 함께 백성철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기진맥진해 초주검이 되어 있는 수빈을 발견한 백성철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수빈아. 괜찮냐?"

소파에 드러누운 수빈이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뇨. 형. 전혀 안 괜찮아요."

"하이유가 왜 저렇게 뿔이 난 거야? 찬바람이 쌩쌩 불어서 난 말도 못 붙이겠더라."

소파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수빈이 대답했다.

"영화 캐스팅 때문에 오해를 한거 같아요. 첨에 대화를 할 때에는 그나마 말이 좀 통했었는데, 제가 그만 중간에 말실수를 하는 바람에 하이유 선배가 더 화가 나서.. 아주 가루가 되도록 깨졌습니다."

"캐스팅?"

"네. 형. 이번에 새로 찍을 영화에 여주인공이 2명이잖아요. 한 명은 김샛별로 이미 정해졌고, 나머지 한 명이 각본상 목소리가 아주 매력적이어야 하거든요. 그 역할을 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로 제가 4명 정도 리스트를 뽑아서 박감독에게 넘겼었는데.."

"넘겼었는데?"

"제가 감독이라고 아무도 출연 승낙을 안 했거든요."

"정말? 왜 그렇지? 이번 영화가 대박친 걸 봤으면, 출연하고 싶어 하는 배우들이 한둘이라도 있었을 건데."

"영화가 개봉한지 얼마나 지났다고요. 캐스팅 섭외할 때만 해도 제가 듣보잡 감독에 아이돌 출신의 나이 어린 감독이었으니까 다들 거절한 거죠."

"그래서?"

"촬영 날짜는 다가오고 배우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그래서 박감독이 급하게 시나리오를 여기저기 돌렸는데 하이유 선배한테도 갔다고 하더라고요. 시나리오를 읽어본 하이유 선배가, 자기에게 딱 맞는 역할인데 자기한테 시나리오가 바로 안 왔다고 절 벼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죠. 그래서 당분간 얼굴을 안 마주치려고 피해 다녔었는데, 오늘 제대로 딱 걸렸네요."

"그랬구나. 근데 대화 중간에 뭘 실수했다는 거야?"

"왜 자기 말고 다른 여자애들에게 먼저 대본을 줬냐고 그러면서 막 다구치길래, '시나리오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선배보다 나이가 어린 여자 역할입니다'라고 변명했다가.. 죽는 줄 알았습니다."

"여자한테 겁도 없이 나이 이야기를 하다니. 네가 잘못했네."

"형도 참. 정말로 그래서 시나리오를 안 줬겠어요? 이 역할이 이미 애인이 있는 저를 짝사랑하면서 호시탐탐 애인 자리를 노리는 가수 역할이라, 내면 연기를 잘 못하면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고 욕먹기 딱 좋은 캐릭터라고요. 그리고, 평상시 TV에서 하이유 선배가 하는 연기를 보면서 분명히 연기를 잘하기는 하는데.. 뭔가 2프로 부족하다는 느낌을 항상 받아왔었거든요. 제가 같이 연기를 해본 적도 없고, 편집 전 원본 영상을 본적도 없어서 정확히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저 나름 하이유 선배를 생각해서 배제한 건데.."

"그럼 그렇게 솔직히 말하지 그랬냐?"

"제가 찍는 영화의 여주인공 역할을 할 여배우에게, 넌 내면 연기를 잘 못하고 연기가 2프로 부족해서 시나리오를 안 줬었다고 이야기를 하라고요? 영화를 찍기도 전에 말아먹을 일 있습니까?"

"그래서 하겠데?"

백성철의 물음에 수빈이 개구진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네. 제가 요즘 바빠서 확인을 미처 못 했었는데, 이미 승낙을 한 모양이에요. 겁도 없이 말이죠. 제가 뒤끝이 심하다는 걸 아직 잘 모르는 모양인데.. 담 주 수요일 첫 번째 대본 리딩 때, 제가 아주 눈물을 쏙 빼놓을 생각입니다."

주먹을 불끈 쥐고 복수를 다짐하는 수빈을 보며 백성철이 피식 웃으면서 물었다.

"이제 집으로 갈 거냐? 주말인데 너도 좀 쉬어야지."

수빈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영화사로 가야죠. 중국 쪽에서 개봉을 하기 전에 끝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요. 이번 주말 내내 일해야 할거 같아요."

"요즘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냐? 이러다 너 쓰러질까 봐 걱정된다."

"아직은 괜찮아요. 다음 주 중에 중국에서 영화가 개봉되고 나면 여유가 좀 생길 겁니다. 그때 쉬면 되요."

"알았어. 차 빼놓을 테니 조금 있다 1층으로 내려와라."

"네. 형."

수빈은 백성철이 주차장으로 출발하자, 품에서 주섬주섬 핸드폰을 꺼내어 박상민 지원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영화사에 도착한 수빈은 편집실로 이동했다. 편집실 안에서 작업에 몰두하느라, 자신이 들어온 줄도 모르고 있는 박상민 지원팀장에게 다가간 수빈이 박팀장을 호명했다.

"박상민 팀장?"

깜짝 놀란 박팀장이 고개를 돌려 수빈을 바라보았다.

"아. 대표님. 언제 오셨습니까?"

"지금 막 왔어요. 토요일 오훈데 쉬지도 못하고 이렇게 일이나 하게 만들어서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아까 전화 주셨을 때도 편집실에서 작업하다 받았는걸요. 일을 하다 말고 집에서 쉬면, 맘이 불편해서 쉬어도 쉰 거 같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저 말고 다른 팀장님들도 촬영 준비 때문에 다들 작업 중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요? 다들 이렇게 열심이니 나중에 보너스나 왕창 드려야겠네요. 그럼 어디 작업한 걸 한번 볼까요?"

"네. 대표님. 일전에 대표님이 지시하신 대로 2가지 버전으로 메이킹필름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는 코믹이고, 하나는 진중(鎭重)입니다. 각각의 용도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만.."

박상민의 말에 수빈이 간단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코믹은 미국용이고, 진중은 중국용입니다. 미국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동양 역사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별 관심도 없고요. 그런 사람들에게 괜히 무게 잡고 다가가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죠. 차라리 예전에 성룡(成龍)이 했던 것처럼 웃음 코드로 나가는 게 낫습니다. 하지만 중국 쪽은 오히려 반대죠. 자신들의 자랑스러운 유산(遺産)이라고 생각하는 무술과 무공이 등장하는 영화인데, 자국 사람도 아닌 다른 나라 감독이 만든 영화가 코믹 쪽으로 나가면 기분이 좋을 리가 없지 않겠어요."

"아.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둘 다 액션 연기 위주로 편집을 했습니다만.. 그것도 이유가 있는 건가요?"

"영화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가 한 액션 연기를 CG라고 착각해요. 그러니 마지막에라도 알려줘야죠. CG가 아니라 제가 직접 몸으로 실연(實演) 한 연기라는걸요. 그렇게 되면 영화를 본 관객들이 깜짝 놀라서, 조금이라도 더 입소문을 내고 다니지 않겠어요."

"그렇군요. 모든 게 다 흥행을 위한 포석이로군요."

수빈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흥행을 조금이라도 더 하기 위해서, 저 나름대로 이것저것 머리를 많이 굴리고 있는 중입니다. 일단 진중 버전의 메이킹필름부터 빨리 보죠. 지금 급한 게 진중 버전이니까요. 월요일에 중국으로 출장 갈 오상무 편으로 보내야 하니, 그것부터 먼저 봅시다."

"네. 알겠습니다."

수빈은 토요일 밤늦게까지 김팀장과 함께 메이킹필름 편집 작업과 리더 영상에 들어갈 음악 작업을 마무리하였다. 다음 날인 일요일도 영화사로 나간 수빈은, 중국 청톈과 협상할 항목들과 최종적으로 날인을 할 서류를 작성하느라 법무부 조부장과 함께 하루 종일 작업을 하였다.

일요일 저녁에서야 겨우 여유를 가지게 된 수빈은,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고 있었다.

'영화가 흥행 돌풍이라는데 지금까지 관객이 얼마나 들었으려나..'

한편 그 시각.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말의 끝을 즐기며 다음 주를 준비하고 있는 그때, 한 사람이 차를 몰고 YK 사옥으로 급히 달려가고 있었다.

다급한 마음에 평상시에는 절대 하지 않던 과속까지 해가며 YK 사옥에 도착한 김대리는, 차를 주차장에 빠르게 주차를 한 후 자신의 책상이 놓여 있는 홍보부로 달음박질을 하기 시작했다.

안 하던 뜀박질을 하느라 숨을 헐떡거리며, 김대리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분명히 어제 토요일 밤에 확인을 했을 때도 2~3프로 내에서 왔다 갔다 했었는데 말이야. 일요일 밤중에 매출이 10프로가 넘게 뛸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는데.. 그때 이사님이 봉투를 주시면서 그렇게 당부했었지. 최대한 빠르게 조치를 취해라고..'

이윽고 숨이 턱에 도달한 김대리가 홍보부 안으로 급히 뛰어 들어갔다. 자신의 책상이 놓여 있는 쪽으로 빠른 걸음으로 걸어간 김대리는 호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어 책상 서랍을 열은 후, 서랍 속에서 2라는 숫자가 적혀 있는 봉투를 하나 꺼냈다.

조심스러운 손길로 봉투를 개봉한 김대리는 안에 들어있는 속지를 읽어 보았다.

잠시 후 자신의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으로 영화 관련 프로그램들을 빠르게 살펴보며 김대리가 중얼거렸다.

"'출발 비디오 여행' 일요일 12시, '영화가 좋다' 토요일 오전 10시 40분, '접속 무비월드' 토요일 오전 11시.... 젠장. 영화 관련 프로그램들이 다들 주말에 편성된 프로라 시간이 안 맞는걸. 이번 주 방송들은 다 나간 상태고, 다음 주말이면 시간상 너무 늦어."

잠시 고민에 빠져 있던 김대리가 조용히 뇌까렸다.

"아니지. 강이사님이 적어 놓은 것처럼, 굳이 영화와 관련된 프로그램일 필요는 없는 거지. 그건 어디까지나 참고 사항일 뿐. 어차피 인터뷰가 나가는 게 주된 목적이잖아. 이미 '달빛'은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 나갈 때는 지났어."

김대리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사전에 미리 이야기도, 조율도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이번 인터뷰를 어떤 프로에서 받아줄 수 있을까? 별다른 조건 없이 인터뷰를 덥석 받아주고, 빠르게 방송까지 해줄 수 있는 프로가 뭔지를 고민해야 하는 게 맞는 거야.'

김대리가 다시 인터넷으로 방송 프로그램들을 열심히 뒤지기 시작했다. 빠른 손놀림으로 검색을 하던 김대리의 손이 갑자기 정지했다.

'바로 이거다. 인터뷰 시간도 충분하고, 시청률도 높은 편이고, 지금 상황에서 최대한 빠르게 전파를 탈수 있고, 거기에 방청객들의 반응까지도 아주 좋을 거야. 강이사의 잘생긴 얼굴이라면 100프로지. 틀림없어.'

김대리는 핸드폰에서 KBC 방송국의 유한수 CP의 전화번호를 찾아서 급히 전화를 걸었다. 몇 번 신호가 가더니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유CP님. 일요일 밤이라 쉬고 계실 텐데 이렇게 전화드려서 죄송합니다. 저 YK 홍보실의 김시후 팀장입니다."

[김시후 팀장? 이야. 대리에서 진급했나 보네. 축하해.]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월부터 팀장이라 아직 열흘 정도 남았지만, 그냥 저 혼자 팀장이라고 떠들고 다니고 있습니다."

[아무튼 축하해. 근데, 무슨 일이야? 일요일 밤에 전화까지 직접 다 주고?]

"제가 급하게 부탁드릴게 있어서요."

한편 그 시각.

수빈은 놀란 얼굴로 컴퓨터 모니터를 쳐다보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벌써 680만이라고? 이런 추세라면 내일 700만을 돌파하겠는걸. 이거 애초에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는데. 지금쯤 500만 정도를 예상했었는데.."

그때 컴퓨터 테이블에 올려져 있던 수빈의 핸드폰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진동을 하기 시작했다. 수빈은 모니터 화면에 눈을 둔 채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강이사님. 저 홍보부 김팀장입니다.]

"네. 이 밤에 어쩐 일로 전화를 주셨어요? 회사에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나요?"

[아뇨. 그건 아닙니다. 조금 전 이사님이 일전에 말씀하셨던 조건이 충족되어서, 제가 2번째 봉투를 개봉했습니다.]

김팀장의 말에 수빈이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네? 벌써요? 제 예상으로는 한두 주는 더 지나야 그나마 가능성이 있을 줄 알았는데.."

[네.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효과가 더 좋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강이사님?]

"네. 말씀하세요."

[지금도 복근이 탄탄하시죠?]

"네? 뭐요?"

[복근 말입니다. 복근. 왕(王)자로 쫙 빠진 이사님 복근요.]

"갑자기 그게 뭔 소리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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