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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연예인이 되다-146화 (146/236)

#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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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은 상대방과 긴 시간 동안 여러 차례 통화를 한끝에 마침내 약속을 잡고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일정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우커보 회장이 베이징에 있지 않고 홍콩에 있단 말이지. 사업 기반이 베이징 쪽에 있다고 들었는데, 휴가철도 아닌 지금 홍콩에 있다라.. 올겨울에는 중국 본토도 무척이나 추운가 보군. 하기야 그쪽 공기가 워낙 오염이 심해서 사람이 살만한 곳이 못되긴 하지.'

수빈은 항공사에 전화를 걸어 비행기 표를 예매한 다음, 간단하게 짐을 꾸리기 위해서 캐리어가 있는 옷방으로 건너가며 중얼거렸다.

"청톈 엔터테인먼트의 회장이 내 그림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는 전해 들었지만, 이렇게 쉽게 만날 수 있을 거라곤 전혀 예상을 못했는데.. 뭐 아무렴 어때.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지."

다음 날 오전 일찍 수빈은 인천 공항으로 출발했다. 사람들이 알아보기 힘들게 얼굴을 꽁꽁 싸맨 수빈은,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을 최대한 피해 가며 9시 비행기편으로 홍콩으로 출발했다. 12시 20분경 홍콩 국제공항에 도착한 수빈은 간단하게 입국 수속을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

출구 쪽의 환영객들을 살펴보니, 일전에 점심을 같이하고 어젯밤 긴 시간을 통화했던 청톈 엔터테인먼트 동아시아 지부장인 마오창이 약속대로 자신을 마중 나와 있었다. 간간이 자신을 알아보는 홍콩 팬들을 피해 빠르게 공항을 빠져나와 차에 올라탄 수빈은 그제야 마오창과 제대로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谢谢您来接我向空港.(공항까지 이렇게 마중을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래부터는 중국어로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당연합니다. 손님을 초대했으면 마중을 나가야죠."

"그때 뵀을 때 제가 너무 바빠서 제대로 이야기도 못 나눴었는데, 이렇게 우커보 회장님과의 만남을 주선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행히 회장님께서 휴식차 홍콩에 머무르고 계셔서 비교적 약속을 쉽게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제가 수빈씨에게 그림을 부탁드렸잖습니까?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그려주시니 오히려 제가 더 감사드려야죠."

"회장님께서 제 그림을 좋아해 주시니 영광입니다. 일전 콘티북 경매 때도 고가에 구입을 해주시고.. 이번에 그린 그림이 마음에 드실지 걱정입니다."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겁니다. 지금 처음 밝힙니다만.. 회장님께서 수빈씨가 그린 그림은 가격에 상관없이 사 모으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알아봤더니 불행히도 시중에 돌아다니고 있는 그림이 한 점도 없더군요."

"아무래도 제가 전문 화가가 아니라서 그린 그림이 몇 점 되지 않습니다. 그나마 그것들도 다 지인들에게 선물로 준 상태고요."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그림을 그려서 이렇게 찾아와주시니 당연히 회장님께서도 기뻐하실 겁니다. 그런 염려는 하지 마시고 장시간 비행에 피곤하실 텐데 가는 동안이라도 좀 쉬시지요."

"알겠습니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수빈은 꼬불꼬불한 산길을 빠른 속도로 내달리는 최고급 세단 안에서 바깥 풍경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우커보 회장이 내 그림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생각 외로 일이 너무 쉽게 풀리고 있어.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건가..'

수빈이 고민에 빠져 있는 동안 차는 산길을 넘어 부호들의 별장이 모여 있다는 리펄스 베이 쪽으로 진입했고, 잠시 후 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위치에 우뚝 선 웅장한 대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화려한 응접실에서 마오창과 함께 우커보 회장을 기다리던 수빈은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리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윽고 응접실 문이 열리더니 덩치가 산만한 두 명의 경호원에게 엄중한 호위를 받으며, 반백의 머리를 한 50대 후반의 남자가 응접실 안으로 들어섰다. 사진으로만 보던 청톈(橙天:Orange Sky) 엔터테인먼트의 우커보 회장이었다.

잠시 후 형식적인 인사말이 오고 간 후 수빈은 본론을 꺼내기 위해 캐리어에서 족자 형태로 돌돌 말려있는 그림을 꺼내었다. 수빈이 말려있던 그림을 활짝 펼치자, 석류를 먹으려고 드는 박쥐가 생생하게 그려진 멋진 그림이 모습을 드러났다.

"얼마 뒤 중국의 최대 명절인 춘절이라 박쥐와 석류 그림을 그려왔습니다. 예로부터 석류는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고, 박쥐(蝙)는 복(福)과 발음이 같아서 복을 불러온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회장님의 장수와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서 수복강녕(壽福康寧)이라고 사방 귀퉁이에 적어봤습니다.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습니다."

수빈의 그림 설명에 우커보 회장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좋군. 마음에 드는군. 아주 모던한 스타일의 그림이라 내 마음에 쏙 들어."

수빈도 덩달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회장님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겉으로는 편안한 얼굴로 대꾸하면서. 수빈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당신이 내 그림을 좋아한다고? 다 개뻥이었군. 이 양반은 그림을 전혀 볼 줄 모르는 사람이야. 모던이 라틴어로 새롭다는 뜻의 모데르나에서 나왔다는 걸 알기나 하려나. 몇 백 년 전의 고전적인 기법으로 그린 그림을 모던하다고 평을 해? 후.. 어째 일이 너무 쉽게 풀린다고 했다.'

그때 우커보 회장이 수빈에게 물었다.

"이런 좋은 그림을 받았으니 적절한 대가를 치르는 게 예의겠지. 얼마를 원하는가?"

회장의 말에 수빈은 자세를 공손하게 취했다.

'뭐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거지. 당신이 내 그림을 좋아하든 말든 상관없어.'

수빈은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회장님께 감히 그림값을 돈으로 받을 생각은 없습니다. 일전 경매 때 지불하신 돈도 지나치게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어허. 돈은 필요 없다? 그러면 다른 걸 원하시는 건가?"

"그렇습니다. 부탁을 하나 드릴까 합니다."

"어떤 부탁인가?"

회장의 물음에 대답을 하려는 그 순간, 수빈의 예민한 기감에 새로운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응접실 쪽으로 다가오는 게 잡혔다. 세 명으로 짐작되는 발걸음 소리에 수빈은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두 명의 발걸음은 무겁고 둔중한 게 경호원들 같은데, 한 명의 발걸음이 너무 가벼워. 느낌상 여자인 것 같긴 하지만.. 아무리 여자라고 해도 일반인 치고는 지나치게 가벼운데.'

수빈이 갑자기 응접실 문쪽을 바라보자 우커보 회장과 마오창 지부장도 덩달아 문쪽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두 명의 경호원에게 밀착 경호를 받으며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응접실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그 순간 수빈은 여성을 바라보며 충격을 받고 있었다.

'이 익숙한 기운은 혼원심공(混元心功)의 기운. 혼원심공으로 소주천을 완성하고, 음양일기공(陰陽一氣功)으로 대주천을 완성하게 되면, 하북 팽가 비전의 벽력신공(霹靂神功)을 익힐 수 있게 되는 거지. 오대세가 중 하나인 하북 팽가의 가장 기본적인 심공을 익히고 있는 여인이라.. 하아. 이제야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군.'

그때 여성도 경악에 찬 눈빛으로 수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여인을 바라보며 우커보 회장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부인께서 여기까지 어인 발걸음이시오? 수빈군이 그린 그림을 그리도 좋아하더니 못 참고 직접 만나려고 온 모양이시오. 이리 와서 앉으시구려."

자리에 동석한 여인이 수빈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우커보 회장의 안사람 되는 팽연숙(彭淵淑)이라고 해요. 만나서 반가워요."

"이렇게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강수빈이라고 합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모두 물리치고 독대를 하고 있었다. 경호원 마저 응접실 밖으로 물린 팽연숙이 수빈을 매서운 눈빛으로 계속해서 살펴보고 있었다. 느긋한 표정으로 앉아서 팽연숙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수빈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제 겨우 정신 끝자락에 접어들었군. 아직 세맥도 못 들어간 상태야. 하기야 지금처럼 기가 희박한 세상에서는 저 정도도 대단한 경지지. 하지만 그런 경지로는 나를 백날을 쳐다보고 있어도 파악을 못할 텐데..'

수빈이 지루함을 느낄 때쯤 포기를 했는지 여성이 입을 열었다.

"한국 분이시라고요?"

"네. 토종 한국인이죠. 부모님 두 분다 한국 분이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내공을 익혔냐고요? 어렸을 때 우연히 스승님을 만나서 전수를 받았습니다."

"그 스승 분이 누구시죠?"

"저도 정확히는 잘 모릅니다. 정체를 알려주시지 않으셨으니까요. 그리고 이미 세상을 하직하셨습니다."

"그런가요? 아무튼 놀라운 경지네요. 제가 전혀 파악을 못할 수준이라니.."

"저도 질문을 좀 드리겠습니다. 성이 팽씨 이신거 보니 등천(橙天) 그러니까 오렌지 스카이 엔터테인먼트가 하북 팽가의 사업체가 맞습니까?"

수빈의 질문에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팽가가 운영하는 여러 사업체 중 하나죠. 제가 책임을 맡고 있어요. 중국 공산당과의 직접적인 마찰을 피하기 위해 팽가가 직접 앞에 나서고 있지 않을 뿐이죠."

"이제야 이해가 되는군요. 등천의 귤나무 등(橙)이 이제 보니 팽(彭)을 뜻하는 거였군요. 성씨에 콩 두(豆)가 들어가 있는 세가는 하북 팽가가 유일하니까요."

"다른 세가들도 다들 비슷한 방식을 취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중국 안에서 공산당을 이길수 있는 세력은 그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총구(銃口) 앞에서는 제아무리 날고기는 내가고수라고 하더라도 무의미하죠."

"그렇군요. 제가 그린 콘티북 그림을 우연히 발견하시고선 경매에 참가하셨나 봅니다."

"네. 순전히 우연이었죠. 딸애가 수빈씨 팬이에요. 얼마 전 중국에서 방영된 '특별수사본부' 드라마를 보고 팬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딸애 방에 갔다가, 딸이 한국에서 열리는 콘티북 경매 사이트에 들어가 있는 걸 발견했어요. 첨에는 그림을 보고 무심코 넘겼는데.. 자세히 보다 보니 대단한 내가고수의 작품 같다는 느낌을 받았죠. 그때부터 관심을 가지게 된거에요."

수빈이 이제야 모든 걸 파악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자 여성이 물었다.

"이젠 제가 물어보죠. 내공의 뿌리가 어디 가문이죠?"

"제가 스승님에게 듣기론 제갈 세가 쪽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전 정화(鄭和) 대장군의 대항해에 따라다녔던 제갈 세가의 방계(傍系) 쪽 분이 조상이시라고 하시더군요. 저도 더 이상 자세히는 모릅니다."

"그렇군요. 현재 제갈 세가도 우리랑 비슷한 방법으로 중국 내에 생존해 있을 건데.. 연락을 취하거나 찾으려고 한 적은 없었나요?"

여성의 질문에 수빈이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 성씨는 제갈이 아니라 강씨입니다. 현재 한국인이고, 앞으로도 영원히 한국인일 겁니다. 스승님께서도 그러길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제갈 세가와 인연을 맺게 되면 음으로 양으로 그쪽에게 많은 도움이 될 텐데요."

"전 그런 도움을 바라지도 원하지도 않습니다. 제 능력으로 성공하고 싶을 뿐이죠. 오늘도 일 때문에 협의를 하기 위해서 온 겁니다. 이제 그런 쪽의 이야기는 그만하고 싶군요."

"흐음. 본인이 싫다면야 어쩔 수 없는 노릇이겠죠. 일단은 넘어가죠. 그럼 좋은 그림을 선물 받았으니.. 어디 한번 들어나 보죠. 수빈씨가 무슨 일로 바쁜 시간을 쪼개어 홍콩까지 직접 오셨는지 말이죠."

이제야 제대로 된 사업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자 수빈은 환하게 웃으며 말을 꺼냈다.

"오렌지 스카이 골든 하베스트(橙天嘉禾娛樂集團有限公司)가 홍콩의 골든 하베스트사를 인수한지 벌써 8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한국의 영화 팬분들 중 둥둥둥 하는 북소리에 맞춰 네 개의 직사각형 로고가 스크린에 떠오를 때 설렘과 기대감을 느끼지 않았던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수빈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여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는 그랬겠죠."

"그렇습니다. 이소룡을 시작으로 성룡, 홍금보 그리고 원표 삼인방이 활약을 하던 홍콩 영화의 황금기 그리고 홍콩 느와르의 붐을 일으킨 주윤발의 영웅본색을 모르는 한국인은 없다고 봐도 무관할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청톈 엔터테인먼트에서 예전의 작품들을 리메이크한 것 말고는 한국인에게 인기를 끈 작품이 있습니까?"

"당연히 없겠죠. 청톈이 골든 하베스트를 인수한 후, 그동안 영화 제작보다는 중국 내의 영화 배급과 체인망 확충에 전력투구를 했으니까요. 워낙 땅덩어리가 넓다 보니 이제 겨우 체인망이 완성된 상태에요. 그러다 보니 본격적인 영화 제작에 뛰어든지는 아직 얼마 되지 않아요. 영화가 한두 달에 몇 편씩 쭉쭉 뽑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제가 온 겁니다. 제가 지금..."

청톈 엔터테인먼트의 실질적 지배자인 팽연숙을 설득하기 위해, 수빈의 목소리가 점점 더 열기를 띠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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