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사 연예인이 되다-153화 (153/236)

#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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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이 순대집의 제법 넓은 방. 점심시간이라 아직 회식 손님들이 없는지, 제작진들은 아바이 순대집의 가장 큰 방을 독차지했다. 박수종 영상팀장이 사람들에게 설명을 하는 중이었다.

"오늘부로 CF 제작이 다 끝났습니다. 강대표가 짠 타임 테이블을 보시면 알겠지만, 다음 주 대본 리딩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영화 제작에 들어갑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 제작진들끼리 다 같이 식사라도 하면서, 현장에서의 가이드라인을 한번 정해보자는 취지로 제가 여러분들을 보자고 청했습니다."

사각 탁자에 빙 둘러앉은 사람들과 한 명 한 명 눈을 마주친 후, 박수종 팀장이 말을 이었다.

"CF 촬영을 하면서 손발을 한번 맞춰봤으니, 다들 느낀 점들이 있을 겁니다. 괜히 나중에 영화 제작 현장에서 티격태격 싸우지들 마시고, 각 파트별 건의사항이나 협력사항 아니면 주의사항도 상관없으니 지금 이 자리에서 허심탄회하게 말을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박팀장의 말이 끝나고 아무도 입을 열지 않자, 일행 중에서 가장 연장자인 박형석 음향팀장이 말했다.

"우리들 중에 강대표랑 가장 친한 박감독 앞이라서 다들 입조심하는 모양인데.. 그럼 강대표의 열렬한 지지자인 박감독부터 말을 한번 해보게나. 제작진들에게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박형석의 말에 박수종이 잠시 멈칫하더니 잘 됐다는 듯 강한 어조로 말했다.

"제가 분야도 다른 사람들에게 뭐라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들 능력 있는 분들로 모셨으니, 알아서 잘 하실 거라 봅니다.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건 딱 한 가지입니다. 강대표 나이가 아직 어립니다. 그렇다고 무시하는 사람이 있다면, 제가 결단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우리가 몸을 담고 있는 영화사의 대표고, 우리가 같이 찍을 영화의 총감독입니다. 제대로 대우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박수종의 말이 끝나자, 박형석이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보기에는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그럴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럴 거면 처음부터 아예 계약 자체를 안 했겠지. 그것보다.."

박형석이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용케도 이런 멤버들로 모았군. 능력들을 보면 거의 이 바닥에서 드림팀 수준인데.. 강대표가 운이 좋은 걸."

그때 이성호 소품팀장이 바로 반박을 하고 나섰다.

"아니죠. 박팀장님이 지금 하신 그 말씀은 전제 자체가 잘못된 거라 생각합니다."

박형석이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여태껏 이런 조합을 어떤 감독도, 어떤 제작사도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걸 절대 잊으시면 안 됩니다. 까놓고 말해서 제가 만약에 감독이라면, 전 지금 여기 앉아 있는 멤버들과 같이 영화 안 찍습니다. 솔직히 다들 아시잖습니까?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다들 하자 있는 상품이란 걸 말입니다. 영화를 거하게 말아먹은 전력도 있고, 툭하면 맘에 안 든다고 감독이랑 싸우고, 태업하고, 때려 부수고.. 다들 자기 분야에서 전문가로 불리기는 하지만, 성격이 모나고 성질이 더럽기로 유명한 사람들입니다. 여기에서 제가 가장 나이가 어리긴 하지만, 저도 몇 년을 이 바닥에서 굴러먹다 보니 들리는 소문들이 있어서 잘 압니다."

흥분하여 말을 하던 이성호가 잠시 호흡을 다잡더니 말을 이었다.

"전 요즘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차에서 '윤종신'의 '환생'을 듣습니다. 강대표님을 만난 이후로 내 모든 게 다 달라졌으니까요. 하루하루가 즐겁고 기뻐서 죽을 것만 같습니다. 지금 이게 꿈이라면 깨지 말기를 간절히 빌고 있단 말입니다. 우리가 드림팀이 아니라.. 우리가 꿈에 그리던 감독을 만난 거라고 전 생각하고 있습니다. 쥐뿔도 모르면서 감독이니 투자자니 영화사 대표니 하면서.. 유세 떠는 인간들이 이 바닥에 얼마나 득실득실한지 다들 잘 아시잖습니까? 하지만 강대표님은 다릅니다. 능력 있고, 감성 좋고, 디렉션 확실하고, 거기에 부하 직원들 말을 경청하죠. 욕도 안 하죠. 폭력도 휘두르지 않습니다. 이런 감독을 살아생전에 언제 다시 만나보겠습니까?"

말없이 앉아 있던 최진후 조명팀장이 한마디 거들었다.

"거기에 돈까지 많이 주지."

박상민 지원팀장이 덩달아 거들었다.

"얼굴도 잘생겼고, 몸도 잘빠졌습니다."

그 순간 사람들의 이목이 동시에 자신에게 집중되자, 박상민이 급히 덧붙였다.

"참고로 전 절대로 게이가 아닙니다."

한바탕 웃음바다가 지나간 뒤, 박수종 영상팀장이 좌중을 둘러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전 우리가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 있다는 것. 그 자체가 강대표의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강대표니까, 강대표라서, 강대표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강대표의 첫 번째 작품인 이번 영화를 정말로 잘 만들고 싶습니다. 좋은 영화를 찍기 위해서라면 그 어떠한 것도 좋습니다. 나중에 제작 현장에서 뒤늦게 부랴부랴 말씀하지 마시고, 지금 이 자리에서 부담 없이 의견을 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손을 들며 하나둘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한편 그 시각.

인천 공항 주차장 밴 안에 앉아 있던 수빈은, 짐을 트렁크에 싣고 가장 먼저 차 안으로 들어오는 강과장을 보며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강과장님 얼굴이 왜 이래요? 못 본 열흘 사이에 10년은 더 늙은것 같습니다만.. 미국 출장이 그렇게 힘들었습니까?"

"후우.."

긴 한숨을 내쉰 강과장이 비탄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미국에 출장을 갔다 온 건지 아니면 신혼부부 가이드로 따라나섰다 돌아온 건지 구별이 안됩니다. 둘이서 껌딱지처럼 어찌나 딱 붙어 다니던지.. 한 쌍의 꼴뚜기 같더군요. 배알이 꼴려서 말이죠."

수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냅두세요. 지옥의 불구덩이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가겠다는데 굳이 말릴 필요 있습니까? 우린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고요. 괜히 뭐라 했다가 나중에 잘못되기라도 하면, 죄 없는 우리에게 덤터기를 씌울지도 모릅니다."

그때 차 문이 벌컥 열리면서 오소라와 조대리가 싱글벙글 웃으며 차 안으로 들어왔다. 수빈이 두 사람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자, 운전석에 착석한 백성철이 뒤를 보며 물었다.

"대표님. YK로 이동하면 되겠습니까?"

"그래요. YK 사옥으로 가주세요. 어차피 회의를 하려면 박사장님과 같이 해야 되니까요."

오소라가 물었다.

"그럼 출장 업무 보고를 지금 바로 안 하는 건가요?"

"네. 그랬다간 자기 빼놓고 우리끼리 했다고 박사장님 또 삐집니다. 지금 차 안에서 해봐야 어차피 YK에 가면 또 해야 하니까, 가는 동안이라도 좀 쉬세요. 장거리 비행하느라 힘들었을 테니.. 그리고.."

말을 하다 수빈은 품에서 조직도가 그려진 종이 하나를 꺼내어 내밀었다.

"영화사 조직돕니다. 제가 임의로 만들었으니 가는 동안 보시면서 참고하세요."

잠시 후 조직도를 들여다보던 오소라가 입을 열었다.

"제작, 회계, 법무, 총무, 4개로 아주 심플하네요. 거기에 별도의 감사실이 있고요."

"그렇죠. 지금 당장은 그 이상의 조직은 필요 없으니까요. 회사 덩치가 커지면 인사, 홍보, 배급부 등이 더 늘어나겠죠. 오소라씨가 상무이사겸 총무부장 겸직이고, 강과장님이 회계부장, 조대리님이 법무부장입니다. 그리고 기존 벨 스튜디오에 있던 직원들 7명이 남아 있습니다. 각자 원하는 부서와 적성들을 살펴보고, 오상무가 적절히 분배를 하시면 될 겁니다."

"제가 한 명씩 면담을 한 후에 책임지고 처리할게요."

오상무의 말에 수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게 해주시고, 제작부는 제가 직접 관리할 겁니다. 전체적인 구조를 보면, 부밑에 팀이 있고 팀밑에 실이 있는 구조입니다. 예를 들며, 제작부 밑에 영상팀 그 밑에 편집실, CG실 이런 식으로 갈라져 나갈 겁니다."

"네. 대표님. 잘 알겠어요."

이윽고 부지런히 달린 차가 YK에 도착을 했고, 일행들은 사장실로 올라갔다.

잠시 후 박사장이 흡족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 일행들과 같이 오소라 상무의 발표를 지켜보고 있었다.

"미국에 도착해서 넷플릭스와 접촉을 하면서 가장 먼저 느낀 건, 그쪽도 나름의 파벌이 있고 서로 간에 견제가 심하다는 거예요."

수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1년에 20프로가 목이 잘리는 회사니 당연한 일이긴 한데.. 생각보다 많이 심한가 봐요?"

"아주 심해요. 다들 아시다시피 넷플릭스의 본사가 2곳에 있죠. 실리콘밸리 근처 로스 가토스에 본사가 있고, 할리우드가 있는 LA에 또 하나의 본사가 있어요. 근데 저희가.."

그때 박사장이 손을 들어 물었다.

"본사가 두 개나 된다고? 난 잘 모르는데.. 설명 좀 해주게나."

"네. 감사님. 간략히 말씀드리면, 로스 가토스에 위치한 본사에서는 넷플릭스에 가입한 사람들에게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사람들이 작품을 선택하는 취향을 면밀히 분석해서 그들이 좋아할 만한 다른 작품을 추천하는 일을 해요. LA에 있는 본사에서는 흥행할만한 좋은 작품들을 찾아서 제작비를 투자하고, 직접 제작까지 하는 콘텐츠 사업을 주로 하고 있어요. 그 유명한 '하우스 오브 카드'를 제작한 곳이죠."

수빈이 보충 설명을 해주었다.

"쉽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로스 가토스에 있는 본사는 빅데이터를 이용한 추천 프로그램을 연구하는 IT 업체로 보시면 되고, LA에 있는 본사는 영화나 드라마를 직접 만드는 제작사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렇군. 본사가 2개라니.. 세계적인 회사라 덩치가 크긴 큰 모양이야."

수빈이 오소라에게 계속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두 곳간에 경쟁이 굉장히 치열합니다. 저희가 막상 미국에 도착해서 살펴보니, 큰 문제가 있었어요. 봉감독님이 만남을 주선했던 사람이 LA 본사에 있는 분이라는 거예요. 봉감독님의 '옹자' 영화 제작에 참여했던 관련자니 당연한 이야기겠죠."

"그렇겠죠. 하지만 우리는 이미 완성된 영화를 들고 간 거라, 로스 가토스로 들고 가는 게 더 맞는 거죠."

"네. 맞아요. 하지만 무턱대고 로스 가토스로 영화를 들고 갈 수는 없었어요."

동의한다는 듯 수빈이 맞장구를 쳐줬다.

"만나 줄리가 없을 테니까요."

수빈의 말에 오소라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어갔다.

"봉감독님이 소개해 주신 LA 본사에 있는 '로빈 콕'이라는 분과 먼저 협의를 했어요. 우리 쪽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더니, 자신들 쪽에서 먼저 검토를 한번 해보겠다고 했어요. 그런 후에 작품이 충분히 추천할만하다는 결론이 나오면, 그때 로스 가토스 담당자와 연결을 해주기로 약속하셨죠."

"제가 듣기로는 로스 가토스에 있는 담당자와 미팅을 가진 걸로 들었는데요."

오소라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어머. 제가 그런 내용은 보고를 전혀 안 드렸는데 어떻게 아셨나요?"

수빈이 고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저도 나름 정보를 받는 소스가 있습니다."

"역시 대단하신 우리 대표님. 아무튼 로빈이 검토를 끝내는 데만 이틀이 넘게 걸렸어요. 그런 후 우리를 불러서 로스 가토스에 있는 담당자에게 연결을 해주셨어요. 미국으로 넘어간지 사흘 만에 제대로 된 담당자를 만날 수 있게 된 거죠. 그래서 세 명이 함께 로스 가토스로 넘어갔는데.. 참고로 로스 가토스에 있는 회의실이나 세미나 실에는 '닥터 지바고', '어벤저스', '글래디에이터'처럼 영화 제목이 붙어 있어요. 그런데 저희가 로스 가토스로 찾아갔을 때, 막상 안내를 받아 들어간 회의실은 '토토로'라는 1층에 있는 아주 조그마한 회의실이었어요. 그리고 거기에서 1시간을 넘게 기다린 후에야 '마이클 그라샴'이라는 담당자와 미팅을 가질 수 있게 되었죠. 하지만.."

"하지만?"

"처음부터 분위기가 너무 안 좋았어요. 왜 그런가 생각을 해보니, 우리가 LA를 거쳐서 왔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요. 설사 우리가 들고 간 영화의 반응이 좋아서 매출액 상승에 도움이 되더라도, 실적 자체는 LA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자신에게는 별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시큰둥했던 것 같아요. 양쪽이 치열하게 경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냉대를 당한 걸로 보시면 될 거예요."

"경쟁자에게 이득이 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은 거겠죠. 다들 고생이 많았겠네요. 그래서 그다음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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