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사 연예인이 되다-144화 (144/236)

#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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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상영되자 수빈은 시사회에 참석한 관객들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 영화는 크게 보면 5파트로 구성돼. 지금은 첫 번째 서론 부분이지. 선화 옹주가 궁중 암투로 인해 궁궐에서 쫓겨나오게 되면서 자신을 지켜줄 호위무사를 구하지만, 이미 끈 떨어진 연 같은 선화 옹주의 호위무사로 아무도 나서지 않는 상황..'

수빈은 자신의 몸이 너무 뻣뻣하게 경직되어 있다는 생각에 허리를 몇 번 살짝 굽혔다 폈다 하며 생각을 이어갔다.

'그때 늙고 충성심 강한 무사 김동수가 선화 옹주 어머니와의 연을 생각해서 발 벗고 나서는 부분까지를 서론이라고 볼 수 있어. 하지만 여기까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아. 잔잔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이니까..'

수빈은 영화가 조금씩 진행되면서 관객들이 영화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조금씩 빠져들어가는 걸 지켜보았다. 특히 무사 김동수의 연기를 보면서 관객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는걸 보았다.

'역시 성강호. 달리 천만 배우가 아니지. 정세경씨도 나름 열심히 했고..'

영화가 진행되면서 수빈은 조금씩 텐션이 올라가가 시작했다.

'여기야. 진정한 영화의 재미가 시작되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지. 육체적으로 이미 노쇠(老衰)한 김동수가 자신을 대신해서 선화 옹주를 지켜줄 수 있는 젊은 무사들을 찾아다니는 부분. 마치 삼총사나 서유기처럼 앞으로 진행될 모험을 같이할 동료를 구하러 다니는 게 이번 영화의 첫 번째 흥행 포인트야.'

수빈은 서서히 자신을 덮쳐오는 긴장감에 침을 꿀떡 삼켰다.

'이때 등장하는 캐릭터가 관객들의 눈길과 관심을 확 잡아끌어야만 해.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에 동참하기로 결정하는 좌검과 우검을 관중들이 흥미롭게 받아들여야만 어느 정도 흥행을 보장할 수 있어. 편집할 때 힘을 많이 준 부분인데 과연..'

수빈은 관객들의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 내공을 귀로 돌려 쫑긋 세우고 있었다. 그러다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관객들의 환호성에 황급히 내공을 풀었다.

- 꺄악. 배우들 몸 좀 봐.

- 수빈 오빠. 무술 짱 잘한다.

- 국산치고는 CG가 대박인데.

- 우검 송해섭 개멋있다.

- 좌검 우검 둘 다 쪈다.

관객들의 열렬한 반응에 수빈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한편 속으로 투덜거렸다.

'반응이 좋은 거 보니 한시름 놨군. 근데 CG가 아닌데 자꾸 CG라고 그러네..'

시간이 흘러 수빈은 편안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함께 뭉친 일행이 즐겁게 모험을 즐기는 부분. 사람들에게 지금의 즐거움과 흥겨움이 마치 영원할 것만 같고, 영화가 해피 엔딩이 될 거 같다는 기대감을 잔뜩 안겨 줘야만 해. 그래야만 다음에 닥쳐오는 위기가 더욱 애타고 안타깝게 느껴지는 거지.'

관객들이 우검과 좌검의 좌충우돌과 김동수와의 티격태격 그리고 선화 옹주와의 묘한 연적 관계에 즐겁게 웃고 떠들며 영화를 즐기고 있는 동안, 수빈도 편안한 마음으로 관객들과 함께 영화를 즐겼다.

잠시 후 수빈은 바짝 긴장한 상태로 심호흡을 하며, 최대한 정신을 집중하여 관객들의 반응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크라이막스! 닥치고 울게 만들어야만 해.. 추적자들에 의해 우검이 장렬하게 산화하고, 좌검마저 허무하게 쓰러지는 상황에서 관객들이 울지 않으면 이 영화는 그냥 망했다고 봐도 무방해.'

수빈이 초조함에 손가락으로 의자 팔걸이를 빠른 속도로 톡톡 두드리고 있을 때, 갑자기 어디서 누군가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그 소리가 신호탄인 양 관객석에서 울음소리와 훌쩍이는 소리가 도미노처럼 연달아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수빈은 의자 손잡이를 두들기던 손가락을 멈추고 허리를 뒤로 젖히며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아. 성공이로군. 이전 시사회 때는 다들 슬퍼하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우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지. 이제 흥행은 걱정 안 해도 될 거 같군..'

- 팽. 패앵

그때 갑자기 옆에서 들려오는 맹렬한 소리에 수빈은 고개를 획 돌렸다. 옆자리에 앉은 박사장이 눈가가 벌게져서 손수건으로 계속해서 코를 거세게 풀고 있었다. 수빈은 이마를 살짝 찌푸렸다.

'이 양반이 나잇살 먹고 옆에서 지금 뭐 하는 거야..'

이윽고 영화가 끝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수빈은 느긋한 자세로 앉아서 영화를 관람하고 있었다.

'결말이지. 별로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야. 선화 옹주가 김동수와 함께 무사히 탈출해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도망치면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안타깝게 희생된 좌검과 우검의 복수를 다짐하는 장면이지. 등장인물들이 깡그리 다 죽어버리면 영화가 너무 다크 해져. 해피 엔딩을 좋아하는 한국 관객들 특성상 희망을 안겨주는 게 맞아. 뭐 흥행에 성공하면 장감독이 속편을 찍을 수 있는 떡밥이 될 수도 있을 테고..'

마침내 영화가 끝났다. 관객들의 침묵 속에 스크린으로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있을 때, 수빈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확실히 이전의 시사회 때 보다 관객들이 영화에서 빠져나오는 게 늦군. 몰입을 더 심하게 했다는 이야기지.'

수빈은 발로 옆에 앉은 박사장의 발을 툭툭 치며 힘차게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수빈의 신호를 받은 박사장도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박수를 치기 시작하였다. 그때야 관객들이 영화에서 빠져나와 덩달아 다 같이 박수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나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 영화 죽인다. 짱 재밌다!

- 내가 본 사극 중에 최고다.

- 개멋있다. 속편 가즈아!

- 대박! 대박! 대박!

하나둘 불이 켜지며 마이크를 든 장감독이 환한 얼굴에 입이 귀에 걸린 채로 시사회장에 참석한 사람들 앞으로 걸어 나왔다.

- 사르륵. 사르륵.

고요한 정적 속에 종이 넘어가는 소리만이 간간이 들리고 있는 회의실.

수빈은 예리한 눈빛으로 시사회에 참석했던 관객들의 감상평을 찬찬히 읽어보고 있었다. 잠시 후 수빈은 고개를 들고 회의실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장감독이 황급히 입을 열었다.

"어떤가? 강감독. 대박이지?"

수빈은 들고 있던 메모지 뭉치를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감상평이 대체적으로 나쁘지 않네요. 전반적으로 이런 분위기로 흘러간다면, 전문 비평가라는 사람들도 악의적으로 쓰기에는 제법 부담이 될 겁니다. 다들 제가 편집을 하면서 의도했던 대로 별다른 이질감을 느끼지 않고 재미있게 잘 보셨나 봅니다."

"강감독. 사람 속타게 그렇게 두리뭉실하게 말하지 말고.. 얼마 예상하나?"

장감독, 서감독 그리고 처음으로 시사회에 참석한 정도홍 무술 감독과 박사장까지 다들 수빈의 입만 쳐다보고 있었다.

"600만 이상은 무조건 들 겁니다. 제가 보장하죠."

장감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하늘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좋았어! 강감독이 그렇다면 그런 거야. 나도 한번 대박 맞아보자고."

수빈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축하 드립니다. 감독님. 제 기억이 맞는다면 이번 영화 손익분기점이 280만인 걸로 아는데.. 600만이 넘어가면 인센티브로 못해도 10억은 넘게 버실 거 같은데요."

"고맙네. 강감독. 다 강감독 덕분이야."

"뭘요. 아직 개봉도 안 했는데요."

수빈은 오른손 검지를 세워 천장을 찌르며 물었다.

"제작사에서는 언제 개봉한다고 하던가요? 요즘은 필름 때처럼 프린트를 찍을 필요가 없어서 금방 할 수 있지 않나요?"

"그렇지. 스크린 수 협상하는데 사나흘이면 다 될 거니까.. 아마 다음 주 화요일쯤 VIP 시사회를 열고 목요일에 개봉할 거로 보이네."

"그럼 이번 주말부터 대대적으로 광고가 시작되겠군요."

"그럴 거야. 광고도 나가고 나랑 배우들이 연예가 중계 같은 프로그램에 줄줄이 출연하겠지. 강감독도 열심히 도와주게나. 공동 감독에 음악 감독에 배우까지 했으니 누구보다 열심히 뛰어줘야지."

장감독의 말이 끝나자 수빈이 지혜가 넘쳐흐르는 눈으로 장감독을 직시하며 물었다.

"장감독님. 절 믿으십니까?"

"말해 무엇 하나. 강감독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내가 믿을 거네."

수빈이 장감독의 말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이왕 버는 김에 정말로 대박을 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릴까요? 이 방법대로 하시면.. 어쩌면 이번 영화로 장감독님은 천만 감독 반열에 올라가게 되실지도 모릅니다."

갑작스러운 수빈의 천만 운운하는 거창한 발언에, 몸이 후끈 달아오른 장감독이 눈에 불을 켜고 덤벼들었다.

"그게 정말인가? 그렇다면 내가 뭔들 못 하겠나. 방법을 알려주게. 강감독이 시키는 대로 내가 뭐든지 다 할 테니까. 내가 강감독이 마시라면 똥물이라도 마시겠네."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으시고요. 지금부터 감독님은 하나를 명심하시고, 하나를 싸워서 쟁취하셔야만 합니다. 먼저 명심해야 할 하나는.. 이 방을 나서는 순간부터 장감독님 머릿속에서 저라는 존재를 깨끗이 지우셔야 한다는 겁니다."

"내 머릿속에서 자네를 지우라고?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린가? 왜?"

장감독의 질문에 수빈이 고소를 지으며 말했다.

"23살에 영화감독입니다. 그것도 독립 영화가 아니라 100억 가까운 제작비가 들어간 상업 영화에 말이죠. 아무리 공동 감독이라고 하지만, 오랫동안 장유유서를 신봉하던 한국 사람들이 그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거 같습니까? 어림도 없습니다. 지금도 전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거기에 이번에 영화감독까지 했다고 하면.. 그 사람들이 이번 영화를 개봉도 하기 전부터 싸잡아서 씹어댈게 분명합니다. 제대로 걸렸구나 하고 잘근잘근 씹어대겠죠."

수빈은 냉정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감독님. 인간은 태생부터 어리석은 동물이라서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 동물입니다. 충분한 숫자의 관객이 영화를 볼 때까지는 제가 전면에 나서면 안 됩니다. 오히려 잡음만 생기고 가장 중요한 초반 흥행에 방해가 될 뿐이죠. 주말부터 시작될 광고와 인터뷰 프로그램에서 저를 완전히 배제하세요. 머릿속에서 저라는 존재를 싹 지우셔야만 합니다."

"그래서 아까 시사회 때도 사람들 앞에 안 나섰던 거군. 그럼 언제까지 그렇게 해야 하는 건가?"

"일단 500~600만 정도까지는 그래야 할 겁니다. 그때쯤이면 아마 제가 등장할 타이밍이 올 겁니다. 화려한 뉴스와 함께 사람들의 이목을 단숨에 집중시키면서 말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감독님이 싸우셔야 합니다."

"누구랑 싸우란 말인가?"

"당연히 제작사죠. 드림픽처스 하고 싸워서 반드시 이기셔야만 합니다."

"제작사랑 뭘 어떻게 싸우라는 건가?"

"제 예상으로 이번 영화는 관객 동원이 600만 정도 되면, 하루하루 지날수록 좌석 점유율이 뚝뚝 떨어져 내릴 겁니다. 제작사인 드림픽처스가 돈을 밝히기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그런 상황이 닥치면 영화를 빨리 스크린에서 내리고 IPTV 시장 쪽으로 진출하려고 들 겁니다."

"당연히 그렇겠지. 점유율이 낮은데도 스크린에 걸고 있으면 돈이 안 될 테니까."

"그때 감독님이 제작사와 싸워서 상영 기간을 반드시 연장하셔야 합니다. 못해도 1주일, 길면 2주 정도 더 버티셔야만 합니다."

수빈의 말에 장감독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버티면? 그래서 버티면 뭐 뾰쪽한 수가 있나? 이미 점유율이 떨어진 상태라 아무 의미가 없을 텐데."

수빈은 탁자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머릿속을 정리하면서 차분히 입을 열었다.

"이번 영화에는 제가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시한폭탄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그게 언제쯤 터질지는 제작자인 저도 정확히 모른다는 거죠. 지금 제 예상으로는 한 달 이상은 무조건 지나야 할거 같은데.. 막상 시한폭탄이 작동하려고 해도 영화를 다 내린 상태라면 아무 의미가 없게 되죠. 그래서 감독님이 최대한 버텨주셔야 한다는 겁니다."

수빈은 손가락을 뚝 멈췄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관객 동원이 600만이 넘어설 때쯤이면 제가 화려한 뉴스와 함께 전면에 등장할 겁니다. 그때 때맞춰 시한폭탄이 터져준다면.."

"준다면?"

수빈이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천만은 무조건 넘을 겁니다."

회의실 분위기가 거듭되는 천만이라는 숫자에 기대감과 흥분으로 들뜨기 시작할 때, 수빈은 자세하게 세부적인 주의사항들을 알려주었다.

잠시 후 회의실을 나선 수빈은 자신의 사람들을 긴급 소집하였다. 밴을 타고 YK로 이동하면서 수빈은 봉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봉감독과 한참 동안 통화를 나눈 수빈은 갑자기 메모지를 꺼내어 뭔가를 열심히 쓰기 시작했다. 메모지에 글 쓰는 것을 끝마친 수빈이 수빈이 매니저를 불렀다.

"형. 밴 안에 편지 봉투 있나요?"

"있지. 잠시만.."

차가 잠시 정차하자 매니저가 조수석 콘솔 박스에서 편지 봉투 묶음을 꺼내어 건네주었다.

수빈은 메모지 3장을 각각 곱게 접어 3장의 편지 봉투에 접어넣고선, 봉투 겉면에 숫자와 개봉할 때를 적었다.

- 1) 일주일.

- 2) 10프로.

- 3) 출장.

수빈은 3개의 메모지가 들어간 3개의 봉투를 조심스럽게 챙기며 중얼거렸다.

"제갈공명(諸葛孔明)이 조자룡(趙子龍)에게 준 3개의 비단 주머니 대신 난 3개의 편지 봉투로군."

잠시 후 밴이 YK 사옥 정문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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