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사 연예인이 되다-154화 (154/236)

#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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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은 오소라의 설명을 듣고 난 다음 되물었다.

"그러니까 일전에 회의 때 결정한 대로 넷플릭스에 제안을 한 뒤, 4일 만에 다시 연락을 받았다는 거죠?"

"네. 한국 시간으로 금요일, LA 현지 시간으로 따지면 목요일에 넷플릭스 담당자로부터 다시 들어와 달라는 연락을 받았어요."

"다시 만나니 담당자가 뭐라고 하던가요?"

"우리 쪽 제안을 그냥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다고 잘라 말하더군요. 그러면서 그쪽에서 두 가지 옵션을 제안했어요. 하나는 우리가 제시했던 50센트를 25센트로 낮춰달라는 제안이었죠. 나머지 하나는 선금을 22억으로 올려 주겠다고 하더군요. 자막 제작에 따른 경비를 여유 있게 계산한 거라고 하면서요."

오소라의 말에 수빈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냥 날로 먹겠다는 심본데.."

오소라가 그때 상황을 생각만 해도 열이 받는지, 갑자기 얼굴이 빨개지며 말했디.

"완전히 쌍도둑놈들이에요. 그래서 제가 그 자리에서 바로 쌍욕을 퍼부어 주었죠. 야이 개씨.."

그때 회계부 강부장이 오소라의 입을 급히 틀어막으며 말했다.

"그 뒤부터는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오상무가 단단히 화가 났는지, 담당자에게 욕설을 퍼부으면서 싸우려고 하길래 저랑 조부장이 간신히 뜯어말렸습니다. 다행히 욕은 한국어로 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고요. 그런 다음 제가 담당자에게 말했습니다. 지금 한 제안은 우리 선에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본국으로 돌아가서 보스에게 보고한 뒤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말입니다."

수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 대응하셨네요.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한 강부장을 같이 출장 보내기를 잘한 거 같아요. 오상무는 욱하는 성격이 좀 있어서.."

"일전에 회의 말미에 말씀하셨잖습니까. 절대 무리하지 말라고요. 다른 방법도 있으니 안되면 그냥 돌아와도 좋다고 하신 말씀이 기억나서, 일단 그렇게 정리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앉아서 듣고만 있던 박사장이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강대표. 넷플릭스 말고 생각해 놓은 다른 방법이 있는 건가?"

"있긴 있습니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미국에서는 라면과도 같은 회사라..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쉽네요."

박사장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라면? 뚱딴지같이 갑자기 그게 뭔 소리야?"

수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사장님. 영화 '봄날은 간다' 보셨습니까?"

"이영애랑 유지태가 나오는 영화 아닌가. 당연히 봤지."

"거기서 이영애가 유지태를 유혹해서, 자신의 집안으로 들어오게 만드는 유명한 대사가 있죠."

"'라면 먹고 갈래요' 아닌가. 그 정도야 나도 알지."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Netfilx and chill'이라고 말하는 게 '라면 먹고 갈래요'랑 똑같은 의미로 쓰입니다. 같이 집으로 들어가서 넷플릭스나 보면서 좋은 시간을 보내자는 뜻이죠. 그만큼 넷플릭스라는 회사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겁니다. 지금 현재로서는 넷플릭스를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은 없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그럼 손해를 좀 보더라도 넷플릭스와 다시 협상을 해서 계약을 체결해야 되지 않겠나? 22억이면 그렇게 적은 액수도 아닌 거 같은데.."

수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건 협상에 의한 계약이 아닙니다. 굴종(屈從)이죠. 노예 계약이랑 진배없습니다. 이번 한번 그런 방식으로 계약을 맺게 되면, 다음 번, 다다음 번에도 똑같은 일이 반복될 겁니다. 재주는 우리가 부리고, 돈은 넷플릭스가 먹는 거죠. 절대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럼 어떡하겠다는 건가?"

수빈이 아무 말없이 오른손 검지와 중지로 탁자를 가볍게 두들기기 시작했다. 반쯤 눈을 감은 수빈이 깊은 생각에 빠져들자, 다들 아무 말없이 조용히 지켜만 보고 있었다. 쥐 죽은 듯이 고요한 가운데 규칙적으로 들리던 톡톡 소리가 뚝 끊어졌다.

생각이 정리되었는지 수빈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런 후 좌중을 둘러보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넷플릭스를 뭉개버리죠."

뜬금없이 내지른 수빈의 허황된 발언에, 사람들이 입을 쩍 벌린 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수빈이 한마디 더 던졌다.

"일조일석(一朝一夕)에야 당연히 불가능하겠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넷플릭스 따위는 충분히 뭉개버릴 수 있습니다."

그제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린 박사장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갑자기 그게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리야. 미국 사정을 잘 모르는 나조차도, 넷플릭스 연 매출이 어마어마하다는 정도는 알고 있다고."

"연 매출이 아마 4조가 좀 넘을 겁니다."

수빈의 무덤덤한 태도에 박사장이 살짝 역정을 내었다.

"4조면.. BJ의 3배 정도 되는군. 그런 세계적인 대기업을 도대체 무슨 재주로 뭉개버린다는 건가? 말이 좀 되는 소리를 하게나."

수빈이 빙긋 웃으며 박사장을 달래는 듯 부드럽게 말했다.

"사장님. 넷플릭스도 처음에 '리드 헤스팅즈'가 창업했을 때는, 아주 조그마한 DVD 대여업체였을 뿐입니다. 그 당시 미국의 대여시장에는 절대적인 강자가 있었죠. '블록버스터'라고, 미국 내 점포 숫자만 6천 곳 가까이 되는 초대형 기업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넷플릭스에게 밀려서 2013년도에 파산했습니다. 우리라고 그렇게 못할 거 있습니까?"

박사장이 어이가 없는지 차마 말은 못하고 한숨만 길게 내쉬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수빈이 다시 말을 이었다.

"OTT 시장은 결국 콘텐츠 싸움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지금이야 넷플릭스가 저가 정책과 고객 맞춤 추천 서비스로 한발 앞서 나가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런 건 다른 업체들도 금방 모방해서 따라 할 수 있는 겁니다. 엄청난 기술력이 필요한 게 아니라는 거죠. 사람들이 선호하는 콘텐츠를 어느 업체가 더 많이 보유하고 있느냐, 결국은 그걸로 승부가 갈라질 겁니다. 현재 넷플릭스는 달러를 양동이째 쏟아부으며 콘텐츠 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들도 이미 알고 있는 겁니다. 콘텐츠야말로 알파이자 오메가라는 사실을 말이죠."

수빈은 오른손 검지로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자신감이 가득 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제가 남들과 비교해서 잘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게 3가지입니다. 첫째, 평균 이상의 흥행을 보장할 수 있는 영화를 찍을 수 있다. 제가 분석력이 제법 뛰어난 편이고, 거기에 고전 문학과 현대 문학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 장점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의 뼈대가 되는 질 높은 각본을, 아주 빠른 시간 내에 뽑아낼 자신이 절대적으로 있습니다."

수빈이 조금씩 열기를 띠어가는 목소리로 힘차게 말했다.

"둘째, 누구보다 빠르게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제가 암기력이 좋고, 머릿속으로 영상을 구체화하는 능력도 탁월합니다. 이번에 찍을 작품도 3개월이면 아마 다 찍을 겁니다. 그 말인즉슨, 기본적으로 1년에 영화 2편을, 만약 무리를 한다면 3편까지도 찍어 낼 수 있다는 겁니다. CG 작업이 많이 들어가는 액션 신들은 제가 직접 몸으로 다 때우면 되는 거니까요. 할리우드 같은 곳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스피드죠."

번개가 치듯 광채가 번쩍이는 눈빛으로 좌중을 훑어보며 수빈이 말을 이었다.

"셋째, 제가 제작한 영화를 세계 시장에 선보일 수 있도록, 하이 퀄리티의 자막을 제가 직접 제작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것도 짧은 시간 내에 다양한 언어로 말이죠."

수빈의 거침없는 발언에 압도당한 듯 다른 사람들이 이견을 제시하지 못할 때, 박사장만이 혀를 차며 반문했다.

"쯧.. 강대표. 젊은 패기는 알겠네만, 오버하지 말게나. 그 정도로 넷플릭스라는 공룡을 정말로 쓰러뜨릴 수 있을 거 같은가? 1년에 고작 영화 두세 편 찍어내는 걸로? 전 세계적으로 한 해에 제작되는 영화가 몇 편인 줄 알기나 하나? 내 귀에는 지금 강대표 혼자서 북 치고 장구치고 다하겠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그런 방식으로는 절대 불가능해."

수빈은 박사장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저 혼자서는 불가능하죠. 하지만 1위인 넷플릭스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다른 업체와 손을 잡으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원래 튼튼한 제방도 아주 조그마한 구멍으로 무너지고, 아주 작은 차이가 승패를 결정짓는 법입니다."

수빈이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을 하는 듯, 손가락으로 다시 탁자를 두드리며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1년에 2~3편이면 5년에 적어도 10편, 많으면 15편입니다. 만약에 제가 제작한 영화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흥행을 하고, 몇 작품들은 아주 대박을 쳤다고 가정을 하면 말입니다. 넷플릭스와 비슷한 역량을 가지고 있는 회사에 우리 영화가 독점적으로 공급이 된다면.. 절대 강자인 넷플릭스와 싸울 수 있는 날카로운 무기가 되어줄 겁니다. 요즘처럼 아시아에 많은 관심이 쏟아지는 시대라면, 미국 쪽 사람들도 제법 많이 시청해줄 가능성이 높아요. 제가 예측한 대로만 흘러간다면, 5년이면 넷플릭스를 꺾을 수 있습니다. 그 뒤부터는 우리 영화사가 세계 시장에서 순풍에 돛 단 배가 되어 쾌속질주를 할 수 있을 겁니다."

수빈의 거창한 계획에, 여태껏 계속 비토를 놓던 박사장도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었는지 피식 웃고야 말았다.

"좋아. 역시 청춘이야. 젊음이 좋긴 좋구먼. 호연지기(浩然之氣)가 아주 넘쳐 흘러. 내가 적극적으로 밀어줄 테니, 어디 한번 강대표 맘대로 해보게나. 실패 좀 한다고 뭐 대수겠는가."

박사장이 오른손으로 자신의 오른쪽 허벅지를 치며 말했다.

"넷플릭스를 짓뭉개 버리겠다 이거지.. 생각만 해도 피가 펄펄 끓는구먼. 강대표 때문에 오늘 밤 잠은 다 잤어. 그럼 넷플릭스를 잡기 위해 강대표가 생각해 놓은 업체가 따로 있는 건가?"

"일단 훌루쪽에 이번 영화를 공급할까 합니다."

"훌루? 그건 또 뭐 하는 회산가?"

"미국에서 넷플릭스 다음으로 시장 점유율이 높은 회사죠."

"그럼 훌루라는 회사도 넷플릭스 못지않은 대기업일 텐데, 그런 회사에서 이번 영화를 받아 준다고 하던가?"

"네. 이미 어느 정도 이야기는 되어 있습니다. 그런 다음.."

"그런 다음?"

"조만간 알리바바와 디즈니가 합작해서 설립하는 업체에 독점적으로 공급을 하게 될 거 같습니다. 아직 미정이기는 하지만요."

수빈의 말에 박사장이 혀를 내둘렀다.

"이것 참. 내 깜냥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구먼. 일전에 골든 하베스트도 모자라서 이제는 넷플릭스에 알리바바와 디즈니라니.. 강대표 입이 열리기만 하면 세계적인 기업 이름들이 마구마구 튀어나오니 원.. 생긴지 한 달밖에 안된 신생 영화사가 노는 스케일이 너무 큰 거 아닌가?"

박사장의 말에 수빈이 환한 얼굴로 밝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곧 죽어도 꿈은 크게 꿔야죠. 이런 걸 원하셔서 저랑 동업하신 거 아닙니까?"

박사장도 밝게 웃으며 말했다.

"맞네. 내가 원했던 걸 좀 넘어서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지금까지는 아주 좋아. 만족스럽네. 그럼 이제 뭐부터 하면 되는 건가?"

박사장의 질문에 수빈이 위엄이 넘치는 목소리로 오소라를 불렀다.

"오상무."

"네. 말씀하세요. 대표님."

"나대신 오상무가 중국 베이징 쪽으로 출장을 좀 가줘야겠습니다. 오늘이 1월 20일 토요일이잖아요. 달빛이 11일에 개봉했고 2주 후에 해외 개봉이 가능하니까, 날짜가 5일밖에 안 남았습니다. 이제는 시간적인 여유가 별로 없어요. 제가 중국 쪽이랑 약속을 잡아줄 테니, 월요일 오후쯤 출발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좀 해주세요."

"알겠어요. 제가 어떤 준비를 하면 될까요?"

"그건 내가 중국과 통화를 한 후에 따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대표님."

수빈이 조부장을 바라보았다.

"조부장."

"말씀하시죠. 대표님."

"중국 내 정식 개봉을 위해서 청톈하고 계약을 조속히 마무리 지어야 합니다. 그리고 훌루 쪽 계약도 미리미리 준비를 해야 할 겁니다. 조부장이 책임지고 강부장과 함께 준비를 해주세요. 자세한 계약 옵션들은 제가 따로 정리해서 넘겨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수빈은 한동안 직원들에게 여러 가지 사항들을 자세하게 지시한 후 회의를 끝마쳤다.

잠시 후 사장실에서 나온 수빈은 건너편에 위치한 자신의 방으로 이동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수빈은, 비서실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백성철을 발견했다. 장시간 기다리느라 고생했다며 수빈이 막 입을 떼려고 할 때, 백성철이 재빨리 오른손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대었다.

영문을 모르는 수빈이 입을 함구한 채 눈을 끔벅이며 의아해하자, 백성철이 검지로 이사실 문을 가리킨 다음 양손 검지를 뿔처럼 만들어 머리 위로 세웠다.

깜짝 놀란 수빈이 아무 말없이 입모양으로 '누구'라고 묻자, 백성철 역시 말없이 입모양으로 대답을 해주었다.

그 순간 수빈은 재빠르게 온몸에서 힘을 빼고 근육을 이완시켜 탈력(脫力) 상태로 접어들었다. 그리고선 부드럽게 문워크를 시전하여, 조금 전 자신이 들어왔던 문쪽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그때 사장실 문이 벌컥 열리며 날카로운 여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강이사님! 지금 뭐 하시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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